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가 사는 집
김상현 외 지음, 전홍식 옮김, SF&판타지 도서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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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도 작년에 챙겨 놓고 이제야 봤다. ㅜㅜ 사실 SF문학의 거장이라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모음집이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요 책을 더 미뤄 놨는지도 모르겠다. 『조커가 사는 집』은 가상현실을 주제로 한 SF 단편소설 신작 4편과 제1회 SF 어워드 단편소설 부문 수상작들을 모아서 엮은 작품집이다. 작년에 했던 일과 연관되어서 이 책을 얻게 되었는데 지금껏 그냥 묵혀 두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미있었다. ^^;;;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모음집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로만, 그것도 내 개인의 취향에 따른 재미로만 작품을 판단할 수 없다. 그건 위험한 짓이다. 다만, 작년부터 묵혀둔 게 다소 미안했을 정도로 흥미롭고 즐겁게 읽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혹시 아직도 SF소설은 허무맹랑한 얘기라는 편견을 가지신 분이 있다면 꼭 읽어보시길!

가상현실을 주제로 한 신작 4편과 제1회 SF 어워드 단편소설 부문 수상작 5편, 총 9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근미래의 모습을 겹쳐보기도 하고, 배경과 갈등 속에 녹아 있는 현재의 어둡고 삭막한 현실,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작가들이 펼쳐놓은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었다.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작품 속에 녹아있는 우리나라, 우리나라 사람, 사회, 관계에 대한 작가들의 시선에 공감할 수 있어서이기도 했을 것이다.

작년에 일 때문에 읽었던 단편 한 작품은 무겁고 혼란스러워서 읽기 힘들었는데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마다 작품마다 어떻게 읽히는지는 그때그때 다를 것이다. 그래도 『조커가 사는 집』의 작가진들의 작품은 앞으로도 흥미를 갖고 기대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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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의 모험 - 당신이 사랑한 문구의 파란만장한 연대기
제임스 워드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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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는 것처럼 어릴 때 일종의 보물가게 같았던 문방구를 너무 사랑했던 이유로 구입하게 된 책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아마 내 예상보다 저자가 훨씬 전문적이고 방대한 양의 정보를 풀어 놓았기 때문이리라.

 

클립, 볼펜과 만년필, 종이, 연필, 지우개, 형광펜, 포스트잇, 스테이플러 등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일상에서, 혹은 선물, 특별함을 기념하기 위해 쭉 곁에서 함께 해 온 문구들의 역사는 정말 깊고 다양했다. 관련 특허를 내고 꾸준히 연구하고 발명하며, 회사를 차리고 판매를 하기까지 한 품목당 여러 사람이 함께 혹은,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문구들을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출장가신 아버지께서 선물로 사오시곤 했던 볼펜과 만년필의 브랜드를 바로 그 문구의 장에서 발견하고 반가웠고, 한창시절부터 계속 써 온 연필, 형광펜, 수정액 등의 브랜드들도 읽으면서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부분의 문구류에서 독일 도시 및 사람 이름이 많은 것도 신기했고, 무엇보다 유럽 여행 갔을 때 4박이나 묵었던 뉘른베르크가 자주 언급되어서 놀랐다. 뉘른베르크는 장난감 박물관이 유명했고, 세계적인 장난감 전시 및 교역 행사인 <국제 장난감 축제(the International Toy Fair)>가 열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많은 문구류의 출발지도 이곳인듯... 여행 가기 전에 알았더라면 문구 관련해서도 사전에 좀 찾아보고 갔을텐데 아쉽다. -.-;;;

디지털 기기들에 둘러싸여 살지만, 우리는 모두 한편에 아날로그 문구류들을 함께 놓고 산다. 어릴 적 사용하던 필통, 필기구들은 아직도 서랍 속에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다 썼거나 수명이 다하지 않는 이상, 그리고 스페이스의 여력이 되는 한 계속 남아 있을 거 같다. 저자도 언급했다시피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이 종말에 이를 것처럼 떠들었지만, 종이책은 아직도 건재하다. 나도 꼭 화면으로만 읽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인쇄물로 된 텍스트를 본다. 그게 더 집중이 잘 되고, 머리에도 잘 들어온다. 종이에서 나는 냄새도 나한테는 안정감을 주는 거 같다. 저자는 '문구의 미래'라는 제목의 마지막 챕터에서 디지털 시대로 인해 대부분 사라질 거라던 문구류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 그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는지 이야기하며 이렇게 외친다.'펜은 죽지 않았다. 펜이여, 영원하라' (왠지 '올레!'를 외치고 싶어졌다. ^^;;;)

