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재발견 - 민주주의를 둘러싼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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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졌을 때 대개 사람들은 마치 ‘여우의 신포도 우화’처럼 상대방을 깎아 내린다. 더불어 상처 난 맘을 다른 이에게 위로받고 나만의 진짜 인연을 다시 꿈꾼다. 가령 실연당한 날, 친구에게 “그(녀)는 내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었나 봐” 하소연하며 “진정한 짝을 찾을 거야”는 희망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20여년, 우리는 정치로부터 실연당했다.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사는 게 점점 더 어렵기만 하다. 정규직인 것만으로도 사회 특권층이 될 만치 계약직이 고용 형태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빚 독촉을 피할 길은 자살 밖에 없는 사람들로 세상은 넘쳐난다. 이제 정치, 특히 민주주의는 날 버린 애인처럼 냉소의 대상이 되었고 배제된 자들은 ‘힐링 문화 상품’을 통해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소위 강단 좌파들이 최신 정치 철학을 소비하면서 진짜 정치를 찾는다고 분주하다.

 

박상훈은 <민주주의의 재발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때 이른 ‘냉소’와 진짜 민주주의를 찾는 ‘환상’을 비켜가며 우리가 그 동안 경험했고 또한 겪고 있는 민주주의 위에서 더 현실적이고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점과 시각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인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민주주의만이 참된 민주주의라는 게 아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제 각각이었으며 언제나 민주주의‘들’로 존재해 왔다. 문제는 이제까지의 논의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민주 정치를 개선하려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된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는 게 먼저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재발견>은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의 장을 재발견’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이론에 기대어 박상훈은 무엇보다 ‘갈등’을 민주주의의 엔진이자 존재 이유로 여긴다. 지역, 소득, 성, 고용 형태 등 각자 다른 사회적 차이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공적 의제에 대한 이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집단적 사회 갈등 때문에 불러들여진 정치체제다. 이 때 정당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고 사회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개인이나 다른 조직 형태가 아니라 그는 왜 굳이 정당을 강조하는가? “우선 사적 이익집단이든 공익적 시민운동이든 이들 사회집단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 갈등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갈등의 범위를 확대하자니 기존의 참여자가 줄고, 이들의 참여를 유지하자니 갈등의 범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공익적 목표를 지향하는 집단(우리는 이를 시민운동이라고 부른다)을 사례로 봐도 그 구성원들의 다수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적 배경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사회 하층은 정치적으로 소외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저발전은 정당을 매개로 ‘갈등을 사회화하는 데 무능했던 것’에서 초래된 결과다. 즉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의 분포와 정치 영역에 존재하는 갈등 분포가 어긋나 있는 것. 특히 한국의 정치는 가장 중요한 생산 집단이자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이해와 권리를 철저히 배제해왔던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였다. 심지어 “기대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비정규직은 최대로 늘었고, 소득 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으며 사회 하층의 빈곤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노동문제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다루는 실력만큼 정치가가 갖춰야 할 소양으로서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를 재편하고 민주 정치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안적인 정치 세력의 성장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박상훈은 촛불 집회 당시 풍미했던 민주주의관을 비롯해 민주당, 안철수, 진보 세력들이 그 동안 민주주의를 어떻게 잘못 이해해왔으며 정치적으로 무능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저자는 “촛불 집회를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로 해석하거나 대의 민주주의를 나쁜 민주주의의 유형으로 이해하면서 그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해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촛불 집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갖게 된 악순환 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집합적 열망의 분출 이후 그 에너지가 소진되면 다시 정치의 정체와 퇴행이 반복되어온 패턴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촛불 집회는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의 다른 얼굴이기에 현재와 같은 정당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운동의 지속만 강조하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운동이 강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나쁘다는 것을 말해 주는 지표는 되겠지만, 운동이 정치제체를 대신할 수는 없으며” 그것을 개선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라고도 불리는 “현대 민주주의는 사회의 여러 ‘부분 이익’을 대표하는 후보와 정당들의 경합 체제다.” 그러나 그간 민주당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국민에게 정치를 돌려줘야 한다는 미명 아래 ‘정치 시장’에 상장된 기업마냥 활동해 왔다. 이를테면 여론 조사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당원인 적도 없었던 전문가를 인지도만으로 영입해 공천을 주었다. 그로 인해 “당원은 소외되고 시민은 소비자가 되고 권력은 여론 동원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정치는 시장에서의 결정과는 다르다. 정당은 유권자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정치적 열망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선호를 공적 논의를 거치면서 집합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지금처럼 시민 생활의 현장을 무시하고 정치 마케터들이 짜주는 ‘프레임’과 ‘포지셔닝’에만 의존한다면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지역 대표성 말고는 누구도 대표하지 못할 것이다.

 

‘반(反)정치에 의한 정치 현상’이랄 수 있는 안철수 또한 민주당처럼 국민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아무도 대표하지 않기는 매 한가지다. 특히 정치에서의 싸움 자체를 죄악시하는 그의 태도는 파당적 경쟁 위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다. 국회의원 정원 축소,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폐지, 당론 폐지 및 국회의원 소신 투표, 정당 공천권 폐지 등의 안철수식 정치 쇄신안은 민주주의에 대한 완벽한 오해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는 고객 감동의 행정 서비스가 아닐 뿐더러 ‘정치를 줄이자’에 가장 환호할 세력은 경제 권력과 관료들이다. “전경련 내지 재벌 연구소가 내놓은 정치 개혁안을 관통하는 것은 늘 정치의 역할을 줄이라는 것이었”고 “정당과 국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관료”들이었다. 자신을 견제할 정치권력의 힘이 약화될수록 그들은 더 많은 기득권을 쌓아 갈 테니 안철수야말로 그들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 셈이다.

