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의 나이와 비슷한 아주 오래된 아파트에서 산적이 있다. 요즘 아파트가 선사하는 신문물이 낮설정도로 정말 구식인 아파트인데 사람이 살고 지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어찌나 많은 사연들이 있던지, 저자가 말해준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이미 겪어 본 일들이어서 마치 남얘기 같지 않아 화자의 얘기에 나도모르게 과거를 회상하며 그 시간으로 빠져들었다. 다만, 너무 갱생하는 듯한 어조로 모든 에피소드를 마무리 하고자 하는 듯한 딱딱함이 매우 아쉬웠다. 저렇게 미화되어서 아름답게 일이 정리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 가려진 이면의 흥미 진진한 (혹은 아주 난폭하여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과정들이 매우 깔끔하게 도려내 있어 오히려 나는 그 부분이 더욱 궁금했다. 일부러 단정하게 사건을 마무리하려하는 듯한 맺음새는 내가 책의 목차에서 기대했던 바는 아니었다. 늘 그곳에 있어서 한번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의 자연스러운 부분은 모두 이렇게 뒤에서 고생하고 계시는 분들에 의해서 채워지고있다. 이 한 권으로 나마 그분들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