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책 기획노트 - 정민영의 ㅣ 출판기획 시리즈 4
정민영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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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책 읽는 토요일 오후, 『정민영의 미술책 기획노트』라는 선물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온 선물은 임팩트 있다. 어제까지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강남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광역버스 안에서 책장을 넘기면서 탄식했다. “이걸 좀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독자 중심의 미술 보기는 대중의 입장에서, 그들이 가장 잘 아는 시각과 방식으로 미술을 이야기한다. 즉 대중의 용어로 미술에 접근할 때 독자는 미술과 친구가 될 수 있다. 미술인 중심에서 독자(관람객) 중심으로 시각을 전환하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비로소 입으로만 하는 미술의 대중화가 아니라 실현가능한 대중화를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은 결국 독자의 입장에서 기획하고 실천하기, 또는 독자의입장에서 원고를 검토하고 보완하기로 요약할 수 있다.” (P.11)


책은 모두 세 파트로 구성된다. 1부 《저자의 발견》, 2부 《시리즈의 발견》, 3부 《아이디어의 발견》. ‘저자의 발견’에서 깜짝 놀란 건, 확실한 전문 출판사가 신진 저자를 찾았다는 일이었다. 이처럼 네임 밸류가 확실한 출판사라면 실력이 인증된 저자가 줄을 섰을 텐데 굳이 새로운 중간 필자를 발굴하려고 찾았다는 데 놀랐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만드는 과정이 절반인 ‘시리즈의 발견’에서는 글줄 하나하나가 가슴을 치는 데가 많았다. 양 팔로 책을 고정한 채 계속해서 자판을 두드렸다. 아직 조정육 작가의 책을 읽지 않았다. 기회는 있었지만 취향 따라 서양 회화만 읽어온 데다가 동양 회화 지식이 워낙 미천하여 우선순위를 두지 못했다. 온라인 중고서점을 뒤져 절판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를 주문했다. 언제나 좋은 책은 (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이디어의 발견’은 색다른 포맷의 기획서다. 요즘 우리가 인터넷 서핑하듯 저자가 시중 잡지나 투고 가운데 발견한 원고와 절판 도서를 부활한 책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1,2,3부 사이사이 ‘책의 몸’인 표지, 책의 뒤표지, 제목, 소제목, 들어가는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저자의 책, 『편집자를 위한 북 디자인』에서 더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만 알아도 ‘아무것도 모르는’ 작가 지망생에게는 단비 같다. 
 
한편 미술책 지망생에게 어마 무시 중요한 정보가 여기 있다. 무엇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미술저작권 사용료》. 53년 사망 작가까지만 이미지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다는 것, 한 권의 단행본을 위해 원고지 분량이 최소 650매는 되어야 한다는 정보 등은 어디서 얻을 수도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진솔’하다는 것. 세월은 흐르고 책의 ‘바깥 모습’은 변하지만 ‘속 모습’ 즉 알맹이는 변하지 않는다. 2010년 책이지만 2018년 현재에도 ‘미술책 기획노트’의 핵심은 명확하다. 혹시 미술책을 쓰고 싶은 예비 저자라면, 미술책을 원하는 편집자라면 이만큼 도움이 될 ‘노트’는 없을 것. 이번에도 중요한 내용들을 많이 필사(筆寫) 했지만 이번 리뷰에는 첨부하지 않는다. 이건 그야말로 ‘진솔한 기획자-저자의 고백창고’이며, ‘출판기획의 핵심 노하우’므로. 혹시 미술책을 쓰거나 꿰매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추천한다. 구석구석 꼼꼼하게, 어서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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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빨강은 없다 -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고 32
김경서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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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사로 일하면서 제일 곤란한 지점이 이렇다 할 미술 교양서가 없다는 거다. 물론 ‘청소년을 위한’ 미술 교양서가 여럿 있지만 대부분 미술사의 흐름을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친다. 미술 ‘지식’이 아니라 미술 ‘관점’을 알려주는 책은 그간 전무했다. 그래서 내가 한번 해볼까? 시도한 바가 있지만 결과는 글쎄? 잘 모르겠다. 아직 내 안목이 부족해서인지 ‘관점’을 조목조목 글로 설명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중등미술교육연구회 카톡 창이 들썩들썩했다. 카톡 프로필로만 알고 있는 ‘높은 미술 교사’ 불광중학교 김경서 선생님이 새 책을 내셨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링크에서 서평단 신청을 했다. 어서 읽고픈 마음과 달리 책은 빨리 오지 않았다. 각대 봉투 한 장뿐인 부실한 포장 덕에 상단 표지가 찍혀 찌그러졌지만 빨간 쇠라 그림 표지가 참 예뻤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는 모두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아름다움을 경험하다》, 2장 《아름다움을 표현하다》 3장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미술교육과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개의 분류가 국민공통기본 교육 미술교육과정의 《체험》, 《표현》, 《감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책은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하다. ‘교과서에 다 담지 못한 미술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분절된 교과서 이미지와 정보가 아니라, 교과서 안을 잇는 뼈대 이론이 책 내부를 관통한다. 즉, ‘흐름’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림 한 장 한 장의 정보도 담겨 있지만 흐름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기회다. 『똑같은 빨강은 없다』는 교사와 학생 ‘보라’의 대화를 통해 이 기회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내게 가장 반가웠던 부분은, 미술교사라면 누구든 속터져하는 “저는 미술에 재능이 없어요” 폭격에 속시원한 대응을 조목조목 서술해두신 것. 

