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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슬픔에게
서재경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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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슬픔에게라는 제목은 저자의 통찰이 그저 가벼운 종교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공감으로서 이어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지나치기만 한 것 같은 오늘날 이 시집을 통해서 잠시 슬픔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시집은 슬픔이 슬픔에게, 기로에서, 친구야라는 묶음으로서 이야기를 전달해 가는데, 마지막에 해당되는 3부는 호칭으로서 마치 독자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시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prologue에 해당하는 시 한편은 성육신한 그리스도에 대한 감탄을 자연에 빗대서 소소하게 그러면서도 땅의 작은 모습에 충만했던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소리를 전달했다. 시인은 말씀에 무슨 집이 필요하시겠습니까 마는이라는 첫째 연은 성육신에 대한 교리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질문이었고 어린아이 같은 의문이었다.

1슬픔이 슬픔에게에서 첫 시에서 저자는 슬픔을 막거나 참지말고 그저 온전히 느끼고 흘려보내자고 애통하는 이들을 위로한다. 그러면서 슬픔은 다만 슬픔에게/기대어 쉬고/슬픔은 다시 슬픔에게/위로가 되느니라면서 슬픔을 억지로 위로하지 말 것을 말하면서 슬픔을 그저 내버려두라는 간청을 한다. 슬픔을 위로하기에 급급한 이들은 결국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감정을 정리하려고만 하게 된다. 이러한 차가움, 냉소에 대해서 시인은 경계하는 것이 독자에게까지 느껴진다. 오늘날 슬픔을 그저 슬픔으로 두고 그 슬픔이 위로가 될 때까지 두라는 말은 거짓 위로를 너무 쉽게하는 교회에게 건네는 조언과도 같음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2부의 첫 시, “기로에서에서 저자는 성경 인물 니고데모의 질문으로 시를 시작하면서 너라는 대상에게 불편한 짐이 되고 상처를 준 자신의 타성에 대한 반성을 표현한다. 그리고 어찌해야할까?라는 고민을 솔직히 보여주는데, 이 때 다시 태어남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그저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참 인간성으로의 회복으로까지 이어지는 듯한 릐앙스를 건넨다. 그저 신과 인간 사이의 화목만이 아니라 인간과 또 다른 너라는 인간 사이의 화해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전달되고 시인과 같이 독자는 어느새 니고데모의 질문까지 답하게 되는 듯인 이야기로서의 시가 느껴진다.

3부의 시, “친구야에서 시인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동양적 속담을 성경의 산이라는 모티브와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의인이 가야할 산을 노래하면서 같이 가자는 동행을 요청하는데, 이 시는 자연스럽게 두 문화가 함께라는 주제로 묶이는 것을 보게 만들어 주었다. 친구야, 라고 부르는 것 같은 시는 제목과 함께 내용에서 의로운 산으로의 초대를 연상키셨다.

이 시집은 목회자로서의 영성에 대한 갈망과 함께 시인이라는 인간상의 만남으로서 두 긴장을 화해로 이끌었다. 잔잔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서 시는 맺어지는 듯하다. 종교적 차원의 사랑만이 아니라 그 근원의 사랑이 흘러넘침으로까지 표현됨은 이 시집만의 풍요로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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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슬픔에게
서재경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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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슬픔에게”라는 제목은 저자의 통찰이 그저 가벼운 종교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공감으로서 이어졌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지나치기만 한 것 같은 오늘날 이 시집을 통해서 잠시 슬픔을 진지하게 바라볼수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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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
폴 스코트 윌슨 지음, 김윤규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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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역사 전반으로부터 설교에 대한 연구로서 이렇게 잘 정리된 책은 오랜만에 읽었다. 실제로 이 책의 묘미는 기독교의 특정 교파의 설교론이나 특정 시대의 설교 형식을 다룬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중세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라는 구분으로서 기독교 전반에서의 설교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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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
폴 스코트 윌슨 지음, 김윤규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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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쉽게 손에 쥐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전교회적이고 전체 교회사적 관점에서 설교를 다루었다는 책의 특성과 함께 추천하는 저자 때문이기도 했다. 추천하는 이들 중에서 에모리대학교 설교학과 신약학 교수인 프레드 크래덕의 추천은 필자에게 이 책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크래덕 교수는 누가복음 주석과 설교론에 대한 책들로 설교학에서 저명한 학자이면서 신약학 학자인데 그의 추천사에서는 설교의 역사를 제시한다는 점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 실제로 읽어보니, 이 책은 교회사 전체에서부터 설교론을 정리했다. 크래덕 교수를 아는 이들에게 이 책을 더 강하게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독교의 역사 전반으로부터 설교에 대한 연구로서 이렇게 잘 정리된 책은 오랜만에 읽었다. 실제로 이 책의 묘미는 기독교의 특정 교파의 설교론이나 특정 시대의 설교 형식을 다룬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중세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라는 구분으로서 기독교 전반에서의 설교를 다룬다. 이런 폭넓은 시대들에 대한 연구는 설교의 교회사적 관점을 독자들에게 허락해준다. 


개인적으로 큰 유익을 얻기도 했고 많은 감격을 얻은 책의 부분은 1부에 해당하는 초대 교회, 음성으로서의 말씀의 권위 부분이었다. 저자는 초대 교회 때는 설교가 글자와 연관되기보다는 들려짐으로서의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건으로서 그리고 생동감으로서 말씀은 설교되었다고 말했고 이러한 환경에서 교회 공동체는 성경을 그저 과거의 기록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현재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 설교가 얼마나 생동감으로서 전달되야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바울의 기록된 설교인 서신서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바울의 서신들이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었고 공동체로서 읽혀지도록 의도했다고 말한다(29쪽). 이 부분에서 어느새 개인주의가 강력한 오늘날을 사는 현 교회 공동체도 이 부분에서 너무 극단적 개인화로 성경의 원래 의도를 잊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저자는 초대 교회 설교가 생동감을 지녔고 귀를 위해서 쓰면서 전달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순교라는 행위가 법정 앞에 서서 진술하고 실제로 신약 성경에서 증인과 순교자의 단어가 똑같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큰 설교 행위로 여겨졌는가를 유심히 살핀다. 그러면서 다루어진 동방 교부들과 서방 교부들의 설교론은 미학으로서의 설교를 설명했다. 그리고 어거스틴을 마지막으로 사랑의 법칙을 해석에 두면서 경건한 활동으로서 설교를 준비하고 설교의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을 설명했다. 이후에 저자는 중세 교회의 설교론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와 지금까지의 설교론을 다룬다. 이 때 큰 축은  개인화에서 대중화라는 축에 있다. 


이 책은 설교를 기독교 역사 전체로부터 정리하고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된다. 그리고 이 책은 성경 해석과도 관련되어서 아주 실질적인 예들을 20명의 설교자들 연구 부분에서 다루어준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설교의 전체 그림과 발전 그리고 다양성을 독자들에게 친숙한 대표적 설교자 20여명으로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이들이 말씀의 진지함을 가지고 오늘날로 성령의 언어로 풀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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