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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ㅣ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누가 뭐래도 ○○이는 꽃보다 아름다워 /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사람 / 누가 뭐래도 ○○이는 꽃보다 아름다워 / 노래의 온기를 품고사는 /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스무살 동갑내기 음악 동아리 친구들은 생일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주었다. 여럿이 나를 둘러싸고, 내 이름을 넣어서, 통기타를 탄력 있게 치며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때의 내 마음을 기억한다, ‘정말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마흔두 해를 살면서도 결코 표현할 수 없었던 삶의 신산스러움을 나는 이 책에 그대로 쏟아부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했다. 그런데 정말 아름다운 걸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 슬픔과 외로움을 간직하고 사는지…… 매몰차게 떨쳐버리려 해도 끈질기게 나를 움켜쥐고 있는 ‘구생혹(俱生惑)’ 아무리 팔매질을 해도 허공에 던져버릴 수 없었던 해질녘의 하염없음.”(P.11)
저자의 ‘여는 글’을 읽으며 그 때의 문답을 떠올린다. ‘정말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했던 내 소망을. 시간은 이십 년 가까이 흐르고, 나의 꽃은 아직 피어나지 못했다. 누렇게 시든 느낌으로 아직.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페이지마다 뚝뚝 떨어지는 저자의 종교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자가 인간의 생, 그 속성을 깊이 파악하고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맞을 듯하다. 동양화를 소재로 한 미술책이다. 동양화를 잘 모르지만 분위기만은 사랑한다. 수묵화에서 드러나는 깊이, 수묵담채화에서 드러나는 정갈함, 채색화에서 드러나는 열정과 성심. 그 모든 것에 나는 감동한다. 거대한 규모, 위대한 현실의 발현로 사람을 압도하는 서양회화와는 좀 다른 지점. ‘사람은 분위기가 다다’라고 늘 부르짖는 나는 ‘그림도 분위기가 다다’라고 주장한다.
그러하니 이 그림들은 모두 깊이 침잠한 슬픔에 대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저자의 신산스런 사건 하나하나에 두 팔 벌려 다가오는 그림들. 슬픔을 아우르는 슬픔의 분위기. 말로 옮기기 서러운 사건 사건 하나하나를 저자는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진솔함. 화선지에 물과 먹을 쓰는 대부분의 동양회화는 수정이 불가능하다. 한 획 한 획이 지나가면 그만인 것.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저자가 자기 이야기를 이다지도 노골적으로 오픈해 준 것처럼. 덕분에 우리는 저자가 내 곁에 함께 살아가는 한 명의 인물로 존경하며,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사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에세이 전성시대다. 특히 미술에세이는 인기가 많아서 편집자들이 저자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닌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매대에 깔린 책들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미술에세이의 미덕은 밝음이다.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처럼 자신의 내면, 그 중에서도 깊은 슬픔을 노출하는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읽고 나면 가볍고 환해지는 책들 가운데에 이 책은 지나치게 무겁다. 30대의 나 역시 이 책을 그냥 스쳤던 시기가 있다. 이제 40대의 나는 이 책을 지나치지 못한다. 깊은 슬픔, 그것만이 삶의 표제임을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픔을 아는 사람 그 누구라도, 이 책으로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파(新派)’도 필요한 시기가 있다. 누가 나를 쿡 찔러 주었으면 간신히 울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이 책은 과장 없이 슬픔에 정직하다. 그것보다 더 큰 당당함은 없다. 그래서, 고백컨대, 나는 몇몇 에피소드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삶의 진실 앞에서 흘리는 눈물. 순간이어도 이 눈물은, 하루를 견디기에 간신히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