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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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디낡은 누런 표지를 한 지와 사랑은 오랫동안 아버지의 서재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 둥지를 틀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데미안보다 먼저 내 손에 쥐인 헤세의 책. 당시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고려하던 내게 이보다 더 먹음직한 책이 있었으려나. 초반부는 밋밋했고 중반부는 힘겨웠으며 후반부가 놀라웠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후반부 대화들이 예리했다. ‘이런 게 예술인가?’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원래 제목이 내 기억을 일깨우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23일 출장의 밤, 서늘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번역의 문제였을까, 편집의 문제일까. 같은 원본을 어떻게 어레인지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알맹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름답다, 반짝인다. 너무나 미묘하다고 탄식하며 책장을 덮었다.
 
마리아브론 수도원에서 수도 중인 나르치스는 젊은 골드문트를 만나 바로 알아본다, 그와 자신은 동지(同志)라는 것을. 두 사람은 각기 이성과 열정으로 대비되는 인간이었으나, 둘 다 고귀한 성품을 지니고 재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데 공통점이 있었다. 운명이 선택한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재능은 칼이다. 하늘은 인간에게 각기 다른 재능을 주지만 이 재능이 칼이라는 속성은 다르지 않다. 재능있는 인간은 이 칼을 다루어야 하기에 아프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피흘릴 수밖에 없는 것이 재능이다. 그러기에 재능이 큰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러므로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르치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자기 자신의 숙명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숙명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사람의 영혼을 잘 읽어내는 나르치스는 이 친구가 자기 인생의 한 토막을 잃어버린 그런 유형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P.67)” 그러니 골드문트의 진실을 안 이상 그를 그냥 둘 수 없다. 골드문트가 어떤 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인지를 일러줄 수밖에. 이에 모르고 있던 골드문트의 감각은 열린다. 골드문트는 풍부한 감성과 영혼을 타고난 강한 인간에게 볼 수 있는 온갖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예술가의 기질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어떻든 골드문트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타고난 존재였기에 쉽사리 불붙고 자신을 내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그의 운명이자 행운이었다. 그는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인 것이었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성을 타고난 그는 꽃향기라든가 떠오르는 태양, 말이나 새의 비상, 음악 같은 것을 너무나 깊이 체험하고 사랑할 줄 알았다.(P.61)”
 
골드문트는 떠난다. 본성을 시험할 수 있는 곳으로, 감각의 극한을 실험할 수 있는 곳으로. 계속 여자를 만나고 희롱하며 사랑의 달콤함을 따먹고 죽음과 비참과 좌절을 경험한다. 방탕과 자유를 기뻐하며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기사의 성에서 머물다 유혹한 큰딸 리디아와 작은딸 율리아의 이야기, 거절된 쾌락을 경험한 이야기가 골드문트 방랑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이번에도 나는 이 부분이 불편했다. 그가 건드리고 떠난 여자들의 이후 모습은 어땠을지, 가부장에게 학대당하지는 않았을지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내 안에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없을 때에도 뮤즈의 존재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언젠가의 누가 내게 뮤즈가 되어주기를 청했을 때의 불쾌함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불편해했다. 물론 골드문트가 남성으로 설정된 인물이어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가 유혹하고 실망하고 떠나버리고 경멸하는 대상이 너무 많은 수의 여성이었을 때, 이 짧은 시간의 만남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아무리 시대나 설정의 한계라 해도, 비유나 상징으로서의 의미라 해도 여성으로서의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나중에 골드문트가 만드는 예술 작품의 뮤즈로 여성이 소비된 건 아니냐는 항의를 자신 없는 목소리로 지른다.
 
