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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 -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우석훈 지음 / 다산4.0 / 2017년 2월
평점 :
표지의 컬러감과 제목 디자인이 아주 눈에 띈다. 아기자기하니 고웁다. 그런데 부제가 영 에러다. 사람을 혹하게 하는 재미있는 제목과 겉돈다. “절망의 시대에 다시 쓰는 우석훈의 희망의 ‘육아 경제학’” 책이라는 부제가 너무 거창해서 어울리지 않는다. 늦깍이 아빠가 된 경제학자의 육아 에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우석훈은 결혼 9년 만에 부모가 되었다고 한다. 사십대에 부모가 되었고 이 책을 낸 지금은 오십이라고. 나이가 드니 체력이 부족해 너무나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육아의 많은 부분에 들이는 비용이 낭비라고 말한다. 그렇게까지는 필요없고 간소화하자고 한다. 본인은 길게 보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방식이 남았다. 돈 들이지 않도록 비용을 가지치기하고, 가르치는 데 우선순위를 정한다. 사교육은 하지 않는다. 어떤 면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효율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늙은 아빠의, 자기만의 방법을 적어놓았다. 이유식을 따로 만들지 않고 어른과 같이 만들어 나중에 다른 조리를 한다는 건 좋았다. 계속해서 아이와 놀아주는 방법을 생각하고 몸으로 부딪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작품사진을 구하기보다 부모가 찍어주는 사진이 가장 나은 이미지라는 선택도 좋았다. 그 모든 면에서 끄떡끄떡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도 없고 아이도 없는 한 여성으로서는 솔직히… 너무 상상력의 여지 없이 좌파스러운 결정들이었다. (물론 우석훈은 이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이고 정서적 선택이라고, 다른 부모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을 거라고 말했다.) 사람은 이성적으로 결정하고도 마음이 허탈할 수가 있다. 왜, 돌잔치를 할 수도 있고 좋은 옷을 사입힐 수도 있지. 그런 데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 않는가, 사람은 보이는 데 위안을 얻는 존재니까. 너무 절약하자고만 하지 말지, 사람은 때때로 사치로 인해 숨통을 여는 존재니까...
책을 읽으며 놀랐던 부분은 우석훈 정도 되는 네임 밸류를 가지고도 아이를 기르른 데 돈이 부족해 고생한 이야기다. 부부는 많이 고생했다. 직업상 차가 필수불가결인데도 돈 때문에 차 한 대를 팔아서 몸이 고생했고, 생활비를 위해 품팔이(?)를 했다. 양육은 실로 살 떨리게 돈이 엄청 드는 일이다. 저 정도 네임 밸류를 가진 학자가 그렇게 힘들다니 우리 나라 학자들은 다 어떻게 사는 걸까.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둘째 아이의 건강이었다. 둘째아이가 아프자 들게 되는 각종 비용에 시달린다. 아내도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 매달려야 했다. 경제적인 사정은 내내 어렵다. 나중에 그는 장(長)을 모두 그만두고 전통적인 안사람 역할을 도맡는다. 요즘 말로 하면 ‘라테파파’랄까. 그래도 벌이가 나은 아내가 일을 지속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한 남자가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한국 남자에게, 특히 나이든 한국 남자에게 그게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읽는 것만으로 좋았다. 윗 세대 아랫 세대를 다 훑어봐도 어디 가서 구하기 힘든 남편이다. 아주 훌륭한 우렁 신랑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난 초창기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가장 힘든 시기에 아이를 키우는 데 혼신을 다한 것은 그의 아내가 아닐까. 심적으로도 더 힘든 것 엄마 쪽이 아닐까. 물론 우석훈이 유명한 경제학 작가라서 이런 책을 쓰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이렇게 보이는 건 내 비뚠 눈길일까. 남편보다 아내가 이 책의 앞부분을 더 깊이 저술하고 남편 경제학자가 그 인사이트를 경제학적으로 분석했으면, 두 사람이 공저자가 되었으면 어땠을까. 아니, 그랬다면 지금보다 책이 화제가 덜 되었으려나. 내가 읽은 이 책의 우석훈이라면 이런 내 비쭉거림에 ‘맞다’라고 웃어줄 거라 믿는다. 내가 읽은 그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빚 진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천국문과 지옥문을 동시에 여는 것과 같다”라는 대목. 아이를 낳는 데 얻은 행복의 솔직함이다. “아기를 키운다는 건 천국과 지옥 사이를 매순간 널뛰기하는 것과 같다. 너무너무 행복하거나, 그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은 불행한 느낌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것.”이라는 그의 고백에 고마움을 느꼈다. 요즘 수많은 기혼자들이 내게 뭐라 한다. 결혼하지 않은 게 좋은 거라고, 아이가 있으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고. 싱글인 걸 고맙게 여기라고.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겪는 재앙 같은 행복이 그들을 웃게 한다는 걸, 재앙도 행복도 없는 사람들은 마음을 어디에 걸어두어야 할지 몰라서 헤매기만 한다는 걸. 그들의 ‘살아야 할 이유’가 때때로 무지 부럽다는 걸.
어찌되었건 이 험한 세상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행복을 경험하는 그는 행운아다. 자기 주관대로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면에서 그는 승자다. 출산과 육아에서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인간이지만 어떠한가,가끔은 이런 육아 곁눈질도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