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 왜 평범해 보이는 남성도 여성 혐오에 빠지는가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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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엔 독후감을 안올렸는데,

별점테러 하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반드시 올려야겠다고 다짐. 그리고 실천. 


여성은 인류의 마지막 식민지에요.

여성은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종류의 지옥보다 열 걸음 더 지옥에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이 책을 내가 읽고 있을 게 아닌데 나는 정독하고, 읽어야 할 사람들은 너 메갈이냐 소리나 하면서 쉐도우복싱에 열을 올리고 있을 집 밖의 현실을 모르지 않고, 읽히고 싶은 사람들은 찾아읽을 것 같지 않아서 피같은 돈 들여 커피 쥐어주고 아빠아들 1호(망나니) 와 엄마아들 2호(막둥쓰)에게 스무장씩 읽으라고 시켰(!)습니다.  다큰쌔끼들 이렇게까지 가르쳐야하나 짜증나다가 어디가서 뻘짓하는거 보는것보다 낫겠지 싶은 마음이다가,  혹시나 몰라서 그랬다고, 무지를 무기로 여길까봐 알려주는것이니라 스스로 다독이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 🔥
망나니와 막둥쓰는 제가 사준 커피보다 저자의 이름이 남자인 이유에 경계심이 누그러져  책을 폈을겁니다. 남자가 남자를 까? 뭔데? 뭘 얼마나 잘못했는데? 어디 무슨말을하나 한번 들어나보자 정도.  읽은 후 어땠느냐 물었더니, 이 사람 남자 맞아? 남자이름같은 여자 아니고? 라는게 첫 답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이 책이 여성의 이름으로 쓰였다면 덮어놓고 깠을거라는 합리적 의심에 확신이 들었습니다.
근데 얘들만 그럴까 생각하면 아닐걸요. 작가님의 전작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도 제목만 보고 신나게 욕하다가 작가가 남자란 사실에 입 싹 닫았던 전 직장 남직원을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여성이 남성을 공격하기위해 만든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 책의 저자분께서 쓰셨듯 침묵이나 냉소가 아니라 기울어진 판을 바로하는 작업에 남성의 손을 보태는 일은 중요합니다만 (보탠다고 표현한게 맞습니다. 아직까진 같이 하는게 아니라 손을 보태는 쪽이 맞으니까요.)  안읽는것까진 어찌 할 방법이 없군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도 이 주제만큼은 애써 외면하죠. 권력의 핵심인 남성성을 깨는걸 원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만 하자니 '공정하고 평등한 나'라는 비대한 자의식이 걸리고 부분만 동의하자니 논리에 충돌이 생기는걸 숨길 수 없고. 그래서 선택한게 무관심이란것도 압니다. 그나마 남성분이 쓰신 책이니까 떨떠름하지만 책 표지라도 열어보는 걸 거구요.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남성분의 페미니즘 책은 (백프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극적 동의 혹은 무관심이 가진 한계점은 페미니즘에 동의하시는 남성분들의 글이라도 결국 매개자가 필요하단 점입니다. 매개자가 되실 분들은 이 책을 읽고 누구에게 읽히는게 좋을까 고민하고 어떻게 읽혀야할까 방법을 강구하고 읽은 후 질문에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나 가슴 졸이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저처럼 현타의 시간을 겪으시겠지요. 목마른사람이 우물파는건데 도와주면 감사한 줄 알아야하는거 아니냐 할지도 모릅니다. 저기요? 그 우물물 판사람만 마시는거 아니거든요. 어쨌든 제 기준 남성분들이 남성분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은 유니콘입니다. 듣도보도 못했어요. 그나마 이 책을 읽으신 (뵌적없는) 남성분들의 리뷰가 민들레 홀씨처럼 멀리멀리 날아가 책장을 펴는 힘이 되길 바랄뿐이에요. (그래놓고 남자도 살기 힘들어 왜 안알아줘 이따위면 답없다 정말.)