역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최고의 아름다움은 후반부다. 만신창이가 된 골드문트를 구하러 온 나르치스, 수도원장이 되어 그에게 예술작품을 만들 환경을 마련해주는 나르치스. 그는 예술 자체에 복종했다. 예술은 얼핏 보면 정신계의 여왕 같지만, 실은 하찮은 것들을 너무 많이 필요로 했다. 예술을 하려면 안정된 작업 공간이 있어야 했고, 작업 도구와 목재, , 물감 따위가 필요했으며, 노동과 인내가 요구되었다. 그는 숲에서 누리던 거친 자유를 예술에 바쳤다. 넓은 세상을 만끽하는 자유, 위험을 즐기는 짜릿한 쾌감, 안빈낙도의 자부심을 모두 바쳤다. 그러고도 그는 숨을 죽이고 화를 삭이며 자꾸만 새 제물을 바쳐야만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골드문트지만, 그렇기에 나르치스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나르치스 없이는 골드문트는 놀라운 결실을 맺지 못했을 터이므로. 예술가의 삶은 세상에서 유리하다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런 그들에게는 현실 파악에 능한 스폰서가 꼭 필요하다. 나르치스같은 든든한 보호자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나르치스의 섬세한 질문에 골드문트는 예술이란 무엇인지, 자기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견고히 정립해 간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어느 것 하나 줄 긋지 않을 곳이 없다.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 다른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정확히 인식하지 않았지만, 서로 만나지 않았던 시간에도 그들은 서로 생각하며 서로에게 걸맞는 인간이 되도록 살아왔다. 존재만으로 나를 성장하게 하는 사람. 그게 그들이다.
 
내가 오래전부터 자네를 부러워하는 것은 자네의 학식 때문이 아니라 평정한 마음 때문일세. 자네의 초연함과 평화가 부럽네.”
나를 부러워할 필요 없어, 골드문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아. 물론 평화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그런데 자네는 내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지. 공부할 때 싸우는 모습도, 기도실에서 싸우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 자네가 나의 그런 모습을 보지 않은 것은 좋아. 자네는 그저 내가 자네보다 기분에 덜 좌우된다는 것만 보고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실은 싸움과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걸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겠지. 자네의 경우도 그래.” (P.446)
 
골드문트처럼 살기 바랐지만 그리 못할 거였다면 차라리 나르치스처럼 살아야 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헤세의 예술론을 잘 드러내고 있지만 진짜 예술은 이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헤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골드문트의 삶을 옹호하고 있지만, 한편 나는 나르치스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 역시 같은 본성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것을 기를 쓰고 감추며 투쟁한 사람. 공부실에서 기도실에서 입을 꾹꾹 틀어막으며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투쟁이 예술을 얻으려는 감각의 투쟁, 선을 넘기는 모험보다 어찌 부족할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그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져버린 골드문트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자신이 끝내 갖지 못할 것에 전혀 열등감을 가지지 않는다. 이 그릇이 나를 비참하게 한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관점, 하느님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어떨까?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관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시간과 운명이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인간은 정말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공부하고, 그리스어를 배우며, 관능을 억제하고, 속세에서 달아나도록 창조되었는가? 애초에 하느님이 인간을 쾌락과 본능, 핏빛으로 물든 악, 죄와 육욕, 절망에 빠지는 천성으로 창조하신 것은 아닐까?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이런 의문이 수도원장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다. 어쩌면 골드문트의 삶이 더 유치하다거나 인간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실제 세상에서 발을 빼고 깨끗한 삶을 살면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사상의 화원을 꾸며 놓고 안전한 화단 사이로 티끌 하나 묻히지 않고 거니는 것보다, 어쩌면 차라리 현실의 고통스러운 흐름과 혼돈에 빠져들어 죄를 범하고 그 쓰라린 결과를 받아들이는 편이 결국 더 용감하고 숭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너덜거리는 신발을 신은 채 숲 속을 헤매며 큰길을 따라 걷고, 햇볕을 쬐고 비를 맞으면서 배고픔과 가난에 절어 시달리기도 하고, 쾌락의 기쁨에 차서 즐기다가는 고통스런 대가를 치르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렵고 더 용감하며 더 숭고한 것이리라.
 