“선생님이 만난 청소년들 중에는 자신이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꽤 많았어. 나는 이 점이 매우 안타까워. 소질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반드시 뛰어난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거든. ‘소질’의 한자는 흴 소(素)에 바탕 질(質)로 꾸미지 않은 바탕 그대로의 성질을 의미해. 그러니까 소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개성을 말하는 거야. 창작에서 중요한 것은 각기 다른 소질을 어떻게 온전히 드러내는가에 달려 있어. 소질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면 누구나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 아닐까? 더구나 지금은 다양성에 가치를 두는 시대잖아.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거야.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역시 베테랑 선배가 최고다, 진짜진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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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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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한 작가의 전 작품을 읽는 ‘전작주의(全作主義)’ 요건을 충족하는 첫 저자가 생긴다면 아마 오찬호일 것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부터 『진격의 대학교』,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등 오찬호 작가의 책을 대부분 읽어왔다. 꼭 다 읽어야겠다는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어떻게 읽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아마 저자의 관심사와 나의 관심사의 흐름이 비슷해서일 것이다.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역시 그랬다. 공감(共感), 주주루 펼쳐본 책 초반부가 특히 시선을 끌었다. 
 
어느덧 ‘비혼(非婚)’은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 대학 때 친구들은 페미닌 스타일로 야단스레 꾸미기 좋아하는 내가 제일 먼저 결혼할 거라며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사회생활 친구들은 교사가 일등 신붓감 1위라며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산다. 일단 혼자다. 
 
결혼한 친구들은 내가 부럽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도 내가 부럽다고 한다. 네가 제일 팔자가 좋다고 뭐라 한다. 이도 저도 어렵다. 왜, 타나베 세이코가 말하지 않았던가, “혼자 산다는 건 어렵다. 오해받기 쉽다. 고영오연(외롭고도 도도)하게 살지 않으면 모욕을 당한다. 그러나 또한 어딘지 조금 애처로운 데가 없으면 얄밉게 보인다. 그러나 또한 너무 애처로운 티를 내면 색기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균형이 어렵다.”라고. 그들의 힐난에 어려울 때마다 고민해도 답은 하나다, 정말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오찬호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초반부는 이런 내 결정을 속 시원하게 정리한다.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미혼자에서 비혼자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찾아보면 ‘대한민국에서 결혼한다는 것’에 어떤 공포가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비혼자들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지금은’ 스스로 결혼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지만 ‘직전까지’는 결혼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 허우적거렸음을 인정했다. 자신이 사회적 거세를 당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설마 내가 처음부터 비혼주의자였을까, 나는 그저 타협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만큼 비혼자들은 연애-결혼-출산에 대해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한 사람이다.” “비혼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불안해했는지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연애하고 결혼하고 출산하는 고충을 이야기했고, 자신의 비혼 결정에는 ‘억울하기 싫다’라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직 결혼을 전제로 한 남녀관계에서 남자는 갑이다. 소개팅 첫날에 대뜸 들은 말들은 가관이다. “우리 집은 제사가 아주 여러 번 있어요.” “우리 집은 휴가 때마다 온 가족이 큰 펜션을 빌려서 여행을 가요. 배 좋아하세요?” “어머니가 귀농하셔서 농사지으세요. 추수철에는 매주 며느리들이 내려가서 일 도와요.” “서울에서 선생님 하시는데 지방(경상도)으로 내려오실 생각이신 거죠?” 그들은 이런 말들이 얼마나 일방적이고 뻔뻔스러운지 인지하지 못했다. 약간의 성 평등 의식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약간의 타협도 할 수가 없었다. 고려할 처지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이 책이 ‘부모’를 위한 책임을 고려할 때 나는 벌써 적합하지 않은 독자인 셈이다.   
 
