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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ㅣ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두운 골목길에서 환한 가로등을 만난 듯, 맑고 깊은 책이다. 통독보다는 여유로운 정독이 어울리며...한꺼번에 다 읽어버리기보다는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 것이 어울리는 책이다. 수많은 평자들이...또는 작가들이 왜 장 그르니에의 책을 읽고 사랑에 빠져버리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이라면, 바닷가 백사장 위에서 또는 산 속 계곡의 물 소리 아래서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시선을 자기 내면 깊숙한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그의 마법같은 문장을을 읽다 보면, 누가 뭐라 말하지 않아도 장 그르니에의 매력에 빠져 버릴 것이다.
'공의 매혹'부분은 거의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섬광의 순간을 표현했다. 한용운이 말했던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은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처럼 인생의 방향을 저도 모르는 새 바꿔 놓은 그 아름답고 빛나는 찰나를 노래하고 있다. 어두운 다락방 낮은 천정을 보면서도, 높고 검푸른 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있는 맑은 유년기의 어느 한 순간...누군가는 시를 운명의 지침으로 삼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음악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그의 글들은 '나'라는 존재를 과거의 빛나던 꿈들을 되돌이켜 보게 만들기도 하고, 내 미래를 잊혀진 꿈들로 다시 한번 수놓을 수 있게 만드는 용기를 준다. 시인 정현종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말했지만, 장 그르니에는 사람들이 섬이라고 말한다. 맑은 거울같은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지중해의 섬들...그 섬들은 고독하면서도 자유롭다. 장그르니에의 산문 속에는 끝간데 없이 지독한 고독과...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자유, 그 둘을 함께 간직한 인간의 내면이 있다. 그래서 글을 읽는 우리가 자신의 깊은 마음의 바닥까지 맑고 투명한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