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채화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예쁜 표지에 반했습니다. "도시에서 귀향한 주인공의 흙냄새 물씬한 자급자족 생활기"라는 광고문구와 그 문구에 걸맞는 자연스럽고 예쁜 여주인공의 모습에 한번 더 반했더랬지요. 만화책값이 오른 후 늘 보던 만화, 고르고 골라 엄선한 만화책 (주로 시리즈물에 전투물)만 사다보니 새로운 만화를 보고싶어진 이유도 있지만요.

사실 표지의 그림을 기대하고 만화책을 펼치면 몇페이지 채 넘기기도 전에 읍컥!!하게 됩니다. 금방 익숙해집니다만, 가볍고 깔끔한 그림체가 아니라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지저분해보이는 선이거든요. 잔잔한 일상을 꾸밈없이 표현한다는 점에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정돈된 펜선에 익숙해진 분들이라면 놀라실지도 모르겠어요.

만화의 내용은 정말 단순합니다. 앞뒤 없이, 정말 일상을 그대로 옮긴 이야기라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기까지 해요. 블로그의 포스팅과도 닮았네요. 그날 있었던 일 중 한 부분을 뚝 떼어 그림으로 옮겨뒀습니다. 밭일을 하고, 마을 사람들과 회관에 모여 음식을 나눠 하고 어른들에게 들은 음식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주위에서 발견한 - 어머니가 심어둔 - 채소를 수확해 추억의 요리를 하기도 해요. 옛날집에서 옛날 도구를 사용해 빵을 굽기도 하면서 팁이나 간단한 요리법을 실려두기도 합니다. 밤밥같은건 직접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농촌의 이야기이다보니 오히려 도시에서 구하기 힘든 야채도 많아서 남의 이야기 같은 것도 있어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만화입니다. 세세하게 나와있진 않지만 그녀가 추억의 요리를 만들었을 때 얼핏 흘리는 지난 이야기는 서글픈 이야기가 많습니다. 원래 추억이란 애잔한 법이지만 그녀는 혼자 살아가고 있고 스스로를 '도시에서 도망쳤왔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서글프더라구요. 특히 어머니가 해주던 요리를 하면서 느끼는 죄책감과 쓸쓸함이 가끔은 책장 넘기는 걸 멈추게 만듭니다. 좋아하는 음식을 해먹고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먹고 주위에 주어진 재료를 이용해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가는 아가씨. 맛있는 요리를 한다는건 정성도 많이 들어가고 번거롭기도 한 일이잖아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살아갈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해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슬프지만 슬픈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녀는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어둔 것 뿐이거든요.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 스스로 마음을 정리하듯,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듯. 취나물같달까.

향긋하지만 쌉싸름한,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책 뒷편에 쓰인 광고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틀린 말은 아닌데 괜히 그렇더라구요. 꾸미지 않아도 예쁜 아이를 억지로 화려한 옷을 입히고 어른 화장을 시켜 앞에 내세워둔 기분이 들었거든요.

횡설수설한 리뷰의 끝을 인상적이였던 문구로 마무리해봅니다. 그녀처럼 도시에서 귀향한 후배가 한 말인데 아,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척이나 하는, 타인이 만든 것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기만 하는 인간일수록 잘난 척만 하지. 천박한 인간의 멍청한 말을 듣는 게 이젠 지긋지긋해졌어. 여길 나가고나서야 비로소 코모리 사람들..그리고 부모님도 존경할 수 있게 됐어. 내용이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오셨구나라고." (p 128)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건 정말 작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그건 그렇고 난 지금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거지? 모처럼 좋은 책을 읽었고 읽는 내내 생각한 것은 많은데 몇번을 써봐도 내가 잘 표현한건지 모르겠어요. 쓰면 쓸수록 수렁에 빠지는 이 느낌!!! 형식이 만화일 뿐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잔잔하고 정말 좋은 이야기예요. 멋져요, 멋지다고!!! 아놔 리뷰쓰면서 이렇게 책에 미안해보기도 또 오랜만이네onz