 

민주당과 안철수가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며 결국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다면 운동권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진보(파)는 ‘자신의 진정성’을 대표하느라 정치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 했다. 정치적 이성에 대한 경시가 그들을 정치적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혁명과 운동의 논리로는 권력 문제를 원활히 다룰 수 없으며 “민주주의는 의도의 진정성에 있는 것도, 추구하는 목표나 지향하는 내용의 고결함에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진정성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 공존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그런 이견과 차이 속에서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을 도출하는 평화적 원칙을 말한다.” 진보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샛길을 개척하지 못 한다면 그들의 진정성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교두보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발견>의 저자 박상훈에게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대표해야 갈등을 사회화시킬 수 있는가’이고 그 답을 꼭 한 마디로 하자면 ‘정당 체계가 (대다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시민운동이나 마을 차원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듯이 저자 또한 정당을 한국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정당 없이는 좋은 민주주의는 없”으며 “그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의 실험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모색하고 보완해 가자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발견>은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와 ‘환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을 걸으면서 한국 정치를 바꿔나갈 더 현실적이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천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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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인문학
김담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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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는 세대별로 달리 체감할 테지만 ‘고향’이라는 말에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엄마의 젖가슴 냄새가 난다. 그리고 고향은 노후를 보낼 전원생활의 전망 속에서 각박한 밥벌이를 버텨내게 하는 사적 유토피아로 환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 산업화의 파장을 비켜갈 수 있는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가 추억하거나 꿈꾸는 그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2007년부터 얼추 5년간의 개인 기록인 김담의『숲의 인문학』에서 엿볼 수 있는 (고향 아닌) 고향에서의 생활이 아무나와 겹쳐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실향민의 운명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김담이 책날개 자기소개에 밝혔듯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부모를 따라 1994년 귀향한 그 곳, 강원도 고성은 고향이었지만 이미 고향은 아니었다. 시인 신경림이「罷場」에서 노래했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풍경은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 한 편의 묵시록을 닮았다.

 

“물길을 돌려 콘크리트를 바르고 당산목을 버려두어 말라죽게 하고, 산맥을 허투루 잘라내서 도로를 만드는 거기에”서(246) “우리에서 길러지는 가축들은 이제 살과 살이 맞닿는 즐거움 없이 오로지 번식을 위하여 인간에 의해 수정당했다.”(251) “벼농사를 짓던 수만 평 논이 어느 날 문득 옥수수 밭으로 바뀌었다. 둘레엔 전기울타리가 세워지고, 벼농사 지을 때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던 어린 소나무들은 제초제를 쳐서 죄다 죽여놓았다.”(300) “올해도 벌들은 꿀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아까시나무 가까이 서면 겨우 서너 마리 벌이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고 있었으니 어쩌면 벌 떼 같다는 말은 이제 고쳐져야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295)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 풍경 또한 척박하기는 매 한가지다. 농약, 화학비료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라 믿는 농부들은 “대지가 병들고, 아니 당장 내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어도 모른 체했다. 이제는 아무도 마을 개천에서 목간하고 세수하지 않으면서도 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183) “농사를 지어도 이웃과 무엇을 나눠 먹는 일은 점점 흔치 않은 일이 되어갔다....때로는 버스 삯 들여 시장에 내가면 남는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백 원도 귀하고 천 원도 소중했다.”(226) 심지어 “구제역이 비껴나면 소 값이 오르지 않을까 내심 맘이 달뜨는 사람도 없지 않았으니” 다시 찾은 고향은 “참 무섭고 징그러운 세상이었다.”(245)

 

 

2. 앞서 김담이라는 한 개인의 생활사를 다룬『숲의 인문학』이 가진 보편성을 ‘고향 잃은 자의 공동 운명’에서 찾았다면 그가 쓴 산문의 미적 성취는 고향땅에서(야) 방외인으로 사는 이가 제 뿌리를 내리고픈 터를 자음과 모음으로 ‘지나치게’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 방식에 깃들어 있다. 김담 산문의 주된 묘사 대상이자 되찾을 길 없는 고향을 대체할 그 장소란 두말없이 ‘숲정이’다. 그 곳은 살아 있는 것을 살게 한다. 숲정이에서 ‘어머니 대지’는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어디를 가도 나물이며 약초가 흔한 “봄날 숲정이에만 들 수 있으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굶어 죽는 일은 없을”(285)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사촌 동생에게는 일터일 뿐인 숲은 김담에게는 “좀 다른 곳이었다. 숲은 어떤 기원이면서 또한 풍경이었으나 절체절명의 무엇은 아닌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장소였다.”(291)

 

숲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장소인가? 고향에 돌아왔으면서도 한 번도 태를 묻은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지 못하는, 때로는 도시에 있는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구경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는 김담이지만, 제 고향의 “숲속에 들면 숲 밖은 이미 세속처럼 아마득해지곤 했다. 어디에도 없는 편편한 숲 바닥에 앉아 있는 일은 꿈결처럼 후눅했다.”(290) 그에게 숲 속은 숲 바깥, 즉 세속의 고향 ‘안에 있으면서 그 너머 있는’ 고향이다. 여기서 숲은 ‘진정한’ 고향 따위가 아니다. 숲은 일종의 대리 표상이다.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의 고향은 숲이라는 대상을 통해서야 대리 표상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상실된 고향은 숲의 무엇을 매개로 대리 표상되는가? 무엇보다 숲은 ‘뿌리들’의 장소다. 실제로 “숲 가꾸기를 한 숲정이는 덩굴식물들은 모두 베어 없앴지만 ‘뿌리까지는’ 어쩌지 못했던 까닭에 남은 밑동에서 자란 줄기들은 다급하게 키를 키웠다.‘(284) “짐승이 잘라 먹은 삼지구엽초 줄기에서는 다시 이파리가 돋지 않았으나 바로 옆에서 새로운 줄기가 돋아났”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 “뿌리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지구엽초는 늘 떼판을 이루었”고 “씨앗이 멀리가지 않는, 예를 들면 더덕과 도라지 같은 식물들도 마찬가지였다.”(294) 뿌리가 죽지 않은 곳, 거기가 바로 고향이다.

