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좋아하는 척해야 되는 일은 큰 스트레스다. 뭐든 같이 해야 되는 집단 문화 중에 우리나라의 가족 문화가 있다. 이것은 정말 고난도다. 거부할 경우 상당한 죄책감을 동반한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평범한 하루, 그런 날을 얼마나 보냈던가?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고 뒤로 넘겨버리는 그런 하루. 하지만 그 하루하루가 이제는 가장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대상이 돼버렸다. 단 하루만 과거로 돌아가 살 수 있다면 그는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날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하루를 택했을 것이다.
지금껏 나는 무슨 짓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 반희는 생각했다. 두려워 도망치고 두려워 숨고 두려워 끊어내려고만 하면서. 채운과 이어진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끊어내려던 게 채운에게는 수천수만 가닥의 실을 엉키게 하는 짓이었다면, 지금껏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온 것일까. - P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