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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따라가는 52주 가정예배 5 : 복음서와 사도행전 - 일주일에 한 번, 온 가족 말씀 동행 프로젝트 성경을 따라가는 52주 가정예배 5
김태희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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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공부 교재나 소그룹 활동에 관심이 많아 어떤 구성으로 책이 이어질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큐티는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이는 것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을 조각내서 읽는 것이기에 올바른 성경 읽는 습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전체성과 통일성으로 앞, 뒤 맥락을 잘 따져봐야 하며, 본문만 봐서는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욥기서 말씀으로 된 구절의 말씀패를 선물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좋은 구절이라고 생각했고, 종종 힘이 되기도 하였으나, 후에 성경을 읽으면서 이 구절이 격려의 말이 아니라 질책하는 내용의 구절인 것을 알고는 성경의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1년의 52주로 구성된 교재는 말씀 주제, 찬양, 말씀 구절을 읽고 묵상, 기도의 순으로 되어있다. 지면의 특성상 전체 본문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목차마다 단락이 있어 성경의 전체 맥락을 살펴보기에는 괜찮은 교재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부분은 성경 책을 옆에 두고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신국판의 사이즈로 들고 다니기에도 좋고, 글씨를 쓸 때 사각거리는 종이 재질을 가져서 바로 묵상한 것을 나누며 활용할 수 있다.

가정 예배뿐만 아니라 교회 소그룹 시간이나 공과공부시간에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묵상 주제로 되어 있기에 교회에서도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공과공부 교재를 만들 때 가장 많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묵상 질문인데 본문에 맞는 묵상 질문과 기도문이 있기 때문에 성경 읽기와 묵상 나눔에 익숙하지 않은 성도들에게도 알맞은 교재로 추천하고 싶다.

구약 4권, 신약 2권으로 되어 있는 구성이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핵심 본문으로 순서는 모세오경,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으로 되어 있어 성경 개론을 전체적이고 친근하게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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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개척했습니다 - 요즘 시대, 요즘 목사의 교회 개척 이야기 동네 교회 이야기 시리즈 9
장산하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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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개척했습니다>는 위드처치의 장산하 목사님이 애정하는 세움북스에서 썼다. 글은 총 5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 책이 쉽게 술술 읽힌다. 글자가 크고 자간도 넓다. 앉은 자리에서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분량(p188)이다. 다만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계속해서 생각에 잠기게 된다.

나는 저자의 글 중에 세 군데가 좋았다.

첫째, 현실을 고려하여 개척을 고민했다는 것
둘째, 개척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신학적 비전으로 브랜딩하는 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
셋째,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저자는 개척이란,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한 문장을 보고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해서 그렇다. 나는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정적 의미로서 왜 태어났나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와 내가 겪어왔던 시간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길을 찾고 있다. 이제는 이것저것 하는 것보다 키워드를 잡고 앞으로 나가고 싶다.

개척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과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솔직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젊은 세대가 교회와 지도자를 향해 실망하는 이유,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직면하고 새로운 교회는 어떻게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교회는 과도기와 같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기성교회와 세대교체와 더불어 저와 같은 젊은 목회자들이 새로운 교회의 형태에 도전하고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개척하는 사람에게 진리와 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분명한 눈이 필요합니다. 문화는 그것이 죄가 아니라면 부드럽고 유연하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불변하는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믿음 또한 필요합니다. “ (p124)

하늘에 붕붕 떠다니는 개척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개척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읽어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세움북스 #30대에개척했습니다 #장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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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들은 잘못된 성경관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생겨난다. 초대교회 이단의 시작은 신론에서 시작되었다. 신론은 3C 후반 ~ 4C에 정리되었지만 이단은 사라지지 않고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펠라기우스이단, 세미펠라기우스이단 등 종교개혁이 지난지 50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가톨릭에서는 마리아의 무오성과 승천을 말하고 있다.


한국 교회 안에는 이단을 넘어선 사이비 종교가 존재한다.


모든 종교에는 경전이 있다. 크리스천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이단의 경전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다. 이단에 관한 지식을 읽으면서 성경을 더욱 읽고 싶어졌다.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 누구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누구는 성경을 읽을 수록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일까?