 

물론 숲도 인간의 파괴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뿌리들의 장소인 숲은 그 자신도 종속된 ‘우주의 섭리’(logos)를 무심하게 고집한다. 숲에서는 “다시 시작된 솎아베기 톱날 소리에 산개구리들 울음소리는 가뭇없이 사라지”지만 “그 자리엔 현호색 무리들 활짝 피어”(267)나고, “덤프트럭들 먼지 흩날리던 비탈길은 어젯밤처럼 잠잠해지고, 흙 팔아먹고 빈 터로 남은 곳엔 난데없이 고들빼기가 지천”(264)일 수 있다. 자본의 운동이나 국가의 폭력, 그 “무엇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봄이 그처럼 활활 산불처럼 타오르”(266)는 숲은 징그러운 세상을 징그러운 생명력으로 맞선다.

 

 

3. 그런데 김담은 그 숲을 그저 거닐지 못하고 왜 굳이 400페이지 넘는 책으로 묶일 만큼 글을 써대고 또 수천 장의 사진으로까지 남겨야 했을까? 더구나 원체 풍경이야 분석의 대상은 아니지만은 한글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그토록 세밀하게 ‘묘사’해야만 했을까? 어쩌면 단지 ‘글 쓰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그랬을 뿐이다’는 게 정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심심해서 한참 민망한 답이다. 어쩌면 ‘그에게 숲은 오직 표상에서야 완전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고 김담이 숲정이와 숲 속 동식물들을 스피노자가 비판했듯이 인간이 휘두르는 ‘목적인(目的因)의 폭력’으로 재단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 가령 “도감에는....모두 식용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우리 집/마을에서는 먹지 않는 ‘잡버섯/똥버섯’들은” 그의 글에서만큼은 “접시만 한 흰가시광대버섯, 누런 호박색을 띠는 껄껄이그물버섯”(426)으로 제 고유한 이름을 부여 받는다. 그 이름마저도 버섯들이 원해서 갖게 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인간의 관점에서 떠안긴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송이버섯도 멧토끼도 될 수 없는, 언어라는 ‘존재의 집’을 통해서만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인간이 가진 한계인 것을. 그렇다고 이름이 가진 힘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이 저지른 대량 학살은 반드시 개개인의 이름을 지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지 않는가. 마당의 풀들을 잔디 깎기로 밀어버리기는 쉬워도, ‘달개비꽃, 이삭여뀌, 조뱅이, 물봉선, 개미취, 네귀쓴풀, 홑왕원추리, 중나리, 으아리, 얼레지’의 모가지를 함부로 꺾기는 어렵다. 이것도 언어를 가진 인간의 (한계이자) 조건이다.

 

그렇게 김담의 호명에 터 해서 ‘존재 망각’에서 벗어난 숲정이는 그의 글 속에서 생경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융단폭격을 당하듯 다채롭게 묘사된다. 삐딱한 눈으로 그의 글을 훑어볼 누군가는 ‘건빵 봉지에 건빵보다 별사탕이 더 많다’고 투덜거릴 련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산문은 왜 그토록 과도하게 보일정도로 묘사에 집중하는가? 그 실마리 하나를 풀자면 숲은 그에게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묘사하여서 근근이 온전할 수 있는 장소인 까닭이다. 이를테면 “무슨 일로 벚꽃이 필 무렵이면 바람은 매몰차도록 불어대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273) 바람이 왜 부는지 그 원인을 설명하는 게 가능하여도 ‘왜 하필’ 벚꽃이 필 바로 그 무렵이면 바람이 매몰찬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깐.

 

그 대신 만물의 존재 ‘양태’(modus)는 의성어와 의태어에 기대서야 현전(現前)한다. 여우비는 ‘졸금졸금’ 내리고 비꽃은 ‘후드득’ 떨어지며 계루는 ‘차란차란’하고 술 익는 소리는 ‘부걱부걱’ 들리며 콤바인 소리는 ‘걸걸’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사람일 뿐인 김담은 귀룽나무 “저도 나도 귀신 형용이 되어 한바탕 춤추며 놀아도 좋을 것이겠지만 당장은 숲정이 이곳저곳에 ‘구름나무’로 서 있는 나무를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274)한다. 그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절벽 같은 틈을 메우는 게 스피노자의 신(능산적 자연)이 아니라면 그것은 애오라지 김담의 산문 속 ‘직유와 은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찔레 싹은 ‘참새 혓바닥만큼’ 돋고 봄바람은 ‘첩의 죽은 귀신’이고 더넘바람은 풍경을 건드리며 ‘그네를 탄다’. 꽃들은 ‘불난 강변에 덴 소 날 뛰듯’ 일제히 피어나고 겨울에 널어 논 이불은 ‘황태처럼’ 녹았다 얼었다 하며 말라가는 것이다.

