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권헌익.정병호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한에 ‘고령화 가족’이 있다면 북한은 ‘혁명 가족’이 있다.* 국가 전통성을 식민지 역사와 탈식민 서사를 토대로 한 ‘유격대국가’이자 김일성(과 김정일)이라는 정치적 아버지를 둔 ‘가족국가’ 북한에서 그 곳 구성원들은 모두 혁명 가족의 일원이다.『극장국가 북한』은 혁명 가족 가장인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에게로 권력 세습이 왜 가능했는지, 개인적 카리스마에서 세습적 카리스마로의 이행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탁월한 연구 성과다. 다시 말해 유격대국가와 가족국가라는 ‘내용’이 김일성 사후에 극장국가(클리퍼드 기어츠)라는 상징 의례를 통해 어떠한 ‘형태’를 부여받아 카리스마 권력의 자연 도태에 저항할 수 있었는가를 탐구하였다. 그러한 결과에 따른 권력 세습은 북한 사회가 김일성이라는 한 명의 아버지에서 김일성, 김정일이라는 ‘두 명의 아버지’를 가지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북한 정치질서는 인류학자 이문웅이 정의했듯이 가족국가다. 수령은 전통 사회에서 가장이 했던 역할을 국가 차원에서 수행한다. “실제로 오늘날 북한의 매체는 ‘어버이 장군님을 높이 모신 우리 인민은 모두가 한식솔이고 내 나라는 어디 가나 친혈육, 화목한 대가정입니다’라고 주장한다.”** 항일 빨치산 활동에 대한 작품을 보더라도 “김정숙과 김일성의 실재하는 가족 관계에 대해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극84) 그 대신 “김일성과 친족관계를 맺은 인물들은 대부분 가족을 잃고 갈 길을 잃은 고아 청소년들이며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인민들이 혁명지도자와 친족관계를 맺는 것으로 그려진다.”(극45) 이것은 사적 가족의 아버지를 정치적으로 확장시킨 것이면서 또 한편 원래 아버지의 기원으로의 회귀이기도 하다.***

 

그러한 북한의 가족 정치체제는 ‘충효일심’을 시민윤리로 강조한다. 이 덕목은 충과 효를 엄격히 구분했던 전통적인 한국 유교 정치체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는 최고 권력에 대한 인민들의 충성에 관한 북한체제의 요구가 효라는 도덕을 끌어들이고 그럼으로써 정치적인 것과 가족 혹은 사적인 것 간의 기존 경계를 흐리고 해체”(극89)한 것. 그렇기에 지도자와 인민들의 관계는 도덕 경제 혹은 전면적 호혜성에 기반하고 있다. 소위 ‘호래자식’이 안 되려면 김일성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보살핌의 혜택을 입은 사람들은 그 정치적 가정의 가장에게 깊은 효성과 충성심으로 보답하고, 가장이 죽으면 한 가정의 조상을 추모하는 것처럼 그의 유훈을 잘 따라야 한다.”(극227~228)

 

가족국가 북한의 정서적 유대 구조에서 “가장 가치있고 특별한 인간관계는 개인(각자 고립되고 분리되어 있는)과 최고지도자와의 관계다.”(극128) 프로이트도 말했듯이 집단의 리비도적 결합은 지도자와 구성원 개개인의 관계를 ‘매개로해서’ 파생한 유대감의 결합이다. “집단은 자아 이상을 [지도자라는] 하나의 공통된 대상으로 대치하고, ‘그 결과’ 자아 속에서 자신들을 서로 동일시하게 된 개인들의 집합이다.”**** 프로이트는 이때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한 사랑을 똑같이 베푸는’ 우두머리에 대한 환상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아버지를 대신한다...그리스도 앞에서는 만인은 평등하고 만인이 똑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고, 즉 그리스도가 베푸는 사랑을 통해 형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집102)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했듯이 부모의 자식 사랑은 늘 평등한 것으로 표상되며 정치적 아버지 김일성의 사랑 또한 전체 인민들에 대한 차별 없는 사랑으로 여겨진다.

 

김일성 사후 하나의 정치적 아버지는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 두 명의 정치적 아버지로 탄생한다. 우선은 북한 문학, 영화, 집단 체조 등을 통해 김정숙이라는 모성 상징과 총대라는 물적 상징을 발명하고 이로써 국가 건국의 기원에 김정일을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기제는 김일성의 자리를 김정일이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의 정치적 아버지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이 1994년 7월 사망할 때까지 맡았던 국가주석 자리를 그만이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영구주석 지위로 개정했다는 결정문을 고지했다.....북한은 김일성의 역사적 카리스마 권력을 헌법상의 초월적이며 개념상의 초역사적인 권력으로 변모시키는 제도적 혁신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 일을 달성한 뒤에야 비로소 김정일은 사망한 지도자를 대신하여 노동당의 최고위직에 선출되었다. 그 결과는 직무의 계승이 아니었다. 새 국가수반이 된 전 국가수반을 대체했다기보다, 헌법 개정으로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새 지도자와 전 지도자가 각각 물리적 국가수반과 형이상학적 국가수반으로서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다.”(극장102~104)

 

