혼밥 판사
정재민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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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는 글재주가 좋은 푸근한 아저씨를 한 명 더 알게 되었다.

혼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는 있지만, 혼자 먹는 쓸쓸한 밥상은 작가에게 어울리지 않다. 내가 선택하고 고른 지금 먹고싶은 딱 알맞는 메뉴를 즐기는 흐뭇한 작가가 있을뿐. 어찌나 음식을 향한 애정넘치는 표현이 풍부하신지, 책을 읽는건지 밥을 먹으려는건지 분간이 안될정도로 재주있는 작가의 말솜씨에 나도 모르게 스르륵 홀려든다.
작가는 독자에게 분명 당시에는 어렵고 곤란했었을 사건들을 먹을거리에 녹여서 사뿐사뿐히 차근차근 소개한다. 차마 무겁고 어렵게 비춰질까 걱정하는 사려깊은 작가의 배려가 보여, 글을 읽는 내내 나는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진다. 훈훈해진 감상을 더하며 동시에 작가는 엉뚱하다. 좀처럼 주체할 수 없는 유머는 문득문득 튀어나와 피식거리게 하는데, 내가 알고있는 판사라는 직업의 위엄성은 잊혀진지 오래다. 이런 능력(?)을 어떻게 감추고 법정에 나서서 근무를 하셨을지 애정어린 독자로써 오지랖 넓은 걱정까지 했다.

작가와 같이 다방면으로 재능이 출중한 지성인들이 가득한 세상에 함께 살고있다는 불공평한 사실을 탓하면서 새삼 조금도 놀랍지 않을 당연하게 불평등한 세계를 떠올렸다. 작가에게 또 어떤 세계가 있을까.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나는 작가의 다른 저서를 찾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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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은둔 사이 - 벽장 안팎에서 쓴 글들
김대현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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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중간 나는 이게 번역서였던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 커버를 다시 덮고 작가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역자는 없었고 저자 이름 한 명만 있었다.
책의 주제도 한몫했지만,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수식하는 작가의 글이 도통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통 한 줄 읽고 이게 무슨 내용이지 하며 다시 되새김질하는 건 고리타분하게 번역된 베스트셀러의 외국 교양서적이었는데 그 기분을 여기서 맛보다니 참 의아했다.

모르는 주제이기 때문에 함부로 다룰 수도 없고 약간은 거리감이 느껴져서, 때문에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호기심이 갔다. 꾸역꾸역 읽어 내려간 글 속에서 내가 생각한 건 그냥 뭔가 작가가 불만이 많아 보였고 그게 사회가 만든 틀이든 본인들이 만든 룰이든 간에 고귀한 투정처럼 보여서 아쉬웠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 그 자체로 중요해 보였고 과정이 가장 중요한 본질로 남아 있음을 재차 확인하는 듯한 뉘앙스가 나에게는 어려웠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확신 가정하며 확고히 하는 분명한 태도가 꺼려졌으며 그게 그들이 말하는 기득권과 일반 대중이 갖는 비평적 태도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해 오히려 되묻고 싶어졌다. 본인은 이해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배제된 것 같다고 하지만 오히려 표면적으로 광장의 화두조차 되지 못하고 소외 속에 머무르고 있는 집단이 많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 공정하게 인정받는 것 자체가 무엇이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새로운 사상이나 개념이 등장하면 우선 경계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 그 가운데 호기심을 갖고 다가갈 수도 우선 배척하고 차근차근 알아나갈 수도 있는 건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선택 아니었나. 지금은 그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언정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제안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차분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절실해 보인다. 부제가 그러했듯 벽장에서 갇혀있는 듯한 자세로는 아직은 세상에 내보이기에 낯섦이 먼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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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미니멀리즘 - 딥 워크를 뛰어넘는 삶의 원칙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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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간이 그들에게는 돈이 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주 쉽게 망각해버리기 일쑤일 뿐 정말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매일의 시간을 내어주고 만다. 추천과 알고리즘이 구현한 영원한 디지털의 찬양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한 축복인 마냥 찬송 되었다. 어느 기업이나 빅테크의 수혜자며 선구자인 양 떠들어댔고, 소비자는 모든 정보를 상납하며 구속되면서조차 당당한 권리 추구를 받는 현명한 소비자처럼 궁색하게 포장되었다.

