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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국가 - 국제금융기구와 외채에 관한 진실, 세계 밖의 세계
다미앵 미예.에릭 뚜생 지음, 조홍식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평점 :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정말 위기가 기회일까? 1997년 IMF시기에 대학에 입학해야 했던 나로써는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말이다. IMF는 성적이 좋은 지방 학생들이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을 가는 것을 포기해야 했던 암흑의 시기였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명예퇴직을 하고, 기업들이 도산하고...은행들이 팔려나갔다. 그후로도 카드대란이 있었고, 외환위기가 있었고, 세계 금융위기까지 겪었다.
도대체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닥쳐 오는 이 위기감은 뭘까? 언론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지만, 고학력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늘어나 있는 지금, 여전히 경제가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다.
"왜?"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 대답이 바로 이 책에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 차지하는 신용도는 바닥이며, 부채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 있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저자의 분류에 의하면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다.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빚쟁이다.
프랑스인 저자인 다미앵이 쓴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얘기 보다는 오히려 북부(선진국)와 남부(제3세계)로 분류되는 세계의 자산 흐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제3세계의 자산이 어떻게 선진국으로 흘러들고 있는가? 그 것은 바로 IMF와 세계은행으로 대표되는 선진국들의 강압과 횡포 때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실제로 1980년대에 빌린 1달러를 갚기 위해 선진국으로 흘러들어간 돈은 7달러가 넘는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제3세계의 독재자들에게 차관과 달러를 빌려주며, 그 댓가로 국민들의 피와 땀이 어린 노동과 자원을 약탈하고 있다. 심지어 독재자들에게 빌려준 돈이 국민들이 아닌 그들의 개인금고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묵인하면서까지 말이다.
IMF의 실상은 17%의 지분을 가진 미국과 일부 부자국가들이 제3세계 국가들의 정책까지 좌지우지하여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가마우지 경제를 확고히 하는 시스템이다. 억지로 시장을 개방하게 만들어 국가의 기간산업들을 민영화하고 구조조정을 하는 IMF 스타일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
이처럼 MF를 혹독하게 겪은 우리나라로써는 제 3세계의 수탈을 남의 일로 치부할 수 만은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외채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10억이 넘는 인도보다 우리나라의 외채가 많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면,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는 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저자는 IMF와 세계은행이 강제하고 있는 제3세계 부채를 탕감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원금보다 많은 이자를 받아갔다는 점 외에도 다양한 정치, 경제, 문화적 논리로 무장한채 부채의 부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런 부채 탕감 논리는 저자가 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포기하고자 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저자의 해결방안은 과격한 점이 없지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약탈당하는 자가 되기 보단 차라리 약탈하는 자 편에 서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리는 인상적이다. 강대국들에 의해 생긴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는 약소국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주는 통쾌함이 있다. 이상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