한 마디로 말해, “김일성의 죽음은, 북한의 공식적인 언어로는 지도자의 육체적 삶의 끝일 뿐 정치적 삶은 계속되는 것으로 표현된다.”(극104) 이러한 논리는 ‘국왕의 두 신체’라는 절대 왕정 시대의 정치 이론과 매우 유사한 형식을 띠고 있다. 이를 요점만 말하면, “국왕은 자신 안에 두 개의 신체를, 즉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를 갖는다. 그의 자연적 신체는 소멸할 운명을 지닌 신체이며...그러나 그의 정치적 신체는 보이지도 않으며 만져지지도 않는 신체로서 정치적 사회와 정부로 구성되어 공공선을 관리하고 인민을 지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이러한 자연적 신체의 죽음은 ‘Demise’(계승)이라고 불렸고,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유훈 통치는 김일성이라는 ‘정치적 신체’가 김정일이라는 ‘자연적 신체’로 전해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북한은 김일성의 정치적 신체를 물질화시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강화하였다. 가령 김일성의 (사망일이 아니라) 생일을 태양절이자 최고의 국경일로 지정하거나 그의 시신을 방부처리해서 영구 보전하고 수많은 영생탑을 온 나라에 세웠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김일성이라는 정치적 신체 혹은 형이상학적 국가수반으로의 변모는 상징적 아버지에서 상상적 아버지로의 이행이라 말할 수 있다. 라캉에게서 상상적 아버지는 이상형--상(像), 이미지(Image)--으로서의 아버지다. 필리프 쥘리앵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가 지나고 초자아가 내면화되는 나이, 즉 다섯 살에서 여섯 살쯤 될 때 어린아이는 실재의 아버지를 상상적 아버지로 덮어씌운다. 이 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다. 그는 (법률을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률을 제정하는 입법자적 지배자이며 종교에서의 신의 형상의 원형이 되는 전능한 보호자이다. 이것은 프로이트『토템과 터부』에 나오는 원초적 아버지다. 아이의 욕망을 법에 종속시키면서 그 자신도 법에 복종해야 하는 상징적 아버지와 이 인물이 구별되는 점은 그 자신은 법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것. (두 아버지들 모두 정신의 영역에서 초자아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북한은 ‘김일성-형이상학적 국가수반/정치적 신체/상상적 아버지’와 ‘김정일-물리적 국가수반/자연적 신체/상징적 아버지’라는 두 아버지를 가진 혁명 가족 국가인 것이다. 결국 북한 김정은 체제의 운명도 ‘세 명의 아버지의 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

* 천명관 소설『고령화 가족』에서 사회로부터 쫓겨난 다 늙은 자식들이 더 늙은 엄마 집으로 내몰린다. 직장도 국가도 또 하나의 가족이기를 포기한 남한에서 그들은 혈육으로 얽혀 붙은 자연적 가족에게로 퇴행/퇴출당한 것. 결국 남과 북은 둘 다 가족주의 국가인 셈인데, 최인훈의 이분법을 빌리면 남쪽은 '밀실 가족(주의)', 북쪽은 '광장 가족(주의)'다.

 

** 『극장국가 북한』, 권헌익/정병호, 창비, 2013년, 35p. 이하 인용은 극-쪽수로 표기.

 

*** “쥘리앵에 따르면, 먼저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원래 아버지로 불린 것은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즉 아버지의 일차적인 의미는 ‘정치적․종교적 아버지’였으며,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는 그로부터 파생된 개념이다. 말하자면 정치적․종교적 지배자라는 것이 아버지가 갖는 권위의 기원이겠다.”(로쟈, ‘아버지의 역사’, 기획회의-2010. 06. 05)

 

**** “지크문트 프로이트,『문명 속의 불만』, 김석희 (옮긴이) | 열린책들 | 2004” 에 수록된「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 129p. 이하 인용은 집-쪽수로 표기.

 

***** 『절대왕정의 탄생』, 임승휘, 살림, 2007년, 30p, 재인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주주의의 재발견 - 민주주의를 둘러싼 싸움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
박상훈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사랑하던 연인과 헤어졌을 때 대개 사람들은 마치 ‘여우의 신포도 우화’처럼 상대방을 깎아 내린다. 더불어 상처 난 맘을 다른 이에게 위로받고 나만의 진짜 인연을 다시 꿈꾼다. 가령 실연당한 날, 친구에게 “그(녀)는 내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었나 봐” 하소연하며 “진정한 짝을 찾을 거야”는 희망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20여년, 우리는 정치로부터 실연당했다. 독재 정권을 몰아내고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게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사는 게 점점 더 어렵기만 하다. 정규직인 것만으로도 사회 특권층이 될 만치 계약직이 고용 형태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빚 독촉을 피할 길은 자살 밖에 없는 사람들로 세상은 넘쳐난다. 이제 정치, 특히 민주주의는 날 버린 애인처럼 냉소의 대상이 되었고 배제된 자들은 ‘힐링 문화 상품’을 통해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소위 강단 좌파들이 최신 정치 철학을 소비하면서 진짜 정치를 찾는다고 분주하다.

 