사실, 이런 ‘비혼’ 이야기는 1장부터 6장까지의 대장정 중에 1장 만큼의 내용에 불과하다. 그러니 2장부터 6장까지의 강요된 모성, 이상적 육아, 유해하지만 유용한 사교육 내용은 내가 뼈저리게 실감하기에 어려운 것. 다만 간접 경험으로 실감할 수 있을 뿐이다. 간접 경험으로도 결혼과 육아는 숨이 턱턱 막힌다. 나 같은 이기적 인간, 개인주의자는 이미 일 년 만에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 그래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과 하고 싶은 게 결혼이지만 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이제는 설마 자신이 없다. 하물며 이런 책이야… 더욱 겉돌 뿐. 내 처지가 1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거지 2장부터 6장까지의 내용이 좋지 않다는 게 아니다. 결혼과 육아를 실감하지 못하지만 합리적 사고로 경험한 내용은 조목조목 훌륭하다. 특히 육아와 사교육으로 이어지는 분석들이 인상적이었다. 
 
번번이 느끼지만, 오찬호는 참 글을 잘 쓴다. ‘술술’ 읽히도록 글을 쓴다. 내가 우연히 그의 책을 읽어온 이유 중 절반은 그것일 듯. 대단하다, 늘 오찬호의 신작은 기대만큼이다. 이번에도 베리굿, 짱짱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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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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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에 대한 이야기다. 각자의 집을 회복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고 내려오는 이야기다. 목차는 단순하다. 먼저 1부 《집을 잃다》와 2부 《집으로》 그리고 3부 《집》. 세 이야기는 각각 1904년의 리스본, 1938년 포르투갈. 1981년. 캐나다에서 시작되고 다른 부(部)의 장소를 스쳐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향한다. 세 개의 이야기 사이에는 장소와 사람이라는 작은 연결고리가 있어 순차적으로 연결된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고미술 학예사 토마스, 두 번째 주인공인 병리학자 에우제비우, 세 번째 주인공인 상원 의원 피터. 공통점은 세 사람 모두가 가정을 잃었다는 것. 특히 지극히 사랑하던 아들과 배우자(配偶者)를 잃었다는 것이다. 이 상실의 이야기로부터 세 개의 이야기는 각각 시작되고 멋대로 흘러간다. 
 
토마스는 일주일 만에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를 잃고 신에게 대항하듯 거꾸로 걷는다. 이때 자기 마음을 알아줄 듯한 율리시스 신부의 기록물을 찾아낸다, 그 역시 아들을 잃었다. 그의 일기에는 빼곡히 ‘이곳이 집이다’라는 말이 적혔다. 그가 만든 십자고상은 어떠한가! 그는 이 보물을 찾아 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거기 어디 숨어있을 십자고상을 찾기 위해. 아들을 잃은 토마스와 아들을 잃은 신과, 그리고 또 아들을 잃은 누군가의 이야기가 거기 있다. 

