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근의 맛
그림형제 지음 / 펜타클 / 2025년 6월
평점 :

줄거리 소개
다양한 직업을 가진 20명의 사람들이 퇴근 후 먹는 한 끼의 식사를 통해 삶의 고단함과 위로를 푸는 옴니버스 소설.
Review
소설집 '퇴근의 맛'은 제목처럼 하루의 끝에 찾아오는 작고 조용한, 그리고 따스한 음식을 통한 위로의 순간들을 그린 옴니버스 픽션이다.
총 20편의 이야기로 20개가지의 직업을 가진 20명의 삶.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다른 인물들이 퇴근 후 식사와 함께 펼쳐 보이는 일상의 한 단면은, 모두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은 과거 혹은 미래의 나, 혹은 내 곁의 동료,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스친 누군가의 삶일 수 있기 때문일까.
----------
된장찌개가 나왔다. 뚝배기에 담긴 채 부글부글 끓고 있다. 끓어오르는 기포가 터질 때마다 기포가 푸르르 몸을 떨었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뜬다. 입가에 가져와 "후우, 후우" 두 번 불고 숟가락을 깨물듯이 국물과 함께 입에 넣는다. 된장의 구수함과 짠맛이 입속에 첫맛을 남긴다. 목구멍을 넘길 즈음 혀와 입안에 남는 칼칼한 기운이 좋다. 삼킨 후 날숨과 함께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54p.성공을 쫓는 마음은 조급하다 - 세일즈맨의 된장찌개
----------
회사와 막막한 미래의 스트레스를 ‘우동 한 그릇’에 담아 삼키는 회사원부터, 구수한 된장찌개에 하루의 조급함을 녹여내는 세일즈맨, 그리고 아이를 재우고 조용히 떡볶이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먹으며 자신을 다독이는 엄마까지. 모든 에피소드는 제각기 하나의 요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제각기의 메뉴처럼 모두 천차만별로 다르다. 작가는 이 소소한 식사 장면을 통해 인물들의 삶을 절묘하게 풀어낸다. 음식은 ‘퇴근’이라는 '채찍질하던 자신'에서 '편안한 일상 속'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작용하며, 독자는 각 인물의 저녁 식탁에 함께 앉게 된다.
----------
자신이 이렇게 '엄마답게' 바뀌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엄마답게 바뀐 모습이 싫은 것이 아니다. 이따금 전에 없던 자기 모습을 체감할 때마다 헛웃음을 짓게 된다.
'언제부터 그렇게 애를 좋아했었다고 말이야.'
253p. 엄마가 되어가다 - 엄마의 떡볶이
----------
소설 '퇴근의 맛' 속의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각자의 힘듦을 짊어지고, 책임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몸을 억지로 움직여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소설 속에 담긴 이 인물들의 하루는 피곤하기도 하고, 직업과 과거에 회의감과 후회를 삼키기도 하며, 실연의 지독한 매운맛과 새로운 인연의 달콤함을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모두의 삶들이 '퇴근의 맛' 소설집에 묶여 저마다의 '평범한 일상'이라 말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소설을 읽으며 인상 깊은 점은, 이 이야기들이 서로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에 머물렀거나, 과거의 인연이었거나, 우연히 스쳐 지나간 인물들. 각 챕터는 독립적이지만, 이야기들은 하나의 세계 속에서 맞물려 돌아간다. 마치 한 도시의 수많은 창문 너머로 다양한 삶이 동시에 살아지고 있음을 엿보는 느낌이다.
소설집 '퇴근의 맛'은 인문학 서 처럼 질문하지 않는다. 철학 책 처럼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묻지도 않고, 자기계발서 처럼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대신,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버텨낸 당신의 빈 의자 앞에 따뜻한 국물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포근하게 끌어안으며 조용히 말한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
인생에는 여러 가지 맛이 있다. 쓴맛과 단맛이 느껴지는 소주처럼, 새콤달콤 매콤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똠얌꿍처럼 말이다.
133p.눈물 흘리다 - 수의사의 똠양꿍
----------
삶이 때론 밍밍하고, 때론 너무 맵거나 써서 삼키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날엔 이 책 한 권을 펼쳐보자. 내 이야기는 없어도, 내 마음을 닮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 옆엔, 분명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의 맛이 놓여 있을 것이다.
몇달 째 누룽지탕과 어묵볶음을 먹고 있는 서평가의 '퇴근의 맛'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