 

 

4. 김담의『숲의 인문학』은 고향에 도착하자 고향을 빼앗긴 이가 숲정이를 거닐면서 다시 찾아낸 고향을 자음과 모음을 풀어 그려놓은 세밀화(細密畵)다. 애초에 숲은 그에게는 표상에서야 완전한 장소이기에 거기 있는 것들은 고유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틈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해 혼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표상들은 그의 발바닥에서 싹튼 것이라 삼지구엽초처럼 숲정이와 더불어 삶 속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다. 한편 그것은 “털어낼 것과 보전할 것을 가든하게 정리한” 자의 눈에만 보이는 상처 속의 풍경인데, 그의 산문은 다만 “그다음에 생긴 어떤 나머지일 것이다.”(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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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 을유세계사상고전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오현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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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관한 세 편의 해석』, 지크문트 프로이트, 오현숙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07년” 부분의 번역을 아래와 같이 수정합니다. 읽다가 문맥이 통하지 않는 부분만을 선별하여, 주로 영어본(간간히 독어본)과 다른 한글 번역본 등을 참고하여 고친 것입니다. 간혹 오역은 아니더라도 의미 전달이 명확치 못한 부분은 읽기 좋게 손을 보기도 했습니다. ‘열린 책들’에서 나온 “성욕에 대한 세 편의 에세이”는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모를 정도로 번역이 엉망이라서, 지금으로서는 위의 책을 고쳐서 읽는 게 차선입니다. 그러나 이 책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여 개정판이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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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p 밑에서 3번 째줄 부터 65p 8번째 줄까지 나오는 ‘성도착자’, ‘성 도착’은 ‘성 대상 도착자’, ‘성 대상 도착’으로 고쳐 이해하는 것이 좋다. 프로이트는 성 대상 도착을 다룬 부분에서는 도착을 ‘Inversion’으로, 성 목표 도착을 다룬 부분에서는 ‘Perversion’으로 구별해서 쓰고 있다.

 

47p 밑에서 8번째 줄 : 정상적인 성적 대상에 대한 접근과 모방이 불가능한 경우 --> 정상적인 성적 대상이나 대체물을 쉽게 얻을 수 없는 경우

 

49p 11번째 줄 : 성 대상 도착의 모든 중간 단계들도 --> 성 대상 도착의 모든 유형들의 중간 단계도

 

49p 밑에서 8, 3번째 줄 : ‘변태’[變態]는 (영) degeneracy, (독) Degeneration 을 번역한 것이다. 국어사전에는 ‘1. 본래의 형태가 변하여 달라짐. 또는 그런 상태. 2 . 정상이 아닌 상태로 달라짐. 또는 그 상태.’라고 뜻풀이 되어 있다. 78p에서는 동일한 단어를 ‘변질’로 번역해 놓았다.(위 변태를 일상적인 쓰임대로, ‘성적으로 비정상적인 똘아이’쯤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53p 2번째 줄 : 성 대상 도착의 발생에 대한 안전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 성 대상 도착의 존재 자체까지도 의심할 수 있다.

 

53p 7번째 줄 : (허브록 엘리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 (허브록 엘리스)에서 [선천적 성 대상 도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63p [결론] 부분(7~17번째 줄)에 나오는 ‘성 목표’, ‘목표’는 모두 ‘성 대상’, ‘대상’으로 고칠 것.

 

65p 12번 각주 2번째 줄 : 성 목표 --> 성 대상

 

65p 밑에서 3번째 줄부터 91쪽까지 나오는 ‘도착’은 (독) Perversion 의 번역인데, ‘성 목표 도착’으로 고쳐서 이해하는 게 좋다.

 

66p 밑에서 9번째 줄 : 성 목표의 과대평가 ---> 성 대상의 과대평가

 

69p 밑에서 5~4번째 줄 : 알기 전까지 미루기로 하겠다 --> 알게 되기 전까지 미루어왔다.

 

75p 밑에서 1번 째 줄 : 사디즘의 --> 마조히즘의

 

78p 7번째 줄 : ‘변질의 징후’은 (영) indications of degeneracy, (독) Degenerationszeichens 의 번역어임. 참고로 할 것.

 

86p 밑에서 5번째 줄 : 충동이란 신체와 정신을 구분짓는 개념 중 하나이다 --> 충동이란 신체와 정신의 경계에 있는 개념 중 하나다.

 

93p 밑에서 4~1번째 줄 : 추측을 통해~ 아동기 보다 말이다. --> 그 개인의 조상들의 삶으로 구성된 원시 시대에 더욱 주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한 개인의 생에 포함되어 있는 유아기보다 유전이 [성인의 속성과 반응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96p 밑에서 2번째 줄 : 이미 기억의 흔적 속에 --> 기억의 흔적 속에 이미

 

97p 큰 제목 : 유아의 성 잠복기와 그것의 발현 --> 유아의 성 잠복기와 그것의 파열

: 내가 ‘파열’로 수정한 독어는 ‘Durchbrüuche’이고 영어본은 이 단어를 ‘Interruption’로 번역하고 영어본을 옮긴 다른 한글본들은 중단 혹은 소멸로 옮기고 있다. 하지만 중단, 소멸은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지 못 한다. 묶여서 잠복되어 있던 어떤 부분이 ‘뚫려서 열린다’는 의미를 전달하려면 ‘파열’로 번역하는 게 적합할 듯하다.

 

97p 각주 4번 : 거대한 피라미드의 정상으로 기제(Gizeh)에 의해 운반될 때 --> 기자(Gizeh)에 있는 거대한 피라미드 정상에 올라갈 때 ※ 기자(Gizeh) : 이집트 Cairo 부근의 항구 도시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유명한 곳.

 

100p 4번째 줄 : 항 흥분 --> 반응 흥분[혹은 반동 흥분]

 

100p 작은 제목 : 잠복기의 발현 --> 잠복기의 파열

 

100p 12~13번째 줄 : 그것을 통해 --> 삭제할 것

 

101p 밑에서 3번째 줄 : 성적 본능 --> 성적인 성질(Natur / nature)

 

101p 밑에서 1번째 줄 : 변태현상 --> 나쁜 버릇(Unarten / naughtiness)

 

103p 밑에서 4번째 줄 : 두 번째 성감대 --> 두 번째 성감대[제 자신의 피부 부위]

 

107p 밑에서 9~8번째 줄 : 아이의 성 충동이 ~ 발생할 수 있고 --> 어떤 하나의 성감대

에서 생겨나는 충동의 성질을 이해하면

 

107p 밑에서 3번째 줄 : 항문은 ~ --> <항문 영역의 활동> 항문은 ~

: ‘Betäigung der Afterzone’라는 소제목이 누락되어 있어 추가함.

