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안개 : 하 - 푸른 하늘에 붉은 해
영온 지음 / 히스토리퀸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거리

정도(正道)와 사랑 사이에서 망설이던 두 사람은, 백야처럼 눈부신 진실 앞에서 마침내 자기 몫의 책임을 선택한다.

일제 강점기의 가혹함과 사랑의 달콤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설.


 Review

"여기 누구든 죽음을 각오치 않고 가담한 이가 있습니까?"

p.42


물빛 안개 '상'편에서 이어진 ‘하’편은 이 목숨을 건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사랑'으로 연결시킨다.


상편에서는 정화의 감정과 독립에 대한 윤리관를 통해 ‘그럼에도 사랑한 이유’를 묻는다면, 하편은 히로유키(‘선윤’)의 시점으로 ‘자신의 의무 앞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친일파 장교라는 표면과 독립군 밀정이라는 실체 사이, 이 가혹한 그의 입장은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도”(p.141)하는 대목에서 부담감과 비참함이 극에 달한다.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가슴이 찢기는 듯하였다. 이 여인에게, 나는 죽어도 금수 아닌 존재로 보일 수 없겠구나.

(...)

"당신이 죽는 걸 보기 두려워서일까요..."

"내가, 당신을 싫어해야 맞는 것이겠지요..."

허나 웃을 수가 없었다. 자신만 품고 모르는 체하며 평생 추억할 그러한 감정이리라 여겼으나, 그 책임을 감히 넘겨서는 아니 될 이에게 넘기고 말았다.

p.141



물빛 안개의 저자 영온은 ‘극야/백야’의 대비를 소설 속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경성과 연해주를 오가는 공간은 영영 해가 뜨지 않는 밤과, 밤이 오지 않는 낮처럼 그 분위기를 바꾼다.


연해주의 설경은 모든 것을 드러내지만, 이는 곧 표적이, 약점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사랑은 감당으로 다가온다.



"당신을 연모했소, 아주 깊이. 내 온몸이 상하더라도 족할 정도로 깊이 연모했소."

p.266



밀정으로서의 조용히, 그리고 잔혹하게 행동하던 '히로유키'가 '선윤'으로써 고백하는 순간은 '우리가 왜 로맨스를 읽는가?'에 대한 궁극적인 목적을 이뤄낸다.


현실에서 결핍된 사랑을 대리만족 시키면서도 꿈만 같은 사랑을 찾기 위해 현실에서도 노력하고자 절로 생각이 든다.

작가 영온이 그려낸 감당하고 싶어지는 사랑은, 그런 것이다.


흥미로운 건, 하편이 상편의 ‘반쪽’을 채우는 방식이다.

동일한 사건을 다른 두 인물의 시점으로 보여주며 이해할 수 없던 공백이 문장으로, 오해가 그럴 만 했던 맥락으로 변한다.



참을 수가 없었다. 허나, 그래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럼에도 더는 숨길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이 연모하고 있었다.

p.166



독자는 사랑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동시에 역사의 파편을 목격한다.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버려야 하고, 많은 이를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을 떠나야 하는 순간들.


그 잔인한 등가교환은 어물쩡 넘어가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반드시, 빠르게 결정내리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선택들은 항상 비극적이고, 아름답다.


읽는 내내 떠오른 문장은 이것이다.

사랑은 때로 '옳음'을 어기게 만드는 충동이자 유혹이지만, 진짜 사랑은 옳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만 살아남는다.


물빛 안개 하편은 이를 서사로 입증한다.

밀도있는 스토리와 치밀한 고증을 통한 몰입감, 그리고 끝내 누군가의 삶을 자신의 책임으로 연결짓는 로맨스.

단순히 최근 읽은 '로맨스'소설 중에서도 독보적인 소설이며,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지금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