박상훈은 <민주주의의 재발견>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때 이른 ‘냉소’와 진짜 민주주의를 찾는 ‘환상’을 비켜가며 우리가 그 동안 경험했고 또한 겪고 있는 민주주의 위에서 더 현실적이고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관점과 시각을 비판적으로 다루면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인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한다. 물론 그렇다고 그의 민주주의만이 참된 민주주의라는 게 아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제 각각이었으며 언제나 민주주의‘들’로 존재해 왔다. 문제는 이제까지의 논의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민주 정치를 개선하려면 민주주의를 제대로 된 논의의 장으로 끌어오는 게 먼저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재발견>은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의 장을 재발견’하기 위해서 쓰여졌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의 이론에 기대어 박상훈은 무엇보다 ‘갈등’을 민주주의의 엔진이자 존재 이유로 여긴다. 지역, 소득, 성, 고용 형태 등 각자 다른 사회적 차이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공적 의제에 대한 이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집단적 사회 갈등 때문에 불러들여진 정치체제다. 이 때 정당은 갈등의 범위를 확대하고 사회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개인이나 다른 조직 형태가 아니라 그는 왜 굳이 정당을 강조하는가? “우선 사적 이익집단이든 공익적 시민운동이든 이들 사회집단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 갈등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갈등의 범위를 확대하자니 기존의 참여자가 줄고, 이들의 참여를 유지하자니 갈등의 범위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실제로 공익적 목표를 지향하는 집단(우리는 이를 시민운동이라고 부른다)을 사례로 봐도 그 구성원들의 다수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적 배경을 가질 수밖에 없”기에 사회 하층은 정치적으로 소외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저발전은 정당을 매개로 ‘갈등을 사회화하는 데 무능했던 것’에서 초래된 결과다. 즉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의 분포와 정치 영역에 존재하는 갈등 분포가 어긋나 있는 것. 특히 한국의 정치는 가장 중요한 생산 집단이자 사회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의 이해와 권리를 철저히 배제해왔던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였다. 심지어 “기대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비정규직은 최대로 늘었고, 소득 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으며 사회 하층의 빈곤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따라서 저자는 “노동문제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다루는 실력만큼 정치가가 갖춰야 할 소양으로서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보수 독점적 정당체제를 재편하고 민주 정치를 갱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안적인 정치 세력의 성장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박상훈은 촛불 집회 당시 풍미했던 민주주의관을 비롯해 민주당, 안철수, 진보 세력들이 그 동안 민주주의를 어떻게 잘못 이해해왔으며 정치적으로 무능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따져 묻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저자는 “촛불 집회를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로 해석하거나 대의 민주주의를 나쁜 민주주의의 유형으로 이해하면서 그 대안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내세우는 해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촛불 집회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갖게 된 악순환 구조를 드러내는 것으로 집합적 열망의 분출 이후 그 에너지가 소진되면 다시 정치의 정체와 퇴행이 반복되어온 패턴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촛불 집회는 보수 독점적 정당 체제의 다른 얼굴이기에 현재와 같은 정당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운동의 지속만 강조하면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운동이 강조된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에서 정당과 정당체제가 나쁘다는 것을 말해 주는 지표는 되겠지만, 운동이 정치제체를 대신할 수는 없으며” 그것을 개선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의 민주주의라고도 불리는 “현대 민주주의는 사회의 여러 ‘부분 이익’을 대표하는 후보와 정당들의 경합 체제다.” 그러나 그간 민주당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국민에게 정치를 돌려줘야 한다는 미명 아래 ‘정치 시장’에 상장된 기업마냥 활동해 왔다. 이를테면 여론 조사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당원인 적도 없었던 전문가를 인지도만으로 영입해 공천을 주었다. 그로 인해 “당원은 소외되고 시민은 소비자가 되고 권력은 여론 동원 능력을 가진 사람이 지배하는 정치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정치는 시장에서의 결정과는 다르다. 정당은 유권자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정치적 열망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선호를 공적 논의를 거치면서 집합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지금처럼 시민 생활의 현장을 무시하고 정치 마케터들이 짜주는 ‘프레임’과 ‘포지셔닝’에만 의존한다면 민주당은 호남이라는 지역 대표성 말고는 누구도 대표하지 못할 것이다.

 

‘반(反)정치에 의한 정치 현상’이랄 수 있는 안철수 또한 민주당처럼 국민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아무도 대표하지 않기는 매 한가지다. 특히 정치에서의 싸움 자체를 죄악시하는 그의 태도는 파당적 경쟁 위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다. 국회의원 정원 축소,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폐지, 당론 폐지 및 국회의원 소신 투표, 정당 공천권 폐지 등의 안철수식 정치 쇄신안은 민주주의에 대한 완벽한 오해를 드러내는 지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는 고객 감동의 행정 서비스가 아닐 뿐더러 ‘정치를 줄이자’에 가장 환호할 세력은 경제 권력과 관료들이다. “전경련 내지 재벌 연구소가 내놓은 정치 개혁안을 관통하는 것은 늘 정치의 역할을 줄이라는 것이었”고 “정당과 국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관료”들이었다. 자신을 견제할 정치권력의 힘이 약화될수록 그들은 더 많은 기득권을 쌓아 갈 테니 안철수야말로 그들의 가장 든든한 우군인 셈이다.

 

민주당과 안철수가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며 결국 아무도 대표하지 않는다면 운동권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진보(파)는 ‘자신의 진정성’을 대표하느라 정치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 했다. 정치적 이성에 대한 경시가 그들을 정치적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혁명과 운동의 논리로는 권력 문제를 원활히 다룰 수 없으며 “민주주의는 의도의 진정성에 있는 것도, 추구하는 목표나 지향하는 내용의 고결함에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서로의 진정성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 공존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그런 이견과 차이 속에서 구속력 있는 공적 결정을 도출하는 평화적 원칙을 말한다.” 진보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샛길을 개척하지 못 한다면 그들의 진정성은 오히려 전체주의의 교두보가 되고 말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발견>의 저자 박상훈에게 민주주의의 핵심 문제가 ‘누가 누구를 어떻게 대표해야 갈등을 사회화시킬 수 있는가’이고 그 답을 꼭 한 마디로 하자면 ‘정당 체계가 (대다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시민운동이나 마을 차원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듯이 저자 또한 정당을 한국 사회의 병폐를 치유할 유일무이한 수단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좋은 정당 없이는 좋은 민주주의는 없”으며 “그 기초 위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의 실험과 제도를 창조적으로 모색하고 보완해 가자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재발견>은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와 ‘환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좁은 길을 걸으면서 한국 정치를 바꿔나갈 더 현실적이면서 더 나은 대안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천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의 인문학
김담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제는 세대별로 달리 체감할 테지만 ‘고향’이라는 말에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엄마의 젖가슴 냄새가 난다. 그리고 고향은 노후를 보낼 전원생활의 전망 속에서 각박한 밥벌이를 버텨내게 하는 사적 유토피아로 환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대 산업화의 파장을 비켜갈 수 있는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으며 우리가 추억하거나 꿈꾸는 그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2007년부터 얼추 5년간의 개인 기록인 김담의『숲의 인문학』에서 엿볼 수 있는 (고향 아닌) 고향에서의 생활이 아무나와 겹쳐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실향민의 운명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김담이 책날개 자기소개에 밝혔듯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부모를 따라 1994년 귀향한 그 곳, 강원도 고성은 고향이었지만 이미 고향은 아니었다. 시인 신경림이「罷場」에서 노래했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풍경은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 한 편의 묵시록을 닮았다.

