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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범죄자의.
김세진 지음 / 좋은땅 / 2024년 5월
평점 :

손 쉽게 돈버는 걸 좋아하는 사기꾼을 중심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편하게 벌려는 매춘부와 그들을 부리며 수배중인 범죄자라도 돈만 벌 수 있다면 거리낌없는 마담, 이제는 손 뗐으나 계속 경마장을 맴돌며 정보집을 파는 경마꾼, 지인이라도 사기에 빠뜨리는 걸 꺼리지 않는 갑부 등등. 정말 구린내 풀풀 풍기는 사람들이 여럿 등장하며 인간의 추악하고 이기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나는 그동안 받은 수많은 쫓기는 경험과 압박 덕분에, 과도한 걱정이나 두려움으로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의심을 고집하는 이상심리학적 상태인 '편집증'을 앓고 있다."
특히 수배되어 모텔을 옮겨다니며 도망자 신세를 지내는 사기꾼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를 모두 보여주는 표본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돈을 강탈하는데 거리낌없는 양심의 부재와 이기심. 자신에게 속은 사람들은 모두 멍청해서 당할 만 하다고, 그리고 자신은 절대 답히지 않을 거라는 오만한 확신. 그렇게 사기친 돈으로 룸살롱을 다니며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방탕한 성욕까지. 어쩜 이런 부분만 모아놓은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의 행보와 성격들을 보면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법한 인간이라는 걸 느낀다.
이런 인물들이 나오면서 자신들이 그렇게 살 수 없게 된 이유이자 변명을 주절주절 풀어놓으면 글의 개연성은 조금이나마 더 얻을 수 있었겠지만 대신 재미를 크게 잃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쓸데없는 설명은 모조리 제쳐두고, 이 범죄자의 '현실'만을 오직 생생하게 그려낸다. 글을 읽다 보면 내가 품었던 오만하고 이기적인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주인공을 통해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런 주인공이 정상적으로 타인을 믿으며 안정적으로 삶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크고 많은 자극을 쫓아 시궁창같은 뒷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을 보며 역시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핸 '안정'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인공이 매일같이 출근하며 소박한 월급을 얻는 직장인 등 노동자들을 비웃지만 이야기 속에서 삶이 크게 뒤흔들리고 망가지는 이들은 모두 타인들이 하는 노력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하고도 훨씬 큰 댓가를 얻어내길 바라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경제분야, 특히 주식에서 이야기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과는 달리 꿈같은 이야기에 홀려 위험따위는 전혀 고려하지도 않는 인물들. 어두컴컴한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일대기, 혹은 다큐멘터리를 본 듯한 감상, 그리고 삶과 인간에 대한 생각거리까지 남겨주는 재미있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