내가 정통이라 믿는 신학도 과연 정통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신학교 조차 다양한 교단과 교파가 있고, 교리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인간의 이성이 신을 대체하는 자리에 오를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었나? 하나님은 인간을 신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셨다(시편 8편 5절).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통 신학이라는 신학도 사람이 하는 것이고, 이단의 신학도 사람이 한다. 이 둘의 차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지식의 한계가 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옳음에도 자신의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라는 텍스트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중세 교회 역사에서 이단으로 불리던 자들은 정말 한 끝 차이로 이단이 되어 죽었다. 그러나 현대의 이단은 정말 말도 안되게 웃긴 수준으로 이단이 된다. 끝이 다른 이단이 아니라 인간을 신으로 추종하는 사이비다. 한국에는 왜 이렇게 이단이 많은걸까? 그만큼 정통 교회의 수준이 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저자는 매 챕터에 자신이 경험했던 이단과의 관계를 토대로 이게 왜 이단인지를 설명한다. 나는 길을 가다가 누군가 나에게 “복이 많으시네요” 라고 말하면 “저도 알아요~~~^^” 하고 지나간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교리로 이단의 교리를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개혁주의 신학을 배우는 것은 나의 신앙에 유익이 있으나 이단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또다른 영역이었다. 나는 변증할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는가?


요즘 나의 화두는 성령 충만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뭘까? 성령은 이미 나와 함께 하신다. 기도회 같은 것을 보면 성령을 초청하는 데 이미 나와 함께 계신 성령을 왜 다시 초청하는 걸까? 왜 계속 성령님 보고 오라고 하는걸까? 성령님은 삼위일체로 내 안에 이미 계시는데.


성령 충만이란, 말씀 충만이 아닐까. 하나님은 계시의 영이시고, 말씀 그자체이시니까?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고 결정 했던 일 중에 정말 큰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잘 안하게 된다. 그게 내 생각인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물론 분명히 내 생각이 아닌데 말씀과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알려주시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전부다 하나님이 주시는 건지 내 생각인지 어찌 확신할 수 있는 걸까?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일이다.


내가 믿어왔던 기독교 신앙 안에는 과연 이단적인 교리는 없었나? 나에게도 묘하게 섞여있는 왜곡된 진리들에 대해 생각했다. 결핍과 잘못된 신앙이 만나면 무서운 신흥 종교가 생겨난다. 나의 깨달음이나 내가 아는 지식의 수준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인간은 실패, 절망, 낙담, 시행착오를 당하지 않을 자가 없고 실수하고 죄를 지으며 산다. 하나님의 섭리는 그가 한 짓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알곡과 가라지를 함께 냅두시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흔들어 깨우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사단은 사단의 일을 한다. 사단의 일조차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한일서 4장은 요한 일생 말년에 쓴 서신이다. 예수님이 승천하고 2세대가 지나고 그리스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해진 사도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거짓 교사들이 활동했다. 예수님께 직접 교육받은 사도들이 활동한 시대인데도 “영을 다 믿지 말고 분별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약과 구약의 하나님이 다르다고(마르시온) 말하면서 구약을 버리고 성경을 난도질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파괴한 것이다. 현재는 어떠한가?


나는 책을 다 읽고 예수님의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육체 재림을 더 사모하게 되었다. 그는 육체로 죽으시고, 살아나시고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거라고 약속하셨다. 교회의 개혁은 성경 66권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풍부한 종교개혁의 유산들이 있지 않은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으로서 시대적 사명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리뷰를 너무 두서없이 썼지만, 짱짱하고 만만하지 않은 책이다. !


한국의 사이비 이단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읽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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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위한 한 사람 - 복음에 대한 35가지 이야기
이복우 지음 / 세움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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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유기농유통 임직원 예배 때 선포된 말씀을 엮은 책이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 예수 그리스도, 복음, 구원, 구원 그 이후의 목차를 가졌는데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예배에 참석하기 때문에 복음에 집중하여 책을 써내려 갔다. 


어떤 페이지를 읽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서 나와 있어 전도용으로 너무 좋고, 말씀은 읽고 싶은데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헛헛한 상황의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 너무나 좋을 책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셨다. 인생에 여러 일들 앞에 인간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께서 살 길을 열어 두신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 얻는 구원이 아니라 이미 나에게 이루어진 풍성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위한 방법으로 독생자를 주셨다. 나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다. 인간은 그 끈적끈적한 죄를 싫어한다해도 이겨낼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비참하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고, 그 이후엔 영원히 산다.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떨지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신자는 영생을 믿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어지는 것이다. 눈으로 본 적이 없는 다음 생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면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때 삶에서 경험되는 일련의 일들을 통하여 그것이 실제인 것을 확신하게 된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신자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고 비신자는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연합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생명은 이미 나에게 풍성하게 주어졌다. 나는 이미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누리면 된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기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생명이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에 신자의 생명도 영원한 생명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삶이 영생이다.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과 떨어져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믿던 믿지 않던 상관없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피조물을 눈여겨 보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인생의 고단한 짐 앞에서 하나님께 탄식하고 울부짖던 것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해결하시고 채우셨을 때 그렇다. 지금이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내가 좀더 믿어볼걸, 그때 내가 더욱 하나님을 믿고 평안 속에 거할 걸, 하는 후회가 있다. 