노년의 병리학자 에우제비우에게 찾아온 노년의 여인, 아들을 잃은 충격과 함께 얼마 전 죽은 자기 남편을 부검해달라고 온 여자의 요구는 낯설다. 왜 그는 이토록 기묘한 일을 해야만 하는가, 그 역시 상실의 사람이었다. 

피터는 40년간 함께한 아내를 잃고 아들조차 고난 가운데 편치 못한 상황이다. 상원 의원으로서 제 역할도 못할 정도로 멘탈이 망가져 어디론가 떠난다. 그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하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 있는 투이젤루에서 피터가 찾아낸 대상은 누구인가? 그가 마지막 편안히 정착할 집은 어디(누구)인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 주인공 셋에게 ‘집’은 각각 사랑하는 이이며, 사랑하는 이를 완성하는 무엇이면서, 잃은 사랑 대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온기다. 
 
다시 그들의 가정(家庭)으로 돌아가자. 결혼은 자기 둥지를 만드는 것, 자기 집을 짓는 일이다. 언제나 내 마음을 안심하고 놓아둘 안전한 집을 짓는 것이다. 어느덧 결혼보다 동거로 시작하는 커플이 많아졌지만, 이제까지의 그 어느 시대보다 결혼이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왔지만 그래도 나는 결혼만이 줄 수 있는 제약 하나가 아름답다고 믿는다. 아침이 되면 두 사람이 각자의 일터에 가서 헤어지고 자신의 삶을 살지만, 밤이 되면 그 사람이 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그것. 그것처럼 따뜻한 것이 없다. 
 
이 따뜻함을 잃었을 때, 어떤 사람은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한다. 거기 가면 이 집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 듯이.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는 회복을 위해, 누군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얀 마텔의 서사 기법을 굳이 이름하자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일 터, 이 때문에 이 소설은 상징으로 가득 차고 명확하지 않은 해석과 해석 사이에서 독자는 헤맨다. 착각과 또 다른 착각, 애매함 가운데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안개처럼 뿌연 이야기 가운데 얽히고설킨 생과 사, 신과 신앙, 그리고 믿음. 사랑과 상실, 인간과 동물의 아이디어가 읽혔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내가 어느 정도로 오독(誤讀) 한 건지 좀 걱정된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다운 것이 환상의 세계다. 잘못 해석해서 더 재미있는 것이 이러한 세계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세 주인공에게 미지의 세계이며 환상의 장소다. 그러나 3부에서의 피터가 침팬지 오도와 함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올랐을 때 그는 의외로 실망한다. 거기 올라가 봐야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간절히 원한 것임이 분명한 일은 마침내 그곳에서야 일어난다. 그가 늘 오도와 산책하며 오르내리던 그곳에서. 
 
그렇다면 이것이 믿음인가? 간절한 소망, 나의 안식이 나의 일상 가운데 이루어지리라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 에우제비우의 아내 마리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슬픈 사실은 의사들이 뭐라고 하든 자연사는 없다는 점이에요. 모든 죽음은 살해로, 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죠. 바로 자신의 죽음 말이에요. 그게 우리의 운명이에요.” 확실한 건 딱 하나, 이 운명뿐이다. 이 운명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도 믿음에도 슬프도록 절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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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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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라는 충격적인 제목은 한 번 스치기만 해도 벌건 상처를 입힌다. 내게는 ‘비호감’에 가까울 정도로 아픈 제목, 굳이 들추어보지 않아도 아이에게 남았을 끔찍한 상처를 읽는다. 역시 그렇다, 이 책의 주제는 ‘아동 트라우마’다. 그중에서도 학대의 기억이다. 물론 작은 트라우마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영아기와 아동기는 결정적 시기다. 이 시기에 인체는 급성장을 이룬다. 그 몸에 지령을 내리는 뇌 역시도. 
 
『개로 길러진 아이』는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 소아정신과 전문의이자 아동 트라우마 아카데미 선임 연구원인 브루스 페리가 자신의 임상 케이스를 엮은 책으로, 뇌과학을 근거로 한 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끔찍한 체험으로 이미 변형되거나 미성숙한 아이의 뇌는 차후에 교정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이전의 학대를 불러일으킬만한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공격적‧회피성 행동을 보였고, 특히 방치 아동은 감정의 교류가 불가능한 부작용을 보였다. 심각한 경우에는 의학적 치료나 교정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뇌가, 마음이 망가져 버렸다. 
 