BUT  >>  구매자와 성착취피해자가 확실한 예전 형태의 성매매에서 구매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성착취피해자는 남아있는 (웹)형태로 바뀌었을 뿐 적어졌다고 보기 힘들고, (1대1에서 1대 다의 형태) 예전의 성매매가 의미했던 여성관은 변함없이 답습되었으며, 익명을 등에 업고 훨씬 더 노골적이고 집요해졌지요. 그래서 20대가 성매매에 부정적인 연령층이라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기존 성매매의 '형태' 에 부정적이라면 모를까요.

 

 

책 제목만 보고도 '하고싶은말 어마어마하겠다' 싶었는데. 역시.
​요즘 여자, 혹은 여자로 살기 좋은 세상이란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여자'란 오로지 20대 미혼 여성, (= 그들이 생각하난 잠재적애인 혹은 잠재적배우자) 으로 정의됩니다.  마트의 5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고  3~40대 경력단절 이혼가정의 세대주도 아니고 홀로 사시는 70대 노년의여성은 여성이 아닌거에요.  가정이 사회의 예비임을 고려한다면 저 말은 가정 내 가부장적 구조를 답습하여 남성중심사회를 공고히 하겠다는 뜻일테죠. 그러나 인류사를 통틀어 여자가 살기 좋았던 때는 없었는데 이제와서 갑자기 여자가 살기 좋아졌을리가요. 부조리를 말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진 덕에 많이 드러났을뿐입니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도, 행복한 파티장에서도, 업무를 보고있는 회사에서도 사랑이 넘쳐흐르는 가정에서도 여성에게 희생과 봉사의 기본값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설정되어있다는 사실을 이젠 좀 받아들일때도 되지 않았나요. 자신의 능력치가 과장됐다는 사실도 좀 알 때가 되지 않았나요. 인류의 마지막 식민지가 여성인건 인류의 온 역사를 반추하여 자명한 사실인걸요.
-아휴... 둥글게둥글게 쓰려고 증말! 노력해따!!!!

 덧) 미혼 남성 뿐 아니라 기혼의 페미니즘 참여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 중에서도 기혼여성의 참여는 말할 필요도 없어요. 가부장제의 리스크를 짊어멘 채 남성의 삶에 흡수되는 형태의 기존 결혼제도를 내부에서 기꺼이 바꿔나갈 수 있는 씨앗이기 때문입니다.거기에 2세에게 남성중심적 관념이 재생산되는 걸 막는 첫 능선이 되기 때문에 이론이 아닌 실천안이 탄생하기 좋은 환경이 됩니다. (가정만큼 매 순간이 전장인 곳이 어디있겠어요.) 이런 노력은 더디고 한 세대로 끝날리 없습니다. 노력대비 가성비 떨어지는 나노단위의 발전에 진저리치면서도 다음세대도 그 다음도 멈추지 않을겁니다. 다음세대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거라고 생각하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렇게 발전하리라고 믿습니다.

책 한권으로 세상이 바뀔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책 한권이 시작이 될 순 있을겁니다.  무관심의 한계를 넘어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결혼식이나 돌잔치, 졸업생모임처럼 아이가 있는 남자동기, 선후배들과 만나게 되는 자리에선 꼭 아이의 예방접종과 알러지유무를 묻습니다. 애엄마가 안다는 식의 말이 나오면 꼽 줍니다. 애지중지하며 철철이 신형 폰 살 정신머리로 메모어플 하나 다운받아 기록해둘수도 있는데 그것마저 안하는건 성의조차 없는거잖아요. 백업도 알아서 해주는데. 그렇더라도 저는 어디까지나 타인이므로 제 질문에 '어째서 그걸 나에게 묻는'가 의문을 가지길, 그 의문이 시작이 되어 생각이 확장되길 바랄뿐입니다.
🔮 '남자의 본능'을 앞세운 남성짐승설이건 '남자는 나이먹어도 애' 따위의 남성 한정치산자설을 주장하든 하나만 해줘요. 선택적 인간짐승도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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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책 2021-08-0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정치산자설을 주장하˝든˝

JJungs 2021-08-0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책책 넵!! 감사합니다 pc접속하는대로 수정할게요.