 

문구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풀어내면서 영화나 영드를 같이 언급하거나 해당 문구의 특정 모델에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유명인사들을 함께 엮은 부분이 다소 빡빡한 느낌의 이 연대기를 조금 더 부드럽고 흥미롭게 만들어줬다. 언급된 몇몇 영국 드라마는 체크해 두고 찾아볼까 생각 중이다.

조금 더 이미지가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글자로 상세히 설명한들 사진 한장을 당해낼 수 있을까 싶으니 말이다), 이미지를 구하는 일부터 이런 문구의 이미지에도 초상권(?)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책에 게재하기 위한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거라고 짐작이 되니 패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뒤에 뒷표지 날개 부분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저자가 기획한 '지루함 컨퍼런스'라는 행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거 꽤 재미있을 거 같다. '별 뜻 없이 지나칠법한 일상의 찰나를 포착하여 그 순간을 흥미롭게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축제'라는데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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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알고 있는 유럽의 작은 도시 - 여행기자 톰 체셔가 들려주는 소도시 탐방기
톰 체셔 지음, 유지현 옮김 / 이덴슬리벨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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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갔다온지도 5년이 되어 간다. 또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이리저리 보면서 다음에는 여기가면 좋겠다, 저기가면 좋겠다 하는 것도 정말 가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2006년에 여행하고 썼다는 이 책에 있는 도시들은 정말 어느 한 곳, 이름도 익숙한 곳이 없어서 흥미가 생겼다. 저자도 유럽 내 저가항공 이지젯의 싼 항공권이 아니었으면 갈 일이 없었을 거 같은 도시들이었던 것 같다.

폴란드의 슈체친, 슬로바키아의 포프라트, 노르웨이의 헤우게순, 독일의 파더보른, 체코의 브르노, 핀란드의 탐페레, 불가리아의 부르가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에스토니아의 탈린, 크로아티아의 리예카...

저자는 여행전문 기자답게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그곳을 즐기는 일도 해 보고(비록 그 일이 얼음물같은 호수에 뛰어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시장이나 현지 대사같은 높으신 분들도 만나 보고, 관광 가이드나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이 체감하는 도시의 문제와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거나 광란의 파티를 함께 하기도 한다. 또한, 어떤 도시에서는 너무나 무미건조하고 불친절한 사람들로 인해 절망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풍경과 의외로 맛있는 음식에 감탄하기도 한다.

저자가 절망스러운 도시에 머무를 때는 읽는 나도 함께 빨리 이 도시의 챕터가 끝나기를 바랬고, 저자가 즐거웠던 도시에서는 힘든 발음(이 책의 대부분의 도시 이름은 입에 딱 붙질 않는다)을 되새기며 검색해서 좀 더 관련 정보를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저자는 단순히 잘 알려지지 않은 저가항공으로 갈 수 있는 도시를 여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국 최대의 저가 항공사 이지젯의 창립자를 만나고, 또 저가항공의 증가에 우려를 표하는 영국 최대 환경단체 대표자를 만나기도 한다. 나도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비행기와 환경문제를 관련지어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 읽으면서 이런 문제가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저가항공이 가져오는 경제적인 이익이나 혜택과 그로 인한 탄소배출량의 증가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 단순히 여행과 비행이 가져다주는 설레임만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환경단체 대표조차도 환경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는 게 불가피한 현실!!? ^^;;;

