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사랑한다는 주장과 다르게 지구를 탐험하는 여행을 작가는 싫어한다고 당돌하게 말한다. 그렇다. 이 책은 여행을 싫어하는 작가가 특별한 계기로(반 강제적으로) 방문하게 된 몇 곳의 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도시에 지인이 머물러 있어, 책은 작가의 사람과 그 사람의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추억들로 채워진다. 삽화처럼 들어간 사진들은 현대 미술을 애호한다는 작가의 취향을 반영한 듯 조금은 감각적이면서도 열려있는 의도 탓에 (작가는 후기에서 자신의 사진 촬영기술을 폄하하였으나) 헤아릴 길 없는 작가의 여행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어준다. 에피소드는 사진으로 남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진이 아닌 분명하게 시각적으로 각인된 기억 탓으로 오해할 만큼 작가의 추억과 이야기는 과거보다 더 선명했고, 그 속에 담긴 작가의 따뜻한 마음씨가 더해져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진다. 삶을 긍정하고 주변을 살펴보는 작가의 자세는 나에게 그 어떤 여행기 보다 편안하고 쉬이 동행할 수 있는 휴식을 선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