어린이에게 뽀로로를 틀어준다는 한심한 부모를 철없게 바라보았다. 어른이들에게는 스마트폰 그 자체가 마음의 안정과 시간 소비의 궁극적인 종교이다.

작가는 극단적으로 독자를 밀어낸다. 스마트폰을 던져버리라고, 모든 소셜네트워크 앱을 삭제하며 그 불성실한 화면만 멍청하게 소비하며 바라보는 걸 당장이라도 그만두라고 말이다.

디지털 슬롯을 당기며 새로운 뉴스피드를 업데이트한다. 중독된 마약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행산업에 빠져드는 것이 무엇인지 현대인들은 어느 정도 같은 감정을 향유하고 있지는 않을까? 천문학적인 투자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은 이제 과거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그들은 성공 가두를 달리며 많은 투자자의 성원에 힘입어 오늘도 개개인의 영혼을 빼앗길 원한다. 테크놀로지 발전과 눈부신 편의성을 삶에 선사할듯하던 장밋빛 선언은 이내 바랜지 오래다. 뒤편에 가득한 구린 의도를 끄집어내지 않는 이상 인생에 대한 주도권은 개인에게 없으며, 길들어짐에 익숙한 나머지 그들이 의도한 대로좋아요버튼 놀이에 일희일비하는 영속적인 삶을 살게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아주 자연스럽고도 익숙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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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 - 내 일을 나답게 하는 법, 책바 이야기
정인성 지음 / 북스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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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열심히 일한다. 과거에도 열심이었고 지금도 그러면서 미래에도 열심일것임을 분명히했다. 전적으로 그의 말에 의하면 틀림없다. 의도적으로 잘 정돈된 인스타그램을 글로 풀어서 한 권으로 만들면 이런 느낌일까.
자기계발서의 성공담을 말하고자 하는건지 자영업의 기록을 공유하고자 하는건지 간헐적으로 뒤엉키는 장르에 조금 적응이 안되었다. 작가의 사년이라는 긴 기간을 이렇게 사십분 남짓한 시간으로 읽어버리다니 좀 뭔가 아쉽고 씁쓸하게 이상했다. 그 안에 흥미롭고 많은 얘기가 있었을텐데 그걸 구태여 드러내기보다는 정제해서 아름답게 보여주려고만 하다보니 그냥 나랑은 먼 어떤 사람의 동화처럼 박제되어 뒷편에서 감상만 하게된다. 딱히 와닿거나 전해지는 감정은 없이 세상에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읽었다. 행동 하나도 감상 하나도 수치화 해버릴 잣대가 있다. 어떤것도 좋은 의도의 결과물이 되지않으면 모조리 불필요한 관점처럼 여겨졌다. 책 자체도 뭔가 의도적인 수단처럼 보였다.

삶은 분명 타인에게 평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나와는 다른 이상향에 조금 어긋났음은 명확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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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브랜드 - 당신이라는 브랜드에게
박찬용 지음, 최용준 사진 / 에이치비프레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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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를 펼치면 무엇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화려한 이미지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감촉으로 느껴지는 뻣뻣한 유광종이와 더불어 사진들은 어찌나 눈부신지 강렬한 색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손톱두께 마냥 잘게 파편화된 글자는 또 얼마나 작은지 쉽사리 시선이 가지 않는다. 읽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현란한 이미지 위에 정제되어 올려진 문단은 그냥 지나쳐버리기에 급급한 불필요한 장식 같이 여겨졌다.
그런 글들이 이 한 권에 모였다.
각종 매거진의 편집자로 경력을 쌓아온 작가의 포트폴리오 마냥 그가 작성했던 글이 한군데에 정리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사견이 강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분명한 정의내리는 것 마냥 기업소개 리플렛을 쥐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어 약간 아리송했다. 화려한 이미지나 강렬한 색채는 분명 없는데, 스쳐지나간 잡지를 읽는 상상이 머릿속을 내내 맴돌았다.

‘요즘 브랜드’랄까. 발권한지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급속하게 변화하는 패션브랜드 마냥 타이틀이 철지난 한 권 처럼 보인다. ‘요즘(이었던) 브랜드’라고 명명하면 조금 나아보일런가 생각했다.
고전과 트렌드 그 사이에 걸쳐서 중간의 역할도 제대로 못 잡은 애매한 위치에 이 한 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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