 

“물길을 돌려 콘크리트를 바르고 당산목을 버려두어 말라죽게 하고, 산맥을 허투루 잘라내서 도로를 만드는 거기에”서(246) “우리에서 길러지는 가축들은 이제 살과 살이 맞닿는 즐거움 없이 오로지 번식을 위하여 인간에 의해 수정당했다.”(251) “벼농사를 짓던 수만 평 논이 어느 날 문득 옥수수 밭으로 바뀌었다. 둘레엔 전기울타리가 세워지고, 벼농사 지을 때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던 어린 소나무들은 제초제를 쳐서 죄다 죽여놓았다.”(300) “올해도 벌들은 꿀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아까시나무 가까이 서면 겨우 서너 마리 벌이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고 있었으니 어쩌면 벌 떼 같다는 말은 이제 고쳐져야 할런지도 모를 일이다.”(295)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 풍경 또한 척박하기는 매 한가지다. 농약, 화학비료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할 것이라 믿는 농부들은 “대지가 병들고, 아니 당장 내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어도 모른 체했다. 이제는 아무도 마을 개천에서 목간하고 세수하지 않으면서도 별스럽게 여기지 않았다.”(183) “농사를 지어도 이웃과 무엇을 나눠 먹는 일은 점점 흔치 않은 일이 되어갔다....때로는 버스 삯 들여 시장에 내가면 남는 것이 있을까 싶었지만, 백 원도 귀하고 천 원도 소중했다.”(226) 심지어 “구제역이 비껴나면 소 값이 오르지 않을까 내심 맘이 달뜨는 사람도 없지 않았으니” 다시 찾은 고향은 “참 무섭고 징그러운 세상이었다.”(245)

 

 

2. 앞서 김담이라는 한 개인의 생활사를 다룬『숲의 인문학』이 가진 보편성을 ‘고향 잃은 자의 공동 운명’에서 찾았다면 그가 쓴 산문의 미적 성취는 고향땅에서(야) 방외인으로 사는 이가 제 뿌리를 내리고픈 터를 자음과 모음으로 ‘지나치게’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 방식에 깃들어 있다. 김담 산문의 주된 묘사 대상이자 되찾을 길 없는 고향을 대체할 그 장소란 두말없이 ‘숲정이’다. 그 곳은 살아 있는 것을 살게 한다. 숲정이에서 ‘어머니 대지’는 은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어디를 가도 나물이며 약초가 흔한 “봄날 숲정이에만 들 수 있으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굶어 죽는 일은 없을”(285)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웃에 사는 사촌 동생에게는 일터일 뿐인 숲은 김담에게는 “좀 다른 곳이었다. 숲은 어떤 기원이면서 또한 풍경이었으나 절체절명의 무엇은 아닌 또 다른 의미를 가진 장소였다.”(291)

 

숲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장소인가? 고향에 돌아왔으면서도 한 번도 태를 묻은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지 못하는, 때로는 도시에 있는 텅 빈 극장에서 영화를 구경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는 김담이지만, 제 고향의 “숲속에 들면 숲 밖은 이미 세속처럼 아마득해지곤 했다. 어디에도 없는 편편한 숲 바닥에 앉아 있는 일은 꿈결처럼 후눅했다.”(290) 그에게 숲 속은 숲 바깥, 즉 세속의 고향 ‘안에 있으면서 그 너머 있는’ 고향이다. 여기서 숲은 ‘진정한’ 고향 따위가 아니다. 숲은 일종의 대리 표상이다.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의 고향은 숲이라는 대상을 통해서야 대리 표상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상실된 고향은 숲의 무엇을 매개로 대리 표상되는가? 무엇보다 숲은 ‘뿌리들’의 장소다. 실제로 “숲 가꾸기를 한 숲정이는 덩굴식물들은 모두 베어 없앴지만 ‘뿌리까지는’ 어쩌지 못했던 까닭에 남은 밑동에서 자란 줄기들은 다급하게 키를 키웠다.‘(284) “짐승이 잘라 먹은 삼지구엽초 줄기에서는 다시 이파리가 돋지 않았으나 바로 옆에서 새로운 줄기가 돋아났”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 “뿌리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지구엽초는 늘 떼판을 이루었”고 “씨앗이 멀리가지 않는, 예를 들면 더덕과 도라지 같은 식물들도 마찬가지였다.”(294) 뿌리가 죽지 않은 곳, 거기가 바로 고향이다.

