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론 - 법과 사회 정의의 토대를 찾아서
로널드 드워킨 지음, 박경신 옮김 / 민음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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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킨의 <(고슴도치를 위한) 정의론>은 광범위한 법적, 도덕적, 윤리적, 정치적 논의들을 다룬다. 철학에 있어 회의주의에 대한 반론에서 시작해서 도덕적 책임성에 관해 논의하고 이를 상술하기 위해 해석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도덕과 윤리의 통합이라는철학적 기획을 시도하려고 한 드워킨은 이런 기획에 있어 막강한 적수인 자유의지의 부재로부터 도덕적 책임의 부재를 주장하는 규정론을 비판한다. 자유의지의 난제로부터 도덕적 책임성를 구원한 드워킨은 윤리적 삶의 핵심을 규정하며 이런 삶을 위한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이 두 원리를 칸트의 도덕철학과 연계하여 윤리와 도덕을 연관시킨다. 이렇게 두 개념의 기반을 마련한 다음에 부조, 위해 등 도덕적 문제들을 나름 규명한다. 드워킨은 존엄성의 두 근본적인 원리로부터 자유와 평등이란 개념이 도출됨을 지적하며 앞서 두 원리의 관계처럼 평등과 자유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남은 장에 할애한다.

드워킨은 종류를 불문하고 철학적 회의주의를 거부한다. 철학에서, 특히 현대 도덕철학에서 도덕적 명제의 진리를 확정할 수 없으므로 어떠한 도덕적 가치 판단도 존재할 수없다는 회의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크게 외적 회의주의와 내적 회의주의로구분된다. 외적 회의주의는 도덕적 명제를 1층위의 실체적 문제가 아니라 2층위의 메타적문제로 다룬다. 그들에 따르면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진리성을 지닐 수 없다. 드워킨은이에 대해 외적 회의주의가 전제하거나 주장하는 바 역시 도덕적 판단이고 이는 곧 자기모순에 해당하므로 오류를 지닌 입장이다. 반면에 내적 회의주의는 도덕적 명제를 2층위의 실체적 문제로 다룬다. 이런 입장은 자유의지의 문제에서 비관적 양립불가주의, 신의 부재에 따른 선악의 부재 등의 주장에서 나타난다. 드워킨에 따르면 이들의 주장은 특정도덕적 논거 위에 토대를 두고 있으므로 겉으로 보기에 회의주의에 해당하지만 실제로는특정 도덕적 신념의 표명에 불과하다.

이런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드워킨은 도덕적 문제를 다룸에 있어 어떠한 회의주의도 발을 디딜 수 없음을 전제하고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도덕철학에서는 도덕적 책임성이 중요하게 논의된다. 왜냐하면 도덕적 책임성은 도덕 문제를 어떠한 방법으로 숙고할 것인가를 다루는 도덕 인식론의 문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우선 드워킨은 일반적인 책임에 대한 개념 분석을 시작한다. 책임은 크게 덕성으로서의 책임성과 사람과 사건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적 책임성으로 구분된다. 또 덕성으로서의 책임성은 지적, 실친적, 윤리적, 도덕적 책임성으로 구분된다. 마찬가지로 관계적 책임성은 인과적, 소망상의, 배상적, 평가적 책임성으로 구분된다. 드워킨은 이 중 덕성으로서의 책임성에 속하는 도덕적 책임성을 다루려고 한다. 그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책임성이 있는 사람이란 정합적인 원칙 또는 신념 체계를 진정성 있게 추구하는 사람을 뜻한다. 즉 도덕적 책임성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실효성, 정합성, 진정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빈번히 자기합리화를 일삼는 사람들은 진심 없는 신념에 따라 행위하는것이므로 아예 신념체계 자체가 실효적이지 못하다. 또한 추상적인 원칙에 대해 적극인 해석의 노력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체계를 진정성있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상충하는 도덕 원칙들로 인해 도덕적 분열증을 보이거나 도덕을 구획하여 상황에 따라 상이한 도덕 원칙을 인용하는 사람들은 정합적이지 못한 신념체계를 구성했다고볼 수 있다. 그런데 드워킨에 따르면 사람이 도덕적 책임성을 준수하는 정도와 그러한 행위가 옳은 정도는 큰 연관성이 없다. 