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 - 배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일과 삶에 관한 이야기
김그루 외 지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 코난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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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당연한 것은 자연스레 잊힌다. 당연하지 않을 때 마주하는 것들은 특별하고 한 번쯤 다시 눈여겨보게 되지만, 늘 마주하고 있어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들은 애써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길 필요가 없어진다. 애석하게도 인간은 자신 가까이에 자연스럽게 있는 소중한 누군가의 존재를 잊도록 설정된 것처럼 그렇게 주변을 지워버린다. 이처럼 누군가의 노동을 우리는 많은 방식으로 묵인하며 그들의 노고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받들어지고 신성하게 여겨온 특별한 노동은 학습된 의미로 가치를 빛낼 뿐인데, 철저하게 규격화된 관념의 시스템 속에서 처단되고 분류된 직업은 별 볼 일 없는 노동과 인간 스스로가 우상화시킨 업무로 나누며 소외된 특정 집단을 가치 없음으로 처분하였다. 필수 불가결한 존재들이 당연시되고 가치 없음을 획득했다는 사실은 인간이 쌓아온 사회구성의 존재를 의심할 정도로 의아한 결과이지만, 대중은 오랜 시간 길들여지고 익숙한 학습 탓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의문을 제기하는 대상이 오히려 의심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니 이 책과 같이 사회에 불순한 반기를 든다면 사람들은 철저히 외면하거나, 신기한 관심으로 그들의 행태를 들여다볼지 모르겠다. 
책에서 소개된 각각의 노동자들이 겪어온 그리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는 환경을 내가 감히 겨우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까.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보통은 ‘역지사지‘라는 네 음절로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강조해 보기도 하지만 인간은 서로의 상황에 동일하게 처해 있지 않는다면, 결코 서로의 환경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조금이나마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려 많은 사고와 학습으로 묵인되고 가려진 누군가의 의미를 의식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최소한의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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