 

111p, 16번 각주 : 전 유아적 성애에서 -->유아적 성애 전체에서

 

113p 11번째 줄 : 명명되는 --> 삭제할 것.

 

113p 12번째 줄 : 여인들에겐 --> 여인들이나

 

113p 밑에서 3~2번째 줄 : 유아의 성생활도 어떤 경우는 성감대의 지배가 우세하며 -->

성감대의 지배가 우세한 유아의 성생활도 어떤 경우에는

 

120p 9~10번째 줄 : 유아의 성을 탐구하는 사람으로서의 노력 --> 성을 탐구하는 사람으

로서의 유아의 노력

 

121p 6~7번째 줄 : 성 체제의 단계는 ~ 알아차리지 못한다 --> 성 체제의 단계들은 ~ 드

러내지 않는다.

 

121p 밑에서 8번째 줄 : 되지 않는다 --> 되지 않으며

 

121p 밑에서 8~5번째 줄 : 성 목표는 ~ 역할을 하게 된다 --> 성 목표는 대상과의 합체

[동화]이며, 이것의 원형은 이후에 ‘동일시’(Identifizierung)[라는 방식으로] 심리적 영역에

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121p 밑에서 5~ 2번째 줄 : 병리학을 통해서 ~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병리학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된 이 [성] 체제를 구성하는 단계의 잔재는 빨기인데, 이것은 음

식물 섭취 활동으로부터 분리된 성 활동이 외부 대상을 자신의 신체에 있는 대상으로 대체

한 것이다.

 

124p 밑에서 9번째 줄 : 대상 선택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된다. --> [유아기의] 대상

선택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된다.

 

131p 4번 째 줄 : 주의 산만을 가져오리라는 --> 주의를 [딴 데로] 돌릴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influence the possibility of directing the attention)

 

134p 4, 5번째 줄 : 부드러운 --> 애정어린

 

135p 5번째 줄 : 제공하고 --> 제공할 수 있게 되고

 

135p 밑에서 8~6번째 줄 : 다양한 신체적 징후로는 무엇보다 의심할 수 없는 의미, 즉 성

행위의 준비와 준비 완료의 의미를 나타내는 성기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화를 들 수 있다

--> 신체적 징후는 다양하지만, 특히 현저한 것은 성 행위의 준비와 준비 완료를 나타내는

성기에 있어서의 일련의 변화이다.

 

136p 2번째 줄 : 다르다는 것이다. --> 다르다.

 

136p 5번째 줄 : 내포되 있다. --> 내포되어 있다.

 

137p 밑에서 2번째 줄 : 선 쾌감 --> 선先 쾌감 (혹은 사전事前 쾌감)(Vorlust /

Fore-Pleasure)

 

137p 밑에서 2번째 줄 : 성감대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때도 성감대에 ~ --> 그러나 그 경

우에도 성감대의 역할은 분명하다. 어떤 성감대에 ~

 

139p 1~2번째 줄 : 그러나 선 쾌감과 ~ 더욱 강조될 수 있다. --> 그러나 선 쾌감과 유

아적 성 생활의 관련성은 그것이 병인적(病因的) 역할로 작용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140p 5~6번째 줄 : 유아적 성 생활은 ~ 또한 결정한다. --> 유아적 성 생활은, 정상적 성

생활로부터의 이탈뿐만 아니라, 정상적 성 생활을 구성하는 것 또한 결정한다.

 

141p 밑에서 4번째 줄 : 이와 병행해서 --> 따라서

 

142p 밑에서 9~8번째 줄 : 그렇지만 그의 가설에서 ~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이 그러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42p 밑에서 7번째 줄 : 요인 --> 요인으로

 

143p 밑에서 4번째 줄 : 지금도 --> [그렇지만]

 

144p 5~6번째 줄 : 성 흥분은 ~ 생성된다는 것과 --> 성 흥분은 미리 부하되어 대기 중

인 중추 장치에 성감대의 자극이 주어지면 [그 중추 장치에서] 생성된다는 것과

146 밑에서 1번째 줄 : 대한 --> 대해서만

 

150p 5~ 6번째 줄 : 심리적인 ~ 원인이다. --> 심리적인 즉, 억압에 의해 조건화된 원인

이 작용한 것이다.

 

151p 1~2번째 줄 : 이제 성 대상은 보통 ‘자기 성애적이다. 그리고 --> 그 뒤로 성 충동

은 보통 ‘자기 성애’적으로 되지만

 

151p 9번째 줄 : 모든 잠복기를 --> 잠복기 전체를

 

151p 11번째 줄 : 영아와 유모라는 관계 --> 젖 먹이는 관계

 

151p 6~5번째 줄 : 이 동질성 ~ 확인시켜준다. --> 이 두 가지가 동일하다는 것은 그 어

떤 의심의 여지없이 확인된다.

 

164p 밑에서 7번째 줄 : 발달의 장애 --> 분리라는 것이(inhibitions)

 

165p 3번째 줄 : 변칙적 --> 예외적인

 

169p 9번째 줄 : 마지막 사례 --> 마지막 반향(the last echo)

 

173p 밑에서 8번째 줄 : 정의로 인한 것 --> 확정적인 것

 

174p 13~14번째 줄 : 이와 같이 체험, ~ 않을 경우 --> 이처럼 성적 조숙이 단독으로 나

타나지 않을 경우[즉 지적 조숙을 수반할 경우]

 

176p 밑에서 8번째 줄 : 성적으로 자유로운 --> 성적으로 자유로운[‘성으로부터 면제되어

있다고 간주되는’ 혹은 ‘성기적 성 체제에 묶여 있지 않은’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듯

하다. 영어본은 주로 전자로 해석함.](sexualfr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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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테리 연구 프로이트 전집 3
프로이트, 김미리혜 / 열린책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요제프 브로이어, 지그문트 프로이트,『히스테리 연구』,김미리혜 옮김, 열린책들, 2004년”를 제임스 스트레이치의 영어 번역본과 대조하여, 문맥이 안 맞는 부분들만 확인하여 아래와 같이 수정합니다. 몇 개 오역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정상의 문제인 듯 합니다. (한글판 『히스테리 연구』는 번역이 좋은 편입니다. 옮긴이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음 쇄에는 교정되길 희망합니다.