덧붙이기) 슬로우푸드라이프는 맞는 말이고 요리에 관한 부분이 많긴 합니다만 내 손으로 재배해 직접 만들어먹는 기쁨이라기보다는 주어진 자연의 은총 내지는 소박한 삶의 기쁨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이 책과 어울리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나만 저 광고문구가 마음에 안드는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광고문구가 마음에 걸려 편집/구성에서 별 하나 빼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럽인디고 : 밤을 달리는 자들
가토 미아키 지음, 김소영 옮김 / 갤리온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호스트클럽과 추리소설이라는 소개문구에 넘어가 관심을 가졌던 책입니다. 책을 읽은 후 작가 소개를 다시 보니 추리상은 추리상인데 단편상을 받았더라구요. 처음 책 소개를 봤을땐 호스트클럽을 바탕으로 한 어떤 끈적한 욕망과 피비린내나는, 혹은 서로 물고 물어뜯는 그런 뒷세계의 치열함 뭐 그런걸 생각했었거든요. 편견일진 모르지만 일단 호스트클럽에 얽힌, 추리물로 갈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하면 왠지 저런게 떠오르잖아요. 나만 그런건가; 어쨌든 저렇게 깊고 질척한, 혹은 성공을 향한 욕망과 호스트를 사랑해버린 호스티스 여인의 원망이 얽힌 흔히 말하는 추리물 - 그러니까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해나가는 정통파 -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을때 추리하며 읽는 사람과 동화책 읽듯 읽는 사람으로 나누게 되잖아요? 전 후자에 속하는데 저 같은 사람에겐 굉장히 좋은 책이구요, 추리소설에서 복잡한 트릭을 스스로 풀어내는 스릴을 즐기는 분들에겐 얄팍한 책이예요; 등장인물 중 한사람인 형사가 종종 여사장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30대 노처녀 대필작가, 잔소리가 심하고 술을 좋아함)에게 종종 윽박지르곤 하는게 "탐정놀이는 그만둬!!!!"라는 거거든요. 말 그대로 책 전체가 탐정놀이와 비슷합니다.

클럽 인디고는 흔히 우리가 아는 정통파 호스트 클럽이 아니라 사도, (정통파는 왕도라고 한다는군요) 그러니까 틈새시장을 공략한 새로운 한 줄기인데. 프리터나 OL, 대학생을 상대로 비보이와 길거리 헌팅계의 신화, DJ, 프리터, 운동선수들을 호스트로 둔 클럽이예요. 다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각각의 사건에 키워드와 근접한 호스트들이 튀어나와 하나의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해결하지요. 다재다능한 호스트들과 베일에 쌓인 유능한 매니져, 그리고 잡지사에서 일하는 두 사장, 그리고 왕도파의 1인자인 호스트의 제왕 구야, 전직 운동선수인 마담언니(......)까지.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자극적인 인물이 톡톡 튀어나옵니다. 기분 전환이나 머리를 식힐때 읽기엔 좋은 책이지만 추리소설로서의 깊이는 떨어져서 오히려 탐정소설이나 일반 소설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고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사실 1권이 나온지 얼마 안됐었기 때문에 리뷰어신청을 할 때만해도 제가 신청한게 1권이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발표가 나고 가만히 렛츠리뷰를 살펴보는데 제가 메모해둔 거랑 제목이 다르더라구요; 찾아보니 '제1회 호스트선수권대회'는 2권이였고 제가 봤던 '밤을 달리는 자들'은 1권으로 이미 그 전 렛츠리뷰 목록에 올라있었던거라 리뷰책을 받은 후 1권을 다시 주문했습니다. 1권이랑 같이 봐야할 것 같아서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던 것 같아요; 일단 어떻게 클럽 인디고가 만들어졌는지와 주요 캐릭터들 사이의 관계가 나와있으니 도움이 되는 면도 있긴합니다만 전 2권부터 읽고 1권을 뒤에 읽었는데 흐름을 파악하고 주요스토리를 이해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어요. 처음에 1권을 옆에 두고 2권을 잡으면서 배경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거 아닌가, 싶었는데 나중에 다 읽고나니까 필요한 설명은 친절하게 해주고 있고 원래부터 중심이 되는 호스트가 아니면 제대로 설명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혹시 저처럼 순서에 신경쓰이는 분이 계시다면 안심하셔도 될 것 같네요:D