고귀한 일을 해낼 운명의 인간은 인생의 피비린내 나고 혼돈스런 세상 밑바닥 깊숙이 빠져들어 먼지와 피가 잔뜩 묻어 더러워지더라도 하찮아지거나 저속해지지 않고, 자기 내부의 신성한 불꽃을 꺼뜨리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 골드문트의 영혼에서는 성스러운 불빛과 창조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승자는 나르치스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애초에 하느님은 인간을 육욕과 애욕에 빠지는 존재로 만들었다. 죄에 절어 쾌락에 탐닉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몇몇만이 예술가가 된다. 그건 선택된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경지다. 그런 골드문트의 종점이 되어준 건 나르치스뿐이었다, 그는 죽음에 가까이 간 골드문트가 만든 조각 앞에서 자기가 추구하던 진리가 예술로 다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친구에게 감탄한다. ()도 사랑도 하나가 되었다. 골드문트는 떠나고 마지막은 나르치스가 남았다. 

그러나 무엇이라 말해도 너무나 슬프다. 나는 합일하기는커녕 지()에도 사랑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인간, 모든 것이 네 선택이었다 혹은 네 운명이었다 말해도 슬프기 그지없다. 나는 이 정도의 인간임에 비참하지만 한편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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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 9
생 텍쥐페리 지음, 윌리엄 리스 해설,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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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생텍쥐페리는 딱 한 가지 이유로 내게 특별한 작가다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본업인 비행기 조종에 충실했다는 것살거나 죽거나 조종사로 살았고하늘을 나는 모든 순간으로 글을 썼다는 것그러면서 마지막에는 작가로 기억된다는 것이 생텍쥐페리의 특별함이다그는 젊은 군인으로 중년의 직장인으로처음부터 끝까지 비행기 조종사로 살았다.나는 이런 (바쁘고 복잡한이중생활 작가들을 사랑한다인간의 대지에서는 그가 하늘을 나는 직업인으로서’ 무엇을 가장 많이 고려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누군가는 1939년 발표한 인간의 대지가 1943년 발표한 『어린왕자』를 쓰기 위한 전단계라고 하지만나는 인간의 대지야말로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으로 꼽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무엇보다 작가 개인의 인간성과 인간애를 잘 드러낸 작품이므로생텍쥐페리는 1장부터 두려움을 숨기지 않는다사랑하던 동료 메르모스의 연락이 끊어졌을 때그가 억지로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두려움찬찬히 스며드는 가슴 아리는 슬픔우리가 언젠가 비밀스러운 곳에서 다시 만날 거라고 하는 기대죽은 줄 알았던 기요메가 돌아왔을 때의 놀라움과 환희미래를 걱정하는 사랑에 대한 경이. ‘바로 이곳’에만 발견할 수 있는 일시적 순간그 모든 예리한 감각들을 생텍쥐페리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비행이란 지금도 위험한 직업 중 제일이다툭하면 연료가 부족하고 엔진이 부실해 멈추곤 했던 예전에는 더 치명적으로 위험하지 않았을까실제 젊은 날 생텍쥐페리의 파혼은 그의 비행 직업 때문이었다고 한다두려움을 안고 돌아올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는 비행을 오르는 그와어려움을 피했을 때 살아있음의 확신과 돌아왔을 때의 기쁨그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이를 재회한다는 감격어쩌면 이건 마약처럼 짜릿한 살아있다는 감각이 아니었을까
 
귀족 태생 오만한 생텍쥐페리는 비행을 거듭하면서 겸손해졌겠지만 한편으로는 더 고립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오직 홀로 할 수밖에 없는 비행두려움과 고독과 위험과 죽음의 선 가운데를 오가는 이 특별한 직업을 같이 한다 해도 각자는 모두 다르게 변화한다다만 단 하나순간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한다우정도 사랑도 내일 모를 순간을 귀하게 여겼을 것이다. 실제 에피소드의 곳곳에는 이곳 사막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진리와 풍요로움, 침묵, 바람과 별의 나라를 여러 번 언급한다.  