 

물론 숲도 인간의 파괴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뿌리들의 장소인 숲은 그 자신도 종속된 ‘우주의 섭리’(logos)를 무심하게 고집한다. 숲에서는 “다시 시작된 솎아베기 톱날 소리에 산개구리들 울음소리는 가뭇없이 사라지”지만 “그 자리엔 현호색 무리들 활짝 피어”(267)나고, “덤프트럭들 먼지 흩날리던 비탈길은 어젯밤처럼 잠잠해지고, 흙 팔아먹고 빈 터로 남은 곳엔 난데없이 고들빼기가 지천”(264)일 수 있다. 자본의 운동이나 국가의 폭력, 그 “무엇으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봄이 그처럼 활활 산불처럼 타오르”(266)는 숲은 징그러운 세상을 징그러운 생명력으로 맞선다.

 

 

3. 그런데 김담은 그 숲을 그저 거닐지 못하고 왜 굳이 400페이지 넘는 책으로 묶일 만큼 글을 써대고 또 수천 장의 사진으로까지 남겨야 했을까? 더구나 원체 풍경이야 분석의 대상은 아니지만은 한글을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그토록 세밀하게 ‘묘사’해야만 했을까? 어쩌면 단지 ‘글 쓰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그랬을 뿐이다’는 게 정답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심심해서 한참 민망한 답이다. 어쩌면 ‘그에게 숲은 오직 표상에서야 완전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고 김담이 숲정이와 숲 속 동식물들을 스피노자가 비판했듯이 인간이 휘두르는 ‘목적인(目的因)의 폭력’으로 재단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데, 가령 “도감에는....모두 식용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우리 집/마을에서는 먹지 않는 ‘잡버섯/똥버섯’들은” 그의 글에서만큼은 “접시만 한 흰가시광대버섯, 누런 호박색을 띠는 껄껄이그물버섯”(426)으로 제 고유한 이름을 부여 받는다. 그 이름마저도 버섯들이 원해서 갖게 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인간의 관점에서 떠안긴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송이버섯도 멧토끼도 될 수 없는, 언어라는 ‘존재의 집’을 통해서만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인간이 가진 한계인 것을. 그렇다고 이름이 가진 힘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을 노릇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이 저지른 대량 학살은 반드시 개개인의 이름을 지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지 않는가. 마당의 풀들을 잔디 깎기로 밀어버리기는 쉬워도, ‘달개비꽃, 이삭여뀌, 조뱅이, 물봉선, 개미취, 네귀쓴풀, 홑왕원추리, 중나리, 으아리, 얼레지’의 모가지를 함부로 꺾기는 어렵다. 이것도 언어를 가진 인간의 (한계이자) 조건이다.

 

그렇게 김담의 호명에 터 해서 ‘존재 망각’에서 벗어난 숲정이는 그의 글 속에서 생경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로 융단폭격을 당하듯 다채롭게 묘사된다. 삐딱한 눈으로 그의 글을 훑어볼 누군가는 ‘건빵 봉지에 건빵보다 별사탕이 더 많다’고 투덜거릴 련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산문은 왜 그토록 과도하게 보일정도로 묘사에 집중하는가? 그 실마리 하나를 풀자면 숲은 그에게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묘사하여서 근근이 온전할 수 있는 장소인 까닭이다. 이를테면 “무슨 일로 벚꽃이 필 무렵이면 바람은 매몰차도록 불어대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273) 바람이 왜 부는지 그 원인을 설명하는 게 가능하여도 ‘왜 하필’ 벚꽃이 필 바로 그 무렵이면 바람이 매몰찬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을 테니깐.

 

그 대신 만물의 존재 ‘양태’(modus)는 의성어와 의태어에 기대서야 현전(現前)한다. 여우비는 ‘졸금졸금’ 내리고 비꽃은 ‘후드득’ 떨어지며 계루는 ‘차란차란’하고 술 익는 소리는 ‘부걱부걱’ 들리며 콤바인 소리는 ‘걸걸’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사람일 뿐인 김담은 귀룽나무 “저도 나도 귀신 형용이 되어 한바탕 춤추며 놀아도 좋을 것이겠지만 당장은 숲정이 이곳저곳에 ‘구름나무’로 서 있는 나무를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야”(274)한다. 그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절벽 같은 틈을 메우는 게 스피노자의 신(능산적 자연)이 아니라면 그것은 애오라지 김담의 산문 속 ‘직유와 은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찔레 싹은 ‘참새 혓바닥만큼’ 돋고 봄바람은 ‘첩의 죽은 귀신’이고 더넘바람은 풍경을 건드리며 ‘그네를 탄다’. 꽃들은 ‘불난 강변에 덴 소 날 뛰듯’ 일제히 피어나고 겨울에 널어 논 이불은 ‘황태처럼’ 녹았다 얼었다 하며 말라가는 것이다.

 

 

4. 김담의『숲의 인문학』은 고향에 도착하자 고향을 빼앗긴 이가 숲정이를 거닐면서 다시 찾아낸 고향을 자음과 모음을 풀어 그려놓은 세밀화(細密畵)다. 애초에 숲은 그에게는 표상에서야 완전한 장소이기에 거기 있는 것들은 고유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틈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통해 혼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표상들은 그의 발바닥에서 싹튼 것이라 삼지구엽초처럼 숲정이와 더불어 삶 속에 단단히 뿌리박혀 있다. 한편 그것은 “털어낼 것과 보전할 것을 가든하게 정리한” 자의 눈에만 보이는 상처 속의 풍경인데, 그의 산문은 다만 “그다음에 생긴 어떤 나머지일 것이다.”(27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신분석학 개요 프로이트 전집 15
프로이트 지음, 박성수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정신분석학 개요』| 박성수 (옮긴이) | 열린책들 | 2004 - 프로이트 전집 15” 中「나의 이력서」(Die Medizin der Gegenwart in Selbstdarstellung, 1925)에 대한 리뷰이다.  「나의 이력서」는 짧은 분량 탓에,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세세한 면모를 간취하긴 어렵지만, 그의 사상의 성좌를 그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잡이다.

