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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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6권은 꽉 채워 온 동네 애정사다. 특히 마음 정한 서희의 강력한 액션거기에 폭발하는 길상의 액션이 엄청나다지금도 처지가 다른 남녀의 결합은 어렵기 그지없다신분제가 남았던 예전에는 어떠했을까갈등갈등 그리고 또 이도 저도 못하는 갈등길상의 내연녀 옥이네에게 찾아간 서희는 거기 두고 간 길상의 목도리를 보고 질투를 느끼고 돌아온다길상은 이에 만취해 최서희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천하를 주름잡을 텐가어림도 없다!” 서희 앞에 막말을 쏟아내고 서희 역시 패악한다새로 사 온 목도리를 집어던지면서난 길상이하고 도망갈 생각까지 했단 말이야다 버리고 달아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단 말이야.” 
 
다음날 얼굴을 마주 볼 수 없는 두 사람다 끝난 줄 알았던 관계는 의외의 사건으로 확고해진다용정행 마차 사고이를 통해 길상은 종신 종놈이 되어서라도 서희 곁에 있고 싶은 게 너 본심 아니었나안 그렇단 말이냐떠난다 떠난다 하면서 왜 못 떠나지?” 서희를 떠날 수 없는 자기 운명을 인정하고 그에게 일생을 걸기로 한다서희의 야망을 위한 것임을 다 알지만 서희가 뜻하는 대로
 
사랑은 교통사고라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가벼락같은 사고 때문에 크게 다친 서희는 대신 원하는 것을 얻는다길상 역시 바라던 것을 얻는다순결하지 않아도 뜨겁게 열망했던 곳으로 간다천재지변조차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이 잔인한 세상이 극한으로 칼을 휘두르다가도 한 번쯤은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도 있다는 거다만신창이 사람의 생은 내일을 알 수 없어서 하루 더 살아볼 만하다마침 피투성이 마음이던 나는 이 사고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또 다른 사고가 와도 나는죽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다끝끝내 무엇인가를 얻고야 말 것이다
 
"길상의 사랑이 범상한 남녀의 사랑일 수 없게 잘 조련되어온 것이었다 할지라도관음상(觀音像)을 향해 느끼듯이전혀 일방적이요 정밀한 그런 유의 사랑이었었다 할지라도어느 날 갑자기 그 대상이 이쪽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무상(無償)에서 보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일이요 상대의 고통이 고통으로 오되 희열이 따를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그런데 길상은 왜 절망하는 것일까견디기 어려운 오뇌 속으로만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더이상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이상현은 빙빙 돌다가 떠나고 말았다그들의 접근할 수 없었던 거리는 길상과 서희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서희의 대상으로서 상현은 사모(思慕)와 기혼자(旣婚者), 이 두 상극 선상(相剋線上)의 존재요 길상은 야망(野望)과 하인(下人),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상극된 것은 아니다야망은 불순물이다불순물은 혼합될 수 있는 것이다상현과 사이에 질러놓았던 지름목은 길상과 서희 사이에는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드러내려는 서희의 모험을 길상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서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던 그러나 길상은 그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다서희와의 거리는 절체절명의 것이다왜냐자존심 따위사내로서의 오기 따위 그런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사랑의 순결 때문이다순결을 지키고 싶은 때문이다대체로 길상의 심정은 이런 정도로 밝혀볼 수 있겠고 서희의 경우길상이 생각했던 것처럼 서희 역시 그렇게 믿고 있음이 틀림없다시초부터 야망의 수단이 아닌 길상과의 결합은 가능할 수 없었다적어도 길상과의 결합에 그것 이외 어떤 구실로 서희는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었겠는가자식을 버리고 구천이를 따라간 생모를 생각해서라도그렇다면…… 서희의 보다 깊은 영혼 속에는 숙명적인 길상과의 애정이 잠을 자고 있었다 할 수는 없을까무시무시한 내적 투쟁은 과연 야망의 좌절에서만 빚어졌다 할 수 있을까강렬한 질투강렬한 패배감광적인 증오심." 
 