즉 책임성과 진리의 상관성은 어느 정도 약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덕에 있어 진리를 추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진리에 관심을 두어 회의주의와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적으로 책임성을 지닌 사람들 각각이 지닌 신념 체계의 내용은 불일치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도덕적 신념을 올바르게 구성하는 방식에는 일치를 보일 수 있으므로 도덕적 책임성과 진리가 아예 무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드워킨은 도덕과 윤리의 연관성을, 나아가 통합성을 기획하려고 한다. 이는 도덕적 원리의 정당화는 윤리적 삶의 고려에 기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칸트의 도덕 기획처럼 개인적 목표 설정이 타인의 대한 의무와 부합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우선 드워킨은 윤리적인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한다. 윤리적 삶에는 잘 사는 삶과 좋은 삶이 있다. 전자는 마땅한 윤리적 의무를 따랐다는 사실에, 후자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드워킨은 윤리적 삶의 두 가지 개념을 예술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잘 사는 삶의 가치는 예술가가 예술 작품을 그리는 수행으로서의 가치에 비견되며 좋은 삶의 가치는 그렇게 해서 창조된 예술 작품이란 산물로서의 가치에 비견된다.

 산물로서의 가치는 객관적이지만 예술에 있어서나 윤리적 삶에 있어서나 근본적인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예술가의 예술적 행위나 그를 모방한 기계의 예술적 행위 모두 산물로서의 가치는 동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예술가의 창조물의 가치만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동일한 신념,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살더라도 외부적 환경 또는 도덕적 운에 따라 삶의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는 달라질 수밖에 없기에, 윤리적 삶의 가치로 좋은 삶을 고려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행위의 결과에 상관없이 잘 사는 삶을 윤리적 삶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드워킨의 생각이다. 물론 잘 사는 삶이 항상 좋은 삶인 것은 아니며, 나쁜 삶이 항상 잘 못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드워킨의 요지는 윤리를 결과가 아니라 의무의 관점에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적 삶이란 곧 자신의 삶을 잘 사는 것이다. 이러한 잘 살기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들 요건은 자기 존중의 원리와 진정성의 원리로 구성된다. 자기 존중의 원리는 우리에게 잘 사는 것의 객관적중요성을 인정하도록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성을 객관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란 삶에 대한 비판적 고찰를 통해 단지 좋아하게 된 것들이 아니라 경외하고 타당하게 여기는 것들의 중요성을 인식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쾌락주의와 같은 삶의 방식은 단순히 삶의 의미만을 맹목적으로 쫒을 뿐이므로 중요성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진정성의 원리는 각자가 자신의 상황과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치들의 결에 어긋나지 않게 살 것을 요구한다. 즉 우리가 자신의 삶을 진정성있게 대한다는 것은 우선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또한 이는 비록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배경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수는 없으나 그것에 의해 지배되는 것 또한 거부하고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삶을 의미한다.