==== 
    
프로이트의 생애는 곧 (초기) 정신분석의 역사다. 프로이트 자서전,「나의 이력서」는 그 자신이 이끌었던 정신 분석의 내적 성장과 외적 운명을 시차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신=의식’라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정신적인 것은 우선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정신분석학의 대전제는 단지 머릿속에서 지어낸 궤변에 불과하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사색을 즐겼던 데카르트 후예들의 과분한 염려와는 달리, 정신분석은 신경증을 진료하던 현장에서 얻은 구체적인 관찰과 시행착오로 성장한 학문이다. 프로이트를 충실히 만나려면, 무엇보다 신경증 치료법 전환이 정신분석 이론을 한 단계씩 성숙시켰던 매개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신분석의 태동이 1885년 봄 프랑스 파리, 살페트리에르 병원, 샤르코가 진행했던 히스테리에 관한 실험에서 시작된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거기서 프로이트는 최면 암시로 인위적인 히스테리적 마비와 수축을 만들어낼 수 있고, 여자들만의 생리적 질병으로 치부되던 히스테리가 남자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다. 정신에 가해진 어떤 조작이 (히스테리와 동일한) 신체 이상을 만들어냈다 것은 히스테리가 정신 질환일 가능성을 추론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 후 프로이트는 전기 치료법과 최면술을 병행하다, (이후 결별하게 되는) 브로이어 박사에게 배운 일명 ‘굴뚝청소’라 불렸던 (최면을 이용한) 감정정화법을 신경증 치료에 적용하고, 그 임상결과를『히스테리 연구』로 발표한다. 아직까지는 히스테리에 대한 관찰 내용만을 서술한 데 지나지 않았고, “증상의 유지를 위해 사용된 일정량의 정동이 잘못된 길에 들어 그곳에 갇혀 있을 때 이를 정상의 길로 인도하여 발산되도록 소산하려는 것이 그의 치료적 목적”이었다. 환자를 지배하는 정동적인 환상을 ‘말로 표현하게’ 해 억압된 정신활동을 발산시키면, 증상이 호전되곤 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신경증 배후에 막연한 정동적 흥분이 아니라, “현재의 성적 갈등이든 과거의 성적 체험의 여파이든, 한결같이 성적 흥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치료 과정에서 숱하게 경험한다. 게다가 감정 정화를 위한 최면술의 한계에 봉착하면서, 그는 1892년 가을부터 최면술을 ‘집중의 기술’로 대체하고, 이후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환자의 역할을 풀어놓는 ‘자유 연상법’을 채택한다. 이를 통해 정신분석은 급속하게 성장하는데, “최면으로 인해 이제까지 가려져 있던 [정신적인] 힘들의 작용이 드러나고, 그것을 파악함으로서 이론은 보다 안전한 기반을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자유연상법을 도입하면서부터 프로이트는 환자들이 의식에 무언가를 떠올리지 않으려는 ‘저항’에 직면한다. 이를 역으로 추적해서 얻은 결론이 바로 ‘억압이론’이었다. 소위 정상인들의 정신적 갈등은 의식이 허용치 않는 본능이 패배하면서, 덩달아 에너지 집중도 중단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신경증에서는 본능적 충동과 의식적 저항 사이의 경합이 다른 결과로 빠지고 만다. “자아는 불쾌한 본능적 충동과 처음 충돌하게 되면 말하자면 움츠러들어, 그것이 의식에 들어와 직접 발산되는 것을 막는다. 그러나 이로 인해 본능적 충동은 그것의 에너지 집중량을 완전히 유지하게 된다”. 즉, 의식에 의해 억압된 본능적 충동은 단지 의식 밖으로 은폐되었을 뿐, 에너지량 자체는 그대로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아는 억압된 충동을 틀어막느라 용을 쓰다가 황폐해지고, ‘무의식화된 억압된 충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발산과 대리충족의 길을 찾으면서 신경증을 유발한다는 것. 이제 “치료의 목적은 잘못된 길에 들어선 정동의 소산이 아니라, 억압을 찾아내어 전에 거부되었던 것을 받아들이거나 폐기하도록 하는 판단 행위로 억압을 대체하는 것”으로 전환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자신의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토대로 한 연구 및 치료 방법을 ‘정신분석Psychoanalyse’이라 불렀다. 
 

이와 더불어,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법의 도입 이전부터 신경증이 성적 충동에 기반한다는 것을 자주 겪게 되면서, 병의 원인을 환자의 아동기까지 찾아들어가고, 유아 성욕이라는 사실에 직면한다. 유아는 성적 쾌락을 (구순기, 항문기, 남근기로 점차 나아가는) 제 자신의 신체에서 찾는다. 이러한 자가 성애의 단계 이후, 아이는 어머니에게 성적 원망을 집중시키고, 아버지를 경쟁자로 적대시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며, 거세 위협으로부터 아버지라는 이름의 법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회에 진입한다.

유아 성욕은 ‘순정하고 순진한 유아’라는 그간의 ‘믿고 싶었던 이미지’를 뒤집어버린데 1차적으로 기여했지만, 그 보다는 성욕 개념 확장이라는 측면에 진정한 의의가 있다. 요컨대, “첫째, 성욕을 성기와 맺는 밀접한 관계에서 분리시켜, 쾌락을 목표로 하는 2차적으로나 생식에 봉사하는 보다 포괄적인 신체기능으로 보았다. 둘째, 우리의 언어사용에서 사랑이란 모호한 말로 불리는 다정하고 호의적인 모든 충동을 성충동으로 간주하였다.” 이것은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핵심인 무의식화된 억압된 충동의 성격을 밝히고 그것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반드시 전제되는 것이다. 