요 책이 재미있는게 각 도시별 챕터 맨 앞에 번호가 붙은 점들이 있는 페이지가 있는데 그 점을 다 연결하면 그 도시의 지도가 그려진다. 왠지 책에 낙서하는 기분이라서 아직 하지 않았는데 나름 아이디어인 거 같다. 낯선 도시를 조금이라도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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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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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가지 페이스북에서 서평단 모집 글을 보고 신청했는데 선정되어서 책이 왔다. 2015년 막바지, 독서 복은 좀 있는 듯... 뉴올리언스에서 실제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액스맨의 재즈』! 실제 도끼 살인마는 1918년부터 1919년까지 뉴올리언스에서 여섯 명을 살해했고, 본문에 나온 도끼 살인마의 편지는 창작한 것이 아니라 당시 신문에 실린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라고 책 도입부에 적혀 있는데 좀 오싹했다.

 

뉴올리언스에서 잔혹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 도끼를 이용하고 현장에 타로 카드를 남기는 범인은 비명도 목격자도 남기지 않고 강제 침입의 흔적조차 없는 신출귀몰한 행태를 보여준다. 담당 형사 마이클은 부패경찰이었던 선배 루카를 밀고한 탓에 경찰서 내에서도 거의 왕따인 상황에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사건 덕에 언론의 비난까지 껴안으며 진퇴양난에 몰린다. 마이클의 증언으로 수감되었던 루카는 모범수로 가석방되어 뉴올리언스로 돌아오고, 잔혹하게 살해된 이탈리아인 피해자들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마피아 수장 카를로의 부탁과 고향으로 돌아갈 자금 마련을 위해 사건 해결에 나선다. 핑커턴 탐정 사무소 뉴올리언스 지국에 고용된 아이다는 처음 약속과는 달리 소소한 사무업무만 지속되던 상황에 염증을 내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은 실마리를 쫓아 친구 루이스와 함께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소설의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금주법 시행을 앞둔 미국의 뉴올리언스, 흑인과 혼혈(크리올)의 비중이 높으나 (차별이 만연한 상태에서) 대부분 빈곤하고, 이탈리아 마피아의 힘이 막강했던 도시다.

덕분에 셜록의 광팬이며 명석하고 재기 넘치는 아가씨 아이다는 탐정 사무소의 잡일로 소일하고, 탁월한 재즈 연주자 루이스는 눈치를 보며 백인이 좋아할만한 연주만으로 재능을 낭비한다. 또한 마이클은 사랑하는 흑인 아내 아네트를 가정부로 속이고 아이들의 존재는 숨기고, 주일 예배조차 다른 곳에서 따로 봐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권력자인 베어먼 시장은 이탈리아 마피아와 결탁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 법령 탓에 충돌이 생기자 이권 유지를 위해 음모를 꾸민다. 물론 자신의 손은 하나도 더럽하지 않을 방법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도끼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누가 진짜 나쁜 놈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린 보데 남매에게 일어난 비극, 그 조차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활용한 일당들에게 정말 분노가 끓어올라 참을 수가 없다.

원칙을 가지고 살아온 깨끗한 형사 마이클이 자신을 도와주던 케리 경관을 무자비한 총격으로 잃은 후, 루카의 오른팔이었던 헤이트너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마음도, 그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은 마음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마이클, 아이다, 루카, 그리고 기자 라일리의 시점이 번갈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이클, 아이다, 루카, 모두 같은 듯 다른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다른 제보자를 만나고 다른 단서를 얻지만 같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게 흥미롭다. 약간씩 비어 있는 부분은 있지만, 결국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는 세 사람, 아마 서로 아는 바를 공유했으면 완벽하게 모든 관련자들의 이름과 정체가 밝혀졌을 테지만, 작가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 거 같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게 그렇다는 이야기야. 도끼 살인마는 불가사의한 존재이지 않나. 설명할 수 없이 텅 비어 버린 존재지. 하지만 사람들은 텅 비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비어 있는 것을 볼 때면 언제나 그걸 채우기 시작하지.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어두운 것들로 말이야. 보데 씨 부부를 죽였던 그 이탈리아인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 자신들이 무서워하던 것으로 마음을 채웠어. 주술로 말이야. 도끼 살인마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 이탈리아인들은 도끼 살인마를 두고 흑인이라고 생각해. 경찰은 흑수단이라고 생각하지. 흑인들은 아마도 도끼 살인마가 강대하고 사악한 백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네.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보고 있는 것 같이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달리 보고 있다네. 어떤 두려움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윙윙대느냐에 따라 다른 거야.