드워킨은 두 가지 윤리적 삶의 원리의 도덕적 함의를 고찰함으로써 윤리와 도덕을 통합하려고 한다. 두 존엄 원칙 중 첫째인 삶의 객관적 중요성 인식 문제는 해석의 문제를 야기한다. 즉 우리가 자신의 삶을 존중한다면, 타인의 삶의 객관적 중요성 역시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단지 우리 자신의 삶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될 뿐인가? 이에 대해 칸트는 삶의 객관적 중요성이 보편적 중요성을 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만약 우리가 칸트의 원칙을 따른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만이 아니라 타인의 삶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기 때문에 이리하여 우리는 윤리와 도덕의 연결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보편주의적 견해를 받아들이면, 윤리적 삶의 둘째 원리인 진정성의 원리의 훼손은 불가피해 보인다. 왜냐하면 타인의 삶을 비중있게 고려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은 제약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철학자들은 보편주의적 견해를 취하더라도 두 원리 사이의 타협을 통해 적절한 균형점을 모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드워킨은 이러한 균형점 모색은 두 원칙 모두가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타협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한다. 즉 우리가 칸트의 원칙이라고 통상 부르는 것을 드워킨은 가치에 기초하여 해석하려고 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격 또한 한낱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할 것을 명한다. 또한 이는 자신을 자율적 존재로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 전자와 후자 각각 자기 존중의 원리와 진정성의 원리에 대응된다. 그런데 이때 자율적 존재라는 것의 의미에 대한 해석이 제기된다.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은 특정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자유롭다는 통상적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보편적 법칙으로 의욕할 수 있는 준칙의 제정자인 개인이 도덕법을 준수함으로써 자유로움을 뜻한다. 따라서 이렇게 해석한 칸트의 도덕이론을 받아들여 우리가 보편적 법칙으로 의욕할 수 있는 준칙을 제정해 이에 따라 행위한다면 윤리와 도덕의 통합과 동시에 자기 존중의 원리와 진정성의 원리의 양립을 달성할 수 있다.

윤리와 도덕의 통합이란 토대를 마련한 뒤 드워킨은 부조의 문제를 다룬다. 칸트의 원칙에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타인을 대해야 한다. 이에 따른다면 우리는 안녕(Well-being)과 같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를 목표로 두어야 한다. 타인의 삶의 객관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태도만 보이면 될 뿐, 필연적으로 타인을 돕지 않았다고 해서 그 중요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곤경에 처한 사람의 삶을 객관적으로 존중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건네줄 필요는 없다. 단지 그가 처한 상황과 어려움을 인정해주는 태도만 보이면 될 뿐이다. 그러나 타인을 적극적 행위가 아니라 태도로 존중하는 것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매우 추운 겨울날 거리에서 만난 걸인이 배고픔과 추위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경우라면 우리에게 태도만이 아니라 행동 또한 요구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한계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드워킨에 따르면 이 기준이 해석적이고 이 기준은 다음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위해, 구조자에게 초래될 비용, 그리고 피해자와 잠재적 구조자 간의 마주하기가 이에 포함된다.

드워킨에 따르면 위해의 측정 기준은 최소한 공평하게 대우받아야 할 기회, 몫 들로부터 그 피해자가 얻거나 박탈을 당했는지 고려해야 한다. 이는 객관적 기준이다. 즉 피해자의 위험을 측정할 때, 피해자가 자신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비용 측정 기준은 구제 행위가 스스로 볼 때 잘 사는 것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비추어 그에게 중요한 것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이는 주관적 기준이다. 즉 그의 비용을 측정할 때, 구제 행위자 스스로 볼 때 잘 사는 것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제 비용을 측정할 때 우리의 선호도에 따라 판단하는 것에도 제한은 있다. 왜냐하면 어떤 근거-예를 들어 종교 또는 인종-에 의한 선호는 인류 존중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주하기는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한다. 우선 특정화 측면이 있는데, 이는 나의 개입이 없을 경우 누가 해를 입을 것인지가 명확할 때 내가 개입할 필요성이 커짐을 뜻한다. 그리고 근접성 측면이 있는데, 이는 내가 위험이나 필요를 더 직접적으로 마주하면 할수록, 내가 의무를 부담해야 할 정도가 커짐을 뜻한다. 이렇게 기준들을 고찰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에 대한 책무의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드워킨은 위해의 문제를 다룬다. 탈개인적 결과주의에 따르면 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나 결과의 측면에서는 동일하기에 둘을 같게 취급해야 한다. 그러나 본능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우리는 둘을 상이하게 다루며 일반적으로 후자보다 전자의 경우에 책임성이 더욱 경감되거나 아예 조각된다. 드워킨 이를 위해의 종류를 구분함으로써 도덕적으로 정당화한다. 위해에는 경쟁으로 인한 위해와 고의에 의한 위해 등이 포함된다. 스포츠 경기에서 1등을 한 선수는 2,3등을 한 선수에게 경쟁으로 인한 위해를 끼쳤지만 우리는 그 선수에게 도덕적 또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경쟁으로 발생하는 위해는 불가피하며 허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고의에 의한 위해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문제시 된다. 윤리적 삶의 두 번째 원칙은 우리 개개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소임상의 책임을 부과한다. 우리가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대한 통제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의에 의한 위해는 우리가 이런 통제력을 행사를 방해한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위해를 가한 자에게는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드워킨에 따르면 자유와 평등은 해석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많은 철학자들은 마치 그것들이 가치나 중요성에 대한 가설을 동반하지 않는 중립적 분석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규준 의존적 개념으로 다루었다. 앞서 해석의 문제를 두 장에 할애하여 다룬 드워킨은 이런 철학자들의 오류를 지적하며 자유와 평등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제시한다.

