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 한권의 유고 시집을 남긴...시인... 이 양장본 책의 앞쪽에는 시인의 흑백사진들과 그의 친필원고와 타자로 친 시들이 들어 있다. 타자로 친 자기의 시를 보고 이제야 시같다며 좋아했다던 시인...그 시인이 남긴 애틋한 자식인...시...

내가 이 시집에서 좋아하는 시는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래도 꼽아 본다면 세 편의 시가 있다. '엄마 생각'과 '대학시절', '위험한 가계'라는 시다. 이중에 '엄마생각'은 초등학교 책에 실렸는데...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타박타박 배춧잎같은 발자국 소리로 돌아오는 엄마...시장에서 하루종일 장사를 하고...지친 발자국으로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여...마음이 아프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의 모습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머리에 붉은 고무대야를 이고 장사를 했다는 젊은 시절의 내 어머니의 모습이...아슬아슬하게 겹쳐져....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대학시절'이라는 시는...80년대 뜨거운 시대를 건조하고 쓸쓸하게 읊은 시다. 짧은 몇마디 구절안에...읽고 싶은 책을 읽지도 못할만큼 시대에 빚진 기분으로 살아가다가...결국 시대에 휩쓸려간 대학생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위험한 가계'는 정말 위험한 시다. 이렇게 아름다운 현대시를 본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쌓아둔 이불을 등을 기댄 채 큰 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우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하나 사주세요.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거구.풍병(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 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매셨다

시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이만큼으로도 시의 매력은 충분히 전달될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감 있는 표현들과...어쩌면 일반적인 시라고 생각되지 않는 특별한 어조...새로운 시의 언어들을 통한 화법등... 기형도...'그'만이 쓸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이다. 이 시중에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위에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하늘에는 벌써 티밥같은 별이 떴다.'라고 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만 읽어도 하늘에 뜬 커다란 별들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이제 '기형도'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선명한 이미지와 환상적인 어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석전집 - 증보판
백석 지음, 김재용 엮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백석...그의 눈동자는 맑고 천진하며 장난스럽다. 일제치하였지만, 첨단 유행을 이끌던 멋진 시인...나는 그 시인과 사랑에 빠졌다. 나는 왜 백석의 시를 사랑하는가? 그의 시는 너무도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향토색을 드러내 준다. 세련되게 줄이 잡힌 새하얀 양복바지처럼 현대적인 기법으로 구수하면서도 재미있는 우리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이겠는가? 그의 시에는 어려운 한자말보다는 지금은 잊혀진...아니...그 당대에도 잘 쓰이지 못했을(일제치하) 고유어들이 연한 새 풀잎처럼 싱싱하게 살아있다.

그뿐인가, 이름만 들어도 먹음직한 향토음식에 대한 추억들, 색색이 아름다운 전통음식들과, 놀이들, 대가족문화...고향의 정겨운 풍경들이 녹아있다. 그가 왜...그런 이야기들을 시로 풀어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도록 슬퍼진다.

내놓고 사랑할 수 없는 조국의 언어와...맑고 고운 순우리말 지명까지 강제로 뺏기는 현실...가난한 유랑민들이 떠돌고...눈 밝은 사람들은 조국을 등져야 하는 슬픈 현실이...눈 앞에 선하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그런 그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다. 아내도 없고, 집도 없어지고...떠돌아야 하는 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높고 맑은 정신이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의 '서시'에 비견될만한 순수한 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중략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끓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세운 뜻대로 살아가고자 해서 집을 떠나 유랑을 하면서도, 슬픔과 부끄러움에 목이 메이고...그러면서도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 시인의 모습에서, 철없이 살아온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이 시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는, '여승'이라는 시다. 고등학교 때 국어 참고서 한켠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시는...한 여승의 운명을 통해 고통스럽고 비감한 민족의 운명을 보여주는 명시다. 그 암울한 시대에도 이렇게 고결한 시를 쓰는 시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정도다.

현대에 읽어도......현대시보다 세련된 어조와 내용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김소월과 윤동주 말고도...백석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홉시간 동안의 전화통화
리처드 바크 지음 / 명진출판사 / 1992년 4월
평점 :
품절


리처드 바크의 책을 처음 접한 건...'갈매기의 꿈'보다 이 '아홉시간 동안의 전화통화'였다. 자서전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작가의 삶과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는 책은...나폴나폴한 의심을 피워올렸다. 아홉시간 동안의 전화통화를 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고 실제로 그렇게 전화 통화를 해 보았다. 불행하게도 내 영혼의 반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작가이자 경비행기 조종사인 주인공은 '갈매기 조나단'처럼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를 묶어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지상에서 작가로서 받는 스포트라이트보다, 그는 야간비행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니 말이다.그는....자유로운 영혼을 믿으며,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영혼의 반쪽을 찾는다. 불완전한 일치를 적당히 타협하며...평안을 구하지 않고...딱 맞는 영혼의 옷을 구하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처럼 영혼의 반쪽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믿음이란 마음의 뿌리가 단단한 사람에게만 열리는 달콤한 열매이기 때문이다. 결국...그는 자신의 영혼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서로를 끼워맞추는 연습을 한다. 서투르게 서로의 삶을 끼워나가다 어긋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제 영혼의 반쪽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랑과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큰 생의 축복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갈매기의 꿈 에버그린북스 1
리처드 바크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날아 봐, 날아 봐~~~ 귓가에서 조나단이 이렇게 외치는 듯 하다. 더 높이 나는 것이 목표인 갈매기...먹이를 먹기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목표인 갈매기라니...정말 독특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참신한 발상이 아니었나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스무살이 넘어서 읽게 되었다. 수도 없이 귀에 박히도록 들어온 명작중의 명작임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그 때문에라도 읽기가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스물을 훌쩍 넘기고 읽었어도, 그 감동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접할 때의 감동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니 말이다.

남다른 자신의 태도와 꿈에 의문을 가지고, 좌절도 하며, 다시 희망을 가지기도 하는 갈매기 조나단의 삶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한창 꿈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의 청소년기의 방황과 두려움...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심리가 무척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상상하며 읽으면 예쁘다. 깊이 생각할 필요없이 여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며...그녀의 닫힌 기억들을 조금씩 열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해서 예쁜 연애소설의 배경을 더욱 분위기 있게 만들어 준다. 거기다, 릴레이 연애소설이라는 이슈와 부부가 번역했다는 이슈가 합쳐져서 더 예쁘게 포장 되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했다...그리고 상처받았다...결국 다시 만났다...라는 기본 스토리를 순수문학적으로 곱게 써내려갔다. 하지만 순수문학은 아니다. 아마 어렸을 때 보던 하이틴 로맨스를 좀더 고급스럽게 포장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재미있다. 중요한 건 그거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주인공이 왜 그렇게 자신을 가둬두고 있는지 생짜증이 나다가도...그녀의 무덤덤하고 모든일에 시선을 돌리고 있는듯한 태도와 묘한 분위기에 심취해서 읽어내릴 수 있다.

단점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남녀관계의 애정이 얼마나 많은 소재가 되어 왔는가? ...이 작품은 예쁘고 비싼 포장에 들어 있는 과자를 꺼내보니 싸구려 비스켓이 나와 허탈하게 씹는 것처럼...조금은 식상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