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적
코니 팔멘 지음, 이계숙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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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음을 인정해야 할 듯 하다. 로맨스 소설의 제목처럼 달콤한 내용이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여성의 여성만의 성장소설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 것 같다. 흔히 소녀들은 변덕이 심하고 소녀들의 우정이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어 중요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소녀들의 우정과 성장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하고 있다.

예전에 제목은 정확하지 않지만 '내 책상 위의 천사'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 감동과 유사한 감동을 느꼈다. 이 소설의 화자인 키트는 '아라'라는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동성애적인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우정과 동경이라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둘의 관계는 키트의 일방적인 애정공세에 아라가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키트는 매우 섬세한 소녀다. 키트와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키트가 매우 모범적인 여성적 위치로 성장하려고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라'와 아라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특별하게 보인다. 일반적인 모녀라기 보다는 대립적인 구도를 취하며 '아라'는 제 또래보다 훨씬 성숙한 아이로 묘사된다.

남자 아이들의 성장을 다룬 '데미안'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키트가 '아라'의 독특한 사고를 동경하고 아라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 좀더 여성적이고 섬세한 느낌을 주지만 말이다. '제 2의 성'에서 말하듯 여성이라는 존재는 삶과 죽음을 자신의 육체에 그대로 담고 있는 특이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숙기의 소녀는 그 혼돈을 풀어가기 위해 좀더 큰 방황을 겪게 된다. 어쩌면 샴쌍둥이처럼 키트와 아라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해가면서 성장하지만, 결국 그 성장의 마지막에선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는 소녀들에게서 친구 사이라는 것, 그리고 소녀들의 성장이라는 그 불분명하고 흐릿한 원석의 빛을 잘 닦아서 보여주고 있다. 그 둘이 어떻게 하나로 어우러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분리되는지를 지켜보면서 독자들은 여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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