097201 2022-05-0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머니 너무 독후감을 남성혐오 방향으로 쓰시는거 같네요. 자식 예접유무도 모르는 그정도 노력도 못하는 남성이야 욕먹어도 싸지만요.페미니즘은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정신이지 또다른 남성혐오 사상은 아닌거 아시죠?
 
바늘과 가죽의 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4
구병모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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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과가죽의시 #구병모 #현대문학 #핀시리즈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돼." p.149

>>>  빛이나 물, 공기나 물 같은 자연의 일부였던, 아니 자연 그 자체였던 정령 미아와 얀이 바늘과 가죽으로 신발을 짓던 시간을 잊고 무수한 날을 지나 인간의 육신을 입어가는동안 형제들은 사라졌고 세상은 변했어요. 이제는 신발을 짓는 사람이라곤 얀, 아니 안 뿐입니다. 배에서 서로 다른 길을 향한 마지막 정령 형제 미아가 얀을 찾아옵니다. 필멸의 반려를 위해 신발을 지어주기 위해서요. 자신의 시간을 발과 걸음걸이와 자세에 쌓은 발레리노와, 쇠잔하지 않을 육신을 가지고 필멸의 반려를 맞으며 그의 발에 편안한 신발을 신기고싶은 미아와,  홀로 영원히 세상의 신발을 짓는 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지금을 살고 있을까요. 필멸은 허무하여 잡을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불멸이니 굳이 현재를 잡을 필요 없는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언제나 있던 불멸의 존재와 세상에 오지 못했던 부재의 존재, 그리고 세상에 왔다 가는 필멸의 존재들이 영속의 허무가  아니라 유한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바인하이머사의 오데사 카프나 앱송, 올리비아같은 가죽을 좋아합니다. 자주 하지는 못해도 공방에서 작은 소품을 만드는 걸 좋아하고 가끔은 공방에 제가 원하는 가방의 디자인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공방의 접착제 냄새와 시간을 머금은 가죽향이나, 어둑한 허공에 떠다니는 먼지, 혹은 가죽 끝을 두들기거나 연장들이 부딪히는 소리, 각각의 가죽이 가진 촉감들이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듯 했어요. 이야기의 몃 장면은 약간 바랜 듯 몽환적인 찰스 산토레의 그림으로 그려가며 읽기도 했구요.  어느순간 문장을 가죽 무두질하듯 엄청나게 손질하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제련된 가죽제품이 오랜시간 손에 익었을때 느껴지는 밀착감처럼 부드럽고 밀도높은 문장이 어느순간 제 감각과 착 맞아 떨어지거든요.  글 속에서 오감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경험은 언제나 영상보다 황홀하고 감동적이에요. 덕분에 책장을 닫고 얼마나 오래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밤을 새버렸네요.  그동안 읽어본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 중 최고에요.
그리고  작가님의 예전 작품, <파과>의 일부를 떠올립니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짦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
>>>  저는 가난한 부부의 창가에 신발을 지어주던 정령의 이야기를 잊었습니다. 세상에 던져진 완두콩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잊었습니다. 호의를 댓가로 여겼구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지속은 촌스러운 것으로 바꿔야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악을 비난하면서 악을 행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목적과 의도 없이 행동하지 않았어요. 세상 안에 들어가기 위해 가장 먼저 영원과 행복을 잊었습니다. 수천년 전, 자신이 어쩌다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타인을 생각하던 마음으로 신발을 짓기 시작했던 그 마음을 잊지 않은 정령 미아와 얀의 이야기는 이 세계를 사는 모든 필멸자들을 위한 진짜 동화입니다.
오지 못하고 떠난 아이를 위한 신발을 짓던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도 신지 않을 것,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더는 쓸데 없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아름답게 왼성시키면 안되'냐고 묻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죽을 발레리노를 사랑하는 미아는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쓰임에 있지 않아요. 시인이 만들던 신발에 쓰임이 더 이상 없어졌지만 신발을 짓는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준 아름다움은 완성되어야했습니다. 더이상 같이 할 수 없더라도 현재의 사랑은 완성해야했습니다. 아니 아름다움은 세상에 쓰임이 아니라 마음의 쓰임에 있다고 정정해야겠네요. 유한한 인간의 마음 속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과정을 지나사랑을 맺은 후에도 남아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 무의미한 불멸에게 고통스러운 유한의 의미가 생기는 이야기, 결국 필멸안에서 싹 틀 준비 된 불멸의 씨앗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닳고 삭아가는 고통을 감내하는 인내가, 두번 없을 아름다운 순간을 위해 예정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용기가,  끝없이 의심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그 호기심이 아마도 필멸하는 것들의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일겁니다.  첫 신발을 만들었던 마음을 기억하는 동안 시인이 아버지였고 얀과 미아가 영원한 정령이듯 필멸의 의미는 불멸할테지요. 모든 필멸의 아름다움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도 역시, 세상 어딘가 불멸의 흔적으로 남을거에요. 모두가 볼 수 있는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빛나지 않는 어둠과 침묵의 순간으로라도요.
​사라지는것, 멸은 불(不)하거나 필(必)하거나.
제 안의 구병모 작가는 필멸자의 숙명을 불멸의 탐닉이 아니라 풍화되고 파괴되고 변화하고 잊혀지는 모든 필멸을 연민하는데 할애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덤덤하고 시니컬한 글 뒤편에서 세계를 잊은 우리에게 신겨준 영혼의 신발이자 머리맡에서 들려주는 굿나잇 시 한편입니다. 내일은, 그리고 그 다음 내일은 주변에 있는 정령을 만날지도 모른단 조용한 다독임입니다. 지금 당신 머리 위에서 장난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는지도 모르죠. 잘 살펴보세요. 빛나는 모든 것들을요.

