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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폴오스터의 작품의 묘미를 내가 잘 느끼지 못하는 탓인지, 문팰리스(달의 궁전)외의 작품들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아, '거대한 괴물'은 꽤 흡족했던 기억이 있다. '동행'이라는 제목과 '폴오스터'라는 작가의 명성만 보고 선택했기 때문인지, 이 책의 서술자가 '개'였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글의 서술자인 '미스터 본즈' 자체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주인인 윌리가 대책 없는 방랑자이기 때문에 더욱 대조적으로 그의 지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면이 돋보인다.
개의 주인인 윌리가 죽음을 앞두고 '미스터 본즈'의 거처를 마련해 주기 위해 자기의 은사를 찾아간다는 줄거리는 조금 무리한 전개처럼 보이지만, '미스터 본즈'의 사고나, 그가 회상하는 윌리와의 추억은 그럴 듯 하게 독자를 끌어들인다. 물론 뒷부분의 반전도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사실 책을 읽을 때부터, 대체 이렇게 비현실적인 구조를 어떻게 마무리지을까를 상상해보는 것이 가장 큰 재미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조금 실망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폴 오스터의 가장 큰 장점은, 비현실적인 사건 전개를 현실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현실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스터 본즈가 윌리가 없는 세상에 적응한다는 것 자체가 이 소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개의 모든 사고를 지배하던 주인의 죽음을 겪고, 거친 세상에서 자기가 의존할만한 (미스터 본즈의 지적인 사고를 이해해줄만한) 주인을 다시 찾는 것이 쉬운 일이랴? 결국은 그랬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생각난 것이라고는 '역시 개는 개야. 주인이 없는 애완견이 무슨 쓸모가 있지?'라는 정도였다. 물론 작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어렴풋이 납득이 가지만, 뒤통수를 때리는 크나큰 반전과 재미는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