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사상에 조애가 깊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불교 사상에 대한 막연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고는 있지만 불교 공부에 발전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이 몇 년 동안을 답보상태로 보내고 있습니다. 저처럼 혼자서 불교 사상을 공부하는 초심자들은 아마도 이런 답보상태를 누구나 경험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러한 상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의 경우에 미루어 볼 때 일단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공부한 불교 사상의 핵심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간단명료한 핵심을 꼭 집어 말하기에는 불교 사상이 걸치는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핵심이 정리되기는커녕 공부를 할수록 오히려 난마와 같이 엉켜 들어 가고 있다는 느낌만 자주 받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근본 교설의 맥락에 따라 엉킨 것들을 정리하고자 노력합니다만, 근본 교설을 근본 교설로 만드는 그 “근본”은 또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그나마 정리된 것도 다시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둘째는 불교 사상에서 동원되는 여러 가지 개념들의 정밀한 의미를 공부할 수 있는 책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개괄적인 의미 정도는 잘 정리해주는 서적이 없지 않으나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 차원에서의 의미 분석으로까지 파고들어가는 책은 잘 보지 못했습니다.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이러한 차원으로까지 심화되지 않고서는 불교 사상에 대한 정확히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금강경에 대한 역해로서의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진지하게 접근해 나아가는 장점을 갖추고 있습니다.첫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이 책은 금강경의 근본 메세지, 곧 '산야를 혁파하라'는 메시지를 잘 부각시켜줌으로써 근본 교설을 근본 교설이게 함과 동시에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그 “근본”의 정체를 독자에게 인식시켜줍니다. 이로써 이 책은 방대한 사상 체계로서의 불교는 근본 교설이라는 맥락을 통해 체계화될 수 있으며, 다시 근본 교설은 “산야를 혁파하라”는 맥락을 통해 체계화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이 책은 산스크리트 텍스트 분석에 기반함으로써 불교 사상에서 동원되는 여러 가지 개념들의 정밀한 의미를 제공해 줍니다. 산스크리트 텍스트에 대한 직접적인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 결과로 독자들은 이 책의 “대역” 및 “주해”에서 풍부하고도 치밀한 개념 분석들을 만날 수 있으며 그러한 개념 분석들을 통해 금강경은 비로소 원래의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해석 가능한 텍스트로 독자들에게 다가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할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한정 짓기에는 이 책의 텍스트인 금강경이 갖는 가치가 너무도 클 뿐만 아니라 이 책이 선사하는 역해도 너무 출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정 집단”을 굳이 지정한다면 불교 사상에 대한 지적인 열정으로 이런 저런 책들은 여러 권 들추어 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척 더 가려워지는 그 어떤 핵심적인 곳을 아직 찾지 못해 괴로워 하시는 분들이 바로 그 “특정 집단”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책으로 공부를 할 수 있으니 저와 같은 재야(?) 불교 학도의 불교 공부에도 구원이 임박한 것 같습니다. 불교 사상에 관심은 있는데 아직은 가려운 데가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겠다는 분은 먼저 “불교 사상의 체계적 이해”(새터)부터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리면서 장황한 글을 마치겠습니다.