제가 웬만해서이르케 안쓰는거 아시져.. 맞춤법이고 뭐고 대충 휘갈겨써놓고 수정도 게을러서 안하는데 이 책만은 무릎꿇고 조신모드 독후감입니다. 최근 본 장편소설 중 가장 붸스트. 오 ......갓병모쌤..ㅠㅠ  (하지만 수정은 또 안할것같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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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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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떠나보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


욕실에서 넘어진 어머니의 골절로 생각하지 못한 질병을 발견했고 이는 급작스럽게 죽음까지 이어졌다. 인간이 죽는 일은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에게도 자연스러울 수 없는 법. 돌아가실 만큼 먹은 나이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당사자에게 죽음은 유예하고싶은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겪는 고통앞에서 가족도 의사도 간호자도 당사자가 아닌이상 고통과 상실에 공감할 수는 없다. 모든 죽음은 나눠가질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이자 보부아르가 마지막에 쓴 말처럼 당사자의 의지와 일치할 수 없는 하나의 부당한 폭력이다. 
『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 p.153

사르트르와 계약연애, 20세기 페미니즘의 한 축이었던 보부아르가 어머니의 죽음을 회고하며 쓴 자전적 소설이다. 나 역시 딸인 탓에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구석에 담고있다.  이 다짐은 엄마라는 여성과 불화하여 불꽃튀기며 싸우기도 하지만 가끔은 애잔한 마음에 가엽게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논쟁이 아닌 순응의 과정만 경험했기에  자기방어물로 헌신과 희생밖에 앞세울 것이 없었던 보부아르의 어머니, 시몬 드 보부아르를 어려워하던 브랑수아드 드 보부아르에게서 나는 내 어머니와 나를 본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듯 어머니와 나도 비슷하고도 다른 이유로 끊임없이 갈등했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대부분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특성 뿐 아니라 사회가 여성을 길들이는 방식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기인하고 이에따라 갈등의 크기는 달라지지만 어쨌든 애증이 전혀없는 어머니와 딸은 없는것 같다. 딸에겐 생명의 근원이었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자전적 소설 속에서 나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제 2의 성> 의 2부, 체험단원을 떠올렸다.
<제 2의 성> 을 먼저 읽은 덕분인지 이 자전적 소설 속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관계가 더 아프고 깊고 가련했다. 엄마를 얼마나 이해하고 싶었으면,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쉼없이 애썼으면 그 길고 긴 책을 쓰게 되었을까. 자신의 삶을 (긍정이건 부정이건) 통째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던 어머니가 세상에서 사라진 보부아르가 느낄 상실감이 어떠했을지 나는 감히 가늠하지 못하겠다. 다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몬과 프랑수아즈가 화해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쪽이 사라졌다면 단절이지 화해일리 없고 세대간의 화해는 가장 부자연스러운 강제가 될테니.​
