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서 떠올려졌을 명제일 것이다. <가시고기>를 읽으며 나 역시 이 명제가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음을 알았다. 불현듯 '밀란 쿤데라'의 사랑의 정의가 생각난다. 쿤데라는 사랑은 다방위적이라 했다. 우리가 언젠가는 한 번씩 보았을, 한 기둥에 화살표의 형태로 여러 방향을 가르키며 그 곳 까지의 거리를 적어놓은 이정표. 사랑도 그런 것이라 했다. 이성간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 동성 간의 우정이란 사랑... 난 사랑이란 겉보기로 묶어 나눌 순 있어도 각각의 사랑은 그 관계만큼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시고기>는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부자 지간의. 생명이 걸린, 생명을 건 사랑... 누구나 생명의 소중함을 외치지만, 돈에 의해 생명도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사회는 알고 있다. 다만 애써 외면할 뿐...

'하루에도 열 번 이상은 하늘을 쳐다보자.'
'열 번 이상 하늘을 보지 못한 하루라면, 그 하루는 헛되게 산 날이다'

다움이의 아버지가 대학 동창과 만나 다움이의 치료비를 좀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졌을 때, 떠올려진 대학 시절 책상에 붙여 놓았던 다짐이다. 그는 그것이 실천되었던 기억이 없다. 최근엔 하늘은커녕 바닥만을 보며 살았던 것이 얼마 동안인가. 때때로 절망에 올려다 본 하늘은 자신이 대학 시절 가슴에 품었던 하늘이 아닌 것이다.

다움이가 마지막 희망인 골수이식의 공여자를 찾는데 실패하고 마지막 여행을 나서는 것은 아버지로서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누가 최선을 모르는가. 하지만 최선이 낳는 결과는 과연 최선인가 말이다. 극심한 고통을 강요하는, 하지만 강요하지 않을 수 없는 현대 의학의 현실...

다움이의 아버지가 다움이 생모의 치료비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자존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움이 아빠는 자신이 다움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았다는 생각이 기뻤던 것은 아닐까.

'아빠는 죽어도 아주 죽는게 아니란다.'
'세상에 널 남겨놓은 한 아빠는 네 속에 살아 있는 거란다'

난 평소 떠난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남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위의 글을 읽으니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의 무언가를 가지고 간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평소 죽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신의 배려일까.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죽을 때 할 후회를 줄이는 것이 사는 것이라면 너무 염세적 생각일까...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울었다. 점심 시간에 책을 보고 울다가 들어오는 환자를 벌개진
눈으로 맞아, 환자가 의아해 할 정도로...그만큼 이 시대는 희생이란 의미가 많이 퇴색된
시대인 것 같다. 나만 해도 솔직히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부모님께 만분의 일이라도 돌려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갈수록 내 새끼 생각하며 점점 소홀해져 가는
날 발견할 때마다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에 가슴 아픈 경우도 많지만, 쉽게 마음이 돌려지지 않는 것은 나의 부덕의 소치일까.

언제나처럼 책의 앞부분에 짧막한 소감을 쓰며 책 읽기를 마쳤다.

'많이 울었다'
'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다'
'2000.10.2'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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