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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2025년 올해의 책이라는 거창한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 문구가 이 책을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우연히 들른 카페의 책장 한켠에서 무심코 집어 들었을 때는 몰랐다. 이 책을 실제로 읽게 된 시점이 2026년 새해 즈음이라는 사실이, 마치 막차를 허겁지겁 타는 사람처럼 대중의 관심사에 뒤늦게 합류한 꼴이 된다는 것을. 유행을 좇지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결국 나는 늘 한 발 늦은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현재와 과거, 미래가 반드시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앞에서 한동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내가 살아온 시간도 그랬다. 분명 지나왔다고 생각한 과거가 불쑥 현재를 건드리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었던 미래가 이미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던 작가가, 요가를 즐기며 무언가 단정하고 고요한 삶을 살 것 같다는 나의 막연한 예상과 달리 엉뚱한 기행을 슬쩍 드러낼 때는 웃음이 났다. 특히 물구나무서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대목에서는,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예측을 배반하는지 새삼 실감했다.
인생은 대체로 이렇게 두서없고 계획이 없다. 이미 정해진 루트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도 명확하지 않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불투명한 시간 속에서, 단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으면서도 사람들은 늘 선명한 미래를 약속받고 싶어 한다. 세상은 그 욕망을 놓치지 않고, 확실함과 성공,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상업적인 호객을 쉼 없이 이어간다. 마치 이 길만 따라가면 괜찮아질 것처럼, 이 선택만 하면 불안하지 않아질 것처럼.
하지만 작가의 문장 사이를 오가다 보면 그런 호객의 목소리가 잠시 멀어진다. 단어와 단어를 나란히 놓고, 시간과 순간을 조심스럽게 담아내는 손놀림 속에서 나는 내가 잊고 지내던 덤덤한 흐름을 다시 마주한다. 특별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하루들이 사실은 가장 솔직한 삶의 형태였다는 사실을. 그래서 책을 읽다 말고 문득 놀라기도 한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바삐 의미를 찾으며 살았던가, 언제부터 흐름을 의심하며 계획을 증명하려 애썼던가 하고.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누군가가 미리 마련해둔 마음씨 위를 잠시 빌려 걸어보는 경험에 가까웠다. 작가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나 역시 내 삶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굳이 앞서 나가지 않아도 되고, 명확하지 않아도 괜찮으며, 조금 늦어도 상관없는 속도. 그렇게 살아가는 방식이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맞는 것 같다고, 책장을 덮으며 조용히 수긍하게 된다.
그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지금은 이 정도의 불투명함과 덤덤함이 나에게는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