 생텍쥐페리의 담담한 문장을 곳곳이 아름답지만,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와 별 사이에 빈 몸으로 내던져진’ 그가 동료 프레보와 생을 버티며, 말 못하는 사막여우와 이야기를 나눈, 극한의 한계 앞에서 사람 발자국을 찾은 극적인 이야기가 이 책의 메인(7장)이겠지만. (생텍쥐페리가 거기서 살아돌아온 걸 이미 알고 있어서겠지만서도) 인간의 대지』에서 나를 가장 따뜻하게 한 에피소드는 역시 (생텍쥐페리보다 먼저 실종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기요메의 이야기였다. 포기하고(죽고) 싶었지만, 아내와 동료를 생각해서 끝까지 살기로 심장을 움직이는. 

 눈 속에서는 생존 본능이라는 게 사라진다네이틀사흘나흘을 걷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지거든나도 그랬어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지.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라고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이렇게 말이야.” 
 
나는 아내를 생각했네내 보험증서가 있으니 아내는 가난을 면하겠지아무렴그런데 보험이…….” 실종의 경우법률상 사망은 4년 후로 연기되네이 사실이 여타 환영을 지워 없애고 번쩍하며 떠오른 거야그런데 그때 자네는 급경사진 눈밭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어여름이 오면 자네 몸뚱이는 진흙에 뒤섞여 안데스산맥의 수많은 크레바스 중 하나로 굴러떨어지겠지자네는 그 점을 알고 있었어하지만 자네는 바위 하나가 전방 50미터에 솟아 있다는 점 또한 알고 있었지. “나는 생각했네. ‘만약 내가 다시 일어나면 저기까지 갈 수 있을지 몰라그리고 저 돌덩어리에 내 몸을 기대두면 여름이 왔을 때 사람들이 날 발견하게 될 테지.’라고.” 
 
난 말이지비행을 하면서도 그때만큼그 몇 분 동안 내 심장에 매달렸던 그 순간만큼 엔진에 바짝 매달린 적이 없었다네한 번도단 한 번도나는 심장에게 말했지. ‘조금만 더 노력해 봐조금만 더 뛰어보란 말이야…….’ 그런데 내 심장은 정말 대단했다네멈칫하다가도 언제나 다시 뛰기 시작했거든……내가 이 심장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자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이 생에 확실한 건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희한하리만치 운이 따라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는 말. 저자의 마음은 그가 사랑한 별처럼 약간 차갑고, 천천히 반짝거리며, 굉장히 아름답다

