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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2월
평점 :
절판
'마당 깊은 집'이라는 이 제목은 참 매혹적이다. 요즈음의 마당이 있는 집은 죄다 콘크리트, 시멘트로 발라버린 집이니 더욱 그러하다. 과거도 아니고 현재도 아닌, 기와는 있지만 창호문은 없는 그런 넓은 ㅁ자 또는 ㄷ자 모양의 집에는 항상 뜰이 있었다. 비가 올 때는 흙이 질퍽해져서 곧잘 구두와 바짓단을 버리던 그런 집은 이제 추억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다. 이 책은 예전에 드라마화되어 한동안 텔레비전에 방영되기도 했다.
어쩌면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같은 작품과 이 '마당 깊은 집'과 같은 맥락에서 그 전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삶 속에서의 성장을 그리는 공통점과, 당대의 사회 모습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새의 선물에서는 화자의 성장의 모습이 관건이 되지만, 마당 깊은 집에서는 그 사회상을 반영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약간 다르지만 말이다. 어쨌든 '새의 선물'을 읽고 감동 받았던 사람이라면 '마당 깊은 집'을 읽고 더 크고 진한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 후의 삶의 모습은 비참했지만, 또 나름대로 삶에 대한 의지는 요즈음보다 훨씬 굳건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전쟁통에 홀로 된 어머니가 자식들을 다독이며, 잘 키워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참 다부지면서도 맵고, 억척같은 모습이다. 작가는 이 소설이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1960년, 70년대의 어머니들의 모습은 모두 그러하였으리라.
미군들을 불러들여 파티를 여는 주인집의 모습이나, 한 팔이 없어 군고구마나 풀빵을 구워 파는 상이용사네, 적색분자라고 찍혀서 매번 형사가 드나들던 집, 양키 시장에서 군복 장사를 하는 집, 그리고 삯바느질을 해서 자식들을 키우는 주인공의 집 등 한 집에 모여 사는 이때의 모습들은 너무 흔해빠져서 이제 진부하기까지 한 우리 나라의 전후의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 펄 벅의 '대지'가 떠올랐던 것은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몸을 낮게 굽히며 대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인간의 모습은 보편적이면서도 감동적인 것이니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목욕탕을 묘사한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요즈음이야 찜질방이다 뭐다 하며 고급화된 목욕탕이 유행하고 있지만 예전에야 어디 그랬던가? 일요일 새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세숫대야 하나, 비집고 앉을 자리 하나 마련하기 위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탕에서 전쟁을 벌여야 했으니 말이다. 빨랫감을 가져와서 빨다가 혼이 난 아낙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뿌연 김이 서린 그 곳에는 항상 어린애들 울음 소리와 아이를 혼내는 엄마들의 잔소리가 연거푸 울려 퍼졌다.
나는 작가와 동시대 사람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억척같이 살았던 부모님 세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항상 향수에 젖는다. 생명의 치열함, 그 뜨거운 열기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목욕탕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지금의 나태한 생활을 경계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