======

17p 16번째 줄 : 매우 흥미로운 증상 --> 매우 두드러진 현상(a highly remarkable phenomenon) /6p

 

17p 밑에서 9번째 줄 : 감정 --> 정동(affect) /6p : 통상 국내에서는 affect를 (어색하지만) 정동 (情動)으로 번역한다.(대개 emotion, sentiment, felling을 감정, 정서로 번역한다) 이후 독서에서『히스테리 연구』의 감정, 정서는 정동으로 고쳐 읽는 게 좋겠다.

 

19p 7~8번째 줄 : 히스테리 환자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 이 문장은 영어로는 Hysterics suffer mainly from reminiscences 이다. /7p : reminiscence는 ‘무의식적 기억’보다는 ‘회상’(回想, ‘돌아온 기억’) 정도의 번역이 좋을 듯한데, 옮긴이가 memory를 기억뿐만 아니라 회상으로도 번역하기도 해서 고친 번역과도 중복되는 셈이라 좀 난감하군요.

 

24p 12번째 줄 : 유최면 --> 유최면(類催眠) : 즉 최면상태와 유사한 상태를 말하는 듯.

 

26p 2번째 줄 : 유최면 상태에서는 우리가 꿈속에서 그러하듯이 미쳐서 비상식적으로 되는 것이다 --> 우리가 꿈속에서 그러하듯이 유최면 상태에서 그들은 미쳐서 비상식적으로 되는 것이다.(in their hypnoid states they are insane, as we all are in dreams.) /13p

 

50p 밑에서 3번째 줄 : 1882년이나 1881년으로 -->1882년에서 1881년으로(from the year 1882 to the year 1881) /33p

 

83p 14~15번째 줄 : 이 암시를 주지 않아서이다 --> 이 암시를 주는 것을 빠뜨려서이다(having omitted to give her this suggestion...) /59p

 

100p 3번째 줄 : 그녀 마음과 혼란 -->그녀 마음의 혼란(the confusion of her mind)/ 73p

 

100p 8번째 줄 : 쥐를 보는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들 눈에나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 쥐는 술 취한 사람들 눈에나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it was only drunkards who saw them) /73p

 

104p 각주 : ‘내용 주제’는 subject-matter를 번역한 것. 참고로 하세요. /76p

 

156p 3번째 줄 : 앞에서 감정을 정동으로 고쳐 읽으라 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번역된 그대로 ‘감정(feeling)’이 맞음. /117p

 

158p 밑에서 6번째 줄 : 그 집의 두 주인 --> 두 사람의 고용인 남자들(the two gentlemen) /119p : 문맥상 ‘두 주인’은 맞지 않으며, 이전 페이지에도 the two gentlemen을 두 사람의 고용인 남자들로, employer를 주인으로 번역하고 있다.

 

250p 밑에서 7번째 줄 : 히스테리 증상이 --> 히스테리 증상의(~of hysterical symptoms) /186p

 

256p 8번째 줄 : 병변 --> 병리(학)적인 변화(pathological change) /191p

 

263p 12번째 줄 : 정상적인 흥분 --> 정상적인 대뇌 흥분(normal intracerebral excitation) /197p

 

271p 15번째 줄, 317p 1번째 줄 : 식물계 기관(혹은 식물적 기관) --> 생장 기관(the vegetative organs) /204p

 

308p 밑에서 5번째 줄, 309p 1번째 줄 : 복제 --> 이중(성)(duplication)

 

328p 밑에서 5~4번째 줄 : 이중 가장 좋은 것은 오직 그림자이다 --> 비극들 중 아무리 좋은 것도 단지 [인생의] 그림자에 불과하다(The best in this kind are but shadows) /250p

 

337p 밑에서 7, 6번째 줄 : 변질 -->퇴폐(혹은 퇴화)(degeneracy) /259p

 

380p 13~14번째 줄 : 이렇게 관련성이 완화되는 것은 신경증 환자에게는 무리이다. --> 그렇게 관련성이 느슨해지는 것은 신경증의 소관 밖이다.(It is not within the power of a neurosis to relax these relations.)

 

* 그 외에도, (오역이라기보다) 교정 부실로 인한 오탈자들이 30, 53, 95, 100, 124, 139, 147, 271, 288, 291, 297, 351, 353, 366, 371, 392p에 있음. 2004년 이후 개정되지 않았다면, 교정을 좀 더 꼼꼼히 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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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 한길사 / 199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길사에 아래 번역 수정한 것을 보냈는데, 감사하게도 다음 쇄에 오류 수정하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이진우, 태정호 옮김 | 한길사 | 1996년” 읽다가 문맥에 맞지 않은 문장들을 “The Human Condition” (2nd, Paperback), Hannah Arendt |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1998년 와 대조해서 읽은 것. 다음 쇄에는 수정되었으면 좋겠군요. 쉽지 않은 번역작업을 한 옮긴이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56쪽, 4~5번째 줄 : 작업의 인간조건은 ~ 인간실존의 의존성이다. --> 작업의 인간조건은 세계성이다.(The human condition of work is worldliness.)/7p ; 원문에는 없는 문장이 번역되어 있군요.