드워킨은 자유의 개념을 하기 위해 자유와 자유로움을 구별한다. 자유는 자유로움에 속하는 것으로 그에게 있어 자유의 영역에 해당되는 권리만이 진정한 자유의 권리로 인정된다. 자유에 속하지 않는 자유로움은 단지 방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제한된 영역의 자유를 다룸으로써 드워킨은 자유와 평등의 충돌 가능성을 배제한다. 왜냐하면 자유지상주의들이 과세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절도라는 주장을 하며 자유와 평등의 긴장관계를 묘사하고 있을 때, 그들은 사실 자유가 아닌 자유로움을 주장하는 것이므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함으로써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양립을 달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드워킨은 평등에 대한 잘못된 개념관을 비판하며 자신의 개념관을 전개한다. 드워킨은 윤리적 삶의 두 원리와 비슷한 정부의 정당성을 위해 필요한 두 원리를 제시한다. 첫째, 정부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동등하게 배려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그들 자신의 삶에 대한 각자의 책임에 존중을 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두 원리를 통해 평등을 왜곡하는 잘못된 개념관들을 비판할 수 있다. 자유방임주의와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동등하게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되었다. 반면에 복지의 지향은 국가가 개인들에게 어떤 삶이 윤리적인 삶인가에 대한 공동체의 판단을 강요하기 때문에 개인들 각자의 책임에 존중을 표하지 않게 되므로 이 역시 잘못되었다. 드워킨은 복지가 아니리 자원에 집중해야 함을 역설한다. 복지를 통해 평등을 실현하려는 국가는 그 수단으로 사후적 평등을 사용하는 반면 자원의 평등한 분배를 시행하는 국가는 그 수단으로 사전적 평등을 사용한다. 드워킨은 가설적 보험 시장이라는 가상의 장치를 동원해 이런 사전적 평등을 가능하게 만든다. 자원을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정부는 복지국가와 달리 개인의 책임을 온전히 존중해주면서도 모든 국민들을 동등하게 배려해줌으로써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드워킨은 이 책을 통해 다음 세 가지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윤리와 도덕의 통합, 과학적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도덕의 고유한 영역 그리고 도덕적 가치들의 통합성말이다. 드워킨 일생의 지적탐구가 이 책에 들어있다. 그는 평생 동안 철학 밖의 적들과 철학 내의 적들과 맞서 싸웠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 과학적 사고방식에서 철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학자들로부터 철학의, 그 중에서도 도덕철학의 고유한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다. 그뿐만 아니라 철학 내에서도 공리주의처럼 도덕에 대한 윤리의 종속을 요구하거나 실존주의처럼 도덕에 대한 윤리의 부정(거부)을 요구하는 사상들에 저항해 칸트의 지적 탐구를 이어받아 도덕과 윤리의 통합성을 기획했다. 드워킨의 이러한 노력이 학계 내에서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드워킨이 말했듯이, 윤리적 삶은 좋은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잘 산 삶을 산 데에 있다. 그러므로 일생을 거쳐 일관되게 지적 탐구를 개진했던 드워킨은 그 성과에 상관없이 윤리적으로 가치있는 삶을 영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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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형이상학 정초 - 개정2판 대우고전총서 16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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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형이상학 정초」는 도덕성의 최상원리를 설명하며 이를 위한 정언명령을 도입하는 전반부와 이런 정언명령의 가능성을 다루는 후반부로 나뉜다칸트는 자신의 도덕철학이론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통계나 사례에 기초한 경험적 방식이 아닌 선험적 접근을 택했다그래서 세밀한 논증으로 이론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자 일반의 상식에 호소하는 식으로 논증 사이의 도약이 빈번하게 일어나기에책을 읽어 나감에 있어 주목해야 할 점은 이론의 현실적 타당성 보다는 이론에 대한 온전한 이해인 것 같다칸트가 정의하고 분류하는 개념들과 