하나님이란 존재는 인간의 인지력이 이해하기에는 정말 너무 커서 다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이미 내 안에 심어두신 그 충만함이 대체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나의 육신을 쳐서 주님께 복종케 하는 것이 어떠한 복인걸까? 책을 덮고 나니 에베소서 말씀이 생각났다. 


에베소서 1:17-23 KRV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_모든 사람을 위한 한사람, 이복우 지음, 세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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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고 불안한 그리스도인들에게 - 청교도 목회자 리처드 백스터가 주는 조언
리처드 백스터.제임스 패커.마이클 런디 지음, 최원일.감안식 옮김, 최관호 감수 / 세움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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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치는데 나는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게 잘 안됐다. 삶에는 인생의 결국을 모르고 닥치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예수 그리스도로 모든 것을 돌파 하라는데 율법의 요구에 모두 순종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율법은 내게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데 나에겐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다.


우울증에 걸리면 정말로 무서운 것이 뇌의 생각회로가 바뀐다는 것이다. 나는 간절히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죽고자 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눈물도 고통도 없는 그곳으로 직접 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주님 만나러 갑니다’ 하면서 약을 모았었다. 천국에 가면 이미 계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함께 살고 싶었다. 그땐 이미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자살 사고로 가득했다. 


나는 기질적으로 우울질이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다. 삶에서 경험되는 많은 일들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 익숙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이러한 생각은 타인을 보호할 수는 있었겠지만 정작 나 자신을 보호하진 못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질병을 그 사람의 특정한 죄 탓으로 돌리거나 그리스도께 주어진 비전에 미치지 못할 경우, 그것을 전적으로 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것 모두를 매우 주의해야 한다.” (p96)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유익은 너무 세세하게 나를 살피지 말고 나의 생각을 숙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우울증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질병이기 때문에 나에게 들어오는 생각보다 외부의 것, 즉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초점을 맞추라고 말한다. 


사단은 나의 ‘지나친 슬픔’을 타고 들어와 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했다. 나는 주여 주여 하다가 버림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질병으로 인한 생각들과 내가 가진 풍부한 상상력은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어디까지가 사단의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나의 생각인지 모를 만큼 뒤섞여진 생각들은 항불안제를 먹고 나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교회 안의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상실을 경험한 이들을 돕기로 다짐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우울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을까? 나는 내가 우울증이 질병인줄 알았으면 중증까지는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들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울증은 “극도의 낙담 상태, 또는 병적으로 과도한 우울 상태, 절망과 무능력감, 종종 식욕부진, 불면증 등의 신체적 증상이 동반되는 상태”로 정의한다. 


이 책은 우울증과 관련된 목회서신이다. 한참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이 읽기는 어렵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서 아파하는 교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리처드 백스터는 청교도 목회자이다. 청교도 목회자라고 해서 왠지 우울증에 비판적인 시선을 가질 줄 알았는데 우울증을 질병으로 보는 관점이 흥미로웠다. 


신자는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율법의 기준은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것이라서 신실한 신자들 중에 하나님을 정말 사랑해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자란 목회자나 성도 모두이다. 

청교도의 가르침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울증은 이 생각하는 방법이 마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담과 항우울제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육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교회 안에서 우울증으로 인해 손가락질 받는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교회가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깊이 안타까움을 느낀다. 교회 안의 젊잖음이 기독교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신학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일 뿐이다.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 다는 기복주의 신학이 그것에 한몫을 했다고 본다. 하나님은 신자나 비신자 모두 사랑하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이 세상에서 가르쳐질 수 있다고 본다. 모든 지혜의 근본은 예수님이다. 


2쇄를 발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만큼 교회 안의 우울증은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앓고 있는 질병이다. 이제는 그들이 나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나 감기 걸려서 병원다녀왔어. 라는 말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돕는다는 것은 드러낼 수 있도록 안전한 친구가 되어주는 것 아닐까? 


이 책이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들을 살리는 것에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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