서희에게 거절당한 상현은 조선으로 돌아와 마음잡지 못하고 헤매고길상의 일편단심으로 간도행에 따르지 않은 봉순기생 기화를 만나러 간다별당아씨를 떠올리며 세상을 원망하는 환이는 진달래 화전 같은 사랑의 흔적을 떠올린다그는 윤씨부인이 남겨준 혼수’ 땅문서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쓸 것이다조준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정한조의 아들 석이가 등장한다아비 없이 고생하던 그는 구원 같은 손을 붙잡고 의병 내에서 자기 자리를 잡는다.
 
토지 6을 끝맺으며 깨달은 것, ‘Love is Everywhere’. 역시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록 모든 사랑이 따뜻하고 포근하지만은 않을지라도사랑의 속성은 본디 고통이다그걸 알아버렸다그래도 사랑은, 어떻게든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 살아간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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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5 - 2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5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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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에서의 삶토지 2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하동 평사리 사람들은 용정에서 삶을 다시 일군다눈에 띄는 건 열아홉의 서희다. 1부에서 철없는 모습도 보이던 위엄있는 소녀는 사라지고어느덧 불편할 만큼의 위엄을 지닌 성인이 되었다이제 여자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그러니 서희의 속내애정사가 등장하며 나는 당황할 수밖에서희는 사모해 온 상현에게 큰 상처를 주고길상은 봉순에의 그리움과 서희에의 숭배 안에서 절망하며 과부 옥이네와 살림을 차린다
 
지위와 미모위엄으로 자기를 싸맨 여자들은 어떻게 사랑하는가대개 그들은 애정운이 없다대상에 있어서도 환경과 타이밍에 있어서도. 물론 자기에게 진실하지 않아서의 이유도 있다, 꽤 크다. 이상현과 서희의 속내가 드러날 때 얼마나 놀랐는지이상현에게 의남매를 제의하며 길상을 언급할 때 또 얼마나 놀랐는지아무리 생각해도 참 못됐다상현에게 솔직한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괴롭히고 굴복하게 하기 위한 꾀라니이건 비참해도 너무나 비참하다상현 뿐 아니라 서희에게도모두에게 비참하다
 
이상현을 생각할 때면 서희 마음에는 분통이 치솟는다불이 난 뒤 집을 짓고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그런데도 상현은 그동안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서희는 옹졸한 위인 같으니라구 하며 마음속으로 경멸을 했으나 무시하는 마음은 잠시였고 매일 투지에 가득 차서 상현을 기다리는 것이었다자존심을 빡빡 긁어놓은 사내나타나기만 하면 내가 받은 상처의 열 배 스무 배로 갚아주리니서희의 기다림은 순전히 그 보복을 위한 정열로써 지탱되어 있었다때로는 자기 처지가 그러하니 애써 피하는 거라고 자위를 해보기도 했으나 그런 이해심보다 노상 앞질러 달아나는 것은 자기 위주의 철저한 이기심이었다
 
서희는 자신이 결심한 대로 처신할 것을 믿어 의심한 일이 없다상현과의 애정의 갈등에 있어서도 어떤 결과를 가져 올 것이냐그 해답은 이미 작성된 바이었고 수정할 생각은 없는 것이다그 점에 있어서도 서희는 자기 결단에 의심을 품은 일이 없다설사 상현이 이성을 잃고 결사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서희는 결코 그와는 인연을 맺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땅 속에 뿌리를 박은 바위만큼 움직일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서희는 자제심을 잃지 않고 자기와 마찬가지로 뻗대어보는 상현이 괘씸한 것이다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고 그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우리가 혼인을 못하는 이유는 그대에게 있고 내게 있는 게 아니다하니 그 보상은 그대가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어찌 나와 같이 겨루려 하는가서희의 생각은 바로 그것이었다굳게 지키는 성이라 하여 어찌 창을 들고 한번 휘둘러보려 하지도 않느냐휘둘러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서서 아리송한 태도만 취하는 상현이 노여운 것이다휘두르고 달려드는 창을 서희는 분질러버림으로써 애정을 확인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남겨놓고 끝장을 내고 싶은 것이다서희는 그러한 자신의 욕망을 깊은 애정으로 믿고 있었다
 