이런 개념들 간의 관계이를 바탕으로 연속되는 논증을 이해하고 나면 책에서 칸트가 내세우는 이론의 큰 줄기는 보이는 것 같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집필함에 있어 다음 세 가지를 주요하게 염두해 두었던 것 같다우선 그는 동시대의 다른 윤리이론들이 가지는 한계성을 비판하고자 했다이런 이론들에 통칭하여 일반실천철학이라는 명칭을 붙이며 자신의 이론인 윤리형이상학과 철처히 구분하고자 했다또한 그는 인간이 이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하였지만이성만 가진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인간은 이성만큼이나 경향성 또는 이해관심 등 비이성적인 것들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던 것이다마지막으로 그는 선한 삶과 행복한 삶을 구분지었다인간에게는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마땅한 따라야할 법칙들에 위배된 행위를 하기에 이 때문에 선한 삶을 위해서는 행복을 누림에 있어 이성과 의지에 의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통해 도덕성의 최상원리의 탐색과 확립이란 목표를 이루려고 하였다이를 위해 그는 논의를 최고선이란 개념부터 시작하며 어떻게 하면 이 최고선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연속적으로 살펴보았다칸트는 세계를 초월하여 그 자체만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을 선의지라고 하였다칸트는 이러한 선의지가 행위의 가치판단에 있어 최상의 척도이기 까지 하다며 선의지의 내포 및 기능을 제시하였으나 외연은 제시하지 않았다그렇지만 선의지에 해당하지 않는 것들을 제시해주었다재능기질인격적 속성 따위의 것들은 선의지에 해당할 수 없다이러한 것들이 바람직한 가치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선의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우연적인 요소로 인해 조건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칸트는 이 선의지의 개념을 심화시키기 전에 선의지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를 짚고 간다인간을 비롯한 이성적 존재자는 자신이 가진 이성을 통해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자체로 선한 의지를 세우려는 목적과 그러한 능력을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았다이것이 이성의 제1의 의도이고 나머지 행복감을 비롯한 감정을 얻는 것은 부차적인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선의지의 개념을 심화시키기 위해 의무의 개념을 도입한다개념의 도입과 함께 칸트는 행위에 대한개념의 분류를 시작한다행위는 의무에 어긋나는 행위와 의무에 맞는 행위로 나누어 진다의무에 어긋나는 행위는 이미 그 자체로 도덕적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그렇지만 의무에 맞는 모든 행위가 도덕적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의무에 맞는 행위는 또다시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와 의무에서 비롯되지 않은 행위로 나뉘기 때문에행위가 의무에 맞으면서도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이어야 비로소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예를 들어 구호단체의 광고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서 동정심이 느껴져 기부를 한다고 했을 때이 행위가 비록 의무에 맞는 행위일 수는 있으나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왜냐하면 행위의 주체는 동정심이란 경향성에서 비롯된 행위를 하였을 뿐이기 때문이다행위가 의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를 존중하며 의무로서 행위를 이행하는 동기(동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칸트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냉혈한의 의무에 따른 기부 행위가 동정심 많은 사람의 기부 행위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어디서 기인했을까칸트는 의무에 따라 결의되는 준칙에서 찾는다칸트는 준칙과 법칙을 이항대립적으로 분석한다준칙은 욕구의 주관적 원리를법칙는 의욕의 객관적 원리를 뜻한다즉 전자는 그에 따라 주관이 행위하는 원칙이고후자는 그에 따라 모든 이성적 존재자가 행위해야만 하는 원칙으로각각 사실과 당위를 나타낸다만약 이성이 욕구능력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가지면 인간은 행위 원리로서 법칙을 따르나실제로는 그렇지 못하기에인간은 행위 원리로서 준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그러나 법칙에 대한 