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 재수 없어 ㅣ 뱀파이어 러브 스토리 2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송정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크리스토퍼 무어의「뱀파이어 러브 스토리 3부작」, 흡혈광 녀석들
삐딱하지만 재치 넘치는 성인 뱀파이어들과 도시의 루저들이 벌이는 기상천외 블랙 코믹 판타지
*
크리스토퍼 무어의 뱀파이어 러브 스토리 시리즈, 그 두번째는 바로 <너, 재수없어>이다. 누구가를 콕 찝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이 당돌하고 대담한 책 제목은, 크리스토퍼 무어라는 작가가 과연 어떤 책이 독자들의 주의를 끄는지 제대로 파악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아니면 말그대로 누군지 모를 상대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수도 있다. 그게 책을 읽고 있는 바로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 일수도 있다. 너무 비약이 심한건가?
난 이 책의 첫장을 펼쳤을 때,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소설이 시작된 것에 꽤나 놀라웠다. 조디가 토미를 뱀파이어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인물들을 다시 보게되었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흡혈광 녀석들>을 볼때는 많은 인물들의 출현으로 복잡해질까봐 대강 훑어봤었다. 기껏해야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 인물은 조디, 토미, 황제, 죽은 사이먼, 그외에는 그냥 애니멀스, 경찰 2명, 늙은 뱀파이어, 뱀파이어 연구하는 의대생, 거북을 청동상으로 바꾼 폭주족이자 조각가인 두 남자,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서 어렴풋이 나머지 인물들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너, 재수없어>를 읽고 각 인물들이 더욱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게 됐다.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을 빼면, <흡혈광 녀석들>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대부분 다시 출현한다. 그러니까 어느정도 비중이 있었던 인물들 말이다. <흡혈광 녀석들>의 마지막 부분에서 늙은 뱀파이어, 즉, 조디를 뱀파이어로 만들 장본인인 엘리야 벤 사피어가 애니멀즈와 토니, 황제에게 공격 당했고, 조디로 인해 겨우 죽음을 면했다. 조디는 그에게 뱀파이어로서 살아가는 몇가지 방법을 배웠고, 토미는 엘리야와 조디가 잠든 낮에 폭주족 조각가 두 명의 도움을 받아 그들을 청동 동상으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토미는 엽기적인 면이 있다. 나는 토미가 조디를 냉동고에 얼려버렸을 때부터 눈치챘다.
물론 조니는 청동 동상에서 안개로 변해 빠져나왔다. 마지막에 뱀파이어를 연구하는 의대생(그의 이름은 스티브 왕이다.)의 전화를 뒤로 하고 둘이 입을 맞추며 끝이난다. 여기서 이제 <너, 재수없어>로 넘어가면, 토미는 뱀파이어로 변해있고, 이제 그 둘은 한쌍의 완벽한 뱀파이어 커플이 되었다. 여기서 엘리야는 아직까지 청동 동상 안에 있다. 조디 동상을 조금 대충 만들었나? 아니면 엘리야의 동상을 두껍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엘리야는 청동 동상 안에 계속 있다.
뱀파이어로 변한 토미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일단 먹을 것도 못 먹고, 갑자기 예민해진 감각들, 피에 대한 갈증, 창백한 피부색, 모든 것이 아문 그의 몸, 심지어 그의 포피까지 말이다. 조디는 일단 토미에게 뱀파이어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은 새로운 인물을 만난다. 15kg에 육박하는 거대한 고양이 체를 소유한 거지이자 노숙자이자, 엄청 더럽고, 알콜 중독에, 여자의 가슴에 집착하는 윌리엄을 말이다. 여기서 윌리엄이 구걸하기 위해 쓴 표지판이 참 골때린다.
'나는 가난한데 내 고양이는 거대해요.'
'나는 가난한데 내 거대한 고양이를 잃어버렸어요.' (이것은 토미가 제안한 문구이다.)
'나는 가난한데 누가 내 거대한 고양이를 훔쳤어요.'
'나는 가난한데 누가 내 거대한 고양이의 털을 밀었어요.'
토미는 윌리엄에게 체를 빌려서, 처음으로 피를 마신다. 뱀파이어인 이 커플은 이제 새로운 문제에 봉착한다. 그들은 해가 뜨면 기절하듯이 잠들어 버리기 때문에 낮에 움직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 둘은 엘리야를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젠 둘 다 뱀파이어가 되어버렸으니. 그 둘을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똘마니 말이다. 그녀가 바로 16살짜리 소녀 애비 노멀이다. 물론 애비는 평범한 소녀와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 기괴하고 요란한 화장과 옷, 고스, 아니면 펑크? 아무튼 애비는 뱀파이어를 숭배한다. 조금 사이코적이지만, 은근히 머리도 쓸 줄 알고, 시키는 일은 뭐든 충성적으로 하기 때문에 그녀는 조디와 토미의 똘마니로 제격이었다.
반면, 부자가 된 애니멀스는 블루라는 창녀에게 모든 돈을 뜯겼다. (그들이 부자가 된 것은 <흡혈광 녀석들>에서 엘리야의 오래된 가치있는 예술작품을 모조리 판 덕분이었다. 토미도 물론 한 몫 떼어받았다.) 그리고 조디가 토미를 뱀파이어로 변하게 만든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사실을 또 블루가 알게되었다. 블루는 뱀파이어를 만나고 싶어했고, 뱀파이어가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결국 토미를 납치하기까지 이르른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엘리야는 청동 동상에서 빠져나오게 되고, 애니멀스 전부가 뱀파이어로 변한다.
<흡혈광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너, 재수없어>도 굉장히 빠르게 전개된다. 그런데 너무 짜릿하고 설레여서 자꾸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사실 나는 <흡혈광 녀석들>보다 <너, 재수없어>가 더 재밌었다. 중간 중간의 '애비 노멀의 연대기'(애비의 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에서 애비의 기괴함과 독특하고 별난 성격도 참 흥미진진했고, 토미가 뱀파이어로 적응되어 가는 것도, 토미가 애비에게 자신과 조디를 아주 오래 산 뱀파이어처럼 거짓말하는 것도, 애니멀스가 누군가에 의해 한명씩 뱀파이어로 변해가는 과정도, 한 장면을 미리 제시하고, 나중에 다른 각도로 그 장면을 비춰보는 것까지! 그외에도 <너, 재수없어>는 정말 매력적인 요소가 많이 숨어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너, 재수없어>에는 이전의 뱀파이어 소설과는 사뭇 다른 특이사항이 있다. 우선 뱀파이어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음식에 피만 뿌리면 말이다. 또 다른 사항은 뱀파이어가 다시 인간이 될 수가 있다는 것. 이 두 사실은 내가 봤던 그 어떤 뱀파이어 소설, 드라마, 영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런 독특한 설정은 보다 구미가 당기는 것이 사실이다. 아, 나는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애비 노멀은 바로 클로이 모레츠였다.
아,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다시 한번 살펴보다가 아주 유쾌한 문장을 발견했다. 책을 읽었을 때는 모르고 넘어갔던 부분인데, 안봤으면 큰일날 뻔했다. 그 문장은 책의 목차 바로 다음 장에 쓰여져 있다. 흔히들 책의 맨 앞에 써있는 '이 글을 누구에게 바칩니다'류의 문장인데도, 크리스토퍼 무어는 그것마저도 색다르다.
나의 독자들에게 바칩니다.
(독자들이 시켰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