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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 죽기로 결심한 의사가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6월
평점 :
‘작가의 말’을 마지막으로 책을 덮은 나는 직감했다. 나는 아마도 작가, 그가 결국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의 아주 사소한 어느 한 조각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것임을. 프롤로그를 통해 이야기의 화두를 던지는 작가는 아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형식을 빗대어, 개인적인 감정을 통해 죽음을 다루고자 했던 이 책의 무게가 결코 쉽게 다뤄질 것이 아님을 서두에 앞서 경고하는 듯했다. 나는 증상 소견서 혹은 처방의약품이나 나열하며 객관적인 상태만을 적어 내려갈 것 같던 의사가 과연 책 한 권으로 무얼 말하려고 드는지 호기심이 일었다. 나에게는 단순히 케이블 채널을 돌려보던 중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를 정숙하게 장식하던 광고가 인상적인 단체이었을 뿐인데, 작가는 그 대상인 ‘국경 없는 의사회’에 지원하고 세 곳의 파견지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렇게 덤덤하게 글로 풀어내었다.
글을 업으로 삼지 않는 사람의 글이기에 어떤 꾸밈이나 과대한 수식이 제외된 탓일까. 타인들의 화려한 문장과 기교 넘치는 재능의 활자에 너무 익숙해온 탓인지 나는 다소 건조하게 풀어나간 작가의 이야기에 다소 당혹감이 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이 흥미 없다거나,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다; 내가 감히 그럴 평가를 내릴 수도 없다) 이는 으레 짐작했던 ‘해외구호활동가’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서로 상호교환 가능할 법한 적절한 두 명제가 서로 만나 결합되어 발생할 무언가의 뿌듯함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 그 원인이 있다. 분명 그들은 서로 조화롭게 얽혀 모두가 기대할 콘텐츠의 그림을 그려내야 했다. 하지만 고통이라는 환경에 빠진 인물들은 희망이 보이는 찰나도 보이지 않고 이내 생을 마감하거나 사라진다. 활동가들은 가능성이 보이는 듯한 해결책으로 문제를 개선해 나가려 하지만 결국 환자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무시될 뿐이고 어찌 된 영문인지 긍정적인 결과는 손꼽을 만큼 에피소드가 없다. 작가가 의사로서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하고 단순히 무기력하게 그려진 모습은 대중이 원하는 바로 그 대상이 아니었다.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 탓에 일어난 나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자선사업과 의사, 그리고 심지어 고통받는 질병이 모인 정의들은 늘 미디어에서 아름답고 거칠지만 희망의 아이콘으로 신성시 되어 온 부분이 있으며, 그들의 분류방식에 나는 조금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해외구호활동은 나와는 철저하게 다른 먼 나라의 약간의 슬픈 동화처럼 들렸고, 그들이 위치한 나라와 한국의 거리만큼이나 정말인지 형언할 수 없는 거리감으로 철저하게 미화되고 분할되어야 했다. 덕분에 안전망 속에서의 나는 객관적으로 그들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성적인 상황파악이라는 자만의 착각 안에서 누군가가 기획한 방향대로 익숙한 경험과 결론으로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을 뿐이었다. 작가는 스스로의 구호활동을 슈바이처가 되고 싶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도서 마케팅은 이 부제로 작가를 수식하였다), 어릴 때 꿈이었다던가 하는 이유로 뻔하지만 누구나 선망했을법한 원인으로 자신의 활동을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증으로 인한 가족사를 드러내며 딱히 누구도 듣고 싶어 하지도 않은 터부를 대중에게 내보이며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작가가 의사의 입을 빌려 대중들이 익숙하게 여겨온 사상화된 사고를 꺼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에라리온의 에볼라가 그러했듯 질병과 소외된 사람들은 그 자체로 정말인지 현실로 존재함을.
‘2014년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사람들은 서아프리카인들의 매장 풍습을 비난했다. 이곳에서는 매장 전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망자를 물로 씻기고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이 풍습은 수천 년 동안 평화롭게 내려왔고, 에볼라 유행도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문제는 돌연변이였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침팬지와 같은 중간숙주를 만나 치명적인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국가와 다국적기업은 초원과 정글을 무차별 개발했고, 배고픈 아프리카인과 동물은 정글 깊숙이 쫓겨 들어갔다. 인간이 생태계를 교란하자 에볼라 바이러스는 유인원의 몸 안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독성이 강해진 바이러스는 이제 인간을 공격했다.
죽음을 직면하면서 삶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살아가야 하는 이들은 모두 죽음을 앞두고 남은 여생을 기약하는 오늘 하루도 보내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에 의의를 두며 매일의 시간을 보내는가에 대한 의문. 여기까지 도달했다면 이건 단순히 해외구조활동을 엮은 산문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누구나 껴안고 있지만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나중에 해결할 일로 우선순위 속에 밀려나 잊힌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또 다른 아이콘이 되며 대중을 위한 무언가로 변모할지도 모른다. 대중이 혹은 누군가가 원하는 그림의 한 조각으로 알맞게 재단되며 소비되지 않기를. 이번 책을 통해 나는 어떤 인상은 분명 받았고 때문에 그가 원하고자 했던 가치가 바래지 않기를 바라며 뒤에서나마 소박하게 응원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