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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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컬러감과 제목 디자인이 아주 눈에 띈다. 아기자기하니 고웁다. 그런데 부제가 영 에러다. 사람을 혹하게 하는 재미있는 제목과 겉돈다.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책이라는 부제가 너무 거창해서 어울리지 않는다늦깍이 아빠가 된 경제학자의 육아 에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우석훈은 결혼 9년 만에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사십대에 부모가 되었고 이 책을 낸 지금은 오십이라고. 나이가 드니 체력이 부족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육아의 많은 부분에 들이는 비용이 낭비라고 말한다그렇게까지는 필요없고 간소화하자고 한다본인은 길게 보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식이 남았다돈 들이지 않도록 비용을 가지치기하고가르치는 데 우선순위를 정한다사교육은 하지 않는다어떤 면으로나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효율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늙은 아빠의자기만의 방법을 적어놓았다이유식을 따로 만들지 않고 어른과 같이 만들어 나중에 다른 조리를 한다는 건 좋았다계속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생각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작품사진을 구하기보다 부모가 찍어주는 사진이 가장 나은 이미지라는 선택도 좋았다. 그 모든 면에서 끄떡끄떡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도 없고 아이도 없는 한 여성으로서는 솔직히… 너무 상상력의 여지 없이 좌파스러운 결정들이었다. (물론 우석훈은 이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이고 정서적 선택이라고, 다른 부모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결정하고도 마음이 허탈할 수가 있다. 돌잔치를 할 수도 있고 좋은 옷을 사입힐 수도 있지그런 데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 않는가사람은 보이는 데 위안을 얻는 존재니까너무 절약하자고만 하지 말지사람은 때때로 사치로 인해 숨통을 여는 존재니까...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은 우석훈 정도 되는 네임 밸류를 가지고도 아이를 기르른 데 돈이 부족해 고생한 이야기다. 부부는 많이 고생했다. 직업상 차가 필수불가결인데도 돈 때문에 차 한 대를 팔아서 몸이 고생했고생활비를 위해 품팔이(?)를 했다양육은 실로 살 떨리게 돈이 엄청 드는 일이다저 정도 네임 밸류를 가진 학자가 그렇게 힘들다니 우리 나라 학자들은 다 어떻게 사는 걸까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둘째 아이의 건강이었다. 둘째아이가 아프자 들게 되는 각종 비용에 시달린다. 아내도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 매달려야 했다. 경제적인 사정은 내내 어렵다. 나중에 그는 장()을 모두 그만두고 전통적인 안사람 역할을 도맡는다요즘 말로 하면 라테파파랄까. 그래도 벌이가 나은 아내가 일을 지속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한국 남자에게, 특히 나이든 한국 남자에게 그게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읽는 것만으로 좋았다. 윗 세대 아랫 세대를 다 훑어봐도 어디 가서 구하기 힘든 남편이다아주 훌륭한 우렁 신랑이다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초창기에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가장 힘든 시기에 아이를 키우는 데 혼신을 다한 것은 그의 아내가 아닐까. 심적으로도 더 힘든 것 엄마 쪽이 아닐까. 물론 우석훈이 유명한 경제학 작가라서 이런 책을 쓰는 것이지만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이렇게 보이는 건 내 비뚠 눈길일까남편보다 아내가 이 책의 앞부분을 더 깊이 저술하고 남편 경제학자가 그 인사이트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했으면두 사람이 공저자가 되었으면 어땠을까아니그랬다면 지금보다 책이 화제가 덜 되었으려나내가 읽은 이 책의 우석훈이라면 이런 내 비쭉거림에 맞다라고 웃어줄 거라 믿는다내가 읽은 그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빚 진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천국문과 지옥문을 동시에 여는 것과 같다라는 대목아이를 낳는 데 얻은 행복의 솔직함이다. “아기를 키운다는 건 천국과 지옥 사이를 매순간 널뛰기하는 것과 같다너무너무 행복하거나그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은 불행한 느낌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것.”이라는 그의 고백에 고마움을 느꼈다요즘 수많은 기혼자들이 내게 뭐라 한다결혼하지 않은 게 좋은 거라고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고싱글인 걸 고맙게 여기라고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한다그들이 겪는 재앙 같은 행복이 그들을 웃게 한다는 걸재앙도 행복도 없는 사람들은 마음을 어디에 걸어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기만 한다는 걸그들의 살아야 할 이유가 때때로 무지 부럽다는 걸
 
