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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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계는 전력부족이라는 불안을 마주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발달된 기술로 혁명적인 디지털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풍족한 생활을 영유하고 있다. 나는 전력 문제를 비롯한 현재의 에너지 수급상황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에너지부족이란 건 외교나 정치적인 분야와 얽혀 있더라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기술이나, 과학 발전에 전적으로 기반하고 있다 생각했던 것이다. 하물며 타이핑을 하고 있는 지금의 노트북도 아주 조금의 과거에는 펜으로 종이에 담겼을 사유였음을 이내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나는 이처럼 너무나 오만하고 단순한 타성에 젖어 있었다. 
이처럼 편의와 본능이라는 가치에 생각을 내어주면 사고의 출발 자체가 달라진다. 약간의 의문을 가질 만한 문제점들이 휘발되는 가치와 증폭되는 숫자로 변모할 뿐이고 이익이라는 기업의 고귀한 산물로 대체하기에 자본사회의 총체적인 과정을 의심한다는 건 비평받아 마땅하다. 이건 ‘돈세탁‘이라는 무시무시한 범죄영화의 브로커를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는 얘기이다. 이미 ‘세탁‘이라는 매끄럽고 깔끔한 과정이 우리 삶에 촘촘하게 설계된 플랫폼 속으로 자리 잡았으니까. 

작가는 자신이 바라본 관점을 통해 아홉 가지의 카테고리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뒤집어 본다. ‘뒤집는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실은 아주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한데, 작가가 들춰내는 현실은 꺼림칙하고 부정적이며 불쾌하기까지 하다. “과연 그게 지금 우리네 삶인가요?” 누군가와 아무렇지도 않게 교환해 왔던 행동과 말들은 이제 플랫폼의 가치 아래에 디지털로 변환하며 숫자와 금액으로 환산되는 거래가 되었다. ‘좋아요‘와 ‘팔로워 수‘는 (혹은 작가가 예로 들어준 당근마켓의 ‘매너온도‘와 같이 이름은 다르지만 결국은 기업이 규정하여 계산가능한 측정단위로) 기업의 속내를 가리는 이용자들의 자발적인 유희로 가장되어 문제발생의 책임 본질을 흐리게 돕는다. ‘페이스북‘이 ‘메타‘라는 사명으로 갈아타고 노골적인 사업의 목적을 드러냄과 동시에 개인의 삶이 채굴대상이 되는 가치로 타깃이 된 것은 (하지만 그들은 그 이전부터 그런 행보를 차근차근 밟아 왔을 뿐이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정치인들이 왜 그렇게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집착하는지 한 번쯤 곱씹어볼 만하지 않는가?) 사람들은 ‘공짜 서비스‘라는 당장의 이득에 순응하여 자진해서 사진을 포스팅하고 영상을 업로드한다. 스스로가 기업의 또 다른 콘텐츠며 노동자가 되기를 꺼리지 않는 현대인들은 오히려 길들여지기를 꺼리는 인간들을 배제하고 비난할 따름이다. 이쯤 되면 작가의 책은 부적절한 사상을 주입하며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이기에 불온서적으로 낙인 되어 온라인 거래로 정지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하지만 이는 주목과 또 다른 콘텐츠라는 형태로 면모 하여 그들에게 새로운 자산이 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게 도움이 되겠지만) 
황새를 쫓을 기력이나 자신감 자체가 결여된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시류를 잘 못 읽고 자가진단이 확실했던 탓에, 작가가 열거한 플랫폼의 화상에 데는 일은 적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경계심 많은 나 같은 성격에는 아직까지 기업의 알고리즘이 강제성을 발휘해 정보를 도달시키기에는 어려운 것일까. 기술의 개발 속도가 미치지 못함에 다소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미화되거나 편의로 가공된 마케팅의 논리는 여전히 덕지덕지 삶의 구석구석에 쌓여 있고, 살짝만 스쳐도 인연이 되는 가벼운 터치만으로도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종속되고 아주 쉽게 편입되는 고객이 된다. 작가가 끝맺음에 넌지시 얘기하듯 이런 사회에서는 아예 그들 속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바치고 매체를 통제해버리거나, 혹은 완전 플랫폼을 차단한 채 완강히 거부해야 할 텐데 전자를 내세우기에 내 자아의식은 아직 불안하고 후자를 선택하기에 그렇게 까지 내가 미쳤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애매모호하게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듯한 이물질 마냥 나는 흐름에 몸을 내버려 두고는 있을 뿐이다. 근데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단점과 역효과가 묻어나기 나름 아닌가도 했다. 너무나도 빠른 편의를 생각하기에 급급하여 목적 달성을 위해 그동안 묵인되고 제외되어온 소소한 가치들이 이제야 산더미처럼 불어나 앞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숙제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어찌 되었든 변화와 기술이 삶에 침투하는 방향은 회피할 수 없기에 지금에 와서야 문제가 되었을 뿐 감정적으로 비난하기에 앞서 객관적으로 비판하고 개선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한다. 고민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플랫폼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의견 또한 결코 부질없이 소모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 없이는 이 세상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의사소통을 위한 플랫폼이 ‘읽씹‘과 ‘차단‘이라는 형태로 커뮤니케이션을 단절시키고, 거래를 위한 시스템이 마케팅과 불순한 의도로 교환을 막는 이상한 역설의 효과를 몸소 체험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자화된 사상을 직접 체험으로 경험시키는 그들의 배려에 감사해야 하나 이리 황송하기 그지없는 오지랖에 차디찬 테크놀로지의 따뜻함을 새삼 느낀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문득문득 떠올랐던 의문이 작가로 인해 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흐리멍덩하게나마 자극을 받았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나는 ‘현명한 고객‘이라는 가공된 이상에 발을 담길 의도는 전혀 없다. 그냥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플랫폼의 의도에 의해 보정되지 않고 반영되는 길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 오늘도 그렇게 제도 속의 잉여물처럼 하루를 살아가길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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