『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146p
한발자국 떼기 위해 바닥을 밀어낼 수 밖에 없듯, 모든 자식들은 모든 딸들은 그들의 부모와 어머니를 밀어내며 앞으로 나가고 생각지도 못한 순간 소멸해가는 나의 근원을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뒤돌아 마주보는 순간이 반드시 죽음일 필요는 없지만 앞서 달리는 자들을 멈추게 할 가장 큰 이벤트 - 온 생을 자신의 욕망에 반한 삶을 살던 한 여인이 장례식장에서 이름이 불리는 순간만큼은 한명의 주체적 인물로 되살아 나는 순간 - 그것이 죽음이라면, 그보다 더욱 삶에 맞설만 한 이벤트는 없으리라 확신한다.​
# 일주일도 삶이 남지 않은 환자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보다봇한 보호자가 의사에게 모르핀을 놔달라고 하자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의사라면 절대 타협하려 하지 않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마약과 낙태입니다."?라고 답하는 의사 싹퉁머리. 팍씨.

<제 2의 성> 을 먼저 읽은 덕분인지 이 자전적 소설 속 보부아르와 어머니의 관계가 더 아프고 깊고 가련했다. 엄마를 얼마나 이해하고 싶었으면,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쉼없이 애썼으면 그 길고 긴 책을 쓰게 되었을까. 자신의 삶을 (긍정이건 부정이건) 통째로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던 어머니가 세상에서 사라진 보부아르가 느낄 상실감이 어떠했을지 나는 감히 가늠하지 못하겠다. 다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몬과 프랑수아즈가 화해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쪽이 사라졌다면 단절이지 화해일리 없으니 세대간의 화해란 가장 부자연스러운 강제다.

- 더불어 <제 2의 성>, 비록 엄청촘촘하고 분량도 많지만 꼭 같이 읽으시길.  레 망다렝도 읽으야할까.
- 어제까지 썼어야 했는데.....쥬르륵... 늦어서 죄송합니다

#죽음 #페미니즘 #제2의성 #장폴사르트르 #소설 #문학 #세계문학 #세계문학전집 #고전 #고전문학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bookstagram #book #reading #SimonedeBeauvoir #LeDeuxièmeSe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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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들 - 나를 둘러싼 존재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 들시리즈 2
박훌륭 지음 / 꿈꾸는인생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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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들 #박훌륭 #꿈꾸는인생 #들시리즈​

📍특별한 이름을 가진 약사, 책방주인, 출판사 대표  @a_dok_bang

✒ 아마도 3년전 가을쯤.  외근으로 근처를 지나다 약국 안에 책이 꽂혀있는 걸 보고서 책을 좋아하시는 약사분이신가보다 지나친게 아직 독립못한 책방 (이하 아독방)을 처음 알게됐다. 그땐 인스타그램도 그냥 남들 뭐하고 사나 눈으로 보는 수준이었고 (물론 지금도) 책을 읽고 뭘 적어본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을 때인데, 하다보니 팔로우를 하고 하다보니 맞팔이 됐고 하다보니 독후감을 쓰고있고 1주년 파티를 가고 생애 첫 북토크란걸 해보고 일과 연관되지 않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매 혹은 격 주말마다 아직 독립못한 책방 한 구석에서 커피와 함께 책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텐데.