최서희를 스칼렛 오하라에 빗댄 곽아람 작가의 비유가 떠오른다역시 짝 있는 남자를 오랫동안 사랑한 스칼렛그녀 역시 애슐리를 평생 바라보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아주 가까이곁에서의남매가 되어서라도 그 사람을 끝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비난하겠는가표현은 잔인했지만 그래도 나는최서희가 그렇게까지자기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정도로 상현을 사랑했다고 믿고 싶다
 
어느 물체를 만졌을 때 확실히 손에 잡혀지는 감촉만큼 서희는 자신의 직감을 언제나 신봉한다내 직감이 한 번이나 빗나간 일이 있었던가틀림없이 길상에게 무슨 변화가 일고 있는 게야틀림없이 
 
그럴 리가 있나그럴 리 없지. ’ 권위의 깃털을 온통 세우고 공작새처럼 화려한 우월감과 표범처럼 표독스런 자부심을 환기시키며 발목이 묶인 길상을 눈앞에 보기 위해 서희는 신앙 같은 자신의 직감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맹렬히 닻줄을 감아올린다그럴 리가 있나그럴 리 없지아암 그건 이 더위에서 온 망상이니라망상이구말구네가 나를 떠나 어딜 간단 말이냐너의 이십칠 년의 세월은 나를 위해 있었던 거구 내가 세상에 나온 십구 년의 세월을 너는 내게 충성했었다더위에서 온 망상이야이부사댁 서방님이 떠난 후 내 마음이 허해진 탓이 아니겠느냐
 

서희에게 길상은 무엇일까집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뜨겁고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권위적이다토지의 스포일러는 너무나 다양하고 각각 유명해 앞으로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런 마음으로 정녕 결혼생활이 가능할까서희가 바라는 건 끝까지 길상이 자신에게 헌신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계속 아가씨와 머슴처럼 살아갈 수 있는. ‘당연히’ 자신에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물론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 박에스더 역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박에녹과 결혼했다자신을 여자로 제한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그러나 미국 유학 내내 에스더를 위해 헌신한 박에녹이 죽자 그녀가 얼마나 큰 후회를 했었던가그런데 지금 최서희의 의도는 아무리 봐도 사랑스럽지 않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남자를 선택한다여자는 자기를 안 좋아해도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내가 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후회해.” 너무 일반화된 통념이라 어찌 반박하기도 어렵다물론 이 순간 NOW, 지극히 현실적이다그러나 아무리 이상이라 하여도 우리가 꿈꾸는 결혼은 같은 눈높이를 가진 이와의 마주봄이 아니던가길상은 속내를 쏟아낸다의리가 아니란 말입니다상전에 대한나를 길러 준 데 대한 의리가 아니라 그 말입니다서희애기씨는 보물입니다연꽃이지요.” 이런 길상을 선택할 수 있는’ 서희의 처지가 부러워야 하는 걸까
 