 

 

56쪽[원주 1] 마지막 줄 : 아우구스티누스에게 ~ 전혀 다른 것이다. -->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창조의 이야기는 인간 실존의 단독성[특이성]과는 구별되는 동물적 삶의 종차적 특성을 강조하는 데 유용한 기회를 제공한다.(To Augustine, the creation story offers a welcome opportunity to stress the species character of animal life as distinguished from singularity of human existence.)/8p

 

 

70쪽 밑에서 4번째 줄 : 오랫동안 --> 영구히(for any length of time)/20p

 

(이건 오역은 아니고,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원어를 알아두는 게 좋을 듯)

 

81쪽 3번째 줄 : 가족집합체 --> 가족집합체(the collective of families)/29p

81쪽 원주 14 : 가족들의 결합체 --> 가족들의 결합체(the conglomeration of families)/29p

; collective가 동일한 집단이라는 뉘앙스인 반면 conglomeration은 상이한 것들의 집합이라는 의미.

 

 

96쪽 9번째 줄 : 행태주의 --> 행동주의(behaviorism)/43p ; 같은 페이지 6번째 줄에서 같은 단어를 ‘행동주의’라고 번역했으니, 별다른 이유가 없으면 통일시켜줘야.

 

 

109쪽 원주 49 : 묘비명의 더 없는 영광, --> 묘비명의 더 없는 영광 ; /55p (쉼표가 아니라 세미콜론임)

 

 

125쪽 9번째 줄 : 유일한 장소 --> 유일하게 믿을만한 장소(only reliable ~ )/71p

 

 

167쪽 2번째 줄 : 그 생산성도 포함하여 --> 그 다산성(fertility)도 포함하여/111p ; 생산성은 작업과 연관되는 만큼, 생명과정이 표출되는 신체기능과는 (이미 다른 문장에서도 그렇게 번역했듯이,) ‘다산성’이라는 번역이 더 어울릴 듯.

 

 

218쪽 밑에서 5~4번째 줄 : 반대로 고대도 공론 영역의 ~ 익히 알고 있었다. --> 반면 고대는 공론 영역의 내용을 확립하고 결정하는 공화국도 아니고 폴리스 시민도 아닌 인간 공동체의 유형들을 매우 잘 알고 있었다.(Conversely, antiquity knew full well types of human communities in which not the citizen of the polis and not the res publica as such established and determined the content of the public realm)/159p

 

 

223쪽 ~225쪽에 worth와 value가 둘 다 ‘가치’로 번역되어 있는데, 번역어를 달리해서 구별하지 않으려면, 다소 지저분하더라도 원어를 병기해주는 게 좋을 듯. 물론 어떤 부분은 문맥을 보면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아렌트도 받아들인, 로크의 구별에 따르면, worth는 어떤 사물에 자연적으로 내재하는 가치이고, value는 한 사물의 소유와 다른 사물의 소유 사이의 비율의 관념, 즉 주로 어떤 대상에 매겨진 값을 말한다.)/164~166p

 

 

223쪽 맨 마지막 줄 : 사물의 내재적 가치 --> 사물의 내재적 가치(worth)

 

 

224쪽 1번째 줄 : 탁자의 가치--> 탁자의 가치(worth)

 

 

224쪽 1번째 줄 : 시장가치 --> 시장가치(market value)

 

 

224쪽 밑에서 3번째 줄 : 객관적 가치와 내재적 가치 --> 객관적이고 내재적인 가치(objective and intrinsic worth)

 

 

224쪽 밑에서 2번째 줄 : 주관적 가치와 사회적으로 결정된 가치 --> 주관적이며 사회적으로 결정된 가치(subjective and socially determined value)

 

 

225쪽 밑에서 6번째 줄 : ‘객관적’ 가치--> ‘객관적’ 가치(‘objective’ value)

 

 

225쪽 밑에서 5번째 줄 : 가치 개념 --> 가치(value) 개념

 

 

312쪽 3번째 줄 : 자연과학의 언어에서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무한할 정도로 비개연적인 것’이다. --> 자연과학의 언어에서, “기적은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무한한 비개연성이다.”(In the language of natural science, it is the “infinite improbability which occurs regularly.”)/246p

 

 

313p 5~9번째 줄 : 우리가 알고 있듯이~ 부단한 연속성에서 일어나고 있다 -->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These cannot be called modern events as we know them since the French Revolution, and although they cannot be explained by any chain of causality, because no event can, they are still happening in an unbroken continuity, in which precedents exist and predecessors can be named.) /248p * 문장을 고치기가 쉽지 않군요.

 

 

314p 밑에서 5번째 줄 : 위협함으로써 --> 직접적으로 위협함으로써(its immediate threat ) /249p

 

 

315p 7번째 줄 : 그러나 이것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 그러나 이것들은 단지 어림짐작일 뿐이다.(But these are mere speculations.) /250p

 

 

315p 10번째 줄 : 도달할 수 없으며 매력적으로 여겨졌던 --> 매력적이면서도 두렵게 여겨졌던(which were temptingly and forbiddingly) /250p

 

 

315p 밑에서 3번째 줄 : 그들을 유혹한 것은 먼 거리였다. --> 삭제 (원문에서는 없는 문장)

 

 

316p 18번째 줄 : 세계 또는 지구와 --> 세계 또는 지구라는 환경과(his surroundings, world or earth) /251p

 

 

317p 6번째 줄 : 농민의 --> 소작농의(peasantry) /251p

 

 

318p 4번째 줄 : 국민의 사유재산 수용 --> 국민의 사유재산 수용(收用)[혹은 인민의 재산 몰수](the expropriation of people) /252p * 수용(收用) :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특정물의 소유권 또는 기타의 권리를 강제적으로 징수하여 국가나 제삼자의 소유로 옮기는 처분.

 

 

318p 6번째 줄 : 단순한 복구보다 -->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not of mere recovery) / 252p

 

 

318p 9번째 줄 : 소비사회 --> 낭비 경제(waste economy) /252p

 

 

319p 10번째 줄 : 반개혁 --> 반종교 개혁(Counter Reformation) /253p * 반종교 개혁 : 16-17세기의 가톨릭교회 내부의 자기 개혁 운동.