어찌되었건 이 험한 세상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행복을 경험하는 그는 행운아다. 자기 주관대로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면에서 그는 승자다. 출산과 육아에서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인간이지만 어떠한가,가끔은 이런 육아 곁눈질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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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미술관 - 사랑하고 싶은 그대를 위한 아주 특별한 전람회
이케가미 히데히로 지음, 김윤정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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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보고 알았어야 했다이번 책도 나와 잘 안 맞을 거라는 걸잔혹미술사관능미술사등을 쓴 이케가미 히데히로가 그다이상하게도 일본 사람들이 쓴 서양미술책이 나와 잘 안 맞는다그들은 넓게 보기보다 좁고 깊게 파고들어간다신기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놀랄 만큼 기괴한 이야기도 일본의 미술사학자를 통해 꼭 듣게 된다
 
책의 초반부는 솔직히 지루했다주로 유명 명화를 중심으로 다루어 설명한 앞부분은 나름 미술책을 읽어온 내게 새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카미유 클로델과 로맹피카소와 그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제우스의 바람기큐피트와 아프로디테와 마르스아폴론과 다픈에 이야기는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솔직히 이쯤에서 덮을까 싶었을 정도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작가의 진가(眞價)가 드러난다이 책에서의 사랑은 Emotion 이기도 하지만 Making Love이기도 했다곧이어 사랑의 사회적 모습법률적 인정과 모양새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그는 구애와 약혼결혼이혼과 사별이성애와 동성애 등 사랑의 각양 모양새를 파고들어 서술한다이제야 처음 보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중세 수고본(手稿本및 타피스트리푸셀리의 수채화미켈란젤로의 스케치로마 에트루리아 미술관의 부부 석관크리스토프 솔라리의 <루도비코 스포르차와 베아트리체 데스테의 모뉴멘트(부부 석관)> 등은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보는 데에는 지식이 필요없다그러나 그림을 좋아하게 되면 지식을 갈구하게 된다전공자가 아니라도 미술책을 찾아 읽으면 원하는 만큼 그림을 볼 수 있는뒷받침이 가능한 지식을 쌓게 된다이케가미 히데히로의 사랑의 미술관은 그런 면에서 사랑이란 매력 포인트로 그림에 관심있는 이들을 매혹한다특히 사랑의 모습은 누구게에나 한 두 페이지씩은 걸쳐있지 않은가사랑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감정과 행동이 없다이 책은 하얀 플라토닉 러브부터 새빨간 육욕의 사랑까지 세세히 다룬다사랑에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인간을 유혹하기에 딱 알맞다기묘하게 살아 있는 저자의 글이 꿈틀거리며 일어선다내 불편함은 분명 여기서 기인했을 것이다일종의 열등감일 수도 있는사랑을 잘 모르는 자신 때문에어찌했거나 이 책은 좁고 깊이 파고들어간다는 면에서 정확하다. ‘사랑이라는 말을 쓸만한 책이었다표지그림으로 등장한 하예즈의 걸작 <키스>가 하예즈의 (대부분 못 그린그림들을 지워버린 것처럼사랑은 모든 것을 밟고 일어나 그것만으로 빛난다사랑은 승리다나 같은 인간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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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뇌 과학 - 최신 뇌과학과 신경생물학은 우울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앨릭스 코브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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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있기 전날이면 하루 종일 예민하다. PPT를 몇 번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한다삽입한 동영상이 잘 돌아가는지 열 번은 넘게 재생해 본다. USB 몇 개에 파일을 옮겨놓고도 전전긍긍한다잠을 거의 못 잔다온몸에 가시가 돋은 듯 날카로워진다먼 거리 화성까지 가야 하는 스케줄을 앞둔 깊은 밤 펼쳐본 책우울할 땐 뇌과학의 어딘가에서 허탈함으로 빵 터졌다이 책을 내기 위해 계약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날아갈 듯 기뻤다그러니까 한 3초 동안그러고는 바로 내가 해야 할 모든 작업과 쏟아야 할 모든 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고어느 순간부터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뿐이었다맙소사내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몇 주 전부터 오늘까지의 내 모습 아닌가소속 지역 대표(?)로 강의해 달라는 부탁에 잠시 우쭐했다가계속해서 도착하는 피드백 이메일과 추가 정보 독촉 문자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불안해하며 겁내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는 혼잣말은 백 번도 넘게 했다. 물론 분명 괜찮게 할 거다. 그렇다나는 다분히 우울 성향이 가득한 유전자를 타고났다역시 내게도 뇌과학이 필요한 걸까?
 