금녀의 전신이 와들와들 떤다무서움 때문이 아니다환희다날아갈 듯금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한다 생각했으나 혀가 굳어버렸는지 말이 나오지 않는다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대체 당신네들은 뉘시오하고 물어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여인숙을 빠져나와 어두운 거리로 나왔을 때 금녀는 하늘의 별들을 우러러본다비로소 마음속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가는 곳이 도둑의 소굴이든 악마가 살고 있는 곳이든다만 김두수를 떠나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금녀는 정체 모를 두 사나이가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신비스런 존재로 여겨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나님 감사합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큰 약점인가절망에서의 탈출 뒤에 온 희열이란 또 얼마나 서글픈 찰나인가희망이 일렁이는 금녀 가슴에는 뜻하지 않았던 조바심이 아프게 저 바다의 파도가 방천을 치듯 쉴 새 없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빼앗길 그 아무것도 없는 사람에겐 불안이 없다지금 금녀가 가져보는 앞으로의 자기 운명에 대한 기대와 흥미가 과연 희망적인 것인지 그 어떤 실마리도 잡아보지 못한 채 방향도 알지 못한 채 악몽 속에 허덕여온 여자는 희망 그 자체를 겁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금녀에게는 절망 그 자체가 삶이었었는지 모른다순간 불꽃 튀기듯 뻗치어온 절망과의 대결그 긴박한 찰나 찰나가 삶의 증거였었는지도 모른다확실히 서러움이나 근심이나 불안은 절망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온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금녀는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는 오열을 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어떻게 살아야 해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5권의 말미에 눈에 띄는 건 금녀라는 뉴 페이스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이 여자의 생명력이 놀랍기 그지없다이는 임이네가 표출하는 악랄한 생명력과는 너무나 다르다대체 이 차이는 무엇인가생명을 믿는 것과 돈을 숭배하는 것그 차이일까임이네는 나날이 거인이 되어간다월선이의 이해는 어디까지인가임이네의 뻔뻔스러움은 어디까지인지 끝이 없다용이는 대체 어디 가 있는가현재 스코어 용이는 토지』 찌질한 주인공 1위다토지 인물사전이 출간될만큼 수없는 등장인물만큼 그들의 대화는 차지고 생각할 거리는 많고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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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현존에는 분명 그가 말한 위안이 존재했다. 그런데도.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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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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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책장에나 꼭 있다만 읽은 이는 별로 없다는 책의 대명사 『총, 균, 쇠』 나 역시 2013년에 구매해두고 가끔 들춰보느라 앞부분만 까만그래도 이번에는 꼭 읽고야 말리라 장장 열흘을 소모한 지지부진 총 균 쇠’가 드디어 끝났다참고문헌을 제외하고도 686페이지이건 누가 뭐래도 돌베개다벽돌도 아니고 베개아이고… 이 책 들고 다니느라 고생한 내 척추에 리스펙트. 그래도 정말이지 읽기 잘했다
 
『총, 균, 쇠』 읽기의 가장 큰 장벽은 지리에 쥐약인 내 머릿속과 상상력을 발휘할 틈이 없어 재미없기 그지없는 1장이다호모 에렉투스부터 크로마뇽인에게까지 이르는 인류의 탄생과 진화기. 2장은 그나마 좀 낫고 3장에 들어가면 조금 읽을 만해진 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등장하므로물론 그러다가 다시 수없는 예시의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간다그러다가 다시 이야기가 등장하고머리에 쥐가 돋는 예시를 억지로 읽다 보면 다시 이야기’ 그러다 간신히 19장의 끝을 맺는다물론 그 뒤에는 추가 논문과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 후기옮긴이의 말과 추천사까지 있다술술 읽히지 않아 속도가 안 났다. (물론 이건 지리를 싫어하는 내 취향 탓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많은 종이가 필요했을지 의문이다인간의 농경과 더불어 시작한 정착 생활로 인해 인구밀도가 증가하고 총과 균과 쇠와 문자와 기술 같은 문화가 효과적으로 발달했으며유라시아는 같은 위도 측의 동서 지형이라 이러한 발명품을 순식간 전파할 수 있었고 아메리카는 남북 지형이라 그리하지 못했다고아프리카는 중앙에 위치한 사막이 이를 가로막았다고물론 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3부 지배하는 문명지배받는 문명,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의 큰 흐름에 따라 환경 차이와 힘식량 생산과 가축화병원균-문자-기술-정부와 종교의 결합인류사의 사건과 연구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그럼에도 너무 많은 같은 개념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다그리고 중요제목에서 강조하는 과 과 만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과 영향력이 (한 사람의 결정 같은 우연까지도이 책의 메인 아이디어다그리고 나는 그것을 행운’ 하나로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그것은 지리적생물지리학적 우연(특히 두 대륙의 면적축의 방향야생 동식물 등때문이었다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P.591)
 
