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담이 눈 뜰 때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1992년 8월
평점 :
절판
장정일의 글은 독자들에게 쉽게 읽힌다. 성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성을 통한 사회의 재조명이기 때문에 쉽게 읽히는 중에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 글의 첫머리에 ‘작가의 말’이있었다. 기존의 상상력과 틀린 한 시대의 구분으로써의 ‘세기말적 상상력’으로 ‘세기말적 징후’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하는 주제라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아담이라는 특정인물을 통해 장정일은 세기말적 징후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성은 만남의 방식이다.이 글에서는 여러가지의 만남이 제시되어 있다.우선, 주인공을 아담으로 명명한 은선과의 만남이 있다. 은선과의 첫섹스는 그를 가짜 낙원으로 이끈다. 둘은 시험을 치르듯이 관계를 가진다. 성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번째 시도이다.두번째 시도는 현재와의 만남이다. 그들은 쾌락을 공유하기 위한 만남에서 시작하여 음악을 통한 교감을 느끼게 되어 정신적인 교류를 하게 된다. 현재의 죽음은 주인공의 현실이 가짜 낙원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주인공의 억압된 성이 어떻게 표출되었는가? 그 것은 그가 19살에 원했던 세가지 물건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 소설 첫부분에 나타나듯이 그 세가지 물건을 가지는 것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프로야구단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턴테이블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몸을 판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성을 거래하고 있다. 동성애를 통해 그는 자신을 학대하며 자괴감을 느낀다. 여기서 턴테이블은 자기파괴적인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이며, 자기속으로 침전하는 통로이다. 자기파괴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짐 모리슨등의 음악은 주인공을 가속도의 세계로 끌어 당긴다. 가속도의 세계는 그의 속도보다 빠르게 전진하는 오늘의 현실이며, 세기말의 상황과 동일한 것이다.
주인공이 가지고 싶어 했던 뭉크의 화집도 억압된 성을 표현해 준다. 그가 가지고 싶어한 것은 ‘사춘기’라는 유화의 사진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사춘기를 바라보고 싶어 했지만, 여류화가에게서 받은 화집에서는 그 사진만이 빠져있고, 그는 자신의 사춘기가 상실되었음을 느낀다. 성적인 성장이 가장 왕성한 시기의 상실은 주인공의 성에 대한 의식이 빗나가게 된 원인이 된다
마지막으로 타자기가 있는데 이 타자기의 역할은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주인공의 모든 방황을 종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논의들이 사회를 비판하려한 작가의 주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로마의 몰락이 그러했듯이 몰락이라는 것의 마지막 단게는 성의 타락이다. 그런 측면에서, 성을 통해 21세기 사회를 비판하려한 태도는 적절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이 작품에서 성을 통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 올바르게 이루어 졌는지는 독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성을 물질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일은 이전에도 흔히 있어왔던 일이고 작가가 논의하려는 문제는 좀더 현 시대와 가까운 성에 대한 문제제기였을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선 작가가 성을 통해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을 너무 의식하여 어울리지 않게 사회를 글에 나타내 어색함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대학에서 떨어진 것이 사회의 상황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선거라든지 탈출범사건때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근거가 억지스러운 면을 여기서 단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이 작가의 한계의 전체적인 모습은 아니다. 사회를 성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한계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글이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낸 개성적인 시도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