1900년에 출판된『꿈의 해석』은 정신분석을 획기적으로 도약시킨다. 이것은 예지몽이나  기껏 정신의 경련으로 치부했던 꿈이라는 현상을 근대과학 영역에 편입시킨 좁은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누구나 꾸는 꿈이 “이미 신경증적 증상과 같이 구성되어 있”고, “자아 속에서 일어난 억압된 본능적 충동과 검열하는 힘의 저항 사이의 타협의 산물”이라면, 우리는 모두 (예비) 신경증을 앓고 있는 셈이다. 신경증 환자와 정상인의 차이는 기껏 “물질들의 큰 차이가 동일한 원소들의 결합 비율의 양적 변화”에 따라 다른 것과 진배없다. 『꿈의 해석』 이후에야, 정신 병리학의 보조학문에 묶여있었던 정신분석은 인간 정신구조에 대한 보편적 탐구로 확장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는 억압되는 것에만 머물렀던 프로이트의 지적 관심은 ‘억압하는 것’, 즉 자아 보존 본능으로 확장되고, 이것은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으로 세분되며, 더 나아가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의 반복강박에 이른다. 말년에 접어들면서 그는 정신분석을 예술 작품의 해석에 응용하기도 하고,『토템과 터부』,『문명 속의 불만』등의 저작을 통해 종교와 인류의 기원을 연구한다. 이것은 보편 이론 체계 구축을 운명으로 짊어진 모든 학문의 행로에 충실한 결과였으며, 인간에 대한 통시적 이해의 한 축을 풍부하게 하는데 기여한 것이기도 했다. 프로이트 이후에도 정신분석운동은 그의 적자와 탕자들에 의해 계속 되었고, 인간 주체는 의식 중심의 달콤한 독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심연을 마주하면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헌재 2014-09-11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분적으로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민의 공부론 - 인이불발, 당기되 쏘지 않는다
김영민 지음 / 샘터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부당한 권력일수록 폭력으로 연명하는 법이라, 옛 중국의 흉포한 어느 황제도 제 수족같은 100명의 궁사를 늘 거느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는 방울이 달린 작은 깃발 하나를 들고 다녔는데, 그 깃발로 어느 방향을 가리키든 그 찰나 100대의 화살이 정확히 지목한 표적에 박혔다. 어느 날 황제는 뜬금없이 그가 가장 아끼는 후궁을 향해 깃발을 가리켰고, 100대의 화살은 어김없이 그녀의 몸을 밤송이로 만들었다. 헌데 간발의 차이지만 99대의 화살과 달리 1대의 화살이 뒤늦게 박혔고, 왕은 주춤거렸던 그 궁사를 잡아다가 목을 쳐 버렸다. 그 궁사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절대 권력의 판단과 명령을 의심한 셈이었고, 그는 이미 체계의 단말기로는 고장난 부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판 정신의 가장 초보적인 덕목이 활을 쏘기 전 감히 생각 따위를 했던 궁사처럼 외적인 명령 체계든 내면의 공리계든 그 호명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 의심의 눈초리를 줄창 견지하려는 자세인 것은 분명하다.  유태인 학살 과정의 총책임자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기록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가  ‘사유하지 않음’을 나치즘이 저지른 만행의 뿌리로 지목하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근면함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철저한 무사유였다.…… 이처럼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렌트의 혜안대로, 인간의 악행이 잔혹한 기질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범한 이웃집 슈퍼 아줌마라도 어떤 상황과 조건만 주어진다면, 근면하게 누군가를 학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간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 아렌트의 ‘나쁜 짓 안하려면, 생각해야 한다’는 해법은 소박하다 못해 실천적으로 무기력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습속과 무의식에 깊이 각인된 체계의 공리계를 의식적인 사유만으로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을뿐더러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의 질서를 맘먹은 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게 우리 일상의 경험이지 않는가.

오히려 체계와의 싸움은 김영민 선생의 말처럼 “생각은 공부가 아니다!”라는 의식 중심적인 공부와의 단호한 절연 속에서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기-생각이라는 게 워낙 타인을 배제하는 속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레비나스가 인식론을 배격하고 제 1철학의 자리를 윤리학으로 자리바꿈하려던 것도,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에서 ‘비개념적인 것’을 강조한 이유도 (개념적) 사유가 가진 동일성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개념의 작동 원리 자체는 개체들의 복잡성을 제거하고, 특정한 유(類) 아래 종속시켜 종차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념의 그물이 포획할 수 없는 단독성들은 무시당하고 동일성은 그에 맞춰 강화되기 마련이다. 무사유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생각인 줄도 모르는) 자기-생각에 푹 빠져 있는 게 병통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생각의 거울방을 벗어난, 공부라는 그 “돌이킬 수 없는 변화”는 무엇을 매개로 도래하는가? 일례로, 청년 비트겐슈타인과 장년 비트켄슈타인 사이의 변화는, 공부란 필히 ‘타자성과의 마주침’을 통해서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33세의 나이에『논리철학논고』를 발표하고 철학계에 돌풍을 일으킨 후, 철학적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며 홀연히 떠났던 그는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온다. 논리적인 언어만이 말해질 수 있는 것이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던 그가 다양한 언어 규칙들을 가진 다양한 언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철학적 탐구』에서 집약되는 그의 후기 사상의 연원을 케임브리지를 떠난 약 6년 동안의 오스트리아 시골 마을에서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의 경험에서 짐작해 볼 수도 있을 테다.