- 본문 중에서

 

작품 속에서 내내 내리는 비 때문에 등장인물들과 같이 계속 젖어 있는 느낌이었고, 그 덕분에 한층 혼란스럽고 무거운, 비극적인 느낌이 더 잘 살았다.

영국 추리 작가 협회(CWA)가 수여하는 신인상을 받았고 드라마로 제작 예정이라니, 영상으로 만날 순간을 기다려 본다. 마이클과 아이다를 잘 활용하면 장수하는 드라마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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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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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팩 만들기 하러 갔을 때 시드니 언니한테 비타민 D랑 핸드크림 등 다양한 선물을 받았는데 요 책도 그 중 하나였다.

 

완벽한 아내이자 완벽한 학부모, 능력있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세실리아는 베를린 장벽에 푹 빠졌있는 딸에게 여행 갔을 때 사온 베를린 장벽 조각을 찾아주러 다락방에 올라갔다가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볼 것'이라고 적힌 남편 존 폴의 편지를 발견한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안달하던 세실리아는 편지 발견 소식에 곧장 출장에서 돌아온 존 폴이 폐소공포증에도 다락방에 올라가 편지를 찾고 있음을 알고 망설임 없이 편지를 개봉한다.

 

편지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는 읽다보면 짐작이 된다. 그리고 그 짐작이 맞은 순간, 이 부부가 대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다 보면 감정의 미로에 빠지게 된다. 건실한 남편, 헌신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아빠, 그 이면에 평생 어떤 죄책감과 괴로움 끌어 안고 살아왔는지 알게 되고, 그 미심쩍은 사건의 전말을 여러 캐릭터의 시각으로 짚어가다 보면 돌을 던지려 들었던 팔을 힘껏 휘두를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바로 수습하지 않은 존 폴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아내 세실리아와 세 딸은 죄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희생자 자니의 시점으로 적힌 부분을 읽다 보면 이게 전적으로 존 폴의 잘못이 맞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결국 오해와 오판으로 파국을 맞이한 마지막 챕터를 읽고 나면 어른들 때문에 죄없는 어린아이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몸과 마음에 안고 살아가게 생겼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런데 더 황당한 순간은 에필로그를 읽고 나서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의구심이 맞았구나 싶은 순간, 등장인물이 평생 품고 살아온 증오와 죄책감이 사건과 관련된 어떤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정말 말문이 막힌다. 등장인물들은 에필로그의 내용을 모를 테니, 자니의 엄마 레이첼은 여생을 증오와 죄책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소모할 것이고, 존 폴은 가중된 죄책감과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공포에 괴로워할 것이다. 세실리아도 존 폴에 대한 원망과 사랑 사이에서 평생 시소를 타겠지. 아, 레이첼은 사고를 일으키고 허울 좋았던 며느리 로렌과의 사이가 좀 다르게 풀릴 거 같으니 이거는 하나는 다행일까...

 

책을 덮으며 당장 CSI라도 불러주고 싶었다. 레이첼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이겠지만, 무덤에서 자니를 꺼내 모든 가족이 모인 가운데 제대로 된 부검을 해서 품지 않아도 되는 잘못된 감정에 일생을 소모하고 있는 이 불쌍한 등장인물들을 해방시켜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의 심정이 독백처럼 계속 나열되어 있어서 제대로 느껴지는 대신에 그로 인한 피로도도 다소 있다. 그 피로도를 감당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다만, 테스 가족의 이야기는 왜 들어가 있는지 마지막까지 모르겠다. 내가 뭔가를 놓친 건지... 그냥 세실리아와 레이첼의 가족, 그리고 코너의 이야기로만 가도 되었을 거 같은데... 테스의 남편 윌의 외도도 '허즈번드 시크릿'이라서 들어가 있는 걸까? 그러기에는 윌은 너무나 빨리 그 외도를 고백했는데... 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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