​🔖 하루에 1시간씩 10년을 할 수 없다면 나는 하루에 5분씩 20년을 하겠다고. 그러면 그 사람과 같아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꾸준함'을 유지하는 거라고.

​✒  박훌륭 대표님의 수많은 이름, 다중 페르소나 중 아사장님(서점사장), 푸른약국 출판사 대표님(푸대표님) 은 내게 큰 의미다. 아독방을 알고부터 장기 책태기에서 벗어났고,아독방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독후감을 쓰게 됐고 , 책을 읽을 때 작가와 글을 같이 보기 시작한것도 아독방에서 북토크를 하면서부터고, 읽는 사람과 쓰는사람을 넘나들게 된 것도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의 책이 나오면서다. 있는지도 모를 공간이 저기 있다고 무심히 알려주시는 분. 그러니까 내게 아사장님과 푸대표님은 나만의 서예학원 원장님이다. 물론 내가 카이스트에 준하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쓰고 계시죠?' 한마디에 움찔 하는걸 보니 먹물로 난초라도 하나 완성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보글보글.


​✒  남들 눈에 잘 띄는 이름은 한번 입어도 백번 입은 효과가 나는 형광색 코트와 같다. 잘한 일이건 못한 일이건 한번에 이미지가 굳어버리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긍정적인 측면만 보자면 남들과 다른 이름은 원네임브랜드로서의 무한한 가치창출이 가능하지만  한번 잘못을 백번쯤 상기시킬 수 있으니 별 것 아닌 일로 오랫동안 오르내릴 가능성도 크다. 스스로 센서티브한 사람이라 창한 박훌륭 대표님의 관찰자적 성격이 양쪽의 균형을 잘 맞춰주고 있다고 느껴진다. 이건 오래 보아서, 혹은 자주 보아서가 아니라 이제 막 독립한 이야기 두번째 권 까지 출간한 푸른약국 출판사 박훌륭 대표님과 책이 좋아서 시작한 약국 안 서점주인 박훌륭 사장님을  떠올리며 느꼈던 느낌들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되었다고할까. ​
그리고 관찰은 대상을 배려하는 마음을 담으므로, 관찰대장 아사장님의 공간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선 넘으면 가차없지. 나는 봤다..ㅋㅋㅋㅋㅋ뽜이야!!)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적어질 리 없는 삶의 무게, 투자법의 정석 -계란 나눠담기-를 오마주 해 여러 페르소나로 나눠지기하는 아이디어의 소유자 박훌륭 선생님의 삶의 이용법도. 나는 좋다.

(침묵상태로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정말 귀한거 아니겠습니까)



🔮  이제 아독방 방문 드레스코드는 핑크. 아독방핑크!!!!! 쇼핑이다아아!!! 

🔮  TMI) 저는 라면을 안먹고 야외공연무대에 서 본 적 있어요. 책 읽다 오랜만에 떠올리고 몸서리치고 있습니다. 증거 가진 친구들 없애야한다고 리스트를 적습니다 ㅋㅋㅋㅋ

🔮  저는 이름 말고 성 바꿔달라고 드러누워 울었어요. 개명할때 성은 못바꾼다고 해서 또 울었고요. ...나 정말 대책없었구나. ㅋㅋㅋ

🔮  카이스트에서 약대로의 방향전환을 읽으면서 교생 마치고 돌아와 교직에 서지 않겠다고 폭탄선언했던 그때를 떠올렷습니다. 거의 완성에 다다른 것들의 방향을 자의로 꺾는다는건 엄청난 결단력을 요구하는 거더라구요. 저는 아직도 잘한짓인가 모르겠는데, 뒤돌아봄 없이 앞을 보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 반성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꼭 흥하세요!! 꼭입니다!!!!