물론 책의 말미에서 생텍쥐페리는 무엇보다 감탄해야 할 것은 인간에게 터전을 만들어준 대지라고 말하고 있으나,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다시 붙여본다. ‘인간의 대지가 아니라 인간과 대지는 어떠한가이 책에는 인간과 대지가 모두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인간의 대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는다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역시 대지(진흙)이 인간보다 딱히 중요하지 않다.  책을 읽다보면 높고 깊은 하늘이드넓은 대지가거대한 세상이 인간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 이 책의 부제는 ‘바람과 모래와 별’이다. 대지와 대지를 비추는 빛이 인간을 감싼다.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한낱 작은 인간일 뿐이고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인간일 뿐인간은언제 꺼질지 모르도록 명멸(明滅)하는 별빛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저는 당신을 잘 알아요당신의 갈망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강해서 당신이 떠나실 것이라는 것을 알아요당신은 총알과 포탄이 어지럽게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자신이 깨끗해지기를 바라죠.”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2차대전에 참가하는 생텍쥐페리를 배웅하며 아내인 콩쉬엘로는 이렇게 말했다나를 잃지 마세요당신을 잃어서는 안 돼요.” 1944년 7월 31그날 생텍쥐페리를 태운 비행기 ‘P38라이트닝은 생존신고를 보내지 못한다그의 마지막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대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마지막 마음만큼은 조금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그는 인간으로 태어나 대지로 돌아갔다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는 이미 오랫동안 그래왔기에 따로 결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분명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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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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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시작한 독서모임 덕에 오래된 책들을 다시 펼쳐본다어떻게 해도 손이 가지 않는 고전을 다시혹은 억지로 읽을 수 있다니 복된 일이다대지인간의 대지죄와 벌도 좋았지만 성장소설의 대명사고등학생 때 읽었던 데미안의 충격이 초로(初老)의 나이에 가까워진 이제는 경이로 다가온다열여섯의 나는 데미안을 읽고서도 내내 모범생이었다밍밍한 듯 싶어 조금 덧붙이자면 끼가 넘치는’ 모범생데미안이 장교로 복무하며 사회에서 적당히 섞여주고 싶어했듯 나 역시 그러했다내 생각을 주장하고 행동하고 튀면 귀찮을 게 뻔했다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리고 뛰어난 손재주를 감추지 않았다공부도 꽤 잘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예의도 바른 척 했다질투도 받아 괴롭히는 이들도 많았지만 참을 수 있었다어디에나 잘난 존재로 있고 싶었다누구든 나를 만나면 수이 잊지 못했다. 내면 역시 거대한 존재여야 했지만 외면마저도 세상이 부러워하는 인간으로 있고 싶었다그래서일까나는 내면 외면 모두 실패한 어른으로 남았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 자신을 에밀 싱클레어에 대입할 것이다한 사람의 성장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성숙하다우습다평생 그의 친구인 막스 데미안은 너무너무너무너무나 성숙하다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싱클레어다노년이 되어도 내가 데미안 같다거나 에바 부인 같다는 자뻑을 요만큼도 가질 수 없을 거다이번 생은 망했지만 그게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건 왜일까나는 주제 파악을 제일 잘 하는 인간이니까 그렇다면 웃픈 대답일까
 
동양사상특히 인도에 관심이 많았다는 헤세의 취향은 데미안에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브락사스라는 신이 우리나라에 이렇게 유명해진 건 처음부터 끝까지 헤르만 헤세 덕이다왜 예민한 사람에게 인생의 우여곡절은 더 여러 번 겹치고 또 겹칠까운명이 잔인하고 생이 기구하다는 생각은 더 굳건해진다자살 시도사회성 부족, 1차 세계대전아버지 사망정신분열증 아내몇 번의 이혼아들의 뇌막염 고통 등 하나만 해도 견디기 힘들 예민종자 헤세에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시련이다당연히 모든 걸 끊고 싶었을 것이고인간의 운명을 원망하고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며보이지 않은 정신세계에 구석구석 들어가 헤매고 또 헤맸을 것이다며칠 전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흔적도 떠오른다모순과 모순을 말하는 데미안의 세계는나의 세계에 두 가지 세계가 공존하는 모순(矛盾)’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고모순을 알아도 모른 척’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며모순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데미안을 읽고 가슴이 뛰었던 청소년 중에 어른이 되어 데미안을 다시 펼치는 사람 중에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하나라도 있을까계속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라면 개중에서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우리가 더는 유일무이한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실제로 우리 모두를 제각기 단 한 방의 총알로 완전히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다면이야기를 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장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한때 내 가슴을 총알로 뻥 뚫었다이제는 나를 힘없게 한다이십 년간 나는 저 말과는 가장 반대편에서 무엇보다 멍청하게 살았다그렇다고 이제 저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두렵다.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 정말 있을까용기 있는 사람은 그 길을 찾아 헤맨다나처럼 용기 없는 사람은 그 길을 이미애저녁에 포기한다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삶의 요구와 주변 세계가 가장 가혹하게 갈등을 빚는 지점, 앞을 향한 길을 가장 혹독하게 쟁취해야 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체험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평생 단 한 번 겪는 운명이다. 어린 시절이 바스러지면서 서서히 붕괴된다. 모든 정겨운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려 하고, 우리는 돌연히 우주의 고독과 치명적인 냉기에 에워싸인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그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으며,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잃어버린 낙원의 꿈, 모든 꿈들 중에서 가장 고약하고 가장 살인적인 꿈에 일생 동안 고통스럽게 집착한다.”

