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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 일단 소재부터 매우 흥미진진한데다가 재미까지 있다. 그리고 무척이나 놀라웠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놀라운 얘기들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뇌를 연구하는 저명한 학자조차도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나 몰랐다는 것이. 이상한 자기합리화 같지만 나는 여기서 큰 위안을 받았다. 그래, 내가 지금 나를 모르겠는 건 당연한거야! 자기계발서가 나쁜거야
저자는 의대교수로 재직중인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싸이코패스의 뇌를 봐달라는 의뢰를 받고 공통된 특징을 찾아 논문까지 썼는데, 다른 연구의 대조군으로 찍어놨던 가족들 뇌 사진에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의 뇌가 있었고, 그 뇌는 자기 자신이었단다. 이게 인트로다. 그 후 책은 '앗 그러고 보니, 앗 이런적도 있었지, 앗 그래서 그랬던 거였나'의 흐름으로 흘러간다.(저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통수를 몇번이나 맞는다. 아니 대체 주변에 수많은 심리학자, 정신의학자들이 있고 자신도 뇌를 연구하면서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신을 모를 수 있나 생각될 정도로. 까면 깔수록 나오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읽는 나조차도 놀랍다. 심지어 60대가 되어서야 알게되는 사실이다.)
대중에게 많이 쓰이는 용어인 것 과는 달리 학계에서 '싸이코패스'란 말은 의견이 분분하다. 명확한 것이 아니기에 싸이코패스적 특징을 완전히 다 갖고 있는 명백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다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은 아니란 얘기. 저자에겐 분명한 싸이코패스적 특징을 보이는 뇌가 있지만 결정적인 한 요소가 빠져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시절의 학대'. 그렇기에 그는 싸이코패스 통념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반사회적 성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무탈히 성공한 사회인이고, 의대교수인 뇌과학자이고,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가정도 꾸리고 잘 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까면 깔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싸이코패스적 특징(과 폭력 성향을 지닌 혈통, 그리고 정신장애)에도 자신이 앞으로 범죄자가 될 거란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가 나름대로 결론 지은 '세 다리 의자(두개는 뇌와 유전자의 특징으로 본성에 해당하고 한 다리는 '어릴 적 학대'로 양육에 해당)' 이론에서 자신은 분명하게 한 다리가 없으므로. 그리고 어린시절은 이미 지났기에 그 다리가 만들어질 일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것이므로. 그렇기에 그는 계속해서 밝혀지는 부합되는 특징을 발견해도 웃어넘길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동시에 과학자로서 그가 생각해왔던 것들도 전복된다. 양육과 본성 중, 본성(80%)에 많이 기울어져 있던 저울에서 자기 자신 만큼의 무게추가 양육 쪽으로 달리게 된다. 그 자신이 증거이므로. 그러나 이걸 양육이 본성을 이겼다거나 양육이 본성보다 크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그는 여전히 내재돼있는 사람이다. 다만 치명적인 반사회적 성향만 양육 덕분에 발현되지 않았던 것일 뿐, 그는 확실히 사고방식자체가 '보통사람'과는 이질적이다. 서문에 자신의 얘길 솔직하게 밝힌만큼 누군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하더니 책을 읽어보니 확실히 그럴만하다(그리고 몇은 떠났다).
싸이코패스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알려진 '타인에 대한 공감' 저자는 이게 없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그걸 몰랐다(원래 없는 사람에게 뭔가가 없다고 자각하기란 힘들다). 자신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이고 인기 많은 재미난 사람이었기에. (그동안 가까운 사람들이 그의 이질적인 특성을 무수히 얘기해왔지만 귓등으로 듣기도 했다) 자신의 뇌가 싸이코패스의 뇌라는 게 밝혀지고 그를 계기로 과거를 되짚어보다가 결국 인정한다. '아, 그래, 난 역시 타인에 대해 관심이 정말로 없던 거였어!' 이상하게도 난 여기서 웃었다. 뭔가 통쾌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타인을 공감하려고 노력하면 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그는 재확인 했을 뿐이다. '나는 정말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그건 바꿀 수 없는 사실이라고. 그러나 그는 이제 성의를 보인다. 흥미없는 모임에 참석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그렇지만 그건 그냥 맞춰주는 것 뿐이지 그가 바뀌려고 한다거나 바뀐 것은 아니다).
책의 마무리는 일종의 합리화처럼 읽었다. 싸이코패스에 대한 무시무시한 통념과는 달리 그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로 크는 것은 아니고,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라는 얘기(불필요했다면 세대를 거쳐 유전자가 없어졌어야 할 테지만 남아있다는 건 곧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이므로). 다만 위험한 특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정도의 얘기를 해준다.
범죄자로 만나는 싸이코패스의 말을 들어보면 확실히 인간의 선을 넘은(혹은 없는) 느낌이지만, 이렇게 사회적인 싸이코패스의 얘기를 들어보니 어떤 점에서 보통사람들과 사고방식의 차이가 나는지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시선이 다르고 느끼는게 다르니 생각도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뇌가) 다르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바뀔 순 없다' 그러나 '(친사회적으로) 다듬어질 수는 있다.'
+) 중간중간 뇌 스캔사진과 함께 생물학적 설명이 꽤 구체적으로 가미되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도식으로 알고 있던 것과 글로 접하는 건 역시 다르다.
과학은 어쩔 수 없이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 하더라도) 글보다는 도식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글 이해하면서 동시에 떠올리면서 읽느라 그 부분에서 좀 오래 걸렸는데
전문용어가 많으므로 딱히 이해가 안가면 그냥 날림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차피 결론은 굵은 글씨로 빠밤하고 표시되어 있으니.
(흐름에는 지장없다)
생물학용어가 번역이 잘 되어서
(역자가 제멋대로 작명하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이 책은 잘 번역됨.
그리고 영어를 옆에 계속 표기해주어 식별이 쉬웠다)
마지막에 역자를 봤더니 화학과 출신이더라. 어쩐지.
++) 책을 읽으면서 또 놀랐던 것 하나는, 아직도 뇌와 유전자는 연구가 덜 돼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의대 교수 조차도, 아직 많은 것을 모른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많은 것이 얽혀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결과로 원리와 작동방식을 추측하고 이해해보려고 할 뿐이다.
+++) 원제는 『The Psychopath Inside』인데 제목도 참 잘 바꿨다. 흥미유발로 딱인 듯.
+++) 혹시 인터넷에서 싸이코패스 테스트나 싸이코패스의 특성을 읽고 혹시...? 했던 사람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겠다.
주변에 짐작가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더.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