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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줄거리
악은 태어날 때 부터 결정되는 것인가, 아니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가.
자신이 '사이코패스'인 것을 모른 채 목줄이 채워져 자라온 '유진'의 '악'이 씨앗을 틔우며 일어나는 악인의 이야기.
Review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악인의 시야를 다룬다.
보통 스릴러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고, 독자는 어느 편에 몰입하고, 어느 편을 적대하며 읽어나갈 지 감정적 지분을 정리한 뒤 이야기를 따라간다. 그런데 이 책은 이를 역이용해 선한 피해자 vs 악한 가해자의 프레임을 독자가 스스로 구성하도록 한 뒤, 그 프레임을 박살내는 방식으로 독자를 뒤흔든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발작을 겪는 주인공 유진 곁에는 그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인공 '유진'에게 내어주는 사랑을가장한 보호는,
겉 포장지만 선의이지만 타인의 삶에 목줄을 채우는 통제로 느껴진다.
독자는 이 구도를 선의로 포장된 폭력과
그 포장지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피해자로 이해한다.
그러나 1부에서 2부, 3부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갖춰졌던 이해에 균열이 발생한다.
충동적인 어머니를 막으려다 죽여버린 유진.
이 충격적인 상황에서 보여주는 그의 극도로 차가운 판단력은 마치
이 행위를 몇 번 이고 반복해온 단순한 작업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피가 곳곳에 흩뿌려진 된 집.
하루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는 차가운 어머니의 시신.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빠르게 판단을 하고, 그 현장을 정리해나가는 '유진'.
발 밑에선 찔꺽찔꺽, 소리가 울렸다.
끈끈하고 미끄덩거리는 핏덩이가 발가락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소리였다.
p.94
감정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유진'의 표현은 자신과 관련 없는 사건을 말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유진'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충격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혼란을 느끼면서도 아무런 장애 없이 최선의 판단을 쫓아나가는 점에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 이르면, 독자가 알아가던 모든 것이 결국 정 반대로 뒤집힌다.
강압적인 통제라고 불렀던 행동은 자식을 구원하기 위한 발버둥이었고,
자신의 꿈과 삶을 조종당한 피해자라고 여겼던 '유진'은 타인의 구원이 필요한 존재였다.
다만, 그 구원이 '유진'에게 오히려 그 분노와, 야성을 키우는 소재가 되었을 뿐.
서글픔이 한기처럼 밀려왔다. 16년 전에 지금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소년의 인생에 대해 단 1그램의 무게만 느꼈더라도 오늘 같은 날은 오지 않았을 것을.
p.286
유진은 악인으로 태어났었고, 결국 그리 완성되었다.
하지만 이 책으로 깊이 생각하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 사람들은 과연 선했는가?”
의도가 선했다는 말은 결과 앞에서 힘을 잃는다.
사랑이라는 구실로 자율성을 압박하고,
두려움이란 명분으로 삶을 통제하는 행위는,
노골적인 폭력보다 교묘하게 타인의 숨을 조금씩 조여나간다.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
선의 과열이 악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외부에서 관찰하게 했다면,
'종의 기원'은 악의 내면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악을 보여주는 것과 느끼게 하는 것의 차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맹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냥을 하는가?
이런 포식자의 사고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