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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며, 뜨겁게 살고자 노력했던 여인이었다. 1960년대 여성으로서 지식의 최전선에 서서 자신의 내면의 심연까지 가 닿으려고 손을 뻗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글들을 읽어보면, 그녀가 왜 독일에 심취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하이데거, 칸트, 니체, 헤겔... 이름도 다 댈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철학자들을 낳은 독일. 그들의 사색하는 생활태도에서부터 인간의 수많은 사고와 행동의 비밀들이 밝혀졌다. 전혜린은 이처럼 사색하고, 또 사색하며...끊임없이 존재를 회의하고 부정하기도 하며 그 끝을 알기 위해 탐구하는 독일인들과, 그들을 낳은 독일이라는 도시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혜린이 사랑했던 장소 슈바빙은 프랑스의 몽마르뜨처럼 예술인들의 모임장소였으며, 그들의 천재가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던 곳이었다.
그녀의 글들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라기 보다는 자기를 곱씹으며 채찍질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 그저 자기 생활의 면면에서 떠올리게 되는 작은 단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깊이를 알 수 없을만큼 치열하게 자기 자신과 부딪칠 때까지...끊임없이 사색한다. 그녀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보헤미안적 기질인지도 모른다. [생은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회한, 모든 후회는 결국 존재의 후회로 귀결된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것은 인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숙명이다. 존재는 본질적으로 고독하지만, 그 고독은 자유를 담보해주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모순속에서 천성적으로 타고난 자유인 기질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세상에 조화롭게 어울릴 수 없는 성질이었던 것 같다.
세상과 끝내 타협하지 못했던 그녀의 글은 섬세하면서도 활기에 넘친다. 세세한 풍경 묘사들을 읽다보면,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독일의 풍경들이 얼마나 정겹게 떠오르는지 머릿속에서 환영이 보일 정도인 것이다. 다른 것들을 접어두고서라도 이 아름다운 문체를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