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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용 -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ㅣ 사이언스 클래식 6
칼 세이건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8월
평점 :
저자 칼 세이건은 아주 유명한 천문학자이다.
책날개에 나와있는 저자 설명을 읽어보니 인문학으로 학사를 땄고
물리학으로 석사를 딴 후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적인 정보가 실린 글을
인문학적인 감성으로 표현하는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인데 책의 전체 내용과 딱 맞는 제목이다.
인간 중에 아주 똑똑한 인간이 내가 왜 이렇게 똑똑해졌는지 생각해보는 책이랄까.
요즘 컴퓨터가 아주 똑똑해져서 프로그램을 깔면
혼자서 자기 안에 있는 바이러스를 잡아 치료하고
자기 안의 정보를 정리해서 용량을 줄인다.
혹시 어느날 컴퓨터가 나는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줄줄 써내려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만약 컴퓨터가 나는 몇 년도 누가 만든 계산기에서 시작되었고
그 다음엔 어떻게 발전이 되었고 그 다음엔 어떤 기능이 추가되서
지금의 똑똑한 컴퓨터가 되었다고 자기 발전의 역사를 쓰는 날이 온다면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이라는 책이 바로
인간에게 같은 의미를 지닌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지구 생물들은 살면서 획득한 비유전적 정보보다
신경계에 내장된 유전 정보에 더 많이 의존한다.
그런데 진화의 윗단계로 갈수록
유전 정보보다 비유전적 정보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생물은 이런 비유전적 정보를 ‘뇌’라는 신체 내부에 저장한다.
포유류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비유전적인 정보를 학습으로 알아가는 비율이 높아지는 것 같다.
인류는 포유류보다 한단계 더 발달한 영장류이다.
인류는 비유전적일 뿐 아니라 신체 외부에 저장되는 지식을 발명해냈다.
바로 문자이다.
인간의 신체 발달 순서를 살펴보면 진화상의 순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자궁속은 물로 채워져 있다.
태아의 처음 모습은 물고기를 닮았다.
태아는 처음부터 탯줄이 연결되어 있어서 아가미가 필요없는데도 불구하고
뱃속의 태아에게는 아가미의 흔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진화한 순서대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다.
‘뇌’에서 가장 처음 만들어지는 부분은 우리의 생명과 안전에 관계된 부분이다.
이런 뇌는 물고기나 하등 척추동물에게서도 발견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진화의 윗단계로 올라갈수록 이 기본적인 ‘뇌’에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새로운 층이 추가된다.
우리의 ‘뇌’안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본능에 충실한 ‘파충류의 뇌’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추가된 따뜻하고 돌봐주기를 좋아하며 감성적인 ‘포유류의 뇌’도 있다.
그리고 그 위에 두가지 ‘뇌’를 통제하고 감독하는 ‘영장류의 뇌’가 있다.
칼 세이건은 이것을 두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 비유했다.
이리저리 날뛰는 본능이라는 말과
이리저리 휘둘리는 감정이라는 말을
가까스로 통제하고 있는 마부로 말이다.
이는 프로이드의 이드, 자아, 초자아에 대한 설명과도 일치한다.
이 책의 4장에는 드디어 이 책의 제목이 왜 <에덴의 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저자는 성경을 과학적인 정보가 함축되어 있는 은유로 가득한 책으로 묘사했다.
이를테면 진화의 어느 단계에서 ‘뇌’에 신피질이라는 새로운 층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기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 신피질이라는 새로운 층이 생김으로써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수치심같은 윤리적 자각이 생겼다.
하지만 이러한 신피질의 성장은 신체 비율에 비해 뇌의 크기가 커지게 만들어서
출산할 때 고통이 따르는 결과를 불러왔다.
또, 신피질을 통해 비유전적인 정보를 학습하는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다른 동물보다 육아에 전념해야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래서 노동의 기간도 길어졌다.
성경에는 이를 선악과를 따먹은 후(신피질이 성장한 후)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남자는 노동의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언젠가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할 어느 호모족의 조상들이
다른 종의 동식물들과 일체가 되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전설적인 황금시대가 있었고
이 모습이 성경에 에덴동산으로 표현되어 있는건 아닐까 추측한다.
그 에덴동산에는 용(뱀)이 있었다.
인간의 조상이었던 아담은
천적이던 파충류로부터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뇌가 개발되고 선악을 구분하는 능력을 얻은 것은 아니겠냐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결국 우리 외부에 있는 ‘용’과의 갈등과 전투 속에서
성장해온 것 같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잠을 자고 꿈을 꾸는 시간을 통해 우리 내부에 있는 ‘용’과도 여전히 아직까지 갈등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내부에 있는 ‘용’이란 우리 뇌 어딘가에 있는 ‘파충류의 뇌’ 즉,
폭력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무의식 저편의 어느 영역을 지칭한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나의 ‘뇌’에 잠들어 있던 용이 꿈틀하고 깨어나
낮시간동안의 통제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기 세계를 펼치는 작용이 바로
‘꿈’이라는 현상이라는 거다.
전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용을 물리치는 기사에 대한 신화나 전설이 존재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까 서양에도 드래곤이 있고 동양에도 용이 있다.
그리고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서로에게 ‘움직이지말고 조용히 해’라는 의미로
뱀의 전형적인 소리인 ‘쉿!’이라는 소리를 낸다고 한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과연 그저 우연일 뿐이겠느냐고 질문한다.
저자가 이 책 한권을 통해 이야기하는 모든 내용은 사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천문학자인 저자가 모든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해
우주에 대해 탐구하던 두뇌로 스스로가 가진 지성의 기원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 기록일 뿐이다.
하지만 훌륭한 저자의 상상력 덕분인지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든 이야기가 제법 일리있게 들린다.
나름 그 순간에 아주 적절한 증거들을 제시해놓았기 때문이다.
책의 결말 부분에는 각종 기계의 도움으로 더 발전할 ‘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부터
우주 저편 어딘가에 있을 또다른 지성에 대한 상상도 덧붙여진다.
다시 읽어보고 또 생각해봐도 참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칼 세이건이 괜히 유명한 과학자가 아니다.
칼 세이건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