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돌프의 사랑 ㅣ 문지 스펙트럼
뱅자맹 콩스탕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나에게 인생의 전부였지만,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
『아돌프의 사랑』
뱅자맹 콩스탕 저 |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한줄평 : 진정한 베르테르적 인물의 사랑 이야기
+낭만주의 소설을 넘어선 현대적 감각이 엿보이는 소설(!)
① 사랑은 믿을만한 것인가?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모호하고도 복잡한 것이다(27).”
한 청년이 나이 차이가 나는 여성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잠깐이라도 얼굴을 마주하려고 애쓰고 편지로 마음을 쏟고 자신의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인생을 걸고 맹세한다. 불타는 고백 앞에 마음을 열게 된 엘레노르는 하루아침에 권태, 증오라는 감정에 영혼을 다치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까지 건 사랑의 고백이었지만, 결국 너무나도 쉽게 변해버렸고 포기되었고 사랑하는 상대방을 ‘귀찮게’ 여겨버린다.
사랑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고 맹세들은 오늘날도 계속 만들어진다. 그와 동시에 그 맹세들은 배반되고 허무한 것으로 변해버린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에서는 이 사랑들을 판단하거나 기준을 가지고 정리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이 어찌 되었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사랑이 그저 그 생애를 좀 더 빨리 또는 좀 더 길게 유지될 뿐이라고 사랑의 유한성과 무한성을 엮어낸다.
이런 작가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아돌프의 사랑>에서의 사랑은 결코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랑이고 관계로 보인다. 이런 비극적 결말은 사실 이야기의 초반부터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작가는 경제적으로(?) 이야기를 단순하고 정직하게 풀어낸다.
나이 차이도 나고, 사회적 신분도 다른 엘레노르를 사랑하게 된 아돌프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지만 결국 끊임없이 흔들리고 권태하고 피하고 다시 집착하고를 반복한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한 청년의 객기이자 격정이 그려지고 한 인물의 삶은 낙원으로 꾸며진 폐허로 이끌린다. 어쩌면 과거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지금도 일어나는 누군가의 이야기.
② 사랑이란 선택 = 사랑이란 포기
“자네 앞에는 길이 활짝 열려 있어. 문학을 하든 군인이 되든 공직자가 되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 자네는 뭐든지 할 수 있어. 하지만 명심하게….넘어야 할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장애물은 바로 엘레노르라는 것을(107).”
아돌프는 영원을 약속했지만, 자신의 맹세가 결국 선택이고 어떤 가능성에 대한 포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돌프만 이런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그저 자유로운 표현이자 고백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이 안에는 그 사람만을 선택함으로 다른 모든 가능성을 닫겠다는 선언과 어떠한 권리, 특권도 내려놓겠다는 포기가 내포된다. 그렇기에 사랑은 감정을 넘어선 책임 있는 선택이 된다.
사랑의 무게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은 아돌프는 자꾸 옆에서 툭 던지는 가능성의 말에 흔들린다. 사랑이 그저 자유가 아닌 선택이자 포기라는 것을 깨닫자 그의 사랑은 허무해진다. 그리고 비극 앞에서도 자신의 가능성만을 기뻐한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누구로부터도 사랑을 받지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누구하고도 무관한 타인이었다(153).”
책의 제목은 <아돌프의 사랑>이지만, 어쩌면 “엘레노르”의 사랑으로 읽혀지는 이야기이다. 엘레노르는 그 선택에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그럼에도 포기했고 끊임없이 선택을 붙잡으려고 했다. 물론 그 모든 시도가 해피 엔딩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첫 선택에 자신을 묶었다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사랑의 환상에 조금은 가깝지 않을까?
③그래서 슬픈 사랑 이야기인가?
이 대목이 <아돌프의 사랑>을 다른 로맨스 소설과 다른 심리적이고 교훈적인 계몽주의 시대의 소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저자는 아돌프의 흔들리고 변화무쌍한 사랑을 드러내면서 사랑을 쉽게 고백하고 의무를 버린 이에게 모욕, 조롱, 불명예를 남기려고 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는 베르테르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삶을 유지하지 못하자 죽음으로 사랑을 남기려고 했다. 그래서 비극적 인물로 베르테르를 그려냈다면, <아돌프의 사랑>에서는 역설적으로 엘레노르가 베르테르적 인물이 되어 사랑의 순수함을 수호한다. 그러면서 정직하게 엘레노르의 심경도 담았기에 사실상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비극적 인물은 엘레노르가 된다. 그리고 제목을 통해 아돌프는 ‘사랑’을 포기하고 저버린 인물로 남겨진다.
그저 슬픈 사랑 이야기일까?
아니면 비극적 인물의 스토리일까?
이 질문의 답은 독자의 위치에 따라서 변해가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지금 나에게 엘레노르는 비극적 인물이자 사랑의 수호자이다.
사랑은 믿을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위해 사람들은 살아가고,
타인에게 온 삶을 던진다.
그럼에도.
-
“문지 스펙트럼은 빛의 파장처럼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펼쳐드립니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문지스펙트럼 #문지스펙트럼서포터즈 #아돌프의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