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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연을 설계하는가 - 경험해보지 못한 과학의 도전에 대응하는 시민 인식론
실라 재서노프 지음, 박상준 외 옮김 / 동아시아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 생명공학은 경제적 가치증명 이전에 생명윤리의 사회적 숙의과정을 거쳐야한다.
신학과 철학의 자리에 공학에 가까운 과학이 자리하는 21세기에 자기개발서는 안읽더라도 과학분야 서적과 SF를 챙겨읽으려 노력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과학분과의 책들은 전문가 -해당분야의 연구자나 교수- 의 저서인 경우가 많은데, 누구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인지, 어떤 방식으로 나아질 것인가 고민한 대목은 없었고 구체적으로 국가적 지원이 어떤 상황에서 어느 부분이 달라져야하는지 충분히 논의된 책이 아님에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과학분야의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문장을 넣어 책을 매듭짓는다. 다분히 지식산업적 생산자의 논조다. 책을 읽는 사람은 지식산업의 소비자인데 책은 생산자의 논조로 쓰여졌다. 오묘한 거리감은 아마 소비자와 생산자를 이어주는 '지식유통'의 부재에 있을것이다.
이 책이 지식산업의 유통구조를 담고있다. 20세기 후반기 과학기술, 특히 생명과학분야의 사회적, 철학적 이해를 주제로 지식생산자와 지식 소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각 나라별 문화와 정치에 기반한 과학의 수용과 통제를 다룬다.
정치제도가 다양성을 가진것과 반대로 과학은 보편성을 가진다. 어딜가나 지구의 중력은 동일하고 같은 조건하의 동일 물질의 질량은 같다. 과학의 불변성이 세계 어디든 동일한 수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는 연구대상으로 허가 된 것이 국내에선 불가하기도 하고, A국에선 2차연구가 가능한 세포가 B국 에선 불가눙하다는 것이 받아들여지기 힘든것이다. 같은 것을 왜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된단말인가. 원인을 시장경제의 경쟁압력에 따른 정책변화나 거대기업의 압력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선 미국 영국, 독일 세 나라를 비교해 민주국가의 거버넌스를 위한 과학과 정치의 상호작용을 연구하여 아직 정의내리지 못한 새로운 과학분야의 수용과정을 설명한다. 특징이라면 생명공학의 이론적 성찰에 기반하여 세 나라의 역사에 기초한 정치적 특성을 역동적 문화개념으로 이해하고 생명윤리의 사회적 숙의과정을 이해하는데 있지, 미래의 위기나 문제점을 예측하거나 과학계와 정부에게 방향을 제시하지 않는다.
비교국 독일, 영국, 미국 세 나라는 문화적 배경과 정치제도가 다르다. (사진 2 참조) 각 나라가 생명공학 정치 프레임을 설정하면서 독일은 나치의 우생학이 가져온 역사적과오를 가진 독일은 보수적 수용을 지향했다, 미국은 기준을 산업과 경제적 이득에 두고 가장 공격적인 수용을, 영국은 두 나라의 중간단계였으나 수용과정에서 전문가의 조언이 가장 큰 힘을 행사했다. 각 나라별로 정부-사회-과학자의 관계에 따라 다른 프레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 특히 영국과 독일은국가 개별적 프레임에 더해 절차를 중요시하는 유럽연합(EU)의 기준도 포괄했다. (추후 영국이 탈퇴하면서 앞으로의 추이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반대로 최대이윤 최대결과물을 목표로 한 미국은 절차를 생략하거나 수많은 절차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로 인해 각 나라별로 유전자변형생물체의 숙의적 방침 차이가 실 법률과 실행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차이점에 중심을 맞춰 서술된다.