이번에도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애매하여 정말 데미안은 현실이었을까 궁금하다. 정말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신이 되었나 알 수 없다. 어쩌면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만들어낸 환상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정말 존재한다고? 정말로 말도 안 된다. 

그래도 
데미안이 내 평생에 준 가장 큰 선물은 그거다사는 내내 데미안이 되어줄 사람을 찾아 헤맸다는 걸물론 그 사람이 나를 받아들여주기도 하고 그리하지 않기도 했으며나중에는 실망하는 일도 몇 번 있었지만언제나 나의 데미안들은 나를 성장시켰다나의 데미안들은 스승선배친구동료제자 혹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책의 저자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내 삶이 그나마 요로코롬 봐줄만 한 건 다 내 인생의 데미안들 덕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번 독서에는 에바 부인같은 분위기를 갖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역시 나란 인간은 현실적이다되도 안 될 꿈같은 건 꾸지 않고멋진 부인의 실체’ 말고 분위기는 모방 살짝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라니역시 나란 인간은 이 정도의 생물학적 어른이다하하이번 생은 역시 망했다’.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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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완전개정판 다빈치 art 3
J.M.G. 르 클레지오 지음, 백선희 옮김 / 다빈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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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랫동안 미술사는 남성 백인 화가의 전유물이었으나 20세기 이후 수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여성 예술의 영역을 만들어간다이제 꽤나 자연스레 여자 화가의 이름이 미술계의 화제에 오르내리지만내 마음 한가운데에 가시처럼 박힌 화가는 변치 않으리라.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여자 화가가 누구인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프리다 칼로의 이름으로 응답할 것이다한번 스치기만 하면 절박하고 처절해서 누구든 잊을 수 없는 여자 화가
 
르 클레지오의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헤이든 헤레라의 프리다 칼로』 두 권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읽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프리다 칼로 전기(傳記)두 책을 연달아 읽으니 각자의 장점을 잘 수합할 수 있고겹치는 중요한 내용들을 두 번 읽을 수 있어 좋은 점이 많았다르 클레지오는 소설가이며 헤이든 헤레라는 미술사학자라는 걸 감안해도 두 개의 장점은 각기 극명하다전자는 대중서이며 후자는 전문서라는 것
 
르 클레지오의 책은 정보가 충실하며 문장이 아름답고 깊이가 있다정보 수준이 적절해 두 화가에게 관심있는 이들이 읽기 편하고 문장이 유려하다쓸데없이 무거운 양장본인 것 하나를 빼면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프리다 칼로 전기를 처음 읽어보는 사람도 차분차분 읽고 관심사를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스케치나 일기장 등 귀한 도판도 삽입되어 그림의 다양성 면에서도 훌륭하다

헤이든 헤레라의 책은 지나칠 정도로 내용이 꼼꼼하다프리다 칼로 전기라기보다 사전(事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연도별로 그녀의 이벤트와 그림을 설명해 두었으며연관된 편지나 문서들을 잘 정리해 두었다양장본도 아니고 종이도 얇은데 엄청나게 무겁다오일 페인팅에 치중된 컬러 사진은 앞부분에 모아두었고 가독성이 조금 떨어질 정도로 밀도 높은 내용은 흑백 인쇄로 뒤에 몰려 있다프리다 칼로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나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읽다가 내팽개치기 딱 좋다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역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사람은 가장 많이 슬펐던 사람이다칼로의 거대한 슬픔과 고통이 수많은 사랑을 불러온다작은 슬픔을 지닌 이들은 칼로의 슬픔에 어떻게든 가 닿고 싶다그런 사람들 중 글을 쓰는 이들은 칼로의 삶에 파고든다. 소설을 쓰는 사람도 그랬고, 미술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그랬다. 그러니 슬픔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귀한 사람인가. 나는 요즘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픈 사람과 아픈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글줄로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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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인가 - 존엄한 삶의 가능성을 묻다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865년 9도스토예프스키는 6년간 구상해 온 죄와 벌의 초고를 완성했다그간 쓴 습작노트만 세 권이었다고 한다깜짝 놀랐다도스토예프스키가도박에 정신이 팔리고 시간에 쫓겨 언제나 악덕 계약서에 위협당하던 정신없는 작가가 6년을 투자했다고이례적 작품이 맞다그리고 백 년도 훌쩍 넘어죄와 벌은 내 인생의 책 top 10 일부가 되었다오랫동안 소냐는 내 인생의 모델이었다
 
