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모두에게 갖춰진 보통의 일반적인 그런 일상을 꿈꾸지만, 보통이란 무엇인지? 또 일반적인 일상은 무엇인지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상한 기후변화와 돌출하는 자연 현상에 우리는 당연하게 존재했어야 할 보통의 나날이 결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음을 조금이나마 지레짐작할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가운데 “코로나 팬데믹”은 이미 많은 영역에서 뭉뚱그려 가늠해 보았던 가정들이 직접적인 현실로 드러나며 그 실체를 더욱 구체화시킨 트리거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암담한 변화는 아직 초기단계로 시작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유아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가 더욱 위기감을 조성할 뿐이었다. 작가가 정갈하게 늘어놓은 각 챕터의 우려들은 다음과 같은 위기감에 비롯한 걱정에서 시작되었으리라 가늠해 볼 수 있다. 근래에 뉴스나 미디어에서 한 번쯤 들어보았던 경고와 개선책은 작가의 글을 통해 한 번 더 강조되며 독자에게 자극을 던진다. 나는 늘 당연시해왔던 행동과 습관들이 주변을 그리고 더 나아가 환경을 지구를 폐하는 것임을 알고는 있었다. 다만 실천하기까지의 의식적인 과정이 다소 무료하고 탄성적으로 복귀해버리는 무력한 본능이 우선되었을 뿐이다. 작가를 따라 하나하나 점검해 가며 그동안의 자취는 얼마나 더러운 흔적을 남겼는지 과거 반성의 돌이킴으로 나는 다소나마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었다. 정말인지 우리는 타인의 배려가 당연한 권리가 되는 일상을 보내며 보통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소망을 주입시키며 대단해 보이지 않는 삶의 철학을 지탱하기를 원했다. 아무도 그 소소한 일상이 커다란 피해와 고통을 기반한 지탱을 고스란히 뒷받침하고 있음을 무대 뒤의 암흑처럼 모른척하거나 부정했다. 한 번쯤은 돌아봐야 한다. 집안에 가득 찬 물건들과 앞으로 구매할 온라인 마켓에 담긴 장바구니 리스트를. 너의 개성을 존중하고 맘껏 꿈을 펼치라는 멋들어진 슬로건 하에 구매를 독촉하며 현재의 너를 비난하지 마다하지 않는 기업들의 그늘진 마케팅을. 과장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더 많이 더 풍성하게 먹고 남기라고 등 떠미는 미디어의 부채질을. 더 편하고 쉽게 손가락으로 결제하면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스르륵 스크롤과 간단한 버튼으로 마무리되는 배송과 배달의 편의성을. 이런 타성에 젖어 계속해서 골몰하면 인간은 그 자체로 지구(인간들로 인해 이미 퇴보된)와 함께 소멸하기 딱 알맞을 정도이다. 누군가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한다. 자조적인 희망사항일지라도 어쨌든 변화의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던가. 한 개인이 노력한들 얼마나 큰 변화가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조금이나마 실천했을 때 스스로 마음의 안정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이것에 맞서듯 기업들은 그린워싱과 같은 행동으로 교묘하게 이미지를 세탁함을 알고 있다. 텀블러와 에코백 소지를 조장하며 제품을 더더욱 찍어내는 돈잔치에 누가 그런 멍청한 동조를 하나 했지만, 그것이 “그린”(비꼬는 것이다) 임을 자청하는 고객님들의 호응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좋은 조언과 자극을 던지는 훌륭한 책인데 나는 크게 의문이 들었다. 왜 작가는 이 책을 재생용지로 인쇄하지 않았을까? 왜 책 커버를 굳이 무광코팅으로 마감하며 재활용을 어렵게 했을까? 디자인을 위해 가운데 여백 안쪽에 컬러 면적을 두며 가독성과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잉크 사용으로 자원을 소비한 이유는? 이건 굉장히 사소하고 불필요한 의견일 수 있다. 다만 이 한 권을 통해 그렇게 주야장천 물건을, 자원을, 에너지를 그리고 소비를 돌이켜보라는 경고 아닌 비난을 마다하지 않은 작가가 이러한 디테일에서 묵인했다면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이 지식인인척 고귀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자신을 타당해 만족한 허구처럼 느껴질 뿐이라 대단히 씁쓸하고 불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