생명과학이 생명공학이 되어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순간, 정치적 대상이 된다. 정책 어젠다에 포함시키기 위해선 생산물의 법리적 해석과 다양한 법적 규제가 있어야하고, 시민합의가 법률재정보다 선행되기 때문이다. 생명공학은 경제적 이윤 혹은 손실을 기준으로 삼았던 농업과 식품 단계에서 인간복제와 줄기세포로 대표되는 인간생물학에 이르러 '윤리'의 기준이 새로워야했다. 보조생식과 배아연구로 나뉜 생식기술은 성관계와 출산을 분리시켰고, 수정부터 출산에 이르는 연속된 생물학적 과정을 각각 나눠놓았다. 인간의 의도적 개입으로 전통적 가족의 기준, 여성의 권리, 모성과 태아의 새 정의가 필요했다. 일례로 대리모의 모성과 난자제공자의 생식 기여도 사이에서 누가 법적 어머니가 되는가, 혹은 대리모와 난자 제공자 중 한쪽이 낙태를 원할 시 누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생명권은 태아에게도 해당되는가. 등등.
생명공학은 문화와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웠던 일련의 전통적 가치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새 경계선의 설정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과 시민담론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전문적 생명윤리와 숙의적 생명윤리 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국가적 거버넌스와 시민의 논의를 거처 타협에 이른다. 이 과정은 생명공학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느리고 복잡하다. 그러나 이 논의의 향방이 각 나라별, 혹은 문화별로 추구한 가치향방과 같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일반인의 전문적 지식 부족을 근거로 의견을 묵살해서도 안된다. 생명공학의 민주적 개입은 대의 참여 숙의라는 국가 차원의 접근방식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일반 시민 역시 이 과정의 큰 축이기 때문이다.
독일 영국 미국의 선례들을 읽으면서 국내 생명공학의 사회적 숙의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산물들을 우리나라의 법은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는지 검색해봤는데 일반인이 자료로 찾아볼만한 것들이 없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익명의 대화들 정도일까.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의 자료는 많은데, 지식 유통에 해당되는 법리적 해석이나 법률제정의 과정들은 자료가 굉장히 빈약하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작업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생명공학이 거쳐온 과정을 비교분석하면서 미래를 예측하거나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분히 비 정치적인 생명공학의 산물들이 정치적 프레임의 한 축으로 공고히 자리한 만큼 숙의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정책적 해결보다는 결과를 설명하는 쪽으로, 임상진단보다는 해석적 비판을, 인과적 설명보다는 이해를 제공하기 위한 연구결과가 되길 바란다는 마지막 단락을 읽으며 텍스트 안에서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식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논문같은 이 책이 어떤 소설보다 즐겁고 재미있었다면 믿어줄까. 진짠데.
- 아마도 올해의 책 TOP5. 열장쯤 읽었을때 반양장인데 삼만원이나 한다는 생각은 삼만원'밖에' 로 바뀌었다. 환경보호, 동물권, 모성, 페미니즘,법철학, 윤리 말고도 수많은 담론들이 과학기술학의 큰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매력적이다. 내가 알고 싶었던게 이런거였다고!! 실라 재서노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싶은데, 법정에 선 과학은 절판이고 나머지는 번역된게 없어서 아쉽다.
- 자유도서(읽어보고싶은 책 아무거나 신청)로 지원받은 책인데, 충격적으로 좋아서 후회했다. 장바구니에 묵히지 말고 더 일찍 사볼걸. 그러면 과학관련 책 읽을때마다 떨떠름한거 없이 신나게 (내 관점대로) 읽었을텐데. 밑줄과 별표와 물음표와 문장들을 연필로 잔뜩 써서 새 책으로 하나 더 사놓고 싶다.
- 5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인데, 주석만 100페이지. 연구가의 피 땀 눈물이라는 주석이 아롱아롱...
(마지막 문장)
비교는 비판적 거리와 인식적 관용을 확보하면서 다른 문화와 구별되는 중요한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성찰해야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비교를 통해 얻으려는 지식이나 거버넌스에 관한 보편적으로 유효한 원리를 생산하는 신학적인 특권이 아니다. 동시에 여러 형태의 과학적 정치적 삶이 지닌 규범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며 인간을 알고 추론하고 그 세계에 거주하려 할 때 위험한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