책의 구조는 단순하다크게 전편과 후편. 1부는 우울증과 뇌신경과의 관계 이론(이해, 인정), 2부는 우울감에서 상승하기 위한 생활 속 구체적인 방법(운동의사결정습관바이오피드백감사사회적 지원전문적 도움)이 담겼다이 중 다섯은 표지에도 간단한 그림으로 강조해 표현했다이렇게 구조가 정확한 책이 좋다저자는 아무래도 괜찮은 사람인 듯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표현은 유머러스하기도 하다그들은 믿지 않겠지만 우울증을 앓으면서 자기를 잘 다스리려 노력하는 이들은 꽤 매력적이다
 
내가 생각한 우울할 땐 뇌과학의 핵심은 신경가소성이다뇌가 자주 사용하는 부위를 변화시키고 뇌의 작동 방법을 바꾸어주는 것그래서 하강 나선을 상승 나선으로 바꾸어주는 팁들을 적용해보면 된다그리고 내가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하는 것은 몸의 문제였다무엇보다 움직여야 하고잠을 더 자야 한다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영업용 미소를 항상 띠고 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목석 그 자체다언제나 눈과 입이 곡선이어야 한다퇴근길에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 일자주 내쉬는 심호흡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은 내내 마음이 좀 텅 빈 상태다잃은 만큼의 만분지 일이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오지 않는다본래 뇌가 지닌 감정적인 성향은 우울증 상태에서 더욱 과장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뇌는 감정 정보를 더 오래 붙잡고 있다.” 그래서 그림에 집착하거나 글을 써보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과잉된 감정을 주체를 못 해,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어서그런데도 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걸까

엘릭스 코브는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불안증에 걸렸든어딘가 아프든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P.17)라고 말한다. 100퍼센트 믿어지지는 않지만 저자의 다정한 말이 못내 고맙다마음이 배고픈 사람에게는 조그만 애정과 이런 온기가 절실하므로

지금은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뇌도 변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주의를 집중하거나 의도적으로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거나 분명한 목적을 품고 감정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모든 일이 뇌를 바꾼다. 이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의 정수다. 마음을 사용하는 방식을 포함해 사람이 하는 모든 경험은 실제로 뇌의 활동을 변화시키고 평생에 걸쳐 뇌를 리모델링한다는 것이 바로 신경가소성이 의미하는 바다. (P.5)

우울증은 그저 항상 슬픈 상태가 아니다. 대개는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고 느낀다. 희망이 없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예전에 재밌어했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음식도, 친구도, 취미도, 기력도 급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기도 힘들다. 어떤 일도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잠들기 어렵고, 잠들더라도 계속 잠든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아픔과 통증을 훨씬 극심하게 느낀다. 집중이 안 되고, 불안하고, 수치스럽고 외롭다.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P.13)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 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 불안증에 걸렸든, 어딘가 아프든, 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P.17)

골치 아프게도 우울증은 단순히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수치를 높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의 일부이기는 하다. 세로토닌 활동이 늘어나면 기분이 더 좋아지고 목표를 세우는 능력과 나쁜 습관을 피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도파민이 많아지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즐거워진다. (P.36)

우울증에 걸렸다 하더라도 뇌에 흠이 생긴 게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P.51)

우울증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병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도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과 아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고독을 바라는 상태는 우울증에 걸린 뇌가 보이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다. 운동하기 싫은 마음이 운동하지 않는 상태를 고착시키는 것처럼 고독을 바라는 마음은 우울증을 더 고착시킨다. 이 책이 주는 뇌 과학의 매우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아무리 혼자 있고 싶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할 희망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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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 개항부터 해방 후까지 역사를 응시한 결정적 그림으로, 마침내 우리 근대를 만나다!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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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교육과정단 하나뿐인 국사 교과서를 달달 외워 수능을 보고 근현대사를 얕게 배운 세대가 나다변명 같지만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느라 물리와 지구과학근대사를 배우지 못했다언제나 역사는 내 구멍이다그러니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 만만했을 리가결코 두꺼운 책이 아닌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하나하나 치밀하게 짚어간 것도 아닌데도 낯선 사람과 사건들이 페이지를 넘기는 데 걸리적거려 고생해야 했다
 
이충렬그는 내가 가장 신뢰하는 평전 작가다유려한 글줄뿐 아니라 인물의 생을 짜임새 있게 설명하는 구조가 그의 최고 장점이다간송 전형필(김영사),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등은 예술 애호가와 예술가의 삶을 균형 있게 묘사한 전기다