번번이 자극적인 용어에 시선이 걸린다. ‘소시오패스’ 이들의 지적 능력은 대개 뛰어나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쉽게 기억한다. 겉으로 보기에 사회생활을 잘 (따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이득만을 계산할 뿐이다. 이 이득이 그들을 휘두를 때 사람을 끔찍하게 해치기도 한다. 이들은 현재의 과학, 심리학, 의학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아이의 뇌 성장에는 생후 3년, 결정적 시기가 중요하다.’ 생후 3년간 성인 두뇌의 85퍼센트까지 자라나는 이 뇌는 이 시기 적절한 자극을 순차적으로 받지 못하면 들쑥날쑥 불완전하게 자라날 뿐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교과서적 지식’이란 말이 정확한 게, 실제로 나는 이 정보를 ‘가정 교과서’를 통해 배웠으며 이후 삼십 년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지식은 명확하나 내 반응은 어떠한가. 나 역시도 가끔 묻는다. 왜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는 거지? 왜 이렇게 외로워하는 거지? 왜 이렇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거지? 왜 이 말에 필요 이상으로 상처 입는 거지? 왜 저 말에 욱하는 거지? … 물 흐르듯 살아가다가 편안함 대신 툭! 거슬리는 어떤 반응이 뛰어나올 때 나는 묻는다. 나에게 이와 관련된 상처가 있었던가?
 
비교적 평탄한 환경에서 자라난 나조차도 겪어온 크고 작은 상처를 확인한다. 그러니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은 어떠할까. 브루스 페리가 만난 아이들은 어렵게 상담을 결정한다. 그들에게 치료를 결심하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의사조차도 신뢰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임상 사례에 실린 아동들은 대부분 성공 케이스다. 기를 쓰며 자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완벽히 편안해질 수 없다. 불에 덴 듯한 고통이 뜨끔한 고통으로 줄어들 뿐이다. 언제나, 별수 없이, 평생 자기 상처를 확인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 그들에게 사회적 관계에서 보통의 반응을 기대하는 게 정당할 리 없다. 그걸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그러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의 이마에 ‘아동학대 피해자’라는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 정답은 하나다, 그저 일단 따뜻할 뿐. 그 누구라도. 
 
우리는 늘 급하다. 먹고사는 일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도. 책을 덮으며 나는 내 마음도 먼저 다독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있다. 마음에 난 스크래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수이 아물지 않는다. 뇌의 푹 꺼진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게나 타인에게나 차근차근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지금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천천히, 원래 그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소망한 것은 하나, 누군가와 단단한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따뜻한 울타리와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고 싶다는 것뿐. 아이거나 어른이거나 어떤 방식으로건 내가 결정한 관계라면 그렇게 해 주고 싶다. 나 하나라도 그런 환경이 되어 주고 싶다. 나 하나라도 백 명의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 무엇이 되어 주고 싶다. 이 마음이 거짓이지 않기를 오랫동안 바라 왔다. 나는 이 마음을 믿는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가장 좋은 치료는 ‘치료하지 않는 것’임을 배웠다. 대신 자연스럽게 나와 같은 치료사와 아이, 숙모와 겁에 질린 소녀, 조용한 텍사스 경찰과 흥분하기 쉬운 소년 사이에 건강한 관계를 형성시키는 것이 가장 좋다. 다윗 파의 악몽 후 가장 회복이 빨랐던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은 아이도, 수용소에서 우리와 가장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던 아이도 아니었다. 바로 사건 후 가장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환경으로 가게 된 아이였다. 그것이 여전히 다윗 파의 방식을 믿는 가족이든 코레시를 완전히 배척하는 보호자든 마찬가지였다. 사실 심각한 트라우마 피해 아동에게 가장 효과적인 치료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은 아이의 삶에서 관계와 질의 수를 증가시켜 주는 것이다. 또한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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