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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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작의 그늘에 머무른 본작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아몬드》가 너무 뛰어났던 걸 어쩌랴.
영화비평가, 작가, 각본가, 영화감독을 넘나드는 뛰어난 역량의 본 작가에게 있어 최대 적은 바로 자신의 데뷔작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메김 중인 전작이 될 것 같다.

2. 다양한 빛깔이 없는 프리즘
책은 전반적으로 파남보 사이 그 어디쯤의 색톤이다.
파랑보다는 남색에 가까운 도원, 회색 같은 호계, 보라를 의도했으나 남색이 된 재인, 아무리 노랑으로 봐주려 해도 초록 내지 파랑 이상 밝아지지 않는 예진이 엮어내는 이야기를 프리즘의 빛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년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프리즘'이라는 제목보다는 '1년의 대기(공기)'가 더 어울릴성 싶다.

3. 몰입을 떨어뜨리는 짧은 호흡
더 길고 깊게 몰입해서 감정을 끌어올리거나 혹은 더 침잠하여 공감하려는 그 지점에서 작가는 자꾸 연필을 놓았다.
읽는 내내 들었던 '감정의 호흡이 왜 이렇게 짧을까?'라는 의문은 책 말미 작가의말을 읽고서야 수긍이 갔다. 이 소설은 애초 격월간 문학지에 연재되었고 그마저도 한두 차례 연기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잡지가 갖는 지면의 한계, 격월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공백이 독자에게도 전달돼 아쉽다.

4. 2,30대 미혼남녀의 일상, 신변잡기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가로수길이 연상되는) 효고동 길을 걷고, 오픈 채팅이나 만남 앱으로 가볍게 사람을 만나고, 작고 예쁜 수제 빵집의 달콤함을 즐기며, 때로 클럽에서 열정을 쏟아 내고, 적당히 외로움도 느끼는 여느 젊은이들의 일상을 덤덤히 훑어 본 느낌이다.

한 권 내내 커다란 사건 없이 시종일관 덤덤하다. 그래서인지 주인공들의 만남과 헤어짐에 큰 울림 같은 건 없다. 언제라도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일상이다.
인생은 본래 일상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일생의 인연을 만나고 운명을 선택하기에 가볍지만은 않은 일상일진대 여운 없는 그저 덤덤함은 이 이야기를 신변잡기로 읽히게 한다.

5. 인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긴 서평을 쓰는 것은 인간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언제나 따뜻하고 희망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에게, 세계에게 사랑을 멈추지 말라'는 작가의 메세지를 읽고, 한창 유행했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비록 노희경의 현실은 팍팍하고 아렸지만, 손원평의 일상은 담담하기 그지없었지만, 서로를 향한 따뜻함과 희망이 있다면 그래도 인생은 참 살만 하다고 나는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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