클럽 인디고 2편에 해당되는 제 1회 호스트 선수권대회는 복수자 / 마이너리티 코드 / 초콜릿 비스트 / 제1회 호스트선수권대회 네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에 비해 가벼운 사건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복수자에 나온 이쓰키군이 마음에 들어서요, 있는지 없는지 아직 알 수 없는 3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 처럼 정말 '클럽 인디고'에 취직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날 위해 나와다오 이쓰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D - 기계치도 사랑한 디지털 노트
김정철 지음 / 북폴리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뭐라 말할 수 없는 미묘함을 느꼈다. 그리고 리뷰를 쓴다는건 늘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처럼 이렇게 제목짓기 애매했던 책도 오랜만이였다.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함. 그게 이 책, '안녕, D' 안에 있다.

처음 안녕, D라는 제목을 봤을땐 소설책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늘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하는 책 중에 비슷한 제목이 있기 때문이다. D에게 보낸 편지라던가, D의 콤플렉스라던가.. 그러다 로봇을 보고 설마 디지털? 이라고 생각했는데 D는 디지털의 D였다. 

디지털 얼마만큼 알고있니? 라는 카피문구답게 생활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디지털기기 (컴퓨터, 노트북, 핸드폰, mp3와 게임기 등등)에 관한 이야기가 예쁜 사진과 함께 실려있는데..아 못하겠다. 솔직하게 쓴다. 사진이 굉장히 예쁘다. 요즘 트렌드처럼 쉽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디지털의 벽을 낮추고 싶은 의도로 책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한때 학습지에서 직접 선생님이 설명하는 듯한 말투로 이해도를 높인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내달렸던 총력test 해설식의 대화도 그렇고 쉽고 재미있게 쓰려는게 지나쳐 내심 짜증도 북돋게 했던 어설픈 말장난도 그렇고 의도는 알겠는데 과연 이게 쓸모있을 것인가, 란 생각이 든다고 해야하나?

쉽고 재밌는 말투가 도움이 될때도 있다. 딱딱한 정론보다는 카더라 통신에 혹하게되는 것이 사람 마음인지라 중간중간 에피소드식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재밌었다. 센스도 있었다. 특히 애플사에 관한 짤막한 설명이나 P27의 에니악에 대한 도입부는 노트에 따로 메모해둘 정도로 인상적이였고 멋졌다. 그런데 그게 너무 남발되니까 어디까지가 카더라통신이고 재미를 위해 삽입한 에피소드인지 구분 되지 않았다. 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면 딱딱 구분짓고 웃을 수 있겠지만 저 책의 광고문구에 혹해서 책을 집어들 정도면 진짠지 가짠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개그맨들이 말하는 것 처럼 한두개는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뿌려댄거라면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런게 잘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만약 내가 서점에서 책을 한번이라도 펼쳐볼 수 있었다면 절대 이 책을 사지 않았을거란 확신은 있다. 내 취향엔 정말 아니였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예쁘장한 책이 유행인지 이번에 받은 또 다른 책도 딱 이런 포맷이라.....

나중에 판매량을 따로 검색해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예쁘게 만드는 책이 잘 팔리는걸까?

개인적으로는 관심분야가 그쪽이라 그런거기도 하겠지만; 본편보다는 뒤에 보너스형식으로 실린 IT, 별거 아닌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고 도움이 됐다. 웹 2.0에 관한 이야기는 오히려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에 나온 구구절절한 이야기보다 간단하게 설명되어있어서 좋았다. 구글과 관련된 이야기도 재밌었고.


이 책의 좋았던 점

1. 감각적인 사진과 편집
2. 재미있게 쓰여진 쉬운 설명
3. 중간중간 실린 도움되는 팁
4. 한 챕터가 끝날때마다 관련제품이나 회사의 짤막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필독! 재밌다.