존경은 가능하고 이를 실제로 행해야 한다고 보았다따라서 칸트는 의무를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이라고 정의하며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가 곧 법칙에 대한 표상으로 여겼다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는 경향성의 영향 및 의지의 대상을 일체 배제하기에 행위 주체자의 의지에서 질료적인 것은 없어지고 의지에는 형식만이 남는다의지란 이성이 경향성에서 독립하여 필연적으로 선하다고 인식되는 것들만을 선택하는 능력이다즉 의지는 법칙의 표상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능력으로 오직 이성적 존재자만이 가질 수 있다그런데 의지가 항상 이성에 의해서만 규정되지는 않기에불완전한 인간이 악하고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칸트는 이런 의지에 훈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이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의지를 객관적 법칙에 맞게 규정하는 것을 강요라고 하며객관적 원리의 표상이 의지에 대해 강요적인 한에 이를 지시명령이라고 한다. ‘명령이란 지시명령의 정식(定式)이다명령은 선하지 않은 의지에 의욕(하고자 함형식의 일반적 원리를 따를 것을 지시한다결국 선의지는 의욕 형식의 일반적 원리에 따른 행위를 의미한다


  칸트는 기존의 일반실천철학과 달리 자신의 윤리이론을 경험에서 도출하지 않았다즉 실례에서 윤리적 행위의 표준을 정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였다우선 실례는 최고선의 원형에 대한 모방이 될 수 없다또한 경험에 기초한 윤리적 원칙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과 항상 선한 가치로 인식될 수 있는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경험적 분석으로는 도저히 최고선의 가치를 도출할 수 없다고 본 칸트는 선험적 분석을 통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춘 최고선의 조건을 탐색하려고 했다따라서 선의지에 내재하는 의욕 형식의 일반적 원리 또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추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이성적 존재자를 대상으로 한 명령 또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녀야 한다.

  

  칸트는 당위(해야 함)으로 나타나는 명령을 가언적 명령과 정언적 명령으로 구분했다가언적 명령은 명령을 통해 의욕하는 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으로 도구적-조건적 가치를 지닌다반면 정언적 명령은 다른 목적과 관계없이 명령한 행위를 그 자체로서 표상하는 것으로 내재적-무조건적 가치를 지닌다정언 명령과 달리 가언 명령은 명령의 내용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주어져야 하는 제한이 있다명령은 의욕 일반의 객관적 법칙과 이성적 존재자의 주관적 준칙과의 관계를 나타내야 하고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필연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그런데 가언 명령은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에 명령을 지시할 수 없으므로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고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도덕적 가치가 없으므로 필연성 또한 결여되어 있다따라서 정언명령만이 의욕 형식 일반의 원리에 적합한 명령의 정식이 된다이에 따라 칸트는 첫번째 최상의 실천원리를 도출한다.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이를 순수 실천이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의욕은 하고자 함을 의미하는데이는 사실 판단과 가치 판단을 모두 함유한다따라서 보편적 법칙으로서 의욕할 수 있는 준칙으로 적합한 행위는 행위가 단지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보편적 법칙으로 존재하기에 타당해야 한다예를 들어 자살 또는 이행불가능한 약속은 보편적 법칙으로서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반면에 자기계발 보다 쾌락을 우선시 하거나 이기적 개인주의를 보이는 삶의 태도는 보편적 법칙으로 가능하기는 하지만보편적 법칙으로 존재하기에 타당하지 않다따라서 보편적 법칙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 법칙으로 가치가 있는 행위가 실천원칙으로 적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정언명령의 준수가 의무이어야 할까즉 앞서 도출된 실천 법칙의 근거가 무엇일까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칸트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과 