오종우 교수의 연수를 신청해두고 무엇이 인간인가를 읽었다며칠 전 읽은 죄와 벌을 메인 텍스트로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인간상을 분석하고 서술한 책이다최근 내 관심사는 줄곧 인간의 이기심이었다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실감하고어떻게 해도 극복할 수 없는 연약함을 인정하고그런 나를 지키기 위해 더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겠구나 탄식했다나 말고 타인의 이기심을 확인할 때마다 안심했다나는 특별히 더 나쁜 사람이 아닐 터였다며칠 전 죄와 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지막 내게 남은 건 인간의 죄악성이었다로쟈의 생각은 자연스럽다로쟈가 한 행동은 자연스럽다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합리화 아닌 합리화가 내게는 자기 위로였다
 
카라마조프의 형제에는 여러 번 등장하지만죄와 벌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등장해 간과한 한 단어에 마음이 ’ 내려앉았다다름아닌 유로지비라는 인간상러시아에서는 그냥 헐벗고 멍청하며 가련하게 사는 존재를 유로지비라고 한다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어떻게든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해야 한다그것이 탐욕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되겠지만이기적인 태도를 취해야 현세에서 살 수 있다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쟈는 소냐에게 당신이 유로지비군요라고 말한다. “유로지비. 순수한 러시아어로 러시아 문화의 핵심을 담은 용어다. 영어로는 holy fool, 우리말로는 성스러운 바보라고 옮길 수 있다. 바보가 성스럽다니, 형용사와 명사의 결합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중략) 반면 ‘성스럽다’는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는 뜻으로 신적인 관점이 관점이 들어있다.” 이기적인 세상에서 (이기심으로 사는 이가 유로지비다. “유로지비는 단순히 걸인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을 보면서 이기심을 속죄하는 의식을 담은 표현이다.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성스러운 바보’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종우가 초점을 둔 ‘무엇이 인간인가’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었을까. 이기적 본능에서 () 이기적인 품성으로 가려고 계속 달려가는 사람, 고결한 사람이 되어보려고 되도 않을 목표를 세우는 사람. 그것이 이 책에서 발견한 내가 사랑하는 인간의 존엄이다. 저자의 말대로 ‘산다는 건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므로 손해 보는 일에 좌절하지 말 것이며, ‘산다는 건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니 감동이 피어나도록 정성을 다할 것.  

요즘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이전에 글쓰기는 내가 간신히 붙잡은 ‘지푸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느덧 글쓰기가 내 마음 같아졌다. 닿고 싶은 누군가의 마음, 아니 내 마음 같아졌다. 글을 쓰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착각(?)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만든 게 아닐까. 착각이라도 이 기분에 가까이 가고 싶다. 뭐, 유로지비를 이상형으로 삼은 도스토예프스키도 유로지비는 절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을 테니. 

도스토옙스키에게 글쓰기는 자기 수련이었다. 친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결심을 밝혔듯이 그는 인간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고 세상을 알기 위해 글을 썼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인간의 신비를 알려주는 까닭은 이러한 자세로 그가 글을 썼기 때문이며 인간과 삶을 사랑했고, 또한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그 의미를 더 깊고 예리하게 읽어내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고 존엄한 삶은 무엇인지 탐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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