책을 끝맺는 부동산이란 단어에 빵 터졌고 곧이어 황망해졌다내가 종이책 대신 이북 사는 문제에 늘 농담처럼 내뱉는 부동산의 문제가 여기서도 적용된다는 말인가젊음의 한때 영국 유학을 계획하던 시절나는 내가 한국에 태어난 것을 미워했다누군가는 네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하라며 나를 비난했지만 그래도 나는 꽤 괴로웠다그때 나의 질문이 얄리와 뭐 그리 달랐을까왜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생활과 기회와 미래가 좁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형편없다. 생활과 기회와 미래라니 무슨! 직장 가까운 데 창이 크고 천정이 높은 널찍한 내 서재’ 하나 갖기만을 열망하며 살아가는 생활인인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의 영향력을 지우기는 힘들다생명의 영역에 있어서는생명 하나를 빼면 그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은 불공평하다심지어 그 생명에게 가닿는 시간마저도그러니 거기 휩쓸려 순식간 파묻히지 않으려연약한 생명 하나하나는 얼마나 순간순간 분투하고 있는가그 생각을 하면 안타깝고 쓸쓸해진다. 이 두꺼운 책, 『총, 균, 쇠』가 쏟아낸 거대한 역사와 과학의 분석과 서술 앞에서 나는 더욱 작고 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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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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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이는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사람 누가 뭐래도 ○○이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스무살 동갑내기 음악 동아리 친구들은 생일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주었다여럿이 나를 둘러싸고내 이름을 넣어서통기타를 탄력 있게 치며 서로를 바라보면서그때의 내 마음을 기억한다, ‘정말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마흔두 해를 살면서도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삶의 신산스러움을 나는 이 책에 그대로 쏟아부었다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다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걸까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 슬픔과 외로움을 간직하고 사는지…… 매몰차게 떨쳐버리려 해도 끈질기게 나를 움켜쥐고 있는 구생혹(俱生惑)’ 아무리 팔매질을 해도 허공에 던져버릴 수 없었던 해질녘의 하염없음.”(P.11) 
 
저자의 여는 글을 읽으며 그 때의 문답을 떠올린다. ‘정말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했던 내 소망을시간은 이십 년 가까이 흐르고나의 꽃은 아직 피어나지 못했다누렇게 시든 느낌으로 아직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다페이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저자의 종교성 때문이기도 하지만그보다는 저자가 인간의 생그 속성을 깊이 파악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동양화를 소재로 한 미술책이다동양화를 잘 모르지만 분위기만은 사랑한다수묵화에서 드러나는 깊이수묵담채화에서 드러나는 정갈함채색화에서 드러나는 열정과 성심그 모든 것에 나는 감동한다거대한 규모위대한 현실의 발현로 사람을 압도하는 서양회화와는 좀 다른 지점. ‘사람은 분위기가 다다라고 늘 부르짖는 나는 그림도 분위기가 다다라고 주장한다
 
그러하니 이 그림들은 모두 깊이 침잠한 슬픔에 대한 것이 아닌가그것도 저자의 신산스런 사건 하나하나에 두 팔 벌려 다가오는 그림들슬픔을 아우르는 슬픔의 분위기말로 옮기기 서러운 사건 사건 하나하나를 저자는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진솔함화선지에 물과 먹을 쓰는 대부분의 동양회화는 수정이 불가능하다한 획 한 획이 지나가면 그만인 것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저자가 자기 이야기를 이다지도 노골적으로 오픈해 준 것처럼덕분에 우리는 저자가 내 곁에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인물로 존경하며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이 사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에세이 전성시대다특히 미술에세이는 인기가 많아서 편집자들이 저자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매대에 깔린 책들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미술에세이의 미덕은 밝음이다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처럼 자신의 내면그 중에서도 깊은 슬픔을 노출하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읽고 나면 가볍고 환해지는 책들 가운데에 이 책은 지나치게 무겁다. 30대의 나 역시 이 책을 그냥 스쳤던 시기가 있다이제 40대의 나는 이 책을 지나치지 못한다깊은 슬픔그것만이 삶의 표제임을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아는 사람 그 누구라도이 책으로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파(新派)’도 필요한 시기가 있다누가 나를 쿡 찔러 주었으면 간신히 울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책은 과장 없이 슬픔에 정직하다그것보다 더 큰 당당함은 없다그래서고백컨대나는 몇몇 에피소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삶의 진실 앞에서 흘리는 눈물순간이어도 이 눈물은하루를 견디기에 간신히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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