이 책의 아쉬움

1. 예쁘긴한데 굳이 이 사진을 넣을 필요가 있었나란 생각이 드는 페이지도 있었다.
2. 한 챕터 내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말장난이 종종 불편하기도 했다.
3. 디지털카메라나 캠코더에 관한 부분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재밌었던 부분들

Q 휴대폰 사고싶어요
A SCH-M480 같은 모델은 어떨까? 쿼티키보드를 탑재하고 블루투스 2.0 기술과 HSDPA, 그리고 200만 화소 CMOS...
Q 그게 뭔 암호인가요? 전 김태희폰 살건데요.
A 김태희폰이라니..김태희라는 표준기술 규격은 들어본 적이 없다. 새로운 무선통신방식인가.. (p14)
- 저 암호문은 이 페이지 뒤에 제대로 설명된다:)

사과를 보면 누구나 입 안에 도는 군침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사과를 보며 침만 흘려댄 것은 아니다. 똑같은 사과를 놓고 윌리엄텔은 자식의 목숨을 걸었고,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견했으며, 파리스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다. 디지털 시대에 진입하여 사과는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게 된다. 바로 애플이라는 컴퓨터 회사를 통해서다. 애플은 1976년 설립된 이후로 퍼스널 컴퓨터 (PC), PDA, 노트북, MP3 플레이어, 휴대폰, PMP를 만들며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사과가 되었다. (p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명화들 - 뭉크에서 베르메르까지
에드워드 돌닉 지음, 최필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품 도난과 그 추적에 관한 리얼 스토리

"에드워드 돌닉은 탐정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실제 이야기를 선보였다. 예술 범죄의 지하 세계를 내부자의 시각으로 상세히 소개한다. 그 곳에선 대가의 걸작이 도박 자금으로 통용되고,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가치있는 캔버스가 아무렇게나 돌돌 말려 트렁크에 처박힌다. 보통 스릴러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음모와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생생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문성도 빠지지 않는다."

_ 아서 골든, 게이샤의 추억 작가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때도 이 책이 팩션일거란 걸 의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앞쪽에 부연 설명이 나와있고 중간에 첨부된 사진들을 보면서도 (찰리 힐이란 이름이 그대로 나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팩션이니까- 이 인물들과 사건을 바탕으로 쓴건가봐~ 하고 생각했었고, 그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보다 더 사실같은 이야기란 말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책의 중반부분에 접어들었을때 이상하더란말이죠. 분명히 작가는 전지적 시점으로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것 처럼 써내려가고 있는데 (이 부분이 날 혼란케했음) 찰리 힐에 대한 작가의 표현이 이상한거예요. 애정이 담겼다 말하기엔 객관적이고 객관적이라 말하기엔 미묘하게 중립적인, 그러니까 자기 캐릭터를 멋지고 중립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그렇게 만드는게 아니라 남의 캐릭터를 빌려 쓰는 것 마냥 망설이고 있다고 해야하나,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찰리 힐이다보니 그 미묘함이 걸려서 작가후기를 봤는데 아뿔싸, 뒷표지의 리얼 스토리는 리얼(한) 스토리(소설)가 아니라 리얼(취재) 스토리(르포) 더라구요?! 그제서야 제가 멋대로 착각했었단 걸 알았더랬지요. 훈민정음 암살사건인 줄 알았는데 경성기담이였어!!!랄까요...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인물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는 것은 여러 제약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작가가 찰리 힐의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긍정적인 평가만을 하지 못한 것은 그의 성격이 독특한데다 그를 적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의 평가도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깨닫고 나니 책에서 느꼈던 위화감이 이해됐습니다.

 책은 제가 팩션이라 믿었을 만큼 매끄럽게,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마치 직접 보고 있었던 것 처럼 상세하게 나와있는 범행 과정과 귀족과 범죄자와 쉽게 융화되는 찰리 힐이란 인물의 독특함. 한심스러울 정도인 미술관과 정부의 대응과 해결방식. 한 편의 블랙코메디로 볼 수도, 정치풍자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단 오버스러운 판단을 내리며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진짜(!!!!) 이야기, '사라진 명화들'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습니다.

