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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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밖의 세상이 너를 찌르거들랑 아프다고 소리치며 사는것 처럼 살고, 네 안의 모든 것이 죽어버렸거든 조금 기다리렴. 연꽃 씨앗이 천년을 잠들었다 깨어나듯 언젠가는 살아날테니.>>

◆ 심시선 여사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지 십년 째 되던 해, 지내지 않던 제사를 지내겠다며 하와이로 날아간 가족들. 나물과 전과 고기 대신 하와이에서 기뻣던 순간, 소중한 것들을 구해 제사상에 올리기로 합의하고 각자 제사상에 올릴 것들을 구하러 다니는데....

◆ 책 속 모든 인물에 모든 시간대에 모든 공간에 웃고 울고 고통받고 감내하고 무심한 모든 감정에 내 조각들이 숨어있다.  인물을 눈에 담을 때 마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수거하는 작업이었다면 믿어질까. 인물들이 잃은 것들은 나도 잃은 것이고 그들의 선택과 고민과 염려도, 동력을 잃고 고인 분노마저 닮아서 문장과 문단과 페이지와 단원을 넘을때마다 주워담았다. 주섬주섬 조각을 모아 목과 허리를 굽혀 끙끙대며 조각을 맞춰봤다. 죄다 깨지고 닳고 흩어져 존재한다고 할 수 있나 싶던 내가 엉성하고 볼품없게라도 있기는 한 그런 게 되었다.  좀 엇붙고 헐렁하고 가로세로가 안맞아도 괜찮겠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나오더라도 상심할 필요 없다. 완성된 조각은 더 큰 그림의 점과 선이 되어 우리들의 연결점을 증명해 줄 테니까. 허술한 듯 단단하고 연약한듯 질기게 이어져왔을 불가해함도.

◆ 최초의 장미가 동아시아에서 뿌리를 내리고 덩굴을 얽어 살았다. 심시선의 트리플 s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이곳에서 멈추더라도 장미의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미지의 대륙에서 새 생태계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의 작은 반도에서 세계의 많은 곳으로 갔던 사진신부들과 파독 간호사들, 광부들, 자신이 아닌 세월의 의지로 시베리아 험난한 동토에, 미국의 농장과 공장에 세계 곳곳에 내려앉아 살아남은 사람들처럼. 그 시작은 가늠할 도리 없이 아득하지만 작고 적당한 파도가 아니라 큰 파도 뒤에 오리라고 믿는다.  바로 앞에 도착한 파도를 타지 못하더라도 파도는 끝나지 않고 계속 될것이고 고꾸라지고 물을 먹고 가능한 일인가 끊임의심에 의심을 더하는 시간을 지나 더 큰 파도를 타고 올라서면  좀 더 멀리 보일테지. 그림에서 휘적휘적 나온 심시선 여사가 명혜가 숨겨둔 주름치마를 찾아입고 커피를 내리며 단단하게 건네 올 메세지가 그 큰 파도 꼭대기 하얀 물거품에 담겨있다 믿는다. 
"Live  a litte."
모던걸. 우리의 모던 걸. 내 모든 것의 뿌리.
나와 당신의 애방과 시선으로부터,
고이고 흐르는 각자와 모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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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해에서 작가님께 드리는 답신.

뽀글. 뽀글. 뽀글. 보글보글보글 뽀그르르르... (해석 - 좋아서 천국갔다는 이야기) ​
★ 이미 고인이 된 심시선 여사의 생전 글이 각 장 초반에 놓였는데, 글 너무 너무 ... 네.. 좋아요. 어느 페이지를 펴도 다 좋긴 한데 유난히 더 많이 좋아요.
★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p.21  녹취록 중.
맞습니다 심시선 선생님. 모른척 했지만 사실은 알면서 자주 잊고 가끔 떠올리고 일부러 다시 모른척 하는 거랍니다. 조금 더 살아볼게요. 그러면  먼 미래에 조금 더 갖춘 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정세랑작가님 작품 중 최애로 급격하게 모셔짐. 모든 페이지가 죄다 좋아서 기절. 동네서점 버전 초판을 샀는데, 일반서점용 초판을 안산걸 후회합니다. 두권 있으신분 제게 한권만 팔아주세요.ㅠㅠ (이게 뭐람)
★ 정세랑작가님 독일 뒤셀도르프 20주년 제사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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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알 수 있지. 21세기 사람들이니까. 그런 악의가 존재한다는 걸 알지. p.143
◈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그가 죽이고 싶었던 것은 나의 행복 나의 예술 나의 사랑이었던 게 분명하다. 그가 되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회복하지 못했으면 하는 집요한 의지의 실행이었다.p.178
◈  낳지 않아. 사람이 사람에게 염산을 던지는 세계에 살러 오라고 할 수 없어요. p.321
​◈  네가 아니면 누가 낳아? 나보다 덜 다친 사람. 나보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이. 뉴스를 그냥 통과시킬 수 있는 쪽이. p.322
◈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으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p.239
◈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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