과연 그답게 사료조사의 밀도가 대단했다다만 평전(評傳)이 한 인물의 생애를 한 권에 담았다면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은 꼭지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있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짜임새를 발휘하기에 미진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그럼에도 처음 보는 그림과 작가들저자가 기를 쓰고 수집한 당시 사진과 보조자료는 입을 떡 벌어지게 했다작년에 서울역사박물관이나 덕수궁미술관에서 본 전시가 그보다 먼저 책으로 만들어졌던 것 같았다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을 읽으며 새로운 화가를 여럿 발견했지만 굳이 가장 인상적인 화가를 하나 꼽자면 엘리자베스 키스(Eizabeth Keith, 1887~1956). 스코틀랜드인 키스는 먼저 일본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들른 한국에 반했다. 이즈음은 3.1운동 이후, 한국인의 존엄과 강인함이 생생하게 드러나던 시기였다. 그녀는 한국 사람에게 애정을 느꼈다. 직접 사람들과 어울리며 진짜 삶을 이미지화했다. 이후로도 자주 한국을 방문하며 독신으로 살면서 우리나라 아이들을 애정 어린 필치로 담았다. 독립운동을 하는 아들 때문에 고문을 당하고도 꼿꼿이 자존심을 드러내는 나이 든 부인, 빚을 지고 도망간 아버지 때문에 눈치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지켜온 궁중예복을 입은 프린세스, 비단신과 나막신을 만들던 갖바치의 모습을 수채화와 연필 스케치, 판화로 그린다. 한국에 올 때마다 감리교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의 어머니 집에 머물던 키스는 그러한 인연으로 홀이 시작한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을 그리기도 한다. 세 번이나 그린 그녀의 그림은 전 세계에 조선 고유의 실 이미지를 제공한다. 
 
처음엔 오리엔탈리즘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여성이 낯선 나라를 사랑했던 것은. 그러나 어떻게 보아도 그녀의 그림은 정성 그 자체다. 시혜나 동정으로 보는 것이 아닌 친밀함과 성실. 친밀한 재료와 소박한 기법이 키스의 부지런한 손길을 더 돋보이게 한다. 특히 그녀가 담은 조선의 여자와 어린이들은 연약하나 어리석지 않다, 부러지지 않으며 탄력 있다. 오래전의 그녀가 지금 역시 고마웁다. 
또한 반가웠던 것은 《이쾌대전》, 《변월룡전》, 《신여성 도착하다》 등 덕수궁미술관에서 보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그림들을 책으로 다시 만난 것. (물론 이 책이 전시보다 먼저 나왔다.) 좋은 그림이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은 복이다()은 더욱 힘써야 한다
 
요즘 더 생각한다자료 수집 능력 없이는 좋은 저자가 될 수 없다고이건 성실함과는 또 다른 능력이다인연(因緣)의 영역이고 인복(人福)의 문제다내게도 치밀한 자료와의 인연이 간절하다언제나 이충렬은 상상 이상이다,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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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인문학 - 가장 괜찮은 삶의 단위를 말하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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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혼자 밥 먹는다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당시 근무하던 회사 사장님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전혀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장래성 없는 사원 취급을 했다얼마나 기가 질렸는지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다그야말로 나 홀로 또라이가 문제가 되던 시절이다. 십년도 훨씬 넘은 시간이 지나 드디어 혼밥’, ‘혼술’, 혼닭’, 혼행’, ‘혼영 아무렇지도 않은 시대가 왔다. 명실공히 나의 시대가 온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나는 혼자다출근시간과 일하는 시간퇴근시간을 제외하면 늘 혼자다심지어는 점심시간마저도 부러 외톨이다사람들과 부대끼며 급식소에 있는 것보다 홀로 50분을 보내는 것이 훨씬 편안하기 때문이다그 시간에 나는 주로 책을 읽는다두유를 털어마시고 커피를 탄 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기도 한다책과 수저를 표지로 한 일인분 인문학은 처음부터 바로 내 이야기였다.
 
사실 일인분 인문학의 내용은 내게 새로울 것이 없었다다만 박홍순은 나날이 그림과 철학사회학과 문학을 연결하는 방법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최근작이 어김없이 그림으로 가득한 책들이다그의 글처럼 여유를 가지고 슬로 슬로 하게 유럽 미술관 앞에 호텔을 잡고 샅샅이 그림을 훑을 수 있는 삶이 지극히도 부럽다그의 예전 저작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던 그림들이 많이 빠지고 이제는 색다른 그림들이 책을 채우고 있다자신의 자리에서 프로가 된 사람은 다른 분야에도 재빨리 프로가 될 수 있음을 또 확인한다구석구석 그림을 잘 주물러 글을 쓴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고갱에 대한 그의 긍정적 해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솔로로 살면 슬로로 산다는 4장에 여러 가지 의미로 공감했다. ‘솔로는 세상의 과제에 맞출 필요가 없다바쁜 세상의 흐름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된다벌이를 조금 포기하면 효율성과 속도에서 떨어져 마음껏 숨을 고를 수 있다그러나 이게 어디 쉬운 선택인가당장 나라도 서울의 직장을 포기하고 산골짜기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조용히 살라고 하면 펄쩍 뛸 테니다만 언제든 지금 일을 그만둘 수 있음을현재의 벌이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인지하고 차후 홀로 설 준비를 찬찬히 하고 있다마음의 준비뿐 아니라 실질적 준비도

