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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ㅣ 시공아트 17
롤랜드 펜로즈 지음, 김숙 옮김 / 시공사 / 2000년 4월
평점 :
'그림은 섬광같아야 한다. 그림은 아름다운 여성이나 시처럼 매혹적이어야 한다. 그림은 빛을 발산해야 하며, 피레네 산맥의 목동들이 파이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사용하는 이 부싯돌과 같아야 한다. …… 예술은 죽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대지 위에 씨를 뿌렸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문구는 미로가 그림에 대해 가졌던 미학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교육은 파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하면서도 그의 미술의 뿌리가 마요르카섬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토지와 토지에서 생성되는 생명에 대한 그림이 많았다. 물론 미로 하면 떠오르는 것이 추상화된 그림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 또한 피카소와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추상적인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시대별로 변화해가는 그의 그림들과 조각 작품들을 보면 구체적인 형상에서 점차 군더더기를 제거하여 순수한 미적 의식만 남겨놓는 작품들로 변모해 갔다.
초기에는 야수파나 인상파 그림같은 풍경화나 초상화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아주 섬세하게 그린 세밀화나 입체파의 느낌이 나는 그림도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볼 때, 그 사람이 이루어 놓은 한 획만을 보아서는 그 작가를 이해할 수 없다. 그 작가가 변모해 온 과정을 볼 때, 작가의 변화 과정과 그 사이의 예술가적 고뇌, 예술적 방향에 대한 끝없는 사색과 고민의 흔적들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대가들의 작품에 그토록 높은 가치가 생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미로'라는 위대한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대가라고 해도 처음부터 대가는 아니었으며, 자신의 예술을 위해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하나에 매진한 한 장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불가능했던 그림들이 마치 마법이 풀리듯, 수수께끼가 풀리듯 내 마음에 살며시 와 닿을 때의 쾌감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살아가면서 한 사람을 알아가며, 그의 행동이나 사고를 이해하듯, 그림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추상화에 대해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나 현대 미술은 잘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