 

 

320p 1번째 줄 : 적나라한 생존경쟁 --> 적나라한 생존 위기(their naked exposure to the exigencies of life) /255p

 

 

320p 2번째 줄 : [참고] ‘탈소유화’는 앞서 ‘사유재산 수용(收用)’으로 번역했던 Expropriation을 옮긴이가 달리 번역한 것임.

 

 

320p 밑에서 3번째 줄 : 노동과 출산의 힘 --> 노동력에 버금가는 출산력(of procreation no less than of laboring) /255p

 

 

321p 2번째 줄 : [참고] 전유(專有)(appropriation) /255p * 전유(專有) : 오로지 혼자만 소유함.

 

 

322p 1~2번째 줄 : 민족국가는 19세기에~ 대신하였다. -->20세기에 쇠퇴할 때까지, 무산계급이 박탈당했던 사적 소유의 가정(家庭)에 대한 대체물을 모든 계급에게 제공한 것이 민족국가이다.(the nation-state, which until its decline in the twentieth century offered all classes a substitute for the privately owned home of which the class of the poor had been deprived.) /256p

 

 

324p 밑에서 2번째 줄 : 그것을 통제되지 않는 -->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는(이렇게 고치는 게 문장이 자연스러움.)

 

 

325p 11번째 줄 : 신체적 감관을 가진 지구구속적 창조물 --> 신체적 감관과 지구구속적 창조물(an earth-bound creature and its body-bound senses) /260p

 

 

326p 밑에서 4번째 줄 : 문자 역사의 전세기 --> 문자 역사의 모든 세기(all the centuries of recorded history)/ 261p * ‘전(全)세기’라고 한자를 병기하거나 혹은 모든 세기라고 번역하는 게 헤갈리지 않고 의미가 명확해짐.

 

 

333p 4번째 줄 : 이렇게 멀리 떨어진 조건에서도 --> 이렇게 멀리 떨어진 조건에서(야)

 

 

333p 밑에서 9번째 줄 : 우연적인 지식 --> 마구잡이로 얻은 지식(the knowledge of the haphazard origin) /267p

 

 

335p 밑에서 5번째 줄 : 물질과 에너지는 구별될 수 있으며 --> 물질과 에너지는 결정적으로 구별될 수 없으며(there cannot be a decisive distinction between matter and energy,) /269~270p

 

 

343p 5번째 줄 : 환상 --> 착각(혹은 기만)(delusion) /276p * 옮긴이는 illusion을 환상으로 번역하고 있고, delusion을 다른 곳에서는 기만으로 번역하고 있음.

 

 

348p 밑에서 4번째 줄 : 기상신 -->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 /282p

* 기계 장치의 신(god from a machine).

1. (그리스 연극에서) 기계 장치로 갑자기 나타나서 극의 복잡한 내용을 해결하는 신.

2. (일반적으로) 극·소설 등에서 줄거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런 결말.

 

 

357p 밑에서 7번째 줄, 358p 4번째 줄 : 행위 --> 활동(doing) /290p * 행위(action)는 아렌트의 고유한 개념이기 때문에 doing을 행위로 번역하면 의미 전달이 잘못 될 수 있다. 이외에도 doing를 행위로 번역한 곳이 다소 있지만,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워 따로 언급하지 못한다.

 

 

357p 밑에서 1번째 줄 : 확신해야만 하고 --> 확실성을 만들어야만 하고(make sure) /290p

* 다소 고친 번역이 어색하지만, 본문에도 이탤리체로 표기되어 있듯이, 'make'라는 의미를 살려주는 번역이어야 함.

 

369p 밑에서 2번째 줄 : 먼저 사라지고 --> 선행하며(precede) /300p

 

 

368p 2번째 줄 : 사물의 모델과 형상 그리고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과정은 -->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모델과 형상, 즉 관념(혹은 이념)이 아니라 과정이

(이 구절이 포함된 문장의 원문 : Processes, therefore, and not ideas, the models and shapes of the things to be, become the guide for the making and fabricating activities of homo faber in the modern age.) /300p * 고친 번역이 맞는 듯 한데.....

 

 

368p 15번째 줄 : [참고]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의 원문은 "infinite improbability"이니 참고로 해서 이해하면 좋을 듯. /300p

 

 

370p 6~7번째 줄 : ~ 결과이며 또 소크라테스가 ~ 내게는 여겨진다. --> ~ 결과인데, 아마도 소크라테스가 그의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 중 가장 빼어난 모습은 다음과 같은 것일 테다.(perhaps the most striking one, that Socrates offered his disciples:) /302p

 

 

375p 밑에서 10 ~9번째 줄 : 불연속의 과정인 행위 --> 과정의 해방을 부분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행위(action, which partly consists in the unchaining of processes,) /307p * 고친 번역도 맘에 들지는 않군요.

 

 

378p 9~10번째 줄 : 고통에 빠져들게 하고 이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 괴로움을 안겨주는 이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to escape the pains it may inflict) /310p

 

 

386p 3~4번째 줄 : 근대가 노동을 찬양했다는 편견을 갖지 않고 --> 원문은 without modern prolabor prejudices인데 prolabor가 뭔 뜻인지 모른겠군요. 오타인가? / 317p

 

 

393p 밑에서 11번째 줄 : 인간관계의 망상에는 --> 인간관계의 망에는(the web of human relationships) /3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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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드라 2012-10-02 19:07   좋아요 0 | URL
그 문장의 경우, 세미콜론을 쉼표로 대체했을 때, 뜻이 좀 왜곡되는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아무튼, 귀띔해 주신 것은 앞으로 꼭 기억했다가 참고로 하겠습니다...^ ^ (<인간의 조건>은 어마어마한 통찰력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사상가들 중에서도 아렌트 만큼 똑똑한 사람은 처음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