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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은 어쩌다
아밀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김현아’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나게 됐다.
『멜론은 어쩌다』는 여덟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퀴어(?), SF소설’이 묶여있다.
‘비채 서포터즈’가 아니라면 내가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라 큰 공감과 이해는 쉽지 않았다.
‘뱀파이어’와 함께 공존하는 사회나, 천국과 지옥에서 어린 마음으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은 동화인지 판타지인지 모를 만큼 흥미롭기도 하지만 큰 선입견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완벽한 공감을 하기 어려운 ‘퀴어’의 이야기들은 글쎄...
아직 내 마음은 크게 열려있지 않은가 싶기도 했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있을 수 있을 ‘섹스 로봇’의 이야기는 그나마 현실적으로 이해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이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는 힘들었다고 생각된다.
사람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리거나, 선입견 없이 바라보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너무 깊은 심각함이나 결코 가볍게만 써내려 가지 않았을 작가님의 필력에는 존경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평범한 이야기처럼 읽거나 들을 수 있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유전자 조작으로 최고 우등 DNA로 인간이 만들어지고 탄생과 성장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의 이야기는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는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감춰진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은 영화 ‘식스센스’급의 반전의 묘미를 느끼기도 했다.
여덟 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재미가 없을 수 없고,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이야기 속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몰입도를 높여주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면, 주인공들과 같은 친구가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얕지 않은 고민의 시간까지도...
요즘에 들어 디스토피아적 소설을 많이 만나고 있다.
소설은 현실과 다른 이야기이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미래가 생각보다 밝지 않기도 하고, ‘그 미래의 삶을 나는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모를 무서움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밝은 세상으로 가득한 미래를 꿈꾸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기존에 읽었던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멜론은 어쩌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공감은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하나하나에는 ‘완벽한 공감’을 못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내 감정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어렵고, 심각하지만 생각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멜론은 어쩌다』를 주위 분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P9
기영의 인생에서 미나는 유일한 레즈비언 친구였다. 유일한 뱀파이어 친구이기도 했다. 두 가지 다 친구로서는 비범한 요소이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기영에게는 전자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 어려웠다.
중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미나는 기영에게 커밍아웃과 동시에 사랑 고백을 했다. 라일락이 짙은 향기를 내뿜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P45
저 여자가 분명히 자신을 거절할 것 같고, 거절하지 않는대도 비웃고 괴롭히고 상처 주고 배신하고 결국엔 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여자를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여자를 혐오하는 어떤 남자들하고는 달랐다. 다르다고 믿었다. 영민은 일단 여자였으니까. 그리고 여자를 만나본 적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영민의 첫사랑은 그를 철저하게 망가뜨렸다.
P213
나는 정부 공인 백마녀다. 마녀 학교에서 교육받고, 면허를 따고,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정식으로 장사하는 마녀. 나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선하고 적법한 마법만 행한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과 건강을 선사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요즘 나 같은 떳떳한 백마녀는 흔치 않다. 면허 없이, 또는 면허가 있으면서도 사악한 저주를 행하는 불법 흑마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