“아마도 그가 가장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곳 사람들의 언어 사용이었을 것이다. 매우 고상하고 지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랐던 비트겐슈타인에게 시골 사람들의 삶과 언어생활은 너무도 거칠고 지나치게 감정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을 말하려고 했던 그의 원칙은 그곳에서 볼 때 오직 자기자신만의 원칙에 불과했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 곳 사람들도 나름대로의 완벽한 언어생활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강신주,『철학 VS 철학』)

하나 유념해 둘 일은, 타자성의 체험이 의도를 벗어나고 우연찮게 찾아온다 해도, 그것은 미래에 도래할 메시아를 기다리듯 절박한 소망만으로 맺어지는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전으로서의 공부의 요체는 “‘어떤 틈 속으로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에 자신을 넉넉히 노출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이다. 자기체계의 안정화가 아니라 늘 새로운 변화에 기민하도록 탄력있는 긴장의 상태로 스스로를 부단히 조율해 가는 일이다.” 김영민 선생의『공부론』의 부제이기도 한 ‘인이불발(引而不發), 당기되 쏘지 않는다’는 말은 그래서 타자성의 지평 속에서 감응할 수 있을 “몸이 좋은 사람”을 조형해가는 (활이 화살을 당기고 있을 때의) 팽팽한 긴장을 묘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맥락에서『공부론』에서 가장 긴 분량인 ‘글의 공부, 칼의 공부’는 무사들의 싸움과 같은 정직한 학문 현장에 대한 그리움이자 동시에 타자성의 지평에 감응할 수 있는 주체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에 대한 탐문이다. 특히 일본 검객 무사시의 “차림자세가 있으면서 차림자세가 없다”는 것에서 “ ‘없음’은 ‘있음’의 부정이 아니라 있음 그 자체의 극단을 뚫어낸 초극(超克)에 가까운 것이며, 마치 달인의 솜씨가 스스로 그 법식을 해소해 버린 경지를 가르킨다” 그것은 마치 동아시아의 현자들이 “인仁과 의義를 행동으로 옮겼다기보다는 줄곧 인과 의를 통해서through 행동했"(바렐라)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와 같이 책상과 일상이, 정신과 육체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생활양식의 항상적인 리듬을 타고서야 타자성과의 접속은 가능하다. 타자성은 추상적인 판단과 추론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몸을 가진 너와 나의 만남에서 도래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지행병진의 길을 뚫어가는 데 있어, 비록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해도, ‘자기-생각에 함몰된 전형적인 증상인 냉소와 허영’을 피해가는 길은 긴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둘은 무엇보다 상징자본으로 먹고 사는 지식인에게는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탓이다. 냉소와 허영은 체계 속에서의 인정 투쟁에 토대를 둔 나르시시즘의 두 얼굴이다. 흔히 냉소가 인정 투쟁에서 패배한 자들의 방어기제라면, 허영은 대개 제도의 인정 구조에서 승리한 자들의 독점욕이다. 냉소를 양식으로 삼는 자들이 권위를 까대면서 얻는 (니체가 바로 노예의 도덕이라고 불렀던) ‘반동적인reactive’ 이익으로 자신을 긍정한다면, 허영에 꽉 찬 자들은 체계가 부여해준 공식적인 직함/지위에 기생하면서 그 후광을 빌려 근근이 자신을 뽐낸다.

물론 악셀 호네트가 밝혔듯, 상호주관적 인정 유형인 사랑, 권리, 연대를 통해 인간은 자기 신뢰와 긍정 그리고 가치부여를 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만큼 냉소와 허영은 단순히 인정 투쟁 자체를 (생각 속에서) 무시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을 문제가 아니다. 해법은, 인정 투쟁의 틀과 방식을 사회, 정치, 경제적인 영역들 뿐만 아니라 일상의 관계에서마저 바꿔가는 실천과 더불어 “번잡한 욕심이 아니라 하이얀 의욕”을 갖고 그 충실성 속에서 오직 살면서 공부하고, 공부하며 사는 길을 가는 것 뿐이다.

요컨대, 김영민 선생의『공부론』은 ‘인이불발(引而不發), 당기되 쏘지 않는다’는 당기는 것과 쏘는 일 ‘사이’에서 대략 세 가지로 소략하게 갈래지어 진다. 공부란, 1) 의심 많은 궁사처럼 당기되 즉각적으로 쏘지 않는, 체계의 단말기로서의 상명하복을 넘어서는 것이요 2) 당기는 것과 쏘는 일의 분법을 넘어서는, 현자들의 “행하면서 알아가는 수행성의 지혜”를 회복하는 일이며, 3) 당기는 것이 쏘는 일에 종속되지 않는, “기다리되 기대하지 않고, 알되 묵히며, 하이얀 의욕으로 생생하지만 욕심은 없는”, 그래서 당기되 쏘지 않아도 되는, 쏘지 않아도 당겨야만 하는 길이다. 그리하여, 시간의 딸(filia temporis)을 정성스레 공대하는 일, 그게 공부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Sorry, monkey
    from 갈대밭 메뚜기 2010-03-29 03:03 
    쥐는 우표만하고 원숭이는 엽서만하고침팬지는 A4 한장 정도고인간은 A4 네장정도다. 꾸불꾸불한 대뇌를 쫘악~하고 펴면 그 정도가 된다는 말이다. 대뇌피질이야 말로 기억능력과 창조능력을 관장하는 고도의 기관이라고 하니..넌 이런 생각이 들꺼야 겨우 A4 네장 정도밖에 안돼?몇 백쪽 짜리 책 수십, 수백권을 읽고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근면하게 공부해온 너에게 이건 좀 시시하다하겠지아. 그렇게 공들여 완성한 A4네장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