🔮 저는 키우기 쉬운 애였던 것 같은데 아니었군요. 모범생의 거죽을 쓴 망나니. 딱 그거네. 아니 그래도 이정도면...쉬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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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 - 경험해보지 못한 과학의 도전에 대응하는 시민 인식론
실라 재서노프 지음, 박상준 외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 생명공학은 경제적 가치증명 이전에 생명윤리의 사회적 숙의과정을 거쳐야한다.
 
 
신학과 철학의 자리에 공학에 가까운 과학이 자리하는 21세기에 자기개발서는 안읽더라도 과학분야 서적과 SF를 챙겨읽으려 노력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과학분과의 책들은 전문가 -해당분야의 연구자나 교수- 의 저서인 경우가 많은데, 누구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인지, 어떤 방식으로 나아질 것인가 고민한 대목은 없었고 구체적으로 국가적 지원이 어떤 상황에서 어느 부분이 달라져야하는지 충분히 논의된 책이 아님에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학분야의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문장을 넣어 책을 매듭짓는다. 다분히 지식산업적 생산자의 논조다. 책을 읽는 사람은 지식산업의 소비자인데 책은 생산자의 논조로 쓰여졌다. 오묘한 거리감은 아마 소비자와 생산자를 이어주는 '지식유통'의 부재에 있을것이다. 
이 책이 지식산업의 유통구조를 담고있다. 20세기 후반기 과학기술, 특히 생명과학분야의 사회적, 철학적 이해를 주제로 지식생산자와 지식 소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 나라별 문화와 정치에 기반한 과학의 수용과 통제를 다룬다.


정치제도가 다양성을 가진것과 반대로 과학은 보편성을 가진다. 어딜가나 지구의 중력은 동일하고 같은 조건하의 동일 물질의 질량은 같다. 과학의 불변성이 세계 어디든 동일한 수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연구대상으로 허가 된 것이 국내에선 불가하기도 하고, A국에선 2차연구가 가능한 세포가 B국 에선 불가눙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것이다.  같은 것을 왜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된단말인가. 원인을 시장경제의 경쟁압력에 따른 정책변화나 거대기업의 압력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선 미국 영국, 독일 세 나라를 비교해 민주국가의 거버넌스를 위한 과학과 정치의 상호작용을 연구하여 아직 정의내리지 못한 새로운 과학분야의 수용과정을 설명한다. 특징이라면 생명공학의 이론적 성찰에 기반하여 세 나라의 역사에 기초한 정치적 특성을 역동적 문화개념으로 이해하고 생명윤리의 사회적 숙의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지, 미래의 위기나 문제점을 예측하거나 과학계와 정부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비교국 독일, 영국, 미국 세 나라는 문화적 배경과 정치제도가 다르다.  (사진 2 참조)  각 나라가 생명공학 정치 프레임을 설정하면서 독일은 나치의 우생학이 가져온 역사적과오를 가진 독일은 보수적 수용을 지향했다, 미국은 기준을 산업과 경제적 이득에 두고 가장 공격적인 수용을, 영국은 두 나라의 중간단계였으나 수용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언이 가장 큰 힘을 행사했다. 각 나라별로 정부-사회-과학자의 관계에 따라 다른 프레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히 영국과 독일은국가 개별적 프레임에 더해 절차를 중요시하는 유럽연합(EU)의 기준도 포괄했다. (추후 영국이 탈퇴하면서 앞으로의 추이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반대로 최대이윤 최대결과물을 목표로 한 미국은 절차를 생략하거나 수많은 절차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로 인해 각 나라별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숙의적 방침 차이가 실 법률과 실행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차이점에 중심을 맞춰 서술된다.


