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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안인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새로운 작가의 글을 만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만나는 설레임과는 또 다른 설렘을 갖게 한다.
대만의 소설가 ‘우밍이’작가의 『복안인』도 그러한 설렘으로 읽게 되었다.
작가에 대해서 제대로 잘 알아보지 않고 신세계를 경험하듯 읽게 된 『복안인』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되면서 쉽지도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현실 어디엔가 있을 법한 ‘와요와요’섬의 ‘아트리에’의 이야기와 ‘H시’로 불리는 곳의 ‘앨리스’와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이야기는 어우러진다.
현실에 있을 법 하기도 하지만, 동화에만 나올 것 같은 ‘와요와요’ 섬의 이야기와 차남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부족 무리에서 떠나와야만 한 ‘아트리에’의 생(生과) 사(死)가 함께 하는 모험.
어느 날 갑자기 사고인지 실종인지 모르게 사라진 남편과 아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기다리는 ‘앨리스’의 알 수 없는 나날들.
모든 이들의 만남이 되는 큰 사건(?)이 되는 ‘쓰레기 소용돌이’까지.
몽롱한 환상 속에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한 『복안인』의 이야기들은 소설일까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들이 자연을 망가뜨리고 해하던 벌을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쓰레기 소용돌이’는 현실에도 곧 닥쳐올 재앙의 전조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일곱번째 시시드》라는 바를 운영하는 ‘하파이’의 이야기 또한 아주 약간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중요 인물인 ‘다허’의 전 부인과 같은 ‘마사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고, 여성 성노동자로서 지냈던 삶을 담담하게 서술한 점이 그랬다.
『복안인』은 많은 것에서 새로웠다.
인물들의 이름이나 부족, 그들의 생활환경과 배경은 물론이고 한 번이라도 들어보거나 생각해 본 적 없는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완벽하게 적응하며 읽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에 적응한 이후에는 그들의 감정에 빠르게 공감하며 푹 빠져서 읽을 수 있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잘 알지 못하는 곳이기에 내게는 미지의 세계와 같은 ‘대만’이라는 곳이 궁금해지고, 대만의 이야기들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밍이’ 작가님의 다른 이야기들과도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P15
섬은 크지 않았다. 보통 사람 걸음으로 아침 먹을 때 출발하면 점심 먹을 무렵이 조금 지나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었다. 섬이 크지 않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지금 ‘바다를 향해 있다’ 또는 ‘바다를 등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바다를 향하는 것과 등지는 것의 기준은 섬 한가운데 있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그들은 대화를 할 때는 바다를 향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바다를 등졌으며, 제사를 지낼 때는 바다를 향하고, 사랑을 나눌 때는 바다를 등졌다. 카방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와요와요 섬에는 추장이 없고 ‘노인’만 있다. 노인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바다를 닮은 노인’이라고 불렀다.
P36
거대한 진동음이 몇 분간 계속된 뒤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앨리스는 너무 지쳐 다시 잠이 들었다. 규칙적인 파도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직 날이 밝기 전이었다. 앨리스가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을 때, 바다 위 무인도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멀리서 파도가 미세한 포말을 일으키며 고집스럽게 한 겹 한 겹 육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앨리스는 하루에 두 번씩 밀물에 감금됐다가 몇 시간 뒤 풀려났다. 만조 수위가 높은 사리 기간에는 바다가 조용히 집의 배수로를 애 돌아 포위한 뒤 후문 앞에 각양각색의 물체를 남기고 갔다.]
P164
다허는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테이블에 들러붙은 신문을 펼쳤다가 (지금은 이런 곳에서만 신문을 구독한다) 조금 전 아나운서가 보도한 뉴스가 바로 얼마 전 신문의 1면 주요 뉴스라는 걸 알았다. 제목은 ‘위기! 쓰레기 소용돌이 타이완 덮친다’였다.
[타이완이 곧 쓰레기에 포위당할 것으로 보인다. 197년 해양학자 찰스 무어는 북태평양에서 세계 최대 쓰레기 더미라고 불릴 만한 광활한 면적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발견했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쓰레기 섬 또는 쓰레기 소용돌이《Trash vortex》라고도 부른다. 쓰레기 소용돌이는 해저 해류의 영향으로 계속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 500해리 지점에서 처음 형성돼 지금은 일본 해안까지 확장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