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참이나 긴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각종 잡동사니와 함께 어울리지도 않게 꽂혀있던 하드커버의 양장본의 산문집을 타인의 방에서 접했다. 원하지 않든 낯선 상황으로 인한 선택권은 작가의 글과 맞닿아 있어 마치 이미 읽어봄직한 하지만 전혀 그 깊이는 가늠하지 못할 스쳐지나간 타인의 흔적 같았다. 이런 우연치 않은 작가의 글과의 만남은 떠도는 잡념마냥 다시는 기억나지 않을 꿈처럼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나는 시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간결한 몇 문장속 정제된 단어 조합을 통해 겉멋으로 스스로를 드높인다는 오해와 선입견으로 문학을 멀리한 자신의 오만함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타인의 인생의 무게를 측량하려 들었으며, 이미 자신의 기준에 따른 정의로 판단한 추정치는 어떠한 의미도 결론도 없이 증발해버린 실온속의 알코올 같이 가볍기 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조금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화려한 장식으로 덮으며 현실에 드러내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마치 호통치는 어떠한 큰소리도 없이 내 마음을 위엄있게 하지만 단호하게 나무랬다. 작가가 써내려간 글은 늘상 누군가의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지만, 그 찰나를 잡아 끌어 문자로 환원하는 작가의 독특한 재능이 없었다면 이해되지 않았을 철학이었다. 다만 어떤이에게는 작가의 행위가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연습으로 치부되었을 뿐이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사상을 답습하며 으레 내 생각이 대중이 생각하는 그것과 일치하며,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일순간의 반짝임만을 소원했다. 아스라이 스며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소멸하는 삶이 시간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작가는 그렇게 스스럼없이 다그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없어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