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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평점 :
강의가 있기 전날이면 하루 종일 예민하다. PPT를 몇 번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 삽입한 동영상이 잘 돌아가는지 열 번은 넘게 재생해 본다. USB 몇 개에 파일을 옮겨놓고도 전전긍긍한다. 잠을 거의 못 잔다. 온몸에 가시가 돋은 듯 날카로워진다. 먼 거리 화성까지 가야 하는 스케줄을 앞둔 깊은 밤 펼쳐본 책, 『우울할 땐 뇌과학』의 어딘가에서 허탈함으로 빵 터졌다. “이 책을 내기 위해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 음, 그러니까 한 3초 동안? 그러고는 바로 내가 해야 할 모든 작업과 쏟아야 할 모든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뿐이었다. 맙소사, 내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몇 주 전부터 오늘까지의 내 모습 아닌가, 소속 지역 대표(?)로 강의해 달라는 부탁에 잠시 우쭐했다가, 계속해서 도착하는 피드백 이메일과 추가 정보 독촉 문자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불안해하며 겁내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는 혼잣말은 백 번도 넘게 했다. 물론 분명 괜찮게 할 거다. 그렇다, 나는 다분히 우울 성향이 가득한 유전자를 타고났다. 역시 내게도 뇌과학이 필요한 걸까?
책의 구조는 단순하다, 크게 전편과 후편. 1부는 우울증과 뇌신경과의 관계 이론(이해, 인정), 2부는 우울감에서 상승하기 위한 생활 속 구체적인 방법(운동, 의사결정, 잠, 습관, 바이오피드백, 감사, 사회적 지원, 전문적 도움)이 담겼다. 이 중 다섯은 표지에도 간단한 그림으로 강조해 표현했다. 이렇게 구조가 정확한 책이 좋다. 저자는 아무래도 괜찮은 사람인 듯,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표현은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그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울증을 앓으면서 자기를 잘 다스리려 노력하는 이들은 꽤 매력적이다.
내가 생각한 『우울할 땐 뇌과학』의 핵심은 ‘신경가소성’이다. 뇌가 자주 사용하는 부위를 변화시키고 뇌의 작동 방법을 바꾸어주는 것, 그래서 하강 나선을 상승 나선으로 바꾸어주는 팁들을 적용해보면 된다. 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몸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움직여야 하고, 잠을 더 자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영업용 미소를 항상 띠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목석 그 자체다. 언제나 눈과 입이 곡선이어야 한다. 퇴근길에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 일, 자주 내쉬는 심호흡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은 내내 마음이 좀 텅 빈 상태다. 잃은 만큼의 만분지 일이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오지 않는다. “본래 뇌가 지닌 감정적인 성향은 우울증 상태에서 더욱 과장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뇌는 감정 정보를 더 오래 붙잡고 있다.” 그래서 그림에 집착하거나 글을 써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과잉된 감정을 주체를 못 해,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어서. 그런데도 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걸까.
엘릭스 코브는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 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 불안증에 걸렸든, 어딘가 아프든, 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P.17)라고 말한다. 100퍼센트 믿어지지는 않지만 저자의 다정한 말이 못내 고맙다. 마음이 배고픈 사람에게는 조그만 애정과 이런 온기가 절실하므로.
지금은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도 변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의를 집중하거나 의도적으로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거나 분명한 목적을 품고 감정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모든 일이 뇌를 바꾼다.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의 정수다. 마음을 사용하는 방식을 포함해 사람이 하는 모든 경험은 실제로 뇌의 활동을 변화시키고 평생에 걸쳐 뇌를 리모델링한다는 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이 의미하는 바다. (P.5)
우울증은 그저 항상 슬픈 상태가 아니다. 대개는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고 느낀다. 희망이 없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예전에 재밌어했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음식도, 친구도, 취미도, 기력도 급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기도 힘들다. 어떤 일도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잠들기 어렵고, 잠들더라도 계속 잠든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아픔과 통증을 훨씬 극심하게 느낀다. 집중이 안 되고, 불안하고, 수치스럽고 외롭다.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P.13)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 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 불안증에 걸렸든, 어딘가 아프든, 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P.17)
골치 아프게도 우울증은 단순히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수치를 높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의 일부이기는 하다. 세로토닌 활동이 늘어나면 기분이 더 좋아지고 목표를 세우는 능력과 나쁜 습관을 피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도파민이 많아지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즐거워진다. (P.36)
우울증에 걸렸다 하더라도 뇌에 흠이 생긴 게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P.51)
우울증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병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도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과 아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고독을 바라는 상태는 우울증에 걸린 뇌가 보이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다. 운동하기 싫은 마음이 운동하지 않는 상태를 고착시키는 것처럼 고독을 바라는 마음은 우울증을 더 고착시킨다. 이 책이 주는 뇌 과학의 매우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아무리 혼자 있고 싶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할 희망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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