생명과학이 생명공학이 되어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순간, 정치적 대상이 된다. 정책 어젠다에 포함시키기 위해선 생산물의 법리적 해석과 다양한 법적 규제가 있어야하고, 시민합의가 법률재정보다 선행되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은 경제적 이윤 혹은 손실을 기준으로 삼았던 농업과 식품 단계에서 인간복제와 줄기세포로 대표되는 인간생물학에 이르러 '윤리'의 기준이 새로워야했다. 보조생식과 배아연구로 나뉜 생식기술은 성관계와 출산을 분리시켰고, 수정부터 출산에 이르는 연속된 생물학적 과정을 각각 나눠놓았다. 인간의 의도적 개입으로 전통적 가족의 기준, 여성의 권리, 모성과 태아의 새 정의가 필요했다. 일례로 대리모의 모성과 난자제공자의 생식 기여도 사이에서 누가 법적 어머니가 되는가, 혹은 대리모와 난자 제공자 중 한쪽이 낙태를 원할 시 누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생명권은 태아에게도 해당되는가. 등등.


생명공학은 문화와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웠던 일련의 전통적 가치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새 경계선의 설정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과 시민담론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전문적 생명윤리와 숙의적 생명윤리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국가적 거버넌스와 시민의 논의를 거처 타협에 이른다. 이 과정은 생명공학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느리고 복잡하다. 그러나 이 논의의 향방이 각 나라별, 혹은 문화별로 추구한 가치향방과 같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일반인의 전문적 지식 부족을 근거로 의견을 묵살해서도 안된다. 생명공학의 민주적 개입은 대의 참여 숙의라는 국가 차원의 접근방식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일반 시민 역시 이 과정의 큰 축이기 때문이다. 
독일 영국 미국의 선례들을 읽으면서 국내 생명공학의 사회적 숙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산물들을 우리나라의 법은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검색해봤는데 일반인이 자료로 찾아볼만한 것들이 없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익명의 대화들 정도일까.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의 자료는 많은데, 지식 유통에 해당되는 법리적 해석이나 법률제정의 과정들은 자료가 굉장히 빈약하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생명공학이 거쳐온 과정을 비교분석하면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분히 비 정치적인 생명공학의 산물들이 정치적 프레임의 한 축으로 공고히 자리한 만큼 숙의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정책적 해결보다는 결과를 설명하는 쪽으로, 임상진단보다는 해석적 비판을, 인과적 설명보다는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결과가 되길 바란다는 마지막 단락을 읽으며 텍스트 안에서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식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같은 이 책이 어떤 소설보다 즐겁고 재미있었다면 믿어줄까. 진짠데.



- 아마도 올해의 책 TOP5. 열장쯤 읽었을때 반양장인데 삼만원이나 한다는 생각은 삼만원'밖에' 로 바뀌었다. 환경보호, 동물권, 모성, 페미니즘,법철학, 윤리 말고도 수많은 담론들이 과학기술학의 큰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매력적이다. 내가 알고 싶었던게 이런거였다고!! 실라 재서노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싶은데, 법정에 선 과학은 절판이고 나머지는 번역된게 없어서 아쉽다.

- 자유도서(읽어보고싶은 책 아무거나 신청)로 지원받은 책인데, 충격적으로 좋아서 후회했다. 장바구니에 묵히지 말고 더 일찍 사볼걸. 그러면 과학관련 책 읽을때마다 떨떠름한거 없이 신나게 (내 관점대로) 읽었을텐데. 밑줄과 별표와 물음표와 문장들을 연필로 잔뜩 써서 새 책으로 하나 더 사놓고 싶다.

-  5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인데, 주석만 100페이지. 연구가의 피 땀 눈물이라는 주석이 아롱아롱...

(마지막 문장)
비교는 비판적 거리와 인식적 관용을 확보하면서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성찰해야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비교를 통해 얻으려는 지식이나 거버넌스에 관한 보편적으로 유효한 원리를 생산하는 신학적인 특권이 아니다. 동시에 여러 형태의 과학적 정치적 삶이 지닌 규범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며 인간을 알고 추론하고 그 세계에 거주하려 할 때 위험한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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