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굴레 출판사
현영강 지음 / 잇스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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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보면 왜들 그리 불쌍한지.”


이 문장은 '세 굴레 출판사' 소설 전체를 꿰뚫는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멀리서 관찰할 때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쉽게 판단하고, 가까워지는 순간엔 그 안에 눌어붙은 상처와 결핍을 보게 된다.


현영강의 소설은 바로 그 ‘거리’를 좁히고 나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민낯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작품의 장치는 단순하다.

주인공 미생은 3일마다 시력을 잃는다.

저주처럼 찾아오는 어둠 속에서 그는 후회와 좌절의 감정, 가혹한 상황에서 마주한 인간관계, 자신과 타인의 욕망을 억지로 들여다보게 된다.


하지만 소설이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게”이다. 시각을 잃은 어둠은 저주가 아니라 ‘관찰의 조건’이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 타인의 탐욕, 자기합리화, 상처의 흔적, 말하지 못한 결핍들 말이다.


출판사라는 공간은 작가가 선택한 가장 전략적인 무대다.

이곳은 ‘문장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정작 누구도 자신의 진짜 마음을 언어로 옮기지 못한다. 팀장 역시 미생의 비밀을 일부나마 알면서도 그것을 전적으로 믿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밀을 호기심을 위해 소비하고, 욕망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인간관계는 협력과 상호 존중이 아니라 소유의 형태로 뒤틀리고, 걱정과 통제의 경계는 흐려진다.

작가는 이 흔들림을 통해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 어떤 눈을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의 더 깊숙한 곳에는 '고립'이 있다.

미생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는 것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절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더 지쳐 보인다.


불안과 냉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생을 보내고 있다.

p.101


그의 고백은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현대인의 가장 근본적인 정서를 정밀하게 짚어낸 문장이다.


우리는 누구와도 완전히 연결되지 못한다.

그러나 완전히 혼자 있을 수도 없다.

이 틈 사이에서 우리는 기묘한 생존의 기술을 익혀간다.


'세 굴레 출판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미생의 병이 서사 초반에는 ‘저주’처럼 작동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타인을 다시, 더 깊이 해석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는 점이다.


소설은 말한다. “가장 끔찍한 형벌이 구원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아이러니는 우리 각자가 안고 있는 ‘굴레’를 은유한다.

죄책감, 과거의 선택, 인간관계의 잔상, 가족의 그림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어떤 무게들. 우리는 그것들을 지우려고 애쓰지만, 결국 그 무게가 우리를 다시 삶으로 끌어올리는 순간이 있다.


결국 이 소설이 묻는 질문은 단 하나다.

“당신은 타인을, 그리고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어둠 속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진짜 현실인지, 개인의 환상인지, 혹은 오랫동안 외면해 온 내면의 상처인지. '세 굴레 출판사'는 그 모호한 경계를 독자에게 건넨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이유는 그 질문이 곧 우리의 일상을 겨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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