저자 박홍순은 이 책으로 혼자를 택한 사람들의 능동적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이 책은 내게 너무 늦게 온 것 같다돌아돌아 나는 혼자의 의미를 성실히 빚어왔고 혼자인 자부심을 그득 채웠다아주 오랫동안 자발적 외톨이로 살아온 내게 고독은 이미 충분하다외톨이 생활만큼은 프로 중의 프로다저자는 혼자가 더욱 충만하다 말하지만 나는 글쎄… 혼자의 시간을 잘 즐기다가도 얼핏 쏟아지는 공허는 인간에게 교감(交感)이 얼마나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알게 한다순간이나마 마음이 녹는 순간이 필요하다나머지 시간을 홀로 살아가기 위해서. 같은 식탁에서 일인분씩 만나는 이인분 혹은 삼사인분의 인문학도 분명 필요하다. 


단언컨대 내가 가장 공허하고 비참했을 때는 어른들의 압력으로 소개팅을 수행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단 한 번도 어김없었다타인의 억지와 세상의 틀에 나를 끼워 맞추려 자신을 가장했을 때였다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나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나 말고 어떤 것도 나를 인정할 수 없음을 너무 잘 안다저자는 스스로를 삶의 주인으로 세우려는타인 속에서도 외롭지 않은 개인으로 살아가려는 능동적인 한 명에게 우리는 더 관대해져야 한다.”라고 말한다그런데 사실... 그들이 내게 관대하지 않아도 나는 상관없다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그냥 나인 것으로 남은 생은 충분하다이것이 외톨이의 자부심이며 내가 끝까지 온전히 홀로일 이유이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시간과 공간의 주인일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유인이다. 자유인이란 자기 운명의 주체가 자신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중략) 혼족의 시간이 자기를 위한 시간의 확대로, 나만의 고독과 침묵으로, 나만의 독서로, 나만의 성찰로 이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인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P.36)

독서의 과정은 고독하다. 책과 단둘이 마주보고 실마리를 풀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책이라는 놈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세세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에게 실마리만 던져놓곤 한다. 작고 희미한 실마리를 붙잡고 혼자서 자기 힘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하지만 고독한 독서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생생한 현실 위에 세운다. (P.74)

오히려 혼자 내적으로 충만함을 갖추는 법을 깨우칠 때 결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발적으로 외톨이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예민한 감지기를 갖추고 있다.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시간으로 낭비하려 하지 않는다. (P.182)

전업 방식의 예술가만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사고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상당한 성취를 이루고, 자기만의 창의적 성과가 대중에게 인정을 받아 그 자체로 생계가 가능한 상태에 이른 극소수만 전업 형태를 가질 수는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고 견디라고 하면 안 된다. 또한 예술가 스스로도 이러한 오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립은 예술가만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 조건이다. (P.271)

그(니어링)는 너무나 많은 것이 낭비되는 현대인의 일상과 현실에 회의를 갖는다. 특히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생활 유지에 할애하면서 에너지와 재능을 낭비하는 삶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지닌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져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며, 관습에 얽매이고 체제에 순응하는 경향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는 순응과 예속을 떨치고 자기 삶을 보다 훌륭하고 풍요로우며 보람차게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에게 촉구한다. (P.281)

이 모든 방법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집단이나 타인에 의해 일을 박탈당할 우려가 적기 때문에 외부 압력으로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거나 활동에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큰 규모의 직장에 취업했을 때보다 확실히 수입이 적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박한 생활에서 만족을 구할 수 있는 확고한 자기 결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기의 만족을 풍요로운 소비와 풍요로운 정신에서 찾는 사람이어야 한다. (P.283)

소로우가 보여준 것은 불의에 저항하는 출발점부터 과정,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개인이라는 점이다. 개인은 국가나 다수에 의해 무력화될 수 없는 존재다. 개인의 동의에 의해서만 국가나 정부는 정당화된다. 시민 불복종은 주체로서의 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양심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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