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의 중국식당
허수경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허수경 시인은 길 모퉁이에 서 있는 걸까? 먼 이국의 내음이 짙게 깔려 있는 가운데....고국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모퉁이라는 게 그렇다. 어디 자신이 가려고 하는 길이 뚜렷이 보이기나 하는가? 꺾어지는 인생의 굴곡을 맞아 새로운 길로 향하는 그 중간지점이 모퉁이가 아닐까?

따뜻한 시선으로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고국의 언어로 내 놓은 산문집. 시인이 말을 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참 많은 생각들이 발효되는 것이다. 10년이 넘게 이국에 머물렀던들, 그네의 생각조차 이국어로 되는 것은 아니었을 터인데....문득문득 치미는 그리움과 애정의 대상이었을 고국어를 참 간결하게 잘 갈고 닦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에서 오가며, 길거리를 오가며 이 책을 읽었다. 여백이 많은 공간이 좋았다. 그 여백에서 느껴지는 허수경 시인의 감정이 은은하게 다가와 그네의 마음 언저리에 가 닿는듯 했다.

특히 녹차를 끓이는 법을 설명하며 '물의 상처' 를 달래주어야 한다는 짧은 글이 좋았다. 흐르면서 다치고 끓으면서 다치고..물도 다친다는 것. 그래서 여기 저기 상처를 입는다는 것. 생각치도 못했던 것이지만, 그래 물이라고 사람과 다를바가 뭐가 있을까? 그 상처를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게 삶인 걸.

타지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낯선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또한 가까운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운다. 낯선 곳에서 마치 아이가 말과 글을 배우듯, 허수경 시인도 그렇게 더듬더듬 말을 익히고 새로운 벗을 만나고 새로운 시선들과 만났으리라.

발굴을 하면서 과거 사람들이 쓰던 물건들...낡은 접시들, 벽돌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허수경 시인은....자신의 낡은 허울을 벗고 참 자유롭지 않았을까? 숨박꼭질처럼 과거를 찾아 헤매는 것도 현재를 알고 미래를 알기 위함이라는 그녀의 말....그것은 이미 모래 먼지에 익숙해 있을 멋진 탐험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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