 찰리 힐이란 사람은, 셜록 홈즈의 괴팍함을 빼다 박았더군요. 두 사람 다 멋지지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부마을 이야기 2
제임스 캐넌 지음, 이경아 옮김 / 뿔(웅진)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게릴라에게 재산과 가족을 빼앗긴 여자들만 남은 마을, 마리키타. 눈앞에서 가족을 잃었을 뿐 아니라 생각해보지 않았던, 해보지 않았던 것에 직면한 마을의 과부들과 어린아이들은 모아뒀던 돈을 쓰거나 구걸을 하며 살아갑니다. 마을은 엉망이 되고 작물은 자라지 않고 가축은 말라가고 사람들 역시 지쳐갑니다. 경관의 아내였던 로살바는 마을의 피해상황을 살피러왔던 국군장병의 즉흥적인 권유로 치안판사에 앉게되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마을을 살기좋게 바꾸고자 노력합니다. 그녀가 의욕적으로 발표한 정책들은 이런저러한 일 때문에 실패하고, 그것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오기도 하며 그로인해 그녀는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곧 새로운 일에 착수하지요.

 이 소설의 좋은 - 그리고 씁쓸하기도 한 - 점은 이 곳에서 드러납니다. 로살바는 의욕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지만 완벽한 여성은 아닙니다. 권력욕이 강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에 대한 찬성표를 얻기위해 주민들이 글을 모른다는 것을 이용하여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자신은 치안판사이기때문에 공정해야하고, 마을 사람들이 잘 살아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일을 계획하는 그녀와 권력욕이 강하고 일의 성공을 위해 하는 거짓말로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그녀는 동일인물입니다. 이 소설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의사의 아내였던 마을의 유일한 간호사는 결벽증에 지식이 부족하고, 게릴라에게 끌려가지 않은 유일한 남자인 신부 역시 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함께 슬퍼하고, 웃고, 다투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로살바와 마을 사람들이 바라는, 그리고 만들어가는 뉴마리키타의 모습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 - 로살바와 마을 신부 - 이 생각하고 결정해나가던 소설의 초반과 아이를 낳아서 대를 이어야한다는 불안감으로 나오는 일련의 희극적인, 그리고 비극적인 에피소드들과 허망한 결말. 그 안에서 마을사람들과 로살바는 변화합니다. 우연히 마을에 들렀다가 교사를 하게된 과르니소와의 반목과 협력자가 되는 과정, 마을 사람들과의 대립, 화해. 시행착오 속에 단단해지는 결속력. 마을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사랑의 방식과 처음으로 되돌아가려는 그녀들의 움직임, 평화, 권력의 양분. 그리고 새로생긴 만장일치의 법칙과 나눔의 정신. 이것은 얼핏보면 공산주의와도 비슷하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거운 주제의식 사이사이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거리들이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한 챕터가 끝난 후에는 게릴라와 장군, 그리고 무장병사의 이야기가 짤막하게 실려있기때문에 양쪽 저울의 무게균형이 교묘하게 맞춰지는 느낌이랄까요.

  쉽게 읽히는 가벼운 문체지만 이야기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읽고나서도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는 이야기지만, 작가는 이야기의 결말에 희망의 불씨를 피워줍니다. 잡혀갔던 남자들 중 네사람이 돌아오고, 그들은 새로운 마을을 만들게됩니다.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 로살바의 희망의 눈물.

  상처받고 힘들어도 살아서 단단히 서있다보면 희망의 불씨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제임스 캐넌은 말하고 싶었던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엉뚱하게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라는 어떤 일본의 여자변호사가 쓴 책 제목이 기억나는군요. 뉴어마리키타에 축복을, 나와 내 주위의 여성들의 앞날에 축복을, 그리고 우리모두의 가족들과 남성분들의 앞날에도 축복을!! 그렇게 마음에 희망의 불꽃을 틔워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