도구적 가치를 지니는 것을 가정했다인간을 비롯한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 그 자체로 실존하며특정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따라서 인간은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반면에 이성적 존재자의 대상이 되는 것들은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에 단지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뿐이다칸트에 따르면 정언 명령은 최상의 가치를 지닌 실천을 강요하기에만일 실천의 주체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니고 모든 존재가 조건적 가치를 가진다면결코 윤리성의 최상원칙을 도출해 낼 수 없다고 보았다칸트는 이를 정언명령에 대한 최상의 실천 근거라 부르며 이에서 파생되어 나온 다른 실천명령을 제시한다.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그렇게 행위하라.’ 이러한 인간 존엄성의 원칙을 칸트가 두 번째로 제시한 의욕 형식의 일반적 원리에 해당한다고 보아도 될 것 같다


  곧바로 칸트는 이 둘째 실천 원리로 부터 셋째 실천 원리인 보편적 법칙수립의 의지로서의 각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라는 이념을 도출했다즉 칸트는 모든 이성적 존재자는 자신의 준칙을 통해 보편적 법칙을 수립할 수 있는즉 입법자로 보았던 것이다그렇다면 칸트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인간의 법칙수립 능력에서 찾았던 것이다준칙을 통해 법칙을 수립한 인간은 주관적인 준칙을 세운다는 점에서 자유로우면서도 자신의 준칙 하에 놓여있기에 한편으론 종속적이라고 보았다이러한 인간의 양가성에 도달하는 것을 칸트는 의도했던 것 같다왜냐하면 칸트는 기존의 윤리학과 자신의 윤리학을 대조하고자 했고이러한 차이가 두 이론이 인간을 자유와 종속 사이 어디에 위치시켰는지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다기존의 윤리학에서는 인간을 단지 보편적인 법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다그렇다면 인간의 의지는 단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일 뿐이다반면 칸트의 윤리학은 인간을 단지 자기 자신의그러면서도 보편적인 법칙수립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인간의 의지는 내부에서 수립된 것이다칸트에 따르면 전자에 따라 인간이 법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법칙에 강요하게끔 인간에게 특정 이해관심이 주어져야 하는데그렇다면 법칙 준수는 결국 조건적일 수밖에 없다반면 칸트의 윤리학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자기법칙수립자이고 이를 의무로 받아들이므로 법칙 준수의 필연성을 담보할 수 있다칸트는 인간에게 법칙에 대한 종속을 의무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도 그러한 법칙을 자신만의 준칙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자유의 길을 내주었기에 도덕성의 원칙이 지녀야할 필연성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고 기존의 윤리이론과 달리 최상의 원칙에 대해 탐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법칙수립자이기 위해서는 인간이 자율적 존재임이 전제되어야 한다결국 칸트는 인간이 수단적 가치가 아닌 내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를 인간의 법칙수립 능력에서 찾았고또 이에 대한 근거를 인간의 자율성에서 찾은 것이다


  칸트는 세계를 감성세계와 오성세계로 구분하였다현실적 인간은 두 세계 모두에 속해있다전자에서 인간은 경향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자연의 법칙 아래에 종속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후자에서 인간은 이성 이외의 것의 영향은 일체 배제한 채오로지 이성의 영향만을 받으며 자연에 독립하여 순수 이성에 기초하고 있는 법칙 아래 존재한다고 보았다감성세계에 속하는 한 인간은 종속적이고 오성세계에 속하는 한 인간은 자유롭다만약 인간 이성이 이성적 존재자에게 아무런 방해없이 실천적이라면즉 인간이 오성세계의 성원이기만 하다면 당위는 곧 의욕을 의미하며 자신이 의욕하는 것에 더 이상의 강요도 필요가 없다그러나 다른 동기들에 의해서 행위가 촉발되기도 하는 인간에게 당위와 의욕은 불일치하며 따라서 인간은 주관적 목적 및 필연성을 배제하고 보편적 법칙에 알맞는 준칙에 따라 행위할 것을 요구받는다궁극적으로 칸트는 경향성과 이해관심 등에서 벗어나 이성에서만 자신의 행위의 근거를 찾는 인간이 선의지를 가진 존재이고이를 이상적 인간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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