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dts, 2disc) - 할인행사
마이클 베이 감독, 벤 애플렉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진주만'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는 접해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특별히 내가 들어왔던 부정적인 평가가 진주만에 대한 내 생각의 근거가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실제로 접한 진주만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내용을 담고자 했다. 그 결과 엄청나게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스토리에 관객을 몰입시킬 수 없었으며, '재미는 없는게 길기는 더럽게 길다'(딴지일보)는 평도 받았다.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먼저 진주만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이 영화의 배경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진주만이 여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전에 사랑 이야기의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이에 두 친구의 우정 이야기도 그려야 했으며, 브리티쉬 항공전 이야기도 진주만 이전에 나왔다. 그리고 진주만이 끝난 이후에는 이듬해의 도쿄 공습 이야기도 들어가야 했고, 그 와중에 우리의 여주인공은 친구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정신없이 갈팡질팡한다. 그렇게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여주인공이 이해되기는 커녕 대체 몇 번이나 남자를 바꾸는 건지 어이가 없다.

아래 분의 마이 리뷰에서는 전쟁이 아니라 멜로물이라고 했는데, 이건 최근의 전쟁 영화의 기본적 추세이다. 무슨 말인즉 하니, 예전의 전쟁 영화는 전쟁 자체가 배경인 동시에 주제였다. 전쟁 속에서 인간성의 상실, 병사들이 느끼는 기본적인 공포 이런 것들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소재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최근에 발표된 전쟁 영화들에서 전쟁은 그야말로 배경에 그치고 있다. 다만 그 배경이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이 전쟁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블랙 호크 다운'은 단순히 전쟁 영화같지만 미군의 기본적인 정책 중 하나인 '조국은 너를 버리지 않는다'를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보다는 블랙 호크 다운에서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포로가 되었든 시체가 되었든 기필코 구하러 간다는 것이다. 한 명을 집에 보내기 위해 일곱 명이 사선을 넘어야 하는 정당성은 여기에 있다. 베트남전에서 버리고 온 미군 유골을 최후의 하나까지 찾아내는 그 집념은 미군 병사 개개인에게 항상 국가가 그를 보살피고 아낀다는 점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요인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한국 전쟁은 배경이다. 하지만 한국 전쟁이 배경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의 형제애, 민족 분단의 비극이 더욱 가슴 깊숙히 다가온다.

진주만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영화로는 '도라 도라 도라'가 있다. 이 영화의 배경과 주제는 모두 진주만 공습이다. 이 영화는 어떤 가슴 아픈 이야기를 넣기 보다는 차라리 진주만 공습 자체에 충실했다. 세계 최초로 항공모함을 이용한 공습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 일본, 어처구니 없이 선전포고 시간을 놓친 일본대사관의 실수, 안일한 자세로 아무 방비를 세우지 못했던 미국의 이야기를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영화이다. 그에 비해 이 영화는 제목이 진주만이면서도 진주만을 배경으로 다른 이야기를 잘 살리지도, 그렇다고 진주만을 잘 살리지도 못했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진주만 폭격장면이 아무리 멋있으면 뭐하겠는가. 그곳에서는 기껏해야 두 친구의 맹활약과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용감한 미군 병사만이 있을 뿐이다.

이 영화는 온갖 잡동사니 같은 이야깃거리를 4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에 대충 비벼넣은 후에 미국 만세라는 양념으로 마무리를 지은 잡탕 정도에 불과하다